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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Vincen van Gogh)를 위한 변명(辨明), "빈센트(Vincent)"

- 네델란드에서 G는 "ㅋ+ㅎ"를 합한 듯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반 고흐(van Gogh)의 이름을 실제 네델란드인의 발음(Dutch)으로 들어보면 "판 호흐", "판 ㅋ호흐"(Khokh)처럼 들린다. 프랑스에서는 "반 고그"로, 독일에서는 "판 고호"로, 영어에서는 "밴 고으"로 발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에 "반 고호"라고 했다가 이젠 "반 고흐"로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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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밤 / Starry Night, Oil on canvas(73.0 x 92.0 cm.) Saint-Remy: June, 1889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 / Starry Night)

고흐의 그림 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La Nuit étoilée("De sterrennacht" in Dutch)"는 1889년에 그려졌다. 그가 죽기 1년전에 그린 것이다. 이 작품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은 당시 고흐가 세 들어 살던 아를(Arles)의 라마르틴 광장(Place Lamartine) 주변의 노란 집에서 걸으면 1~2분 거리에 있는 론(Rhône) 강둑에서 그린 것이다.

불우한 화가를 위한 변명

미국의 가수 단 매크레인(Don McLean)은 이 한 폭의 그림을 포함한 그의 그림 몇 개를 보고, 고흐를 둘러 싼 슬픈 스토리들에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되었다. 그게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매크레인의 곡, "빈센트"를 만들게 된 동기이다. 이 노래는 말하자면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한 변명(辨明)"이다. 빈센트를 동정(同情, sympathy)하였기에 그로써 감정이입(empathy)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매크레인의 변명은 균형을 잃고 있다. "빈센트"에서 매크레인은 "별이 빛나는 밤, 희망이 남지 않았을 때 / 당신은 연인들이 흔히 그렇듯 목숨을 끊었죠 / 하지만 빈센트, 이 세상은 당신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었어요"라고 노래하며 이 불우한 예술가의 고통을 매우 부드럽고도 자상하게 위로했다. 그의 곡에서의 빈센트는 광인(狂人)이 아니다. 그건 사람들의 오해란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고흐가 실제로 정신이상이었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매크레인의 변명은 실제로는 그가 읽은 빈센트의 동생 테오(Theo van Gogh)의 책에 있는 그들 형제가 가진 비슷한 증상에 대한 테오 자신의 변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쨌든 실제가 아닌 일에 대해 변명해 주었다고 해서 매크레인의 곡, "빈센트"가 대중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던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중들은 진실이 아닐지언정 고흐가 오해를 받은 것이란 매크레인의 생각에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싶어했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매크레인의 노래 안에서 그같은 변명과 함께 가사 안에 녹아들어간 고흐의 이 작품 혹은 그 외의 몇 작품에 대한 묘사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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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f-Portrait, Vincent van Gogh, Oil on canvas(65.0 x 54.0 cm.) Saint-Remy: September, 1889 -  고흐(1853-1890) 내가 태어난 해에서 딱 100년을 빼면, 그의 생년이다. 1890년이라고 하면 그리 멀어보이지 않지만...

빈센트(1971)

별이 총총 빛나는 밤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고
한 여름날의 밖을 내다봐
내 영혼의 어둠을 꿰뚫는 눈으로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들과 수선화를 그려봐
산들바람과 겨울의 추위를 잡아봐
눈 덮인 하얀 대지의 색채로
이제야 난 알았어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어쩌면 이젠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이 빛나는 밤 연회청색으로 빛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눈
환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꽃들
보랏빛 실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
색조로 변하는 색상들
황금색 질감의 아침 들판들
고통으로 주름지고 바래진 표정들이
화가의 사랑스러운 손길 아래서 위로를 받네
이제야 난 알았어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어쩌면 이젠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심이었지
그 별이 빛나는 밤 눈앞에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연인들이 으레 그렇듯, 당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하지만 난 이 말을 해줄 수 있었다오, 빈센트
이 세상은 당신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고

별이 빛나는 밤
빈 복도에 걸려 있는 초상화들
이름 없는 벽의 액자조차 없는 그 얼굴들은
이 세상을 응시하는, 잊을 수 없는 눈을 가졌지
당신이 만나온 그 낯선 이들처럼
남루한 옷차림의 남루한 사람들
피로 얼룩진 장미의 은빛 가시는
새로 쌓인 눈 위에 부서지고 뭉개져 놓여있네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겠지, 여전히 듣지 않고 있고
아마 영원히 그럴 거야

매크레인의 노래 "Vincent" - https://youtu.be/oxHnRfhDmrk

Vincent(1971)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이 노래에서 가장 눈에 띄게 언급되는 그림은 당연히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이다. 마을 위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묘사한 그의 걸작을 가리킨다. 다음은 "해바라기(Sunflowers)"이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연작이 언급된 것으로서 꽃병의 선명한 노란색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한다. "끝없는 붉은 들판(Endless Red Fields)"은 특정한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광활한 들판이 종종 강렬한 붉은 색조로 묘사되는 그림의 풍경을 시적으로 해석(poetic interpretation)한 것이다.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눈(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이 가사 역시 은유적인 표현으로 특정 그림을 지칭하지 않으며, 고흐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서적 깊이와 강렬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켜주지 못 한 자들에게 잠재한 죄의식(罪意識)

고흐는 살아 생전에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아보지 못 한 불우한 예술가이다. 딱 한 점을 판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건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빈센트의 친동생 테오가 사 준 것이다. 그와 동시대를 산 모두와 우리 모두는 고흐를 지켜주지 못 했다. 그의 천재성은 시대를 앞서 간 것이었고, 그는 19세기 말을 잠깐 살았기 때문이다. 천재의 비극적인 죽음이란 스토리가 덧입혀져서 그의 작품들이 비로소 그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늦어도 너무 늦었다. 동시대인들의 죄의식은 후대에 이르러 태어남과 동시에 씌워진 원죄(原罪)의 굴레가 되었다. 매크레인은 그걸 내놓고 고백한 다른 분야의 예술가이다.

매크레인은 젊은 시절 고흐에 대해 깊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뉴욕의 한 쓰레기통에서 주은 초록색 종이가 곡을 쓰기에 좋을 것 같아서 그걸 차에 던져두었다고 한다. 그 종이에 한두 가지 생각을 적는 것으로 "빈센트"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매크레인은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을 보며 녹음기에 대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고흐의 그림이 무슨 얘기를 이어가야 할지 알려주는 듯한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저는 바람과 소용돌이, 그리고 산들바람을 떠올렸고 프로듀서인 에드 프리먼은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물결치게 하는 것처럼 현악기로 연주했어요. 전 그렇지 않은데 그는 미묘한 표현을 했고 그게 정말 좋았어요. 어쨌든 제 일주일 정도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 곡이 만들어졌어요. 제겐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죠. 어느날 날 밤 50달러 정도 받을 생각으로 고등학생들 앞에서 그 노래를 불렀어요. 아마 100달러를 받았을 거예요. 무도회인지 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가 그 신곡을 부를 때 학생들은 처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제가 노래를 부르자마자 모두가 멈춰섰어요. 그리고 그들은 저를 쳐다 봤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저는 '와, 이거 웬 일이야? 신나는 일인데?'라고 생각해서 녹음 작업을 시작했죠. 음반을 들어보면 저와 기타밖에 없어요. 원테이크로 그걸 단번에 해치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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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크레인이 처음 쓴 빈센트의 가사

이게 매크레인의 걸작 "빈센트"가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내슈빌작곡가협회인터내셔널(Nashville Songwriters Association International)에서 바트 허비슨(Bart Herbison)과의 대화 중에 그 스스로가 밝힌 내용이다. 이 노래의 대히트로 인해 탕감 받으려던 원죄는 오히려 고흐에 대해 더 큰 신세를 진 거라 생각한 매크레인은 더 무거운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museum)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날이 왔고, 드디어 그는 미술관 앞에 서서 어떤 복받치는 감정으로 고흐를 생각하다가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길 들어서면서 매크레인은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lette blue and gray......"라 노래하는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써 오랜 마음의 빚 일부를 청산하는 기분이 들었고, 미소지을 수 있었다. 이건 내가 디스커버리 채널인지 히스토리 채널의 단 매크레인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의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도 암스텔담의 고흐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강제로 그 노래를 듣게 된다. 매크레인은 그 미술관에서 고흐의 수많은 분신(分身)들을 만나고 있는 내내 자신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그 말을 하는 매크레인의 표정이 어찌나 즐거워 보이던지...^^) 난 얘기를 전해 듣는 것 만으로도 전율을 느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고흐 미술관에 "별이 빛나는 밤"이 없다는 거다. 이유는 이 그림을 1941년경 네덜란드의 개인 소장가로부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oMA)이 구입했기 때문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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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례(主禮)인 Dr. Spark가 고흐에 진심인 걸 안 트위터리안 신랑/신부가 유럽으로의 신혼여행 중에 일부러 암스텔담의 반고흐미술관을 방문하여 선물로 사 온 고흐의 그림을 담은 머그잔 중 하나이다. 지금 고흐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난 이 머그잔에 담은 커피를 마셨다. 신랑은 "7048 길"이었고, 그의 트위터 아이디는 @Therockpassion이었다.^^


다작의 열정과 바래 버린 색깔들

고흐가 아를에 머물렀던 1888-1889의 12개월 동안 그는 무려 187점이나 되는 수많은 그림들과 스케치를 남겼다.(그는 10년동안 1천 여개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멘탈 브레익다운(mental breakdown)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그렇게나 엄청난 생산력을 보인 그가 실제로 밥먹는 것조차 잊으며 그림에 몰두한 결과이다. 하지만 더 비극적인 일은 그가 밥을 사먹을 돈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빈센트의 수호자인 동생 테오가 충분한 생활비를 주었으나 고흐는 그걸 화구를 사는 데 너무 많이 소비했고, 어떤 날은 빵을 살 돈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짧은 기간동안에 그린 수많은 작품들로 인해 많은 유화 물감을 사야했고, 그마저도 충분치 않은 돈이라 그는 싸구려 물감을 사야만 했다. 이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게 되었다. 싸구려 물감으로 그린 유화들은 쉽게 갈라졌고, 붉은 색깔은 쉽게 바래서 옅은 핑크나 흰색으로 변해 버렸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왜 고흐가 복사꽃의 색깔을 희게, 혹은 핑크빛으로만 그렸을까?"에 대해서 의아해 했다. 실제로 그의 모든 그림에서는 빨간색을 사용해야할 부분이 희거나 핑크로 그려졌다.(빨간색이 살아있는 것도 있긴 하다. 그의 글라디올라스 그림에서는 그렇다.) 결국 고흐가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니라는 걸 색채학자들이 밝혀냈다. 미국의 유명한 색채학자로서 로체스터 공대의 교수인 로이 번즈(Roy S. Berns)가 워싱톤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in Washington)에 있는 고흐의 작품 "흰장미(White Roses)"가 실은 빨간 장미였음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암스텔담의 고흐 미술관을 방문, 연구한 결과 복사꽃의 색깔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랜 것임을 밝혀냈다. 지금도 빨간색이 바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당시의 물감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난한 고흐는 빵값을 아껴 굶으면서도 물감을 샀는데, 그가 산 물감은 어쩔 수 없이 싸구려였다는 것. 번즈 교수는 고흐가 사용한 빨간 물감의 주요 성분이 에오신(eosine)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원래 이 이름은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가 새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에오신의 수용액은 짙은 갈색이지만, 묽게 하면 황적색이 된다. 그리고 이 산성의 에오신은 립스틱의 빨간색 염료로 사용되지만, 인체에 유해한 색소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결국 세월의 흐름으로 바랜 에오신 때문에 빨간 복사꽃과 장미가 흰 꽃, 옅은 핑크빛 꽃으로 변했고, 또 하얀 장미로 변했다는 것이다. 1888년에 그린 그림 "아를 근처의 붓꽃이 핀 들녘(Field with Irises near Arles)"이란 그림도 그 한 예이다. 고흐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 이 그림은 지금의 푸르스름한(bluish) 색깔이 아니라 자주색(purple)이었다. 과학자들은 처음 고흐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의 안료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자주색 가운데 붉은 색이 사라지고 푸른색만 남아 있는 것임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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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Peach Tree in Blossom, Oil on canvas(80.5 x 59.5 cm.), Arles: April-May, 1888

화학전문주간지인 "케미컬 앤 엔지니어링뉴스(C&EN)"는 특집 기사를 통해 고흐가 사용한 색채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특히 걸작에서 즐겨 사용한 선홍색(bright red)과 밝은 노랑색(bright yellow)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 색깔들은 평범한 색깔들이 아니다. 시간과 함께 희미해지는 등 변화하고 있는 색깔들이다. 이 주간지는 세계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 고흐의 색상들을 "비극적 아이러니(tragic irony)"라고 표현했다. 무엇이 역설이었단 말인가?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의 미술품관리위원 엘라 헨드릭스(Ella Hendriks)는 “고흐의 눈은 당시 예술가들이 잘 알지 못 했던 색소저하(pigment degradation)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고 고흐 편을 들었다. 화학자들 역시 캔버스 안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화학적 분해가 일어났으며, 결과적으로 고흐의 범접하기 힘든 걸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고흐를 변호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붉은색 물감의 일종인 레드 레이크(red lake)가 크게 돋보이는데, 이들 색상들은 다른 화가의 색상들과는 달리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앞서 언급한 화학적 작용 때문이란다. 이 안료를 만든 유기화합물들은 빛을 쏘이면 급격히 안료의 구조가 허물어진다. 고흐는 이런 성질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난 고흐를 좋아하고 동정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가난해서 더 나은 물감을 쓰지 못 한 것 뿐이다. 그리고 화학적으로 매우 무지한 효과를 노렸다는 건 동정심의 긍정적인 표현일 수 있겠으나 진실은 아닐 것이다. 번즈 교수가 그 성분을 분석하고, 색소의 밀도를 계산하여 고흐의 작품을 디지털 복원한 것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건 아직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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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ncent van Gogh (Dutch, 1853 – 1890 ), Roses, 1890, oil on canvas.

붉은 색 계통의 염료로서 로마 시대 이후 계속 사용돼 온 광명단(red lead)은 이와는 좀 다르지만 역시 비극적이다. 이 붉은색 안료는 인체에 해로운 납(Pb, 鉛) 성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값도 싸고, 색상이 아름다워서 고흐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애용했다. 고흐의 독특한 화풍을 대표하는 노란색, 크롬 옐로우(chrome yellow)나 연단(광명단)조차 햇빛을 받으면 하얗게 변색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염료는 치명적인 연중독(鉛中毒)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는 붉은피톨이 늘어나고, 힘살이 마비(痲痺)되기도 하며, 심하면 정신장애(精神障礙)가 생기기도 한다. 또한 고흐는 드레스의 백색을 표현하기 위해 두 가지 안료를 사용했다. 하나는 역시 납(Pb)이 들어 있는 "연백(lead white)"이고, 다른 하나는 아연(Zn)이 주성분인 "아연백(zinc white)"이다. 후자는 아연과 산소가 결합한 산화아연(oxidized zinc)으로 물에 녹지 않고 공기 중에서 매우 안정하며 인체에 무해하다.(그래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선크림의 원료로 쓰인다.) 연백은 고흐의 시대인 19세기 말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연백은 연중독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묘한 색감으로 화가들을 사로잡았다. 그걸 많이 사용한 제임스 위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는 납중독에 이른 대표적인 화가이다. 고흐는 이런 직업적 질병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멘탈 브레익다운 상태에서 잠도 잘 못 자고, 잘 먹지도 못 하여 육체적으로도 고통받는 가운데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면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 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고흐의 최후에 이른다.

고흐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그가 사용한 "임파스토(impasto)"는 물감의 질감과 입체감을 살리는 회화 기법이다. 물감을 캔버스 위에 바로 짜서 섞은 뒤 두껍게 덧칠하는 것이라 많은 물감을 소요한다. 물감이 다 마르면 붓 자국이 마치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서조차도 이글거리는 별과 소용돌이를 표현할 때 납이 포함된 백색 안료를 덧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했다. 그는 사물의 상세한 표현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강조했던 인상파 화가였기에 임파스토 기법의 사용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생명과도 같은 주요 기법이었다.

원죄의 탕감을 위한 기억해 주기

어쨌거나 우린 그를 지켜주지 못 했다. 난 그걸 탕감하기 위해 내 사무실의 문 안쪽을 그의 그림을 변형시켜 장식했다. 상하로 길게 늘인 "별이 빛나는 밤"이 문짝에 도배되어 있는 것이다. 나보다 한 세기를 앞서 태어나고, 먼저 갔기에 그를 지켜주지 못 했다는 변명보다는 그의 대표작(의 변형된 레플리카)을 가까운 곳에 두고 그를 기억해 주는 게 내가 그 원죄를 탕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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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 Spark's private office 초당(草堂)의 도어 안쪽면에 대형 스티커로 도배된 - 아래위로 늘인 -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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