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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욱 칼럼(Who's Phillip Yoon?), 조용훈 칼럼, [PC-Fi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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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08.04.05 14:02

[윤세욱] 국악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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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2477 좋아요 486 댓글 0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1999/3/3, 22:40:18
제 목 국악기 이야기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가 있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가 "저널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주창하고 만든 잡지이다.

강준만 교수는 낙양의 지가를 올린 "김대중 죽이기"의 저자로써 언론의 사회적 사명과 역할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자기의 생각을 저널화 하기 위해 기존 저널리즘을 책을 통해서 실현하고자하는 아이디어(바로 이것이 강 교수가 이름한 저널북이다)를 가지고 인물과 사상을 발행하고 있다.

인물과 사상은 원래 비정기 간행물이거니와 이것과 병행해 월간지 형태의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자매지가 있는데 성격은 비정기 간행 "인물과 사상"과 비슷하다.

얼마 전 월간 인물과 사상에 충북 청주시에 사는 이현우라는 분이 "국악을 박대하는 기지촌 국민"이라는 글을 올렸었고 글의 내용이 좋다고 생각 들어 필자인 이현우씨와 이 칼럼 주필 번개 박사님께 허락을 득하고 여기 "붓 가는 대로"에 그 글을 전재(轉載)했었다.

나중에 인물과 사상의 지면을 통해 이현우씨의 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있었거니와 토론의 와중 여러 번 그 글을 전재했던 "철도청에 근무하신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싸움 구경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성스럽고 고귀한 성품을 가진 나로서는 나까지 거론된 그 싸움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몫 거들고 싶었지만 첫째는 시간이 없었고 둘째는 음악적 실력이 미진했기 때문에 어설프게 나섰다가 내가 편들어 주고 싶은 분께 오히려 누가 되겠다싶어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런데 만약 이 시점에서 두 가지 이유 중 어느 게 더 합당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실력이 없어서였다는 후자를 댈 것이다.

각설하고 본론을 이야기한다면 바로 아랫줄에 내 친우 이기봉군께서 좋은 가야금 산조음악을 추천해달라는 턱없는 부탁을 해왔기 때문에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그때 못한 참견을 여기서 해보고싶어서 나섰다는 것이다.

같잖은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취미로서의 음악활동을 여러 해 해왔다. 한 10여 년 전 무척 유행했던 "송골매"와 "사랑과 평화"로 대표되는 그룹사운드 , 아마추어 합창단, 성가대 등등 돈 받고 연주는 못했으되 노래부르며 돈 내는 일은 별로 없었던 활동을 20대 초반부터 여태 해 오고 있다.

사실 가족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이라면 나머지 부분은 음악의 몫이다. 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치사하다는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음악이 주는 위안과 음악을 통한 자기 만족으로 여태껏 목숨을 부지해온 사람이다. 음악을 제외한 내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죄 없는 단팥 빵을 들먹이진 않겠지만 내게 있어서 음악이라는 것은 삶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을 만큼 예전에 그리고 지금도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공군이 쳐내려오기 전에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살아오며 몇 가지 악기를 만져보았다. 트럼펫 플루트 기타 키보드... 그중 특히 기타는 고교 시절의 사진을 보면 기타를 들고 있지 않은 사진은 거의 없을 정도로 좋아했다. 클래식 기타. 포크기타, 앰프 기타. 베이스 기타, 그리고 가수 이용복이 즐겨 연주하던 12줄 스틸 기타까지 기타종류는 심지어 4줄 짜리 우크랠레까지 구경했다. 관악기 종류는 군에서 나팔수 노릇을 하느라 입에 대었었고 플루트는 워낙 소리가 좋아서 결혼 후 마누라를 졸라서 만져 보았으며 성악도 연주이니 합창단 활동을 통해 "목 구멍"이라는 악기를 써본 것은 당연지사다. 하여튼 모든 악기는 일단 내 손에 혹은 내 입술에 걸리면 기본 소리는 내었다. 드럼은 발까지 사용해야 하니 발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어느 해 어느 날이었다. 동료 중에 대금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야유회 날로 기억되는데 이 사람이 대금을 가지고 와서 불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어지간한 악기는 잘하든 못하든 대들고 보는 성격이라 "나도 한 번 불어 봅시다."하고 정말 매너 없이 덤볐는데 선선히 악기를 내 주었다.

원래 모든 악기가 그렇거니와 악기라는 것은 주인과 거의 호흡을 같이하는 존재다. 한참 다루다 보면 악기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악기를 빌려달라는 것은 식구를 빌려달라는 것처럼 상당히 무모한 주장이라는 말이다. 그중 특히 관악기는 입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빌려달라는 것 자체가 실례이다. 그런데도 나는 파렴치하게 불어보자고 요구했고 몰상식에는 무식으로 대응해서 그 양반도 악기를 겉으로는 흔쾌히 내주었다. (그 양반은 지금 아마추어의 위치이지만 국립국악원과 협연할 정도 실력이 된다.)

난 그때 한참 플루트에 맛이 들어 성가대 활동에서 반주악기로도 사용하기도 했었는데 썩 연주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성당의 천주교 신자들은 내 연주를 즐기는 사람도 조금 있었으며 가끔 연주를 거르는 날에는 신자들로부터 이야기가 있을 정도의 호응은 있었다. 그럭저럭 불었다는 말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하여튼 국악기라는 것은 그때 처음 만져 보았다. 그리고 그 국악기 대금을 만져버린 이후 한동안 플루트를 입에 붙이지 못했다. 도시 당최 싱거워서 플루트를 불 맛이 없는 것이다.

대금이라는 악기는 보통 일반적인 동양(한국)의 관악기와 비슷한 모양새이다. 대나무의 중간에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는 구멍을 뚫어놓고 구멍을 막았다 열었다함으로써 음정을 조절하는 소위 피리종류이다. 물론 국악기에 피리라는 악기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오늘 이야기의 피리는 우리가 평소 이야기하는 피리이다. 사실 대금은 크기가 큰 대나무 피리이다. 그런데 이 피리가 묘한 것이 중간에 "청"이라고 불리는 얇은 떨판이 있다는 점이다.

청이라는 것은 악기의 취구 부근에서 몇 센티미터쯤 앞에 구멍을 커다랗게 뚫고 그 구멍을 갈대의 속껍질 한 겹을 풀로 붙여 덮어놓은 부분인데 취구에 바람을 불어 대나무 통이 공명하면 청도 따라서 공명하도록(바르르 떨도록)되어있다. 그리고 거기에 쇠로 만든 덮개가 있으며 덮개를 얼마나 덮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대금을 불면 청이 울리며 음향 공학에서 이야기하는 하모닉스(harmonics)라고 하는 배음(倍音)이 발생하여 사람을 심금을 반 죽이는 것이다.

난 그날 대금을 불면서 소름이 돋는다는 것을 새삼 경험했다. 보통 관악기의 소리가 다른 악기에 비해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부분이 강하다. 하지만 대금을 불어보기 전 까지는 어떤 관악기라도 그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대금을 불면서 말 그대로 닭살이 오돌오돌 돋는 것이다. 금방 말한 바로 그 하모닉스- 배음 때문이다. 난 아직까지 대금과 국악기 해금을 제외하고 그렇게 배음이 풍부한 악기를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데 대금의 음을 녹음 해보면 그 느낌이 절대로 살아나질 않는데 녹음기의 소리로는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쉭 쉭"대는 소리만 들린다. 실제로는 엄청난 에너지와 배음이 실린 살 떨리게 하는 소리인데도 불구하고... 양악기로는 "테너 색소폰"에서 비슷한 느낌의 소리가 나지만 고음 영역의 하모닉스로 이야기하면 "쨉"이 안 된다.

물론 불기는 무척 어렵다. 호흡이 아주 가쁘거니와 처음에는 소리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어설프게 불어본 대금이지만 그리고 곡은커녕 국악의 소절 한 구절 제대로 불어보지 못했지만 최소한 그 음향과 음색만큼은 이제껏 다뤄본 어떤 악기보다도 강력했다.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국악기의 음향이 강력한 것이 대금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국악 미사곡을 연주하면서 반주악기로 장구를 사용했는데 피아노라면 알아주는 스타인웨이가 아예 힘을 못 썼다. 피아노 연주자는 악기 전공자로써 강사까지 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장구가 피아노의 음량 및 30명 합창단의 목소리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꽹가리 등의 타악기는 더하다. 실제 사물놀이 연주를 한번이라도 들어보신 분은 내 이야기가 수긍이 될 것이다.

내가 아는 녹음실의 레코딩 엔지니어들은 국악 녹음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리미터의 바늘이 수시로 적색지대에서 놀고 리본 마이크(예민하고 섬세한 반응으로 녹음실에서 목소리 녹음할 때 자주 사용한다. 물론 값은 엄청 비싸다.)의 리본을 날려버린 경우도 가끔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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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퇴근하지 못하면 집으로 가는 인천행 막차를 놓칩니다.
편집장님의 좋은 소식을 듣고 저도 분발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만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뒷부분을 마저 쓰겠사오니 독자여러분의 넓으신 이해 있으시길 삼가 부탁드립니다.

물론 "붓 가는 대로"의 주필께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시겠지만....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1999/3/5, 22:36:44
제 목 국악기 이야기 VOL. 2

난 이론과 실기 양쪽 모두에 걸쳐 체계적인 음악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고교 때는 아예 음악과목 자체가 없었으며 중학 시절엔 철없이 뛰어 놀기 바빴으니 배웠다고 해봐야 중학교 입시용으로 초등학교에서 동요 따라 부른 것 고작일 것이다. 해서 어떻게 생각하면 음'학'은 독'학'인 셈이며 이런 고백이야말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본도 없는 주제에 건방지게 나선다고 손가락질 받기 꼭 좋은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바로 음악에 대한 나의 이런 배경이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양악이나 국악 어느 쪽에도 경도 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핑계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이현우씨의 글에 대한 토론의 주제는 주로 양악과 국악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 문제였다. 이현우씨는 현재 대중으로부터 국악이 박대 당하고 있고 박대 당하는 이유는 매체(mass media)가 국악을 외면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국악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일반인으로써는 국악이 낯설어 국악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되어 전 단계의 문제와 후 단계 문제가 각 단계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측에서는 국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후진성(?) 및 정체성 그리고 폐쇄성 때문에 국악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있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토론의 중간에 위치하여 그때 국악기를 다루어본 경험으로써 전자 이현우씨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며 이 근거로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겠다.

우리의 감각기관이라는 것은 일종의 센서이다. 촉각은 압력에 대한 센서이며 빛이라는 높은 주파수의 진동에 대한 센서가 눈이라면 음이라는 낮은 주파수의 진동에 대한 센서는 귀다. 눈으로 입력되는 진동 정보는 단위 시간당 아주 많은 양이며 귀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빛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의 차이 때문에 우리의 뇌는 외부 진동의 차이에 따라 반응하는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는 이러한 감각을 이런 속담으로 표현했다.

"눈은 새 것을 찾고 귀는 오랜 것을 찾는다."

여기에 동감하지 않을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올리비아 메시앙"이 처음부터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무리 고급 벽지라도 오래된 벽지는 다른 색깔로 바꿔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고 나이아가라에서 10년쯤 살아버린 사람이면 개골산 설경이 훨씬 새롭게 느껴지는 한편 하루 이틀 들었다고 해서 폴리포니의 대가인 "팔레스트리나"가 "셀린 디옹"만큼 단숨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테이크 파이브"의 다섯 박자 리듬에 처음부터 익숙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내 할머니 세대가 과연 H.O.T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주 달콤한 선율 한 두어 개를 제외하고는 "자주" 들어야 좋아진다는 것이며 허름한 뒷골목일 망정 처음 보면 흥분됨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내 경험과 관점을 통한 유추일 뿐이지만 음악에 대한 기호는 선험적 감수성과 체험적 빈도가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고 싶다는 것이며 음악에 대한 기호는 무엇보다도 경험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새삼 말하거니와 음악 장르에 대한 선호의 문제는 얼마나 그것을 자주 들었는가가 결정하는 것으로써 국악이 되었던 양악이 되었건 클래식이 되었건 팝이 되었건 귀를 통한 경험과 근육과 신경을 통한 체험이 대뇌에 얼마만큼 자주 그리고 많이 축적되었는가, 그리고 유전적 소질에 기인하는 감수성이 얼마나 큰가를 제외한다면 음악 장르에 대한 우열 혹은 호오(好惡)의 판단은 의미가 없다고 난 감히 단정하는 것이다.

대저 음악이란 것은 리듬과 선율 그리고 화성의 조합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우리가 음악에 대해 초 체험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 진동의 시간적 좌표인 리듬의 몫이라면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들어가는 또 다른 입구는 진동의 빈도수에 따른 소리의 높이일 것이며 그 높이의 순서쌍은 화성인 것이고 음 높이의 연속적 조합 함수인 선율이 실리는 바탕은 리듬인바 리듬과 선율 그리고 화성이 음악의 핵심요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 아주 정당하다고 보며 이것은 음악의 지역적 차이(국악과 양악) 및 향수 기반의 차이(재즈-서양에서는 클래식에 대립되는 의미를 주로 팝 대신 재즈를 사용하는 것 같다.-와 클래식)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생각컨데 음악의 장르와 지역에 대한 차이는 결국 리듬과 선율과 화성의 성격차이인 것이다. "굿거리"와 "폴카"의 차이이며 "오음계"와 "믹스도리안" 선법의 차이이며 "도미넌트"와 "디미니쉬 7th"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재론하거니와 우리의 음악에 대한 선호나 기호는 각각의 선율과 리듬과 화성에 얼마만큼 우리 귀가 익숙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1999/3/5, 22:38:11
제 목 국악기 이야기 VOL. 3

재즈가 난해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사실 음악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재즈를 들려주면 30초도 채 견디지 못한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도리안 음계에 익숙한 사람에게 반음 내린 미와 반음 내린 시를 사용하는 블루노트는 똑같은 서양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것이다. 인간 감성에 가장 원초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리듬인데 박동과 박동의 정확한 간격조차 제대로 따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어느 게 강박이고 어느 게 약박인지조차 뚜렷하지 않은 재즈음악을 어거지로 들려주는 것이야말로 관절 꺾는 것과는 또 다른 방향의 고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도 동요의 멜로디는 언제든 흥얼거릴 수 있다. 음치라도 말이다.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새마치 장단을 알려주면 금방 따라한다. 그런데 외국의 드러머에게 굿거리 장단을 쳐보라고 하면 쩔쩔맨다고 하질 않는가!

무엇이 그것을 구별 짓는가. 음악이 본질이 선율과 리듬과 화성이라면 결국 이것들을 구별짓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노트(note)라고 이야기하는 각각의 음계와 리듬과 화성 사용방법의 차이가 쉽게 와 닿는 혹은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라고 난 감히 주장한다.

얼마 전 TV에서 미국 남부 어떤 주의 교회에서 흑인들의 예배 보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종교 의식이야 각각의 부분이니 여기서 그것을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되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의 예배도중 부르던 찬송가와 그 박자가 너무 충격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박수를 치며 가스펠을 부르는데 선율자체가 블루스 음계이며 특히 박수를 칠 때의 그 절묘한 싱코페이션은 국내 어지간한 드러머보다 더 정확한 비트였다. 난 드럼도 장난 삼아 몇 번 만져 보았으며 리듬을 표현하지는 못하되 리듬에 대한 감수성만은 다른 사람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음감 역시 절대음감 비슷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기타 등의 현악기 튜닝은 기준 음만 주어지면 조율기와 똑 같은 음 높이로 맞출 자신이 있다. 내 자랑으로 흘러버린 것 같은데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다.

여하튼 그날 TV 프로그램의 주제는 음악에 관계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들이 전문적 음악 교육을 받지는 않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어려운 재즈의 음계와 박자를 전혀 틀리지 않게 - 오히려 국내의 어떤 재즈 연주자들 못지 않게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난 그 이유가 그들이 언제나 느끼고 즐기고 표현하던 음악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즈나 블루스는 그들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는 우리의 국악도 그렇게 자주 듣고 느끼고 연주한다면 그들이 싱코페이션에 자연스럽듯 우리도 휘몰이를 정말 휘몰아 가는 느낌으로 두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적어도 판소리 춘향가 중의 쑥대머리를 임방울처럼 부르지는 못할 망정 흥부가의 흥부가 박타는 장면에서 고수와 더불어 추임새는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악 혹은 국악기의 위치는 어디인가? 동요에 가까운가 아니면 재즈에 가까운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준비물 정도 위치에 있지는 않는가? 거칠음을 무릅쓰고 감히 이야기한다면 개화 이후 만들어진 신 민요를 제외하면 속악이 되었건 정악이 되었건 대부분의 국악의 위치는 재즈만큼 일반인에게 생경할 것이다. 바이올린을 못 본 사람은 드물어도 아쟁이나 해금을 구경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며 구경까지는 못 가더라도 해금 소리를 듣고 그것이 해금 소리라고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왜 국악기를 몰랐던가? 나는 왜 대금을 만지며 그렇게 흥분했던가? 곰곰 돌이켜 보면 그렇게도 좋아했던 음악의 향수활동은 지금 되새겨보면 모두 서양음악이 대상이었다. 내 음악의 원류는 서양음악과 서양음계 그리고 서양식 화성과 리듬이며 내가 브람스를 듣건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건 어느 것 하나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골격은 서양음악이었으며 이것을 연주하는 것은 다 서양악기를 통해서였던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서양음악을 들었으며 어떤 음악활동의 배경도 서양음악이었다. 눈 벌어지면 듣기 시작해서 잠결에까지 헤드폰속에서 들리던 음악도 서양음악과 서양악기 소리였으며 초등학교 조회 시간에 음악선생님의 손 박자로 따라 부르던 평생 가장 많이 부른 노래였을지도 모르는 우리 나라 국가인 애국가 역시 서양음악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서양음악을 통해서만 음악을 바라보았던 것은 자랑은 아니되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서양음악을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지당한 처사이니 내가 국악기를 처음 만진 순간 국악기에 놀랐던 것 역시 불을 보듯 당연지사이다.

음악을 향수(享受)하는 수단은 3가지가 있다고들 말한다. 3가지의 수단이란 감상, 연주, 작곡을 말하는 것으로써 첫째 단계는 음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를 말하며 두 번째 단계인 연주에 있어서는 이미 만들어진 음악을 악기라는 매체를 통하여 재생하여 보는 것이고 셋째 단계인 작곡의 경우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순수한 창작활동인 것이다.
일반인의 경우로는 대부분 첫째 단계인 감상의 수준에서 만족하며 두 번 째 단계인 연주의 수준에 진입하는 사람의 숫자는 좀더 제한적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성악이란 "성대"라는 것을 악기로 사용하여 하는 연주인 만큼 보통 사람이 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것도 연주라고 칭하고 싶다고 말할지 모르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연주라는 것은 적어도 어느 수준이상의 이론학습과 이론학습을 통한 악기 구사를 말하는 것이니 마이크 앞에서 "흥부의 기가 막혔다"고 중얼중얼 거리는 것도 연주라고 이야기하지는 말기로 하자. 물론 랩이나 힙합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실연하는 것은 제외하고... 그리고 세 번째 단계인 작곡의 경우야말로 정말로 전문적인 창작 활동- 예술 활동의 영역인 바 오늘 이야기하는 것은 주로 감상과 연주의 단계이니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자.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 이야기한다.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다. 음악만큼 현실세계와 유리된 취미 혹은 예술 활동이 있는가. 결국 현실세계와 유리된 정신세계의 영역이니 만치 음악 자체로만 이야기한다면 음악이라는 취미 활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 정신활동의 헤드룸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것이며 이런 특성이야말로 음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음악의 영역을 좁게 선택한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신활동 영역을 좁히는 것과 똑 같은 일이 될 것이다. 역으로 이야기해서 어느 한정된 장르의 음악을 편식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음악에 대한 고정된 인식은 음악 향수 활동에 대한 경험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가리지 말고 많이 듣자. 연주할 기회가 있다면 단소라도 불어보자. 판소리 음반 한 장 정도는 양념으로라도 가져보자. 듣다보면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울리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햄릿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나쁜 짓도 자꾸 하면 습관이 되듯 참는 것도 습관이 된답니다."

호오는 있을 망정 우열을 없으며 호오조차도 자주 접하면 순서가 바뀔 수도 있다. 그것이 음악이다. 우리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음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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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려다 하마터면 고무줄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이기봉씨의 민원 사항을 해결해야지요.

"지애리"라는 신예 국악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데뷔한지 여러 해가 지났으니 지금은 중견의 위치가 되었겠지요? 가야금 산조에는 여러 유파가 있습니다. 그중 "성금련"류가 제일 유명(?)하지요. 지애리는 바로 이 성금련의 수제자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황병기도 극찬한 여류 가야금 연주자입니다.

현재 가야금 산조 음반은 시중에 드글드글 합니다만 가야금의 현을 손가락으로 퉁기는 주법이 아닌 잡아 당겼다가 놓는 주법을 사용했을 때 현이 가야금 몸통에 부딪히면서 나는 고음역의 하모닉스 성분이 제일 잘 녹음된 음반이 "지애리의 가야금 산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들어본 국악 음반 중에서는 녹음 상태가 좋기로는 손꼽히는 음반이고 연주 또한 나무랄 곳이 없습니다. 출반했던 회사에서도 녹음이 자랑스러웠던지 녹음 기사 이름을 재킷에 기록해 놓았더군요. 국내 음반으로는 정말 드문 일인데...

이기봉씨. 이제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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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윤세욱 칼럼 [윤세욱] 케이블을 까발려주마. 박순백 2008.04.04 3500 364
55 윤세욱 칼럼 [윤세욱] "생명의 소리 아날로그"라는 TV 프로그램 시청 소감 박순백 2008.04.04 2773 348
54 윤세욱 칼럼 [윤세욱]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박순백 2008.04.04 2487 404
53 윤세욱 칼럼 [윤세욱] 헤드폰 이야기 박순백 2008.04.04 2500 376
52 윤세욱 칼럼 [윤세욱]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스피커 2 박순백 2008.04.04 10189 721
51 윤세욱 칼럼 [윤세욱] 디지털 앰프에 대하여 박순백 2008.04.04 5405 469
50 윤세욱 칼럼 [윤세욱] CD 플레이어, 그리고 파이오니어 CDP 박순백 2008.04.04 4740 516
49 잡담 [윤세욱] [밴쿠버 일기] 고물상(古物商) 인생(두 번째) 박순백 2008.04.04 3403 460
48 잡담 [윤세욱] [밴쿠버 일기] 고물상(古物商) 인생(첫 번째) 박순백 2008.04.04 2468 427
47 윤세욱 칼럼 [윤세욱] 오디오 기기 고르기(두 번째) 박순백 2008.04.04 3853 510
46 윤세욱 칼럼 [윤세욱] 간이형 오디오 기기 선택법 박순백 2008.04.04 2744 408
45 윤세욱 칼럼 [윤세욱] 골드문트에 대하여 박순백 2008.04.04 6121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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