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오랜만에 가 본 명동과 이상한 나라의 안경점 - 로맨티시즘으로부터 스포츠 글라스에 이르는 스토리들
명동. 1950년대나 1960년대엔 우리나라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s)들이 모두 다 몰려들던 곳이다. 그 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가 1970년대 초에 나온 포크송 "세월이 가면"(박인환 시, 이진섭 곡, 전오승 편곡)이다.
"세월이 가면"은 시인 박인환의 마지막 시이다. 이 시에 얽힌 일화 때문에 이 시가 더 유명해 지기도 했다. 멋진 스토리 텔링을 포함하고 있기에...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들 중 하나였던 것이 명동의 대포집 '은성'이다. 거기서 극작가인 이진섭, 이진섭의 친구인 언론인 송지영, "과거를 묻지마세요", "밤의 탱고"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DDD 등을 부른 1990년대의 가수 김혜림의 모친. 본명은 전봉선. "밤의 탱고"는 친오빠인 작곡가 전오승이 만든 곡)이 같이 술을 마셨다.
- 시인 박인환
- 극작가, 작곡가, 번역가 이진섭
- 가수 김혜림과 그녀의 모친, 나애심(본명 전봉선)
그 자리에서 박인환이 쓴 시를 들고 팔방미인이었던 극작가요 번역작가이자 프랑스 포크인 샹송에 일가견을 가졌던 청재(靑齋)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였다. 그리고 그 악보를 보며 나애심이 바로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그 자리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서 다시 노래를 불렀다. 은성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이 그의 우렁차나 가슴 시리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듣고 그곳으로 몰려왔고, 오래 임만섭의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대포집 은성을 경영하던 여걸은 현재의 국민배우 최불암의 모친이었다.) 1956년, 한국전쟁이 끝난 지 3년 후의 일이다. 당시엔 살기는 힘들어도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로맨티시즘 속에 살았다. 그래서 난 그 시대가 그립다.
이필원과 함께 뚜아에무아란 그룹으로 활동했던, 야마하(Yamaha) 사가 만든 통기타를 즐겨치던 박인희의 노래. 흡사 소녀시대 윤아와 같은 이미지를 가졌던, 맑은 소리(淸音)의 박인희가 부른 노래의 가사는 박인환의 원시와 조금 다르다. 눈에 띄게 다른 부분은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 것”을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으로 바꾼 것, 원시의 맨 마지막 행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로 바꾼 것.(상기한 시는 부분 개사한 노래 가사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원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오히려 더 정갈하고도 깊은 마음을 담은 것으로 느껴진다.
이 노래는 공식적으로 신라의 달밤을 부른 현인이 첫 가수이다. 이 노래 가사의 첫 마디는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란 다른 노래에서 차용되기도 했다.(그 노래는 전혀 다른 노래이나 구슬프면서도 우리의 정서를 함뿍 담고 있어서 사랑받았다.) 나애심은 세상을 떠나기 몇 년전 딸 김혜림에게 "그 노래는 내 노래"라고 했다한다. 실제로 신신레코드에서 출반된 가요집엔 "고 박인환 작사 이진섭 작곡 전오승 편곡 '세월이 가면' 노래 나애심"이라고 레이블에 적혀있기도 하다. 누구라도 위의 스토리 텔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나애심의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박인환의 시는 훌륭했지만 그것이 쓰여진 지 20년 정도가 지난 포크송 시대, 1970년대 초에 박인희에 의해 노래로 불려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기 힘들었을 것이라 본다. 박인환은 그의 마지막 시인 "세월이 가면"을 쓴 지 일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 신신레코드가 출반한 "세월이 가면"
박인희의 포크송 "세월이 가면"은 위에서 말했듯이 박인환의 시를 차용한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처연한 시이다.(그러나 처량맞지는 않다.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 주는 좋은 노래이기에...) 그 시가 그에 어울리는 노래를 만나 더 처연한,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깊은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이 되었다. 산속에 흐르는 계곡수처럼 청량한 박인희의 목소리로 불리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아프고, 아린 심정이 된다. 그런 노랫말, 그런 처연한 음악.
2022년 12월 30일, 그 해를 보내기 이틀 전에 난 "세월이 가면" 명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러 갔다. 당연히 내가 젊은 시절에 보던 여전히 촌티나던 명동이 아닌 걸 알면서... 하지만 1950년대의 로맨티시스트들의 환상을 좇아가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다시 살아난 명동 경기를 보고 싶었다. 이날 명동을 찾은 것은 내 오랜 스폰서인 명동 아이닥안경원( www.eyedaq.co.kr )을 방문키 위해서였다. 내가 명동에 갈 일은 매년 한 번 아이닥 방문을 하기 위해서이다.ㅜ.ㅜ
- 명동엔 주차가 힘들어서 내가 항상 주차하기 위해 찾는 을지로 입구의 호텔 스카이파크. 호텔 정문 왼편의 뭔가를 보긴 했지만 그게 뭔가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나중에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에 다시 갔을 때 그게 뭔지 알게 되면서 "아하!!!"했다.^^
- 명동의 한 골목
- 성모병원 방향의 명동. 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돌아왔다.
- 유네스코회관 방향의 명동. 역시 사람들이 돌아왔다. 명동 절정기에는 못 미치지만...
- 전과 다름 없는 자리의 명동예술극장. 고전적인 건축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서 다행이다.
- 유네스코학생회(KUSA) 출신이라 자주 들렀던 유네스코회관이 보인다.
- Most shining star, BTS Taehyung's Birthday. Congratulations.
구시대의 로맨티시스트인 1926년생 시인 박인환 등을 기리던 명동은 이제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95년생인 BTS의 뷔, 김태형을 기리는 장소로 변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사람 이름은 생생하고, 그 눈동자 입술이 내 가슴에 있어서 사람(랑이 아니고)은 가도 옛날이 남는 것을 보여준다.
- 이곳 개양빌딩의 11층에 가려는 것이다. 아이닥 안경원이다.
- 명동 뒷골목의 한 건물 11층에 위치한 "이상한 나라의 안경원" 여긴 가보면 정말 Wonderland이다.
도대체 길가의 안경원이 아닌, 한 뒷골목의 11층에 위치하고, 작년까지는 저 간판조차 없던 안경원이 어떻게 20년 이상을 버텨왔을까? I wonder who was supporting it behind. The Invisible Hand???(그 대표님이 신앙이 있으신가???)
- 아이닥의 김영근 대표님. 흰 가운 입으신 분. 그리고 모처럼 성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명동 나들이에 나선 Dr. Kosa.(의자에 앉은 사람)
- 이렇게 큰 안경원이다. 볼수록 희한한 원더랜드.
- 이날 아이닥을 방문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Made in Canada의 HILX 스포츠 글라스를 맞추러 간 것이다.
- 자전거나 인라인을 탈 때, 혹은 등산을 할 때 쓸 수 있는 고급 스포츠 글라스이다. 오버사이즈드(oversized)여서 고글 느낌이 난다. 하지만 이건 고글도 아니고, 단순한 선글라스도 아니다. 스포츠 글라스이다.
스포츠 글라스에 대한 오해와 고글
고글은 무려 14세기에 페르시아(현 이란)의 진주조개잡이 어부들이 잠수를 위해 거북의 등껍질을 갈아서 만든 발명품이다. 이것은 1916년에 출현한 병기인 암호명 탱크(Tank), 영국의 전차 Mk.I이 사용된 1차대전 시에 전차병들의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재창조 되고, 2차대전 시 독일의 팬저(Panzer) 탱크 승무원들을 위한 져먼 아미 탱커(German Army Tanker) 고글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의 특징은 오버사이즈드로 눈 전체와 그 주위를 커버하고, 헬멧에 고무줄이나 고무 밴드로 고정한다는 것이다. 이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동일하다고 할 정도이다.
선글라스는 고글 보다 이른 11세기 초에 중국 송나라의 황제 쳉(Cheng)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10세기의 이누이트족 사람들이 고글 비슷한 모양의 상아로 만든, 햇빛을 차단기 위해 만든 아이웨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면 중국인들은 놋쇠 프레임에 색깔있는 유리를 댄 선글라스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말하는 본격적인 선글라스의 기원은 18세기의 영국인 제임스 아이스코프(J. Ayscough)가 겹친 볼록렌즈에 초록색과 푸른색을 곁들여 햇빛의 양을 줄인 것으로 본다.(이 사람이 만든 선글라스가 오늘날의 오클리 선글라스와 비슷한 걸 보면 이 사람의 예지 능력이 대단하거나 이 사람의 공예품을 보고 레트로 제품으로 만들어낸 오클리 사가 대단한 것 같기도...)
- Made by Englishman James Ayscough in mid-1700s.
이런 움직임은 1935년 미국 공군의 AN6531 규격의 항공 선글라스 Aviator(에이비에이터)로 귀결되는데, 이 에이비에이터는 AO(American Optical)과 B&L(Bausch & Lomb) 등 여러 회사가 제작하였다. 이 당시에 이미 에드윈 허버트 랜드(Edwin Herbert Land)가 폴라라이즈드 렌즈를 개발하고, 같은 이름의 회사를 창립한다. 이 때부터 100%의 UV 차단용 렌즈가 패션과 기능을 조합한 상태로 대중들에게 소개된다. 그 후에는 선글라스가 헐리웃 배우나 당시의 모델들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되고, 드디어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늘어난 여가시간에 의해 레저와 스포츠가 보편화되면서 스포츠 선글라스가 탄생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스포츠 글라스의 원형이기는 해도 그것이 스포츠 글라스인 것은 아니다.
요즘 고글이란 용어로 착각되고 있는 스포츠 글라스는 레이밴이나 메츨러 등의 스포츠 선글라스에서 훨씬 진화한 것으로서 매우 인간공학적인 접근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상품이다. 이는 형상기억 합금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충격을 받았을 때도 원형을 유지할 수 있고, 두상에 맞춰 제작되므로 심한 운동에도 흘러내리거나 떨어지지 않으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 깨지지 않는 방탄렌즈를 사용하는 것 등이 국룰이다. 그러므로 이의 형태는 선글라스나 고글과 전혀 다른 것이 특징이다. 그포츠 글라스는 고글이 아니니 착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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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날 내가 보러간 것은 캐나다제 HILX(힐스 혹은 힐쓰라고 발음된다.)로서 트렌디한 제품이다. 이것은 도수렌즈를 삽입할 수 있는 오버사이즈드 선글라스 비슷한 형태와 완전한 오클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오버사이즈드 스포츠 글라스로 구분되어 출시되고 있다.
- 도수렌즈 삽입형
- 오렌지색의 오버사이즈드 고글형(이나 스포츠 글라스)
- 핑크색 프레임
- 이거 맘에 딱드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상에 맞춘 인간공학적인 디자인이어서 도수를 삽입할 수 없는 형태이다. 커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도수삽입형은 커브가 적다.
- 아무리 봐도 난 이런 형태를 좋아한다.
- 이 제품은 실제로 고글처럼 고무밴드는 물론 얼굴에 닿는 스펀지까지 자석식으로 탈부착할 수 있는 것이다.
- 고글형 밴드. 실제로 이렇게 고무밴드와 함께 바람막이용의 스펀지 패드가 있고, 오버사이즈드 형태의 프레임과 렌즈가 있을 때는 이를 고글로 불러도 무방하다.
- 이런 좋은 측정장치로 내게 맞는 도수 스포츠 글라스를 맞췄다. 관련된 내용은 별도의 리뷰로 쓸 예정이다.
- 도수 스포츠 글라스를 만들기 위한 작업의 일부
- 렌즈 안의 내 눈동자의 위치를 잡기 위한 과정
힐쓰 스포츠 글라스 두 가지 중 본격적인 스포츠 글라스는 도수렌즈를 삽입할 것이 아니므로 바로 가지고 왔고, 도수렌즈 삽입형은 렌즈가 제작되어야 하기에 두고 왔다.
다시 주차장이 있는 호텔로 와서야 이것 역시 BTS 뷔(김태형)의 생일 축하를 위한 행사의 일환이고, 외국에서 온 BTS 팬들이 이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인증사진 찍던 동남아 젊은이들이 모두 뷔의 팬이었다.
50-60년대의 로맨티시스트들은 다 갔지만 아직 세월이 가도 그들을 사랑하는 내가 있고, 명동에 가면 그들을 기리면서 내 가슴은 서늘해 진다. 그러면서도 BTS 등의 새로운 수퍼스타들이 출현하는 걸 대견해 하고, 그들을 긍정하는 나를 본다.
언제나 그리운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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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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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옛 추억을 많이 가지고 계시군요.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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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은
예전에 시공관이라 불리던 건물 하나뿐이군요
전 시력이 지금도 좋아서 안경은 별로 아는 건 없지만
해방과 함게 온 미군들이 사용하면서 알려진
그 당시 아니 얼마전까지 라이방이라 불렸던 선그라스가 지금처럼 대중화 되기 전까지는 연예인이나 아니면 위사람 앞에서 쓰면 건방지다고 했던 선그라스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온 건 월남전 참전병사들이 귀국하면서 한 개식 쓰고 오면서 국내에 반입되였지요
명동도 50년대에는 국민학생이라 뭘 몰았지요
그 당시 전쟁이 끝난 후에 명동은 황량했지요
그 당시 지금의 신세계백화점이 미군 영외 PX
여서 주말이면 미군들이 쇼핑하러 동화백화점 자리로 가면서 명동성당앞에서부터 중앙극장 가는 곳까지 미군차들이 주차해있곤 했는데 그 당시 십칠팔 세 정도의 청년들이 미군차에서 OVM, 공구를 하도많이 훔처서는 청계천으로 팔러갈시간이 없으니
인근 땅에다 묻어놓고 훔치러 가면 우리 꼬마들이 그걸 파서 청계천에 가서 팔어 가지고 중고품 야구 글로브 및 뱃을 사서는 일요일이면 장충동공원에서 동네대항 야구시합을 했던 악동이였던 기억과 커서는
이젠 대포집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막걸리잔을 기울이면서 세상과 인생을 논하다간 과음해서 뒷골목 전봇대에 실례했던 젊은 날의 그 추억의 장소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명동은 이젠 왠지 싫어져서 가기가 싫더군요 추억이 사라진 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