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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캠핑 후기
2023.11.12 13:58

텐트 밖은 단풍 - 설악산 흘림골 탐방(등선대)

조회 수 267 좋아요 2 댓글 2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올해 여름휴가를 10월 말에서야 쓰게 되었습니다.

 

연말에는 사용하기 더 어려울 것 같아 1023일 월요일부터 27일 금요일까지 휴가를 냈습니다. 전후 주말까지 포함하면 9일간의 긴 휴가인 셈입니다. 교회 봉사가 있는 주말을 빼더라도 평일 5일을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할지급작스럽게 정하자니 막상 쉽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을 바로 갈 수도 없고 국내여행도 막연해서, 그냥 가까운 데 매일 등산이나 할까 하는 생각 중에 출근길 라디오 뉴스에서 20일 오대산부터 단풍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 단풍이나 실컷 구경하고 오자.’ 이런 단순한 결정을 바로 내렸지요. 다행히 아내도 연중 휴가를 같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외롭지 않게 떠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는 것을 이제는 꺼려 할 정도로 커버린 아이들은 오히려 내심 며칠이라도 우리가 집에 없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만 함께 가기에 부담이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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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설악산을 가보고, 남하하는 단풍을 따라 정선으로 그리고 끝으로 경상북도 청송에 있는 주왕산과 주산지를 둘러보고 오는 일정을 일사천리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대략 일정을 잡고 숙박은 캠핑장을 이용할까 했는데, 4박을 매일 이동하며 모두 노지에서 지내면 아내도 고생할 거 같고 끝에 가서는 좀 처량할 것 같아 2박만 캠핑하고 나머지 이틀은 콘도를 예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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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월요일. 아침 일찍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니 오전 9시 조금 넘어 오색 약수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약수터 방향 안쪽에 있는 공영주차장은 만 차였고, 오색리 입구에 있는 큰 공영주차장의 노상도 이미 다 찼습니다. 그래서 주차빌딩 1층에 파킹을 했는데, 우리가 주차하는 동안 차들이 주차빌딩 안으로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설악산의 단풍을 탐닉하려는 인파였습니다. (일 주차비용은 9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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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약수터 주차장에 차를 놓고 여기서 택시를 타고 한계령 바로 아래에 있는 흘림골 탐방로 입구로 갔습니다(택시비는 인원에 상관없이 한 차당 15,000. 흘림골 탐방로는 사전에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한다). 여기서 등선대로 올라 남설악의 자태를 전망하고 오색리 주차장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빠른 걸음으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 단풍에 홀려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중간에 간식도 먹으려면 5~6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는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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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림골 탐방로 입구에서 바라본 등선대쪽 풍경입니다. 우측의 바위산이 남설악 칠형제봉 자락이고 좌측으로는 등선대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있습니다. 이미 여기서부터 설악산의 날 선 자태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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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이 무색하게 등산객이 줄을 지어 올라갑니다. 흘림골 탐방로는 한때 낙석사고로 폐쇄된 후 정비를 통해 최근 다시 개방이 되었습니다. 일 방문객 수가 한정되어 있어 피크 철에는 사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방문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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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경사가 급한 계단길이 이어집니다. 조금만 오르니 뒤편으로 설악산의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산 정상은 이미 단풍이 지나갔고아래쪽으로 단풍이 내려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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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은 흘림골 탐방지원센터 입구에서 등선대까지는 단풍이 지나간 듯 별다른 붉은 빛을 보기 힘들었고 나뭇잎도 떨어져 없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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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계곡 쪽 양지바른 곳에 곱게 물든 단풍이 보였는데, 그 사이로 날 선 능선이 보였습니다. 그 뒤편 아래 흘림골과 주전골에는 많은 단풍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가파른 경사를 숨 가쁘게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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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도중 여심폭포를 만났습니다. 이름이 말해주듯 모양은 여성의 음부를 닮은 형상입니다. 가물어서 그런지 물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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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에 전망대가 있어 가쁜 숨을 잠시 고를 수 있었습니다. 점점 오를수록 칠형제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너머로 내설악의 높은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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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설악 칠형제봉 중 하나를 망원으로 잡아봤습니다. 마치 외계 생명체 형상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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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 입구까지 왔습니다. 여기가 오르막 코스의 정점이고 이후부터는 흘림골과 주전골 그리고 우리가 차를 주차해 놓은 오색리 마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입니다. 입구 뒤편으로 우뚝 솟은 등선대 전망대가 보입니다. 아래서 볼 때는 아찔하지만,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서 어렵거나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이날 평일임에도 줄을 서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아마도 주말이었다면 오르는 데 한참 걸렸을 겁니다. 그래도 꼭 올라가 봐야 하는 전망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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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에 올라 바라본 남설악의 모습. 바로 이 장엄한 풍광이 등선대에 올라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이곳이 왜 설악산인지를 보여주는 비경! 올라오는 수고 대비 가치 만족 그 이상을 주고도 남는, 그야말로 가성비 갑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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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아까 전에 도달했던 등선대 입구 쪽 모습이 보입니다. 오색 빛깔의 탐방객들이 등선대를 오르려는 모습이 보이고 뒤편으로 기암괴석의 비현실적인 봉우리들이 솟아 있습니다. 우측은 흘림골 탐방로 입구에서 올라온 길 그리고 좌측으로는 이제 한참 내려가야 할 오색리 쪽 방향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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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에서 바라본 동해 쪽으로는 중청과 대청봉이 펼쳐져 있습니다. 눈높이 이상의 육중한 볼륨감을 보여줍니다. 저 위는 이미 겨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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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 방향의 모습. 사진 가운데 구부러진 실낱같은 한계령 길이 보이고 산 중턱쯤에 한계령 휴게소가 아주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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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카메라 망원 기능을 활용해 가까이 촬영해 보았습니다. 산 모양을 닮은 휴게소 지붕이 보입니다. 저 건물은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한 김수근 건축가가 1981년에 만든 작품입니다. 주변 산의 스카이라인을 해치지 않고 설악산 능선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죠. 한계령을 지날 때면 이 멋진 산장 모습에 항상 머물다 가는 곳.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는 남설악의 유려한 산새가 여정의 보람을 넉넉히 채워주는 힐링 스팟입니다.

 

 

(한계령에 대한 단상)

 

   스물아홉 총각시절.

  형 그리고 형수와 함께 동해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영동고속도로가 새말에서 강릉까지 아직 2차선이었던 그 시절에 우리는 내륙을 거쳐 남쪽 동해로 갔다가 7번 국도를 이용해 해안을 따라 속초 방향으로 올라오는 로드 투어를 했다. 소나타 차창 너머로 계속 이어지는 동해의 모습은 그 자체가 젊음이었다. 삼척 임원항에 들러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뒤편으로 원두막처럼 차려진 운치 있는 횟집에서 자연산 막회 한 상을 먹은 후 속초 척산온천에서 미끈한 뜨거운 물에 여정의 피로를 풀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향하는 길가의 한계령 표지판을 어슴푸레 보면서 늘어진 몸을 차 뒷좌석에 의지한 채 잠을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대를 잡은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불탄다.” 눈을 뜨고 바라본 한계령 정상 부근은 온통 붉은 단풍이 한창이었다. 저녁노을 직전. 할로겐전구색과 같은 햇빛이 단풍으로 불타고 있는 설악산의 붉은빛을 더욱 강렬하게 지피고 있었다. 내 생애 그렇게 붉은 산지를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주변에 차가 하나도 없다. 두어 달 전. 북한이 강릉지역 연안에 잠수함으로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소탕작전으로 대부분 정리되었으나 아직 두 명이 살아남아 막바지 비상작전이 펼쳐지던 때였고 그 여파로 관광객이 뜸한 탓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 셋은 한산한 한계령을 지나가면서 장대하게 뿜어주는 붉은 단풍의 열기를 홀연히 감상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코로나가 창궐하기 몇 해 전 초봄에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동해로 가는 여행 중 한계령 휴게소에 들렀다. 봄이 오는 시기였지만, 한계령은 겨울 그 자체였다. 차에서 내리자 흰머리를이고 있는 설악산이 우리의 입김을 솜사탕처럼 만들어주었다. 서둘러 휴게소의 아름다운 산장 안에 들어오니 그곳은 밖과 달리 아늑하고 훈훈했다. 그리고 손님들의 식탁에 차려진 따뜻한 국물이 커다란 유리창 앵글의 가장자리를 뿌옇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비쳐 들어온 남설악의 톱니바퀴 같은 산봉우리들이 그 창 한복판에 산수화처럼 펼쳐졌다. 순간 우리는 잠시 숨을 멈추고 그 황홀한 풍경을 눈에 담았었다

  톱니처럼 날카롭게 서 있던 그 산봉우리들 중 한 곳여기 등선대에 서서 나는 그때 눈에 담았던 한계령의 산수화를 다시 꺼냈다. 그전에 형과 함께 지나갔던 붉은 단풍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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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지금내 뒤에선 등선대에 올라온 탐방객들이 거친 숨을 뿜으며 서로를 찍어주겠다고 한다모르는 사람들과도 웃으며 찍어주려고 한다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좋아하며 웃는다.

 

  설악산 한계령은 우리 모두의 노트이다우리들의 젊은 날의 초상과 시와 노래와 그림들.... 이날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과 느낀 감정을 추억의 책갈피에 넣고 저기 손끝에 잡힐듯한 설악산 한계령의 산장에 다시 꽂아 두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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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대에서 내려와 이제 오색리로 가는 길로 내려갑니다. 정오의 햇빛을 바로 받으며 흘림골과 이어지는 주전골에서 펼쳐질 스펙터클한 풍경이 기다리는 곳으로...

 

 

<후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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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profile
    Dr.Spark 2023.11.16 10:27

    "같이 가는 것을 이제는 꺼려 할 정도로 커버린 아이들"

    이제 그렇게 되었군요.^^ 세월의 흐름이란...

  • ?
    맹수 2023.11.19 22:14
    네 그렇습니다. 박사님. 이제 품 밖의 아이들이 되었어요. 통제 관리가 어렵습니다.ㅜㅜ 동물의 왕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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