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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2012년 4월 9일.
그날 하루 제 일상에 벌어진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을 찾아 나선 하루에서 제 자신을 찾게 된 그런 하루...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하나하나...
그 자그마한 손짓, 몸짓 하나에도
세상의 모든 의미를 부여했던 그 첫마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그 치명적 오류의 늪에 빠져있어서 늘 설렘 가득했던 마음.
그것이 내가 무언가를 향한 첫사랑이었다.

백발이 되어 그 지나간 세월을 한탄할지언정...
그 첫마음에 대한 동경은 아마도 변하지않을 것이다.


기억의 복원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

나는 그렇게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아니... 그 예전 모든 것에 서툴렀던 내 어린 청춘을 보러간 꼴이 되고 말았다.


배경의 한 장면이 된 정릉의 옛 가옥...
영화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나는 북창동 한옥마을 주변을 찾아 서성였다.

아무도 살지 않을 듯한 집 앞을 지나다 문득 떠오르는...

'죽은 것을 살려준거잖아'

과거 속 여주인공이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들어가 깨끗하게 집안을 청소하고
그것을 본 과거 속 남자 주인공에게 던진 한마디...  


그리고 조그마한 화분들에 꽃씨를 묻는다.
무슨 꽃을 심었느냐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는...

나중에 이 가을이 지나고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을 때...
어떤 꽃이 피어날까하는 그 설렘을 가져보라는 먼 훗날의 독백.


건축 설계사가 된 그 옛 남자를 찾아 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의 아버지가 사시게 될 제주도 집의 리모델링을 의뢰한다.
그리고 재건축 중인 제주도 집을 둘러보고는 술 한 잔 마시면서 남자와 여자는 현재 속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

술에 취한 여자가 현재의 일상 속에서 꾹 꾹 꾹 참아냈던 속내를 눈물로 펑펑 쏟아내며...

"씨ㅂ,  ㅈ같아... 씨ㅂ, ㅈ같아..."

회피하고 싶은 현재의 자신...
그래서 그 과거는 더욱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어느새 내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역겁도록 힘들게 참고 참고 또 참고 참았던 가슴 속 과거의 응어리들...

홀로 능선길을 한참을 오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깐 쉬었던 그 곳...
아무도 없는 그 속에서 저멀리 해거름녘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거미가 지는
내 걸어온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친듯이 소리치며 펑펑 울분을 쏟아낸 그날...
난 아직도 그 풍경을 잊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알 수 없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서럽게 만들어는지를...
그 확실치 않은 아련한 대상들을 향한 울부짖음.
그래서 나는 그 여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카타르시스...'


건축학개론의 종강 파티가 있던 날...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 여자는 그 남자를 계속해서 찾지만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술에 취한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준 그 여자와 다른 남자...
그리고 술취한 그녀를 부축이며 같이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그는 살며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와 약속했던 앞으로의 그녀 집을 쓰레기통에 쳐박고는 돌아선다.

'설렘으로 보러갔더니 가슴엔 아픔만 오히려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아마도 '화이트데이'였을 것이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외박을 신청하고...
오후 4시부터 무작정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를 기쁨으로 놀라게 해주려고...

5시... 6시... 7시... 8시... 9시... 드디어 10시 경...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녀.  

혹여 그녀의 모습을 놓칠까봐...  
그 기다림의 뼈 속 깊은 추위보다 더한 냉정함으로 난 돌아섰다.

'절대 선'과 '절대 악'만이 존재했던 그 당시...
이해, 타협이란 단어란...
나에게 절대 존재하지 않았던 자존심만 강했던 불같았던 여린 청춘...

'이젠 내 앞에서 꺼져줄래...'    


'지나고나면... 아무일도 아닌 것을...
그땐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우린...'

그 이후로 10 여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우린 다시 만났습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서로 미소지으며...


끝도 없는 오해의 연속.
그 절대 타이밍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세상사는 이치지...'

나이를 먹어가며 감사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그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핏발서던 노여움 대신 온화한 미소를 띄울 수 있게되었고...
칼날같은 사고도 무뎌지고 무뎌져 이젠 아우름의 사고도 존재합니다.
세월은 그렇게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그렇게 세월이 사람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어느날 저는...
'옛날 영화를 보러갔습니다.'...캬캬캬


Comment '8'
  • ?
    박기호 2012.04.12 17:27
    [ euac8814@hanmail.net ]

    '꾸미'님이라는 분이 제 블로그의 이글에 남기신 글입니다.
    가끔보면 저도 모르는 분들과의 소통...
    많은 힘이되어주기도 합니다.
    언제나 감사함으로...

    으악님의 글들, 풍경들, 시선들. 언제나처럼 으악풍. ㅋㅌ

    사람 냄새 폴폴나는, 라면 냄새도 나고, 된장찌개 냄새도 나고,
    그윽한 커피향도 나고, 독한 소주 맛도 나고, 달콤한 생크림 맛도 나는...

    "맛있게 잘읽었습니다"

    저도 문득 어느날 아무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어떤날 옛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까 그날이 제겐 특별한 어느날이 되었답니다.

    으악님의 세련된 글 밑에 소박한 저의 영화 감상문을 쓰는게 무지 미안하지만.헤헤
    좋은 글 맛있게 읽은 밥값 쯤으로 봐주시길...

    "건축학 개론"???????

    왜 철학 개론이나 심리학 개론이 아닌 건축학 개론일까를 함 생각해보았습니다.

    '집' 의 의미.

    영화를 보면서 허물어지고 퇴색해진 집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과정처럼
    주인공들의 오래 전 맘 속 상처가 상처만이 아니라
    아팠지만 사랑이였구나 깨달아지면서 나만 아픈게 아니였구나 하는 절대공감.

    그녀가 그를 찾아가기 전에는 차마 가슴 아파 묻고 살았던 그 사랑이...
    아파서 돌아보지 못햇던 그 사랑이...

    '나만 아픈게 아니였구나. 그랬던거였구나. 나도 너처럼 너도 나처럼 그랬었구나'

    십 여 년이 지나서야 맞춰진 감정의 퍼즐 조각으로 그 동안의 오해와 의문과 상처가 'Healing'되었다.
    현실 속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가지만 그들에겐 지난날의 아프기만 했던 그 사랑이
    이젠 고개 끄덕여지며 살면서 지칠 때마다 돌아보며 위로받는 따뜻한 기억으로...

    허물어진 집이 사랑으로 생명의 집으로 온기를 담아가는모습을 보면서

    "죽은 걸 살린거잖아".

    벚꽃 흩날리는 어느날 시간 여행자가 되어 푸르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욕심을 부려봅니다.
    수리수리마수리얍 *^-^*
  • ?
    박기호 2012.04.12 17:30
    [ euac8814@hanmail.net ]

    꾸미님이 남기신 댓글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그 무엇들은...
    그속에서 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도, 영화도, 사물에, 심지어 사람까지도...

    저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은...
    이 커다란 세상 속에서 동질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해내는 일입니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고 나만이 느낀 것이 아니었고
    또한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그 모든 것에 저는 연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분석하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그 철저한 분석이 느낌을, 감성을, 사랑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이글은
    단순히 그 영화 속에 있는 저를 보았기때문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고싶습니다.
    상처의 치유보다는 처음부터 그 상처가 나지 않게끔...
    왜그렇게 세련되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글입니다.

    어쩌면 그러면서 더욱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아프지 않고서 어떻게 제대로 알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면...

    네... 더이상 더이상은 아주 많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당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어수룩한 그 시절엔 똑같은 어설픔으로 아파할테니까요.
    저는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지금도 가끔씩은 많이 아픈데도...
    그래도 예전만큼은 덜합니다.^^

  • ?
    조무형 2012.04.12 17:45
    [ chom00hyung@hanmail.net ]

    아니 애잔하게 자신이 스스로 무플방지에 나서다니.


    저 위에 동판에 새겨진 말당(?)서정주의 동구란 시.

    원시는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덴

    '작년 것만 아직도 남았읍디다. 로 라니.

    서정주는 전라도 사람이고
    시는 원어로 감상해야 맛이 나는데
    어찌 이렇게 표준어로 바꿔 맛을 떨어뜨리는지.

    만약 이 시를 "작년 것이 지금도 남았습니다." 라고 해 버리면

    초딩이 쓴 시지 이게

    거~ 참.
  • ?
    박순백 2012.04.12 21:18
    [ spark@dreamwiz.com ]

    오랜만에 봐야겠다고 작정한 영화인데, 그걸 박기호 선생님이 먼저 보셨군요.
    얼굴에 연기가 밀려 고민하던 배우가 이 영화와 최근의 드라마가 히트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학과 출신의 감독이 전공을 살려 영화계에서 문
    제작(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나름 평가를 받는 추억을 자극하는 영화를 만들었
    다는 면에서...)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 가상하면서도 바람직하여 이 영화를
    보러 가려 했던 것입니다.

    그걸 첫사랑에 대한 향수 때문에 좋았다는 순수한 분들이 많던데, 왜 전 이상한(?)
    방향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만...ㅋ 으악이 표 글이라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글.^^

  • ?
    이정환 2012.04.12 21:35
    [ ds2pep@lycos.co.kr ]

    저도 90년대 학번으로서 "전산학 개론" 같이 듣던 그녀는 뭐 하고 있을까요?

    빠졌던 머리숱도 이제는 좀 풍성해져서 다시 만나도 안 쪽팔릴 거 같은데 말이죠.

  • ?
    박기호 2012.04.12 22:05
    [ euac8814@hanmail.net ]

    조무형 선생님.
    애잔하게... 무플방지...^^;;

    아! 저도 찾아보았습니다.
    '시방도'가 맞네요.

    '아직도'가 아닌 '오히려'...
    정말 말씀하신대로 초딩 수준입니다.
    저도 높은 축대에 박힌 그 시를 읽으면서 '오히려'가
    어감적으로도 의미적으로 볼 때도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이건 원시를 너무나 크게 훼손한 일인 듯 하네요.
  • ?
    박기호 2012.04.12 22:14
    [ euac8814@hanmail.net ]

    박사님.
    음... 박사님은...
    제가 볼 때 직업이 그러셔서 그래요.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성을 전제로 한 논리 정연성...^^;

    세상 사람 보는 관점이 모두 같다면 재미없잖아요.
    독특한(?) 시선이 때로는 혁명적인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잖아요.^^

    박사님 표 글...
    으악이 표 글...
    그건 서로 보는 시선의 차이인 것 같아요.
    다양성이 존재하는 정보의 바다 속...캬캬캬
  • ?
    박기호 2012.04.12 22:25
    [ euac8814@hanmail.net ]

    이정환 선생님.
    그 여자분 '건축학 개론' 보시고는 조만간 전화오실지도...
    새로 나온 머리카락 휘날리시며 두근거림 속 흥분의 기다림...

    '보험 하나 들어줘잉...'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별일 안생기게 해주셔서... 제기럴'...캬캬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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