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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도래, 전문 창작자들이 걱정할 일인가?

 

수면 아래에서는 오리의 발처럼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걸 못 본 대개의 사람들이 최근에 급부상한(?) AI를 보면서 상당히 놀라고 있다. 오랫동안 서서히 저장되어온 물이 드디어 저수지를 꽉채우고, 물이 넘치는 중인데, 그걸로 끝이 아니다. 넘친 물의 위력으로 둑이 무너질 것 같다. 그러니 그 위력에 불안해 하는 분들도 많다. 난 컴퓨터 분야에 오래 종사해 왔고, 지지부진하게 발전된 AI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되니 상당히 기뻐하는 중이다. 기다려온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조류에 동승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취미 중 하나가 글쓰기인데 AI가 그걸 위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다. 특히, 취미 중 하나인 사진 분야에서도 AI가 사진을 좀 더 강한 설득력을 지닌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만들어주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가 사진을 열심히 찍은 이유 중의 하나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사진을 곁들여 글에 설명성을 부가하고,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림 솜씨가 없다보니 할 수 없이 그보다는 손쉬운 사진이라도 잘 찍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사진은 대단히 많은 정보량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데, 그 반대급부도 있다. 그게 글에 첨부되면 의도와는 달리 사진이 가진 과다한 정보량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이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되길 바라고 첨부한 건데, 그걸 본 사람들이 글의 내용은 차치하고, 사진에 관한 대화를 하는 걸 여러번 봤다. 그래서 글에 따라서는 특정한 생각을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하여 사진보다도 더 임팩트(impact)를 줄 수 있고, 글의 내용에 집중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목적의 달성은 삽화 하나로 해결될 일인데... 근데 복잡한 생각을 간단한 펜 터치로 표현해 낸다는 것 자체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프로 화가의 업으로 삼을 만큼의 전문영역에 속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젠 AI가 그림까지 그려주니 내가 원하던 일을 처리해 줄 도구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AI가 화가에게 주는 스트레스

 

그런데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 이런 새로운 조류에 대해 내가 짐작하던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느끼는 분들이 있음을 본다. 난 그림 솜씨가 없어서 그림 잘 그리는 분들을 좋아한다. 특히 전업화가인 분들에 대해서는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동생이 전업예술가이기도 하고...) 그런 분 중 하나가 이흥로 화백( https://www.facebook.com/heungro )이시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 화백은 인물화가 전문분야이나 스케치에 뛰어나신 분이고, 수채화건 유화건 그림의 전분야를 아우르는 분이다. 몇 포스팅을 통해서 이 화백께서는 포토샵도 잘 활용하고 계심을 볼 수 있었다. 난 가끔 그분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며 다양한 작품을 사진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가져왔다. 그런데 얼마 전 이 화백님의 의외의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다.

이흥로

5월 29일 오전 9:47  

거참~!!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과학자들의 웃기는 상상력과 욕심이 도를 넘었네요~

컴퓨터 AI가 이상한 그림을 그리다 못해 이제 초상화까지 그리고

음악도 만들고 시와 소설까지 쓴다고 하는군요~~ㅠㅠ

이를 어쩌지요~~?!

사람들이 편해지는 건가요~?!

우리들 예술가들은 쓸모 없어지는 건가요~~?!

웃기지도 않는 세상이 오고있군요~~ㅠㅠ

#AI가그린 #초상화라는군요~~ㅠㅠ 무척 잘 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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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화백님과는 다른 생각을 하지만 이 포스팅에 감히 댓글을 달지 못 했다. 거기 달린 댓글의 분위기를 보며 차마 글을 쓸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다. 그러다 이 화백께서 멋진 두물머리 사진을 올려주셨기에 댓글 하나를 달았다. 내가 자주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아온 것과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사진이었다. 친숙한 두물머리 풍경이나 그곳에 대개 하나만 보이는 황포돛배가 세 척이 보이고, 푸른 하늘에 많이 떠있는 구름이 남.북한강이 합류한 팔당호의 푸른 물에 멋진 반영(反影)을 이루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게 극적인 장면이라 댓글을 달았더니 포토샵을 사용하여 연출 및 효과를 주셨단다. 그래서 다시 댓글을 달며 포토샵의 발전이 AI를 끌어들여 파이어플라이(FireFly) 기술로 보다 쉽게 쓸 수 있게 된다는 얘길했다. 그랬더니 "아~! AI 얘기는~~ㅠㅠ 참으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시대의 아픔이지요~~ㅠㅠ 글쎄~ 이 녀석이 나의 영역인 인물스케치도 쓱싹 해 내고~ 시 소설까지 써내고~ 작곡까지 해 낸답니다.ㅠㅠ 어쩌문 좋은가요~~?!?!"라고 대댓글을 다셨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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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백께서 포토샵을 쓰시기에 그걸 더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려던 건데 그걸로 인해 오히려 이 화백님은 또다른 스트레스를 받으신 것이다. 그래서 당황하여 "그러잖아도 이 화백님이 그에 관해 언급한 다른 포스팅을 하신 걸 봤어요. 제가 댓글을 달까하다가 거기 달린 댓글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안 달았죠.^^; / 그래도 달까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나중에 그와 관련해서 글을 쓰자고 생각했죠.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 제가 그에 관해서 약간 아는 편에 속하기에 꼭 그렇게 염려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실 만한 구석도 많고요. 제가 그 글을 쓰면 이 화백님을 태깅하겠습니다. 실은 제 주변의 사진작가 한 분도 그 때문에 낭패라고 하시기에 글을 쓰자는 생각이...^^ / 사실 사진작가보다는 화가가 훨씬 나은 상황입니다."라고 다시 댓글을 달았다.

 

사진가는 어떠한가?

 

AI가 그림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표현한 포스팅과 댓글. '아, 그림을 전문직업으로 가지신 분들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이 문제를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즘 AI로 인해 신경을 쓰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중에 미술이나 사진에 종사하는 창작자들 중에 그런 분들이 많음을 본다. 나보다도 더 깊이 사진에 빠진 집사람은 요즘 무릎이 아파 출사나 사진 수업에 못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웹 서핑을 통해 많은 사진 관련 클럽이나 카페에 들르는데 그 열기가 많이 죽어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특히 사진 카페들의 몰락이 심해 졌단다. 코로나가 끝나진 않았으나 그로 인한 규제가 거의 없어진 지금도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난 그런 카페의 몰락이 DSLR이나 풀프레임 미러리스 같은 전문적인 카메라들의 몰락에 동반한 것이라 봤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좋아지다보니 대중은 이제 굳이 큰 카메라에 연연하지 않고, 어찌보면 그런 카메라로 찍기 힘든 사진들이 언뜻 보기에 훨씬 더 낫게 찍히는 것에 환호하는 중이다. 갈수록 스마트폰의 성능이 좋아지고, 그 중요한 기능인 카메라 기능이 하드웨어적으로나 후처리를 위한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더 드세질 것이다.

그런데 집사람의 그런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의 유행이 본격적인 사진들보다는 가볍고도 재미난 사진에 치우치게 하는 것이 하나. 다른 하나는 그게 스노우 앱을 비롯한 수많은 사진 보정 앱들의 위력으로 기존의 레거시(legacy) 사진들은 빛을 잃는다는 것이다. 특히 AI의 발전으로 인해 파이어플라이 같은 놀라운 후보정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들이 등장하니 사진을 배우려는 자세가 전과 같은 심각함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안 찍고도 AI가 사진을 만들어주니 그런 문제는 더 가속화될 것 같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더니 나중엔 자신의 사진수업반의 강사 작가님에 대한 걱정을 하기까지...-_-

 

사진계에서도 AI 이미지 크리에이터(image creators)의 등장에 대한 다양한 담론(談論)들이 있음을 본다. 괜한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고, 잘 됐다고 반기는 분들도 있다. 근데 그게 나이대가 높을수록 괜한 걱정이고, 그게 내려가면 어쩔 수 없는 추세임을 인정하다가 젊은 나이대에서는 반기는 분위기이다. 당연히 왜 그런지는 알 수 있다. 기존에 구축한 성이 무너지는 듯 느끼는 보수주의자들이 있기 마련이고,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새로운 추세에 적응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자의적, 타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중간 세대가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그게 자신들의 미래이고, 현재의 추세이니 늦기 전에 빨리 받아들이자고 생각하고 오히려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같다.

 

내가 잘 아는 작가주의적인 전업사진 작가 한 분이 있다. 전공이 사진이고, 프레스 미디어에서 현업에 계셨으며, 지금까지도 열심히 사진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분이다. 그분의 연세를 생각하면 컴퓨터가 친하지 않을 세대이나, 이분은 오히려 PC의 등장기부터 IT업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한 분이다. 이런 분들은 얼리 어답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새로운 트렌드에 쉽게 적응하기 마련이다. 사진작가 앤디최( https://www.facebook.com/SeoulChoi )이다. 이분의 내가 쓴 AI 관련 글들을 읽으시고 남긴 댓글을 보니, 역시 현실 파악과 자신의 할 일에 대한 관점이 분명하다. 사진밥 먹는 프로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로 시작한 댓글에서 95년에 이르러 디지털 카메라가 나타나 자신의 두 전문분야가 융합되었다고 좋아했다는 것과 이제 다시 30년 만에 또다시 이미지와 기술(tech)이 융합된 혁명이 일어났는데, 아직 접근을 못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외였다. 평생 먼저 갔었는데, 이번엔 발전에 가속에 휩쓸려 주저 앉았노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난 그걸 다 믿지는 않았다. 앤디최와 같은 뉴욕커는 항상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분이기에... 잠깐 추이를 지켜보며 다시 앞서 나가는 습관을 유지할 것이라 믿었다.  

 

상기 이흥로 화백과 관련된 글 중에 잠깐 언급되었듯이 위기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화가들보다는 사진가들에게 그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어차피 그림은 솜씨란 걸 타고나거나 노력을 통해서 실력을 쌓은 전업작가를 아마추어가 흉내조차 내지 못 한다. 하지만 사진은 기본을 익힌 후에 전업작가와 비슷한 장비로 그들을 흉내내어 찍으면 전문가의 눈엔 어설프다고 해도 대중의 눈은 속일 수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발전은 기본을 익히지 않은 대중이 생각지도 못 할 멋진 사진을 찍어준다. 대중이 찍었으되 결과물은 전문가가 찍은 것처럼 나온다. 그에 고무된 대중들은 필름값도 안 들어가는 사진을 계속 찍어보다가 은연 중에 사진의 기본기에 접근해 가고, 그러다 더나은 남의 사진을 참고하면서 사진 이론을 배워야할 필요성까지 느끼게 된다. 실제로 대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단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간 전문적인 사진 기술들이 버튼 터치 하나로 사진에 반영되고, 그것이 사진 소프트웨어의 기막힌 후보정을 거쳐서 결과물로 산출된다. 사실 HDR 기능처럼 같은 장면을 동시에 석 장을 찍고, 그걸 기술적으로 합쳐서 지나치게 밝거나 어두운 걸 전체적으로 보기 좋은 사진으로 만드는 걸 보면 감탄스럽다. 심지어 꽤 사진 공부를 한 사람도 까다롭게 여기는 야간촬영 사진을 스마트폰은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좋은 결과물로 보여주는 걸 보며 '왜 사진 공부를 했나?'하는 한탄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은하수 촬영을 해보려고 고생한 나날들이 대중의 스마트폰에 의해 쉽게 찍힌 걸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사진이야 말로 그런 의미의 바람직한 대중화가 진행된 흔치 않은 분야이다. 대중화는 일부의 전업작가들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고, 실제로 그로 인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니 화가에 비해서는 사진가들의 타격이 크다고 할 것이다. 

 

AI 기술로 무장한 이미지 크리에이터 서비스들은 언뜻 보면 사진가들을 위협할 것처럼 보인다. 전엔 사진가들이나 출판 관계자들이 직접 찍지 않은 사진을 구하려면 스탁 포토(stock photo) 서비스에서 구매해야 했다.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무료 스탁 포토 사이트들도 등장했다.(아직도 진짜 좋은 사진은 유료의 인터넷 스탁 포토 서비스에서 구해야하지만...) 전문적인 사진 작업이 아닐 때는 이런 무료 이미지들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필요로 하는 용도에 맞는 사진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근데 AI 이미지 크리에이터는 용도에 꽤 근접한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 무료 서비스의 결과물도 괜찮은 게 나오는데,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원하는 사진을 일상어(자연어)로 묘사한 지시어(prompts)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으니 이건 혁명이다. 말은 생각에서 비롯되므로 생각이 사진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그에 대한 앤디최 작가의 페이스북 댓글에도 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앤디최

디자인용 레가시(legacy) 포토는 테크닉이 우선이었지만

포토샵 이후로 그 테크닉은 우스워져 버렸지요.

이제는 사진가의 손을 떠나

창작자들의 무수한 생각들이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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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Photoshop)의 출현은 컴퓨터 시대의 사진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뽀샵"이란 애칭까지 가지게 된 포토샵은 전업작가들이 말하는 "사진의 반은 암실작업"을 대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 아날로그 필름 시대에 시큼한 초산 냄새가 나고, 불그레한 등이 켜진 어두침침한 암실(暗室)에서 사진가들을 해방시켰다. 포토샵은 그 역사가 오래고, 그 세월동안 엄청난 발전을 보여온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일반 사용자들의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다. 지나치게 기능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그 기능을 다 익히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그리고 이런 기능들을 엮어서 쓰면 그 자체가 새로운 기능처럼 작동하며, 그걸 응용하는 방법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그걸 잘 익혀서 100%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토샵 사용에 적응하는 데는 걸리는 시간 만으로도 하세월이니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포토샵은 암실작업에 비할 바 안 될 정도로 쉽고 편하며, 좋은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해 가며 뽑아낼 수 있는 도구이다. 과거의 암실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그건 다양한 화학작용과 운빨에 따라 망치거나 성공하거나 거의 양단간의 결정이 이루어졌었기 때문이다. 그걸 한결 같이 좋은 작업결과로 만들어내려면 평생 거기 매달려야할 정도였다. 장인의 수준에 올라서야했다는 말이다. 지금은 촬영 단계에서 카메라가 이미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놓고, 그걸 살짝 리터치(retouch)하면 되는 수준이다. 더 전문적인 상업적 용도에서는 진짜 뽀샵 전문가의 후보정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거에 아마추어가 암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었는가? 지금은 사진에 조금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그나름의 암실을 자신의 컴퓨터 안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포토샵의 자매 프로그램 역시 그 암실작업과 관련되어 있고, 그 이름은 기존의 암실, 다크룸(darkroom)을 살짝 비튼 "라이트룸(Lightroom)"이다. 초산냄새나는 어두운 방에서 경험하는 작은 환각증상이 싫었던 나는 밝은 방 라이트룸의 맑은 공기가 상쾌해서 좋다. 

 

앤디최 작가는 덧붙인다. 

 

사진가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보다

그 사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말이죠.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을 통해 보면 사진가는 무지하고, 테크니션(technician)입니다.

프레스(press)에선 갑이 볼펜이고

코머셜(commecial)에선 디자이너가 디렉터(director)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창작자라고 부르고 그 오더(order)와 창작에 따라 셔터만 누르는 게 테크니션 사진가입니다.

더군다나 21세기에 넘어와 카메라 테크닉의 난제들을 디지털이 해결하자 이젠 누구나 프로 사진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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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최의 말씀은 과도하게 겸손하여 모두 동의할 수 없지만, 그중 일부는 사실에 가깝다. 이 작가주의적 사진가는 그의 창작자의 지위가 손상되는 것으로부터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결코 기술자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사진가가 남의 생각을 구현해 주는 기술자로 전락해 가는 걸 가슴아파한 것이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디카나 스마트폰 장비가 촬영기술의 난제들을 해결해 내니 카메라를 든 사람들 모두가 프로 사진가연하는 게 눈꼴신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사진가는 창작자이고, 그런 창작 분야에서는 그의 감각과 창조력, 창조에의 강렬한 희구가 AI와 결합할 때 매스터피스가 만들어 질 것이다.

 

AI 이미지 크리에이터의 등장 이전의 포토샵이나 라이트룸의 기능들 중에도 이미 AI 기술을 이용한 것들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젠 포토샵에도 그들 이미지 크리에이터의 기능들이 본격적으로 포함되어 나가는 중이다. 이젠 도저히 사람 힘으론 안 되겠다 싶은 기능들, 다시 말해서 대개 아주 복잡한 기존 기능들을 여러 개 엮어서 시퀀셜로 해야했던 작업들조차도 우리가 평소 말하는 대로 포토샵에 대한 지시어로 써넣으면 곧바로 마술이 펼쳐진다. 전엔 그런 AI 기능들은 작은 독립회사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개발해서 유무료로 웹상에서 처리해 주던 것들이다. 그게 기술별로 다양했고, 여러 서비스로 나뉘어 있던 것들인데, 이게 새로운 포토샵 베타에 통합된 것이다. 일부 기술은 다른 회사의 아이디어를 훔쳐다 포토샵 엔지니어들이 구현하고, 어떤 기술은 귀찮으면(!!) 작은 회사에다가 돈주고 사오거나 개발자를 빼오고, 그게 아니면 그 회사를 사버리는 식으로 포토샵은 미래에도 건재할 것이다. 

 

포토샵의 AI 생성기능

 

생성형 AI인 파이어플라이(Firefly)가 포토샵을 만나 여타 AI 이미지 생성기처럼 특정 부분을 지정해 주고, 거기 추가하고 싶은 걸 타자해 넣으면 어떤 것이라도 만들어 준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현재 포토샵 베타의 파이어플라이는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코파일럿(creative copilot)이란 이름을 가지게 될 텐데, 이는 MS의 윈도우즈 코파일럿이란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베타는 올해 후반기에 정식 버전으로 발매된다. 이제 포토샵과의 대화(prompts 제시)를 통해서 전 같으면 매우 복잡한 명령 한 가지나 일련의 다양한 명령을 연결 수행한 것과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아직은 지시어를 영어로만 쓸 수 있다.)  

 

이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일부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구현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기능 역시 곧 포함될 것이라 발표된 것들이다. 사진에 찍힌 사람의 옷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일부가 잘린 물체나 인물의 사진을 사방으로 확장해 줄 수 있다. 말하자면 스커트 밑까지만 찍은 인물 사진을 다리와 신발까지 신고 찍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사진 확장 기능이다. 이걸로 기존 사진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느 만큼 늘여줄 것인가만 정해 주면 늘어난 부분을 AI가 알아서 어색하지 않게 다른 이미지로 채워준다. 이걸 통해 세로 이미지를 가로 이미지로 변환하는 것도 가능하고, 3:2의 사진 비례를 4:3이나 16:9 등으로 필요에 따라 변형시켜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배경을 원하는 모든 걸로 바꿀 수 있고, 간단한 2D 사진을 사방에서 보는 것과 같은 여러 장의 3D 사진으로 변화시켜줄 수도 있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에 동작을 추가하면 움직이는 사진, 동영상이 되니 내 사진에 싸이의 말춤을 가져오면 점잖게 찍은 내 가 말춤을 추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떤 무늬를 각지거나 둥근 물체의 아무 데나 가져다 붙이면 그 굴곡에 맞춰 무늬가 입체적으로 변화, 고정되고, 동영상의 사람 옷에 무늬나 작은 사진을 합성하면 움직임으로 인한 옷 모양의 변화에 따라 그 무늬가 주름도 지고, 찌그러지기도 하는 식으로 변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무늬는 움직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작고, 크게, 옆모습으로 바뀌는 기능이 들어갈 것이다. 

 

더 크게 지정한 빈칸을 채우는 것 말고, 꽃이 적은 꽃밭의 사진을 보니 뭔가 허전하다면 꽃으로 가득한 꽃밭으로 변경할 수 있다. 물론 있는 걸 없애는 것도 가능하고, 이미지를 자연스레 다른 부위로 옮겨놓을 수도 있다.  풍경 사진에서 빛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고, 하늘의 모양도 마음 대로 바꿀 수 있으며 그게 바뀜에 따라 사진의 다른 부분에 그에 적절한 변화가 초래되어 어색함이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어떤 조각 이미지를 사진의 어떤 부분에 추가하는가에 따라 이의 초점 역시 그것이 놓인 곳의 초점과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AI 이미지 생성기들은 아무 거나 말을 하면 만들어주지만, 포토샵에서는 사진의 일부나 전부를 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사진이 우수하면 결과물의 질이 올라가게 되니 잘 찍는 사진가가 더 유리하다. 

 

명령을 해서 만든 새로운 결과물들은 세 가지가 나오는데, 거기서 원하는 걸 고르면 된다. 만약 제시된 것 중 쓸 만한 게 없으면 계속 다른 걸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전혀 기본 이미지가 없는 가운데 AI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부자연스럽거나 쓸 모 없는 것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을 제시해 주고, 그 일부를 바꾸는 것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진의 일부를 변화시키는 것, 즉 일부 이미지를 옮기고, 빼고, 다른 이미지로 채워넣는 등의 까다로운 일 정도는 쉽게 해낸다. 사실 기존 포토샵에서 이런 기술을 구사하려면 포토샵의 달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복잡한 이미지를 합성하면 약간 어색하게 합성되는 걸 볼 수 있다. 평면적인 단순한 이미지나 사진의 복잡하지 않은 곳에 가하는 변화는 나름 괜찮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사진에서 빛의 방향을 스스로 찾아내서 합성된 이미지의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조절해 주는 기능도 나름 신박하다. 빛은 물론 색깔과 구도에 맞춰 합성해 내는 걸 보면 나름 디테일에 신경을 쓴 것 같다. 기본 사진이 가진 느낌이 다양하게 변화시킨 이미지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얘기다. 

 

풍경에서 사람 삭제는 사람이 많을 경우, 부분부분을 따로 여러 차례에 걸쳐 삭제하는 게 효과가 좋다. 사진에서 인물의 옷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입안에 낀 교정기나 귀에 건 귀걸이 등을  자연스럽게 없앨 수도 있고, 다른 걸로 교체할 수도 있다. 당연히 얼굴의 주근깨나 점 등을 빠르고도 효과적으로 없앨 수도 있다. 이런 부분적인 변경을 가할 때 그 부위를 선택하는 도구(올가미 등)를 잘 쓰는 경우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인물 사진의 포즈를 다른 포즈를 하고 있는 사진을 가져다 합성하면 그 포즈로 바꿀 수 있다. 이제 아마추어 모델도 사진을 찍은 후에 세계적인 모델의 멋진 포즈를 가져다 합성하면 된다는 얘기다. 사진을 찍고나서 보니 자신의 포즈가 어색하다고 해도 이젠 그 사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얼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 마음에 드는 표정이 나올 때가지 바꿔주면 된다. 굳이 연속사진이 아니라고 해도 서로 다른 동작을 취한 사진 두 장을 제시하면 그 사이에 변화하는 동작 여러 개를 채워줄 수 있다. 사진을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색된 일러스트의 여러 색상을 AI가 제시해 주는 다양하게 바뀐 색상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한 대로 바꿀 수도 있다. 

 

이런 기능들을 살펴보면 이건 무서워할 게 아니라 즐거워할 기능들이다.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지 않은가? 알고보면 이런 기능들이 지금보다 빨리 나와줬어야만 했을 것들이다. 특히 포토샵을 많이 사용해야하는 전문작가들에게는 말이다. 포토샵은 이런 기능은 물론 다른 부가 기능들도 끼워넣고 있다. 과거엔 꼭 필요한 사진에 핀트(초점)가 나간 경우 난감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초점을 재조정하여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준다. 또한 업스케일링 기능을 이용하여 해상도가 낮은 사진을 해상도가 높게 바꿀 수 있고, 사진의 사이즈가 커지지만 그 원본의 픽셀을 살펴보면 없던 픽셀이 추가되었으되 그게 어색하지 않게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 시절에 찍은 오래된 사진에 있는 흠집이나 광학적인 결함을 바로 감지해서 제거하여 그 사진을 복구해 준다. 그래서 이 사진 복구 뉴럴 필터도 기존 사진가들에게는 크게 환영받고 있다. 또한 포토샵은 디지털 창작자들에게는 그게 자신의 것임을 NFT로 컨텐츠 자격증명을 하게 해 준다고 한다. 저작권 증명인 셈이다. 그 외에 MS와 어도비는 AI가 생성했음을 밝히는 디지털 워터마크로 컨텐츠의 신원(content credentials, ID)를 부여하리라 한다. 포토샵은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https://youtu.be/reXSmvoZ6Qs - Generative Fill

https://youtu.be/_sJfNfMAQHw

https://youtu.be/GKhpytkdzsw

 

이같은 AI와 머신 러닝 기반의 편집 및 수정 작업은 포토샵 뉴럴 필터(neural filters)를 통해 기존의 작업을 대폭 간소화하는 가능을 하기 때문에 일반 사용자들의 포토샵 사용에 대한 문턱을 엄청나게 낮추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베타 버전의 사용자들이 AI 기능을 사용하면서 그 기능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데, 그 평가가 앞으로 만들어질 정식 버전에 모두 반영될 것이므로 그에 따라 훨씬 완벽한 기능을 가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포토샵은 또한 베타 버전 사용자들이 어떤 기능을 얼마나 선호하고 있고, 그걸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만족도가 어떠한가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 다행히(?) 베타 버전에서 진짜와 전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이미지 편집은 아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존에 포토샵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던 사진가들은 부족한 AI의 결과물을 더 좋게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준 만으로도 대단하고, 이것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많은 적용가능한 일들이 넘쳐난다. 아직은 아쉽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는 건, 결국 포토샵 잘 쓰던 사람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급격한 기술의 발전이 이룬 기술돌파(breaktrough)가 그에 관련된 직종 종사자들에게 위협을 주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로 인해 한 직종의 전문가들마저도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대략 7가지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낮은 자존감, 자신의 가치나 가치에 대한 의문, 길을 잃었거나 목적이 없는 느낌, 목적의식을 느끼지 못 하거나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 함, 감정적인 분산이나 감정 조절의 어려움, 불안감의 증가, 우울감의 증가가 그것이다. 

 

wiki-chance.jpg

 

위기는 미래의 모든 사건, 특히 좋든 나쁘든 그 추세가 결정되는 일련의 사건 중의 한 단계로서 전환점에 부딪혔을 때 느끼게 된다. 그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거나 위험성을 느끼게 된다. 그건 당연히 혼란과 고통의 시기가 된다. 근데 위기가 무엇인가? 위기는 한자어로서 "危機(weiji)"라 쓰는데, 위태할 위(危)와 틀 기(機)가 합쳐진 말이다. 危 자는 벼랑[厂] 위에 서 있는 사람(亻의 변형)과 겁이 나서 그 밑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사람(㔾)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機 자의 본래 글자인 "幾"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사람의 모습인데, 나무로 만든 베틀이란 의미에서 나무 목(木)이 첨가되어 기(機) 자가 만들어졌고, 그 후 동력 장치가 딸린 모든 ‘틀’(machinery)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베틀의 작은 기구인 날줄과 씨줄이 서로 만나 베를 짜는 것이기에 機會(기회), 時機(시기) 등의 단어에도 쓰이게 된 것이다. 

 

재미나게도 이 위기란 단어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학자이며, 또 철학가이기도 한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가 멋지게 해석을 했다. 그 단어에 포함된 위(危)는 위험(危險, danger)을 의미하지만, 또다른 글자 기(機)는 기회(機會, opportunity)를 의미하고 있어서 단순한 위험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해석된 전통이 없다. 이런 멈포드의 혼동은 지(机)자가 "기회"를 뜻하는 중국어 단어 지후이(机会; 機會)의 구성 요소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JFK(존 에프 케네디)의 1959년 인디애나 폴리스 "연합흑인대학기금집회" 선거 캠페인 연설에서 멈포드의 해석이 원용되었다. 그 연설에서 JFK는 "중국어로 '위기'라는 단어는 두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위험을, 다른 하나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위험 신호는 우리 주변에 도처에 있습니다."(

"When written in Chinese, the word "crisis" is composed of two characters – one represents danger and one represents opportunity. The danger signs are all around us.")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 이 말은 서구권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고, 그걸 JFK의 의견으로 생각한 모든 사람들이 인용하기 시작한 후에 세상 널리 퍼졌다. 전과 달리 중국어에서조차 위기(危机)는 위험과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위험을 기회로 전화(转化)시키자는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에서 이같은 "위기"의 뜻풀이를 인용하자 당시의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를 극찬한 바도 있다. 

 

위기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 대처하기에 따라 긍정 혹은 부정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위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시기(時機)가 오면 놓치지 말라.”는 말에서 시기는 "적당한 때"를 의미한다. 그와 다른 시기(時期)는 정해진 때를 말하지만, "時機"는 적당한 기회를 나타내는 것. 그 둘을 그리스어에서는 ‘크로노스(Κρόνος, cronos)’와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로 구분한다. 전자는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시간의 기회’ 즉 의미 있고 적절한 때, 무언가를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을 말한다. 위기를 위험으로만 판단하고 좌절할 것인지, 그걸 시대의 전환점에서 무언가를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시점으로 볼 것인지는 개인의 몫이다. 설사 위기를 위험으로만 판단한다고 해도 그게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만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긍정적인 반응으로는 대처, 이타심, 안도감, 재난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환희 등이 따르며, 흥분, 더 큰 자존감, 힘, 성장의 느낌이 이의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기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 일이다. 그리고 대개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앤디최 작가가 "이제는 사진가의 손을 떠나 창작자들의 무수한 생각들이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의 진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난 그게 어떤 면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사진가들이 그렇게나 바라던 좋은 도구가 그들의 손에 들어온 것이라 본다. 현재 AI의 발전에 따라 새로이 등장한 도구들을 보면서 난 오히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폐단이 앞으로 더 심해져서 그 격차를 더 벌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항상 있는 놈이 더 많이 얻게 되어 있다. 이유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제는 사진가, 혹은 창작자들의 테크닉이 예전 만큼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그 창작자들보다  더 많은 창작자들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로 더 나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것이 AI이다. 앤디최 작가가 말한 "창작자들의 무수한 생각" 중에는 그 창작자가 기술이 부족해서 구현할 수 없었던 것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쉽게 구현될 수 있다.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실력 좋은 사진가(창작자)가 다른 사람들(대중이나 아마추어)보다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기술이 아닌 감각과 창작능력이 더 관건이 된 것이고, 그건 전문가의 몫이라는 거다. 옛날에 잘 하던 사람이 마냥 손을 놓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될 수 있지만 AI 같은 좋은 도구를 쥐어준 상태에서는 옛날에 잘 하던 사람의 감각과 창작능력이 그 도구로 빛을 더해서 훨씬 더 잘 할 수 있고, 오히려 과거에 뒤지던 사람들과의 격차를 더 벌려나가게 될 것이란 얘기다. AI는 그냥 도구일 뿐이다. 부싯돌이 라이터가 된 것과 비슷한 변화일 뿐이다. 창작가들을 괴롭히던 수많은 창작 기술 상의 난제들이 해결되는 거니까 이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열리는 것이다. 같은 카메라로 찍어도 전문가의 사진은 남다르다. 전업작가로서 이미 많은 공부와 경험을 했고, 그들의 정신을 전달하는 사진은 심각하며, 그 안에 포함된 메시지가 많다. AI가 사진 도구가 돼도 그건 카메라란 도구의 연장(마샬 맥루한의 “인간의 확장” 이론)이기 때문에 도구 잘 다루는 사람이 이기는 거죠. 당연히 이제는 전문가가 신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진의 상업적인 부분에서는 디자이너들이 AI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생산성면에서 뒤쳐져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객이 원하는 작업을 처리하고 그 결과물을 전달하는 시간면에서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확대는 결국 경제성의 증대이고, 그게 전업작가로서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집사람의 사진 선생님은 이경택 작가이다. 그분은 비교적 젊지만 잘 알려진 분이고 전업 사진작가이자 사진교육 강사이신 분이다. 그래서 집사람의 걱정어린 얘기를 듣고 이 작가님께 연락을 해봤다. 근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분과의 카카오톡 대화 중에서 발췌한 내용을 아래 예시한다. 

 

이경택: "Ai라 인해 저도 생각이 많았는데 오히려 기회가 많을 거라 생각해요 오히려 촬영이 어려운 것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예술성은 또 별개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사진 찍는 과정의 즐거움을 AI가 빼앗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사실적 풍경 사진만 생각하면 좌절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그런 사진들은 AI가 오기 전에 벌써 많은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사진가들이 AI의 등장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수는 있지요. 실제로 제일 먼저 사라질 사진들은 특정 유명 지역의 풍경사진들입니다. 이미지 노출이 많이 될수록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연의 사실적 찬미에 그친 관점은 이미 현대사진에서 밀려난 지 오래입니다. 물론 여행지를 방문해서 멋지 풍경을 담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하지만 그건 과정의 즐거움 뿐 아니던가요? 혹여 그 사진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건 자신이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그런 사진은 널리고 널렸고 앞으로도 널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AI가 오기 전에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았으니까요. 

아마 허탈해 하는 사진가들은 현대사진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거나 그걸 외면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직업군으로 제일 먼저 없어질 사진작가는 음식사진이나 스톡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입니다. 스톡사진은 상업적인 필요로 검색을 통해 구입하는 사진을 말합니다. 음식사진이나 광고에 필요한 이미지는 곧(아마도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AI가 대체할 것입니다. 다만 어떤 직업군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저의 걱정은 AI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사진의 대중적 인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올해부터 여러 문화공간에서 전시를 준비중입니다. 

현대 예술사진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예술도 반복해서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개념, 의식, 컨셉,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로서의 전환은 아직은 이렇다할 판단이 어렵습니다. AI는 오히려 잘만 쓰면 좋은 기회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모델사진을 위해 모델을 힘들게 많은 경비를 들여 섭외하면서 찍을 필요가 없지요. 실제로 지난달 학생들 작업에 AI로 만든 빨간 드레스의 금발 여성의 뒷모습을 작품에 은은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료로서요. 만약 실제로 찍어야 했다면 섭외부터 공간까지 꽤나 시간과 돈이 들었을 것입니다. 생산성에서 큰 자유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박사님이 예전에 전곡항에서 하신 말씀이 요즘에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홍보는 잘 될 때 하는 것이다.' 지금 강의가 많긴 하지만 제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일을 계속 벌이려고 하니까 힘이 드네요. 직원을 뽑아서 뭔가를 하고 싶지만 무엇부터 해야할지 막막하네요. 경영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인가 봅니다. 이미 제 수업을 따라하는 사람도 생기고  배우는 것이 많아져서 이 자리를 유지함에 있어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집사람이 이 작가님의 답변을 보고 웃었다. "내가 참 걱정도 팔자지..."^^

 

화가야 무슨 걱정인가?

 

사진과 달리 그림의 경우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훨씬 적다. 이유는 전술했듯이 그림을 그리는 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어떤 풍경 앞에서 셔터만 누르면 원하는 사진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다. 붓과 물감과 캔버스와 이젤을 준비해 놨다고 해서 풍경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도구들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조차도 그림 공부를 한 사람에게 한정된다. AI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은 이흥로 작가는 더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 그분은 그림의 여러 분야에서도 초상화가 전문분야이기 때문이다. 전에 온갖 자신감으로 무장한, 내가 좋아하던 고 조경철 "아폴로 박사"께서는 "난 유학시절에 초상화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었어. 대단하지?"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난 그분이 그런 일로 알바를 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는데,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는 답변으로 그 말씀에 화답했다. 그랬더니 그분의 하고자한 말씀은 그게 아니었다. "그게 아냐. 그림으로 알바한 게 대단한 게 아니고, 초상화로 알바한 게 대단하지 않냐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게 왜요?"하며 여쭈니 "초상화는 그림 잘 그린다고 그리는 게 아니고, 그건 그림의 대상과 똑같이 닮게 그려야한다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풍경화 나부랭이와는 다르다고..."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림은 사진과 다르다. 사진은 무한복제가 가능하지만 그림은 하나의 원본이 소중하고, 그게 인쇄기술을 통해 복제되면 가치가 대폭 절하된다. 그래서 아무리 기술발전에 의해 디지털 분야가 마술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전업작가의 그림은 아날로그에 머물게 될 수밖에 없다.(물론 디지털 이미지 전업작가가 출현한다고는 해도...) 아날로그 그림이 디지털 도구를 통해 변하는 순간 그건 더이상 가치가 적거나 없게 된다. 디지털 그림이 판을 칠수록 아날로그 그림의 가치는 치솟게 된다. 오히려 전업작가들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쉽게 홍보할 수 있어서 그걸 통해 더 나은 수익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진 아름다운 혹은 의미있는 그림 작품들을 본 사람들은 그 아날로그 원본을 소장하고픈 욕구를 가지게 된다. 오히려 AI로 값싼 그림들이 쉽게 만들어질수록 전업작가들의 아날로그 그림들은 향수를 자극할 것이고, 대중들에게 진짜 작품 소장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 손으로 그려진, 붓자국이 선명한 그림을 걸어놓고 으스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런 AI의 전환점에 이르러서야 화가들이 비로소 대접을 받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흥로 화백 같은 분은 일말의 불안감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래 AI로 열심히 쓰레기 그림들을 만들어 내라.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내 그림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니...'라 생각하며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으셔야한다. 

 

끝으로... 

 

사실 불안감과 위험성의 인지는 미신에 의한 것이 많다.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AI를 보면 그건 그냥 도구의 변화이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초기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AI 도구가 쓰기에 더 편리해 지면 그걸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 도구가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되면 적극적으로 쓰면 되고,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야하니 그 발전 추이를 계속 살펴볼 필요는 있다. 살면서 "알고 보면 그게 아닌 많은 일들"이 보이게 되는데, 그 실체에 대한 파악이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필요치 않은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쉽고, 그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걸 누릴 수 있다고 하겠다. 

 

장비나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사진에서는 창작자들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말한 "멋진 신세계"는 기술에 의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한 말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대한 끊임 없는 감시가 필요하고, 그에 적응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가진 함정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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