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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친척 동생 순국이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잊고 있던 얘길해줬다. 약 3년 전에 내가 SNS에 올렸던 얘기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표지석(標識石: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거나 어떤 내용을 알리기 위하여 세우는 돌) 관련 얘기였는데, 내가 처음엔 잘못 알아들었다. 종중묘역과 표지석을 관련시켜 얘기하기에 "내가 전에 표지석 얘기를 쓴 건 김상헌 선생 관련 글( https://www.drspark.net/sp_freewriting/5029135https://www.drspark.net/sp_freewriting/5366632 )에서였는데..."라고 했다. 더 대화를 진행하다 보니 그 동생의 말이 맞다. 내가 전에 고향 황산의 예전 종중묘역에 표지석을 세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2020년에 지금은 미사강변도시 중 일부가 되어 버린 고향의 산, 황산에 올라가 보니 그 크던 종중묘역은 온데간데 없고, 딱 하나  묘역 최상단에 세워져 있던 한식 담장 하나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무 표식도 없이 그 담장 아래 나무데크를 만들어 놓고, 거기 벤치를 하나 놓았기에 한탄 했었던 기억이다.

친척 동생 순국이가 전에 읽은 그 글을 기억했다가 이제 그곳이 예전 우리 가문의 집성지였고, 종중묘역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하남시와 협의하여 진행하고 하남시가 모른척하면 우리 종중인들이 각출해서라도 표지석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뻤다.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추진해 준다니...

 

 

 

아래가 그와 관련하여 내가 SNS에 썼던 글이다. 대개 내가 쓴 글들은 내 홈페이지에도 싣는데 이 글은 없기에 SNS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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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토] 미사강변도시가 조성되는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 고향 황산(荒山)에 가봤다. 지금은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이지만 전엔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풍산리(황산)였던 곳. 전엔 누구도 거길 풍산리라 부르지 않고 옛 지명 대로 "황산"이라 불렀었다.

 

황산은 정확히는 황산부락이었고, 지금의 풍산동 뒷산이 바로 황산이었다. 전엔 한자어 황산보다는 고유의 우리 말 이름인 "거칠메(뫼)"라 불렸다. 그곳은 내가 태어난 동네인데 원래 우리 밀양 박씨 정승공파 사람들이 무려 400년 이상 살아온 동족부락이었다. 

 

그리고 황산은 우리의 직계 일옹 박경응(一翁 朴慶應) 할아버님이 병자호란 시에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고 또 보필한 공을 인정하여 인조가 사패지지(賜牌之地)로 하사한 광대한 토지의 일부였다. 그런 유서 깊은 땅을  정부가 미사강변도시 조성을 위하여 토지를 수용하는 바람에 우리 박씨 일가의 종산(종중산)은 물론 이 산에 조성한 종중묘역이 사라져 버렸다.(묘역은 결국 여주의 계림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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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씨 종중묘역의 다른 쪽 일부이다. 사진의 탑 뒤로 보이는 것은 긴등(진등, 드너물)의 일부이다. 신장에 가기 직전 마을인 것. 그 마을과 이 묘역 사이에는 황산 검문소에서 미사리조정경기장으로 향하는 43번 국도가 있다.

 

그 산, 황산에 가 본 것이다. 400년 이상을 살다보니 황산 자락의 일부에는 큰 종중묘역이 있었고, 그 숲은 "비산숲"이라 했다. "비석이 많은 숲"의 의미였다. 오늘 그 산에 새로 조성된 둘레길(이름은 "황산숲길")을 따라 그 비산숲 부근에 갔으나 워낙 지형이 달라져서 어디가 어딘지 알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종중묘역 최상단에 있던, 우리 조상의 여러 신위(神位)를 모신 단(壇) 뒤에 만들어져있던 한식 담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 만이 유일한 종중묘역의 흔적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설명문조차 없이... 거긴 벤치가 놓여있는 좀 특별한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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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하게 남은 밀양 박씨 정승공파 묘역의 흔적. 여러 개의 단이 있던 곳 뒤의 보호막 같은 한식 담벼락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도 좋지만 문화와 역사를 무시한 개발은 난개발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400여 년을 한 곳에서 살았던 흔적을 말살하는 행위라니... 어쩔 수 없어서 개발한다고 해도 문화유적은 그 흔적이라도 남겨야한다. 단(壇) 뒤에 있던 한식 담장을 남겨놨다지만 그게 왜 그 자리에 있는가에 대한 역사성을 설명해 줄 표지판, 혹은 표지석조차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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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람이 우리 집 두 강아지(보라, 줄리)와 함께 밀양 박씨 정승공파의 우리 종중 묘역 최상단에 있던 북한에 묘가 있어서 직접 모시지 못 한 아주 윗대 조상들의 신위(神位), 즉 신주(神主)를 모셔 두는 자리를 만들고자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단(壇), 즉 신단(神壇)을 이곳에 모셨던 것이다. 뒤의 한식 담벼락은 그 신위를 모신 단을 감싸고 있던 것인데, 우리 종중묘역이 한국토지공사에 수용되고 이곳 황산 일대가 공원화한 이후에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황산에 갈 때 아무 기대도 없이 갔는데 그나마 이 담벼락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아래 계단과 함께 벤치가 놓여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석 하나라도 세워놨어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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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의 사진이다. 가문의 묘역 비산숲의 일부이다. 지금 풀이 많이 우거져 잘 안 보이지만 중간에 문신석이나 석등 등이 보임을 알 수 있다. 이쪽 묘역의 맨 위쪽에 그 단(壇)들이 있었고, 담벼락이 있었다.

 

같은 경기도인 성남시는 1989년에 분당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현재 중앙공원 내에 있는 토정 이지함의 가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의 집성촌 및 묘역의 일부를 보존해 주었다. 이 지역 역시 왕이 하사한 사패지(賜牌地)라는 면에서 우리 황산 동족부락과 다를 바 없다. 성남시는 이곳을 "경기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하고, 이를 조선 중기의 무덤 양식과 석물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로 홍보하고 있다. 그 후 이 기념물은 성남시민들의 좋은 나들이 명소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거길 찾는 모든이들이 자손들에게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일깨우고, 교육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같은 경기도권의 하남시는 어째 그런 안목을 가지지 못 했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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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의 사진. 비석도 보이고 문인석도 보이고 석등도 보이고... 개망초가 많이 핀 걸 보니 한여름이었던 듯하다. 이 사진의 묘역과 나무들이 있는 경계(검게 보이는)에 그 담벼락이 있는 것이다.

 

황산 정상엔 어이 없게도 배수지(암사정수장에서 가져온 수돗물을 주위로 배수하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기왕지사 황산을 공원화하기로 했다면 산자락 전체를 둘레길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것도 일부가 끊겨있었고, 정상은 공원이 아닌 엉뚱한 시설물이 들어서 있는 접근금지구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실망스럽고도 찝찝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별 기대는 없이 가 본 고향인데 거기서 신위 단 뒤에 있던 담장이라도 발견한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동영상 설명: 

내 고향 황산, 거칠메

 

황산(荒山)은 내 고향의 마을 이름이고, 또 그 마을 뒷산의 이름이다. 거칠 "황" 자에 "뫼(메)" 산 자이다. 원래 그 땅이 꽤 거친 땅이었다고 한다. 그 부박한 땅을 일궈 옥토로 만든 것이 우리 종중 사람들이다.

황산 자락의 북서쪽엔 논들이 있었고, 거기서 200-300m 정도 떨어진 곳엔 아랫말(아래에 있는 마을의 의미)이 있었고, 거기 아주 오래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가면 고덕동의 북동쪽인데 거기 "가나안농군학교"가 있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의 기점이 된 농민지도자 양성학교였다. 거기 가나안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의 김용기 장로가 바로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농민지도자이다.

왜 거기가 가나안이란 이름을 가졌을까? 이 종교적인 이름, 이스라엘 성지의 이름이 그곳에 붙은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황산의 아랫말인 그 가나안농군학교 자리도 거친 땅이었기 때문이다.

성서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케이넌)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살지 못 하는 사막의 황무지(barren land)이다. 그래서 거길 일궈 좋은 땅을 만들 수 있도록 젊은 농민들을 키워냈던 것이다.

그로써 새마을운동이 태어나고, 성공했고, 이제는 그 New Community(Village) Movement는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그 운동의 본부는 한국에 있다. 독재자 박정희는 갔어도 그가 한 일 중 잘 한 일 하나인 새마을운동의 정신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중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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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타고 온 노란차(911 4S)를 황산으로 오르는 길 가까운 곳에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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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강변도시에서 황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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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황산으로 올라갔다. 숲속엔 이 산의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노쇠한 보라는 집사람(고성애)이 안고, 어린 줄리는 내가 끌고... 뛰어가고픈 줄리는 마음이 급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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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도 잠시 걷게 했다. 열여섯 살 마르티스 보라와 함께 걷고 있다. 보라는 힘들어서 많이 걷지 못 하여 가끔은 안아줘야 한다. 둘레길엔 코코매트(코코넛 열매껍질을 재료로 한 "매트")가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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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의 둘레길(황산숲길)엔 전체적으로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매트가 깔려있다. 비가 와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게 큰 장점. 이런 길에서 폴을 사용한 노르딕 워킹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폴팁엔 고무발을 끼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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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 북쪽 산자락에 새로 식재한 은행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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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둘레길의 코코매트 저편에 벤치가 있고, 거기 한 분이 쉬고 계시다. 저 분에게 정상의 시설물이 뭔가 물어보니 상수도 시설이라고 알려주셨다.(나중에 내가 뒷편에 정상으로 오르는 찻길이 있는 걸 알고 차로 올라가 확인하니 상수도 배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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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마을쪽(북서쪽) 산자락의 둘레길이다. 왼편은 근년에 황산을 공원화하면서 새로 심은 은행나무들. 가을이면 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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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철광석 광산으로 개발되다 만 황산의 정상 부근에 보이는 절벽이다. 어릴 적엔 저기가 까마득했는데, 이제 보니 몇 m 안 되는 절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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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엔 밤나무, 도토리나무가 많다. 오래 전에 사방공사를 해서 마을 사람들이 새로 심은 것들인데 수십 년이나 지나면서 꽤 우거진 숲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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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에 아마도 밤나무, 도토리나무, 소나무에 이어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나무가 개암나무(헤이즐/hazel)이다. 이게 열매를 맺으면 그게 개암열매이고, 바로 헤이즐넛(hazelnut)으로 불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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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레길 끝까지 와 봤더니 아치문이 있고, 거기 "황산숲길"이라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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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숲길 아치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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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목(竹木)? 공원에 대나무는 못 봤는데 어딘가 대나무도 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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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자락의 하남청소년수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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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하남시 코스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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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지식산업센터 아이테코(ITECO) 건물. 벤처 육성 건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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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일부 보이는 것이 황산. 미사숲공원으로 명명된 이쪽은 미사리에 속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왼편 상단에 팔각정도 만들어져 있다. 황산은 저 산 건너편에 있다. 그리고 오른편 중간에 황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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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산 바로 아래 있는 미사 게이트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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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강변도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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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5km의 짧은 거리에서 한 시간 16분을 지체했다. 중간에서 만난, 산 이름을 묻는 근처 주민과 많은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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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민 피닉스 스마트 시계에 기록된 집사람과 나의 황산숲길 걷기 기록이다. 녹색이 시작, 빨간색이 끝인데 그 지점은 어떤 건물 앞 도로에 차를 세운 곳이고, 실제로 둘레길은 그 위의 우측 양쪽이다. 둘레길이 말만 그렇고, 실제로는 그쪽에서 끊어져 있었다. 그 빨간색 내가 걸은 흔적의 중간에 흰색 건물이 보이는데 그게 황산 정상의 배수지이다. 그 오른편에 그 산으로 오르는 아스팔트 길이 보인다. 이 위성 하이브리드 사진은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인 듯하다. 주변이 덜 정화된 것으로 보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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