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선 웬수 같은 남편이었지만, 그 사람 떠난 후 전구다마를 갈면서 눈물 흘렸다.
* 오늘 돌아가신 큰형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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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선 웬수 같은 남편이었지만, 그 사람 떠난 후 전구다마를 갈면서 눈물 흘렸다.
* 근데 제목과 달리 웬 스키장갑 사진이? 그게 다 이유가 있으니 일단 읽어보시기 바란다.^^
수필가인 집사람(고성애)이 요즘 글을 한 편 쓰려고 한단다. 소재는 우리 큰댁의 형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얻은 것이다. 그 얘길여기서 하면 집사람이 글도 쓰기 전에 김을 빼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수필을 읽을 대상들과 내 페친들은 좀 거리가 있으니 간단한 언급 정도는 괜찮을 듯하다.^^;
우리 큰댁의 맏형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40대 후반에 돌연사했으니 요즘 같이 장수하는 시절을 고려하면 너무나도일찍 가신 셈이라 아깝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 형은 착했다. 매사에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으로 살아온 "술꾼"이었다. 대개 취해있었고, 자주 흥에 겨워 콧노래를 했으며, 누구에게나 너그러운 웃음으로 안부를 묻고, 항상 남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실없는 소리도 많이 했는데, 그런 소리에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아 스스로는 외로웠을 사람이다.-_-
그런 성격이 좋게 보면 좋은 거지만, 약간 삐딱하게 보면 바보 같고, 무능해 보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형님의 연세가높아 우리 아버님의 막내동생뻘 정도는 되었으니 나와의 연령 차이는 한 세대에 가까웠다. 내가 패기있게 살던 젊은 시절에 그형을 보면 뭔가 좀 답답했다. 결국 그 형이 그러했으니 가문을 위해 할 일이 많은 큰댁 장손으로서의 모든 일은 여장부인 큰 형수님께서 다 하셨다.(아니 형의 그런 태도가 형수님을 여장부로 만들었다.) 사람좋은 그 형님은 여장부로 변신한 형수님께도 주눅이 들어 사셨는데, 어쩌다 속이 터진 형수님이 "아휴, 저 웬수는 차라리 없는 게 도와주는 거란 생각까지 들어요, 도련님."하는말씀을 하실 때는 내가 다 민망했었다. 그런 얘기에 빈정 상한 내가 "형,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에요? 왜 그렇게 살아요???"하면 그 형님은 "아하, 그래. 그렇게 살면 안 되지. 허허..."하고 사람좋은 웃음을 한 번 지으며 지나갈 뿐이었다.(이젠 그렇게 형을 힐난한 내가 철 없었다는 생각이 들고, 외로운 형을 따뜻하게 감싸드렸어야 했다고 후회한다.ㅜ.ㅜ)
큰댁 형이 종중의 일을 하다 갑자기 돌연사를 했다. 묘를 이장할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돕다가 쉬는 자리에서 정말 거짓말처럼세상을 떠난 것이다. 착한 형님이 돌아가시니 마음이 정말 언짢았다. 가끔 내가 쓸 데 없는 소릴 형에게 했던 것도 맘에 걸렸다. 나를 큰 아들처럼 귀여워해(?) 주시던 형수님(심지어 어릴 때 내가 큰댁에 놀러가면 형수님이 장에 갔다오시면서 동년배의 조카들 옷과 함께 내 티셔츠를 사다주신 일도 있다.)을 뵙고 형님을 먼저 보내신 것에 대해 위로를 해 드리면 "괜찮아요. 원래 없다고생각하고 살던 사람인데..."하고 미소를 지으실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형수님이 돌아가신 형님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시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제가 열심히 종중 일도 하고, 부녀회 등 외부 활동도 많이 하면서 집을 비웠는데, 알게 모르게 형님이 한 일이 많더라고요. 매일 구박만 하던 사람인데..."하는 말씀. 그리고 어떤 때는 "어젠 나 혼자 전구다마를 가는데 그게 안 해 본 일이라 그것조차 서툴더라구요. 전구다마를 갈다가 형님생각에 눈물까지 났어요."라며 그 여장부가 마음 약한 소리도 하셨다.ㅜ.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다. 들어온 것(옆에 있는 것)은 몰라도 누가 떠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얘기다. 그무능한(?) 형님은 살아생전 좋은 소리보다 핀잔을 더 많이 듣던, 그저 사람좋은 분이라 곁에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그가 떠난자리는 컸던 것이다. 일 없이 빈둥댄 것 같으나 부인이 뛸 자리를 마련해 주고, 눈에 안 보이게 부인을 위해 많은 일을 했던 걸 형수님이 뒤늦게 아셨던 것이다. 바깥 일을 많이 하시던 형수님은 집안에서 해야할 잔 일이 그렇게나 많은 걸 형님이 떠나신 후에직접 하면서야 깨달으셨다고 한다.
* 전구(電球/light bulb)는 에디슨 이전에도 스완이 만든 바 있는데, 이는 전류를 통해 빛을 내게 하는 도구이다. 전구다마란 말은 1960년대를 살던 전세대들이 백열전구(白熱電球)의 둥근 알(球)을 일본어 다마(玉)로 표현한 것이다. 전엔 그냥 전구라 하지 않고, 그걸 "전구다마"라 부르는 사례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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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 집사람이 이번 시즌에 사용하는 루디스(Ludis) 스키장갑이 다른 건 좋은데 리쉬 코드(leash cord)가 없어서 무척 불편하단다. 리쉬 코드란 어떤 물건에 매어놓은 끈으로 그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주는 안전 끈(앵커, 혹은 빌레이)이다. 즉, 장갑을 손목에 연결해 두는 끈이다. 집사람이 사용하던 예전 장갑엔 그 리쉬 코드가 있어서 항상 장갑이 손목에 매달려 있으니 편하고도 안전했는데, 이번 것은 그게 없어 두 개 한 쌍의 장갑을 따로 들고 다니려니 영 불편하단다. 리프트에서 휴대폰을 꺼내 쓸 때 벗어놓은 장갑을 떨어뜨릴 것 같기도 하고, 자칫 벗어놓은 장갑을 화장실에 두고 오기도 십상이라고...
자칭 맥가이버인 내게 그런 문제의 해결이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내가 전에 쓰는 두 개의 장갑 중 하나에 달려있던 리쉬 코드를 빼어 그걸 강한 나일론 실로 꿰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장갑을 살펴보니 장갑을 끼기 편하게 당기는 핸드 풀러(hand puller) 고리줄이 있기에 굳이 꿰맬 필요도 없이 거기에 비끄러 매주었다. 그리고 손목 안쪽에 붙어있어서 불편한 제품 택(tag)도 가위로 잘라주어 거슬리지 않게 했다.
나 없으면 이런 걸 집사람이 직접 하던가 그 귀찮은 일을 포기한 상태로 망연자실, 먼저 간(???)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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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이랄 수는 없고,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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