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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욱 칼럼(Who's Phillip Yoon?), 조용훈 칼럼, [PC-Fi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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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욱 칼럼
2008.04.04 15:26

[윤세욱]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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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0189 좋아요 721 댓글 2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2000/7/14, 23:30:15
제 목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Vol. 1)

요 근래 "붓 가는 대로"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탄노이 웨스트민스터(Tannoy Westminster)"가 아닐까 싶습니다. "붓 가는 대로"로 말씀드리자면 어느 분 말씀마따나 "살롱"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저 정도 미물(微物)이 감히 나서서 스노비즘적 변설(辯舌)을 따따부따 하기가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소인배의 기질 가운데 하나가 조금만 안다 싶으면 마구마구 설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저로선 이렇게 전축이야기가 나오면 입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렇게 또 떠들어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좀 이쁘게 봐주세요 네?

-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얄.

그런데 문제는 지금 사무실이라 손아귀에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을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알량하기 짝이 없는 제 기억력뿐이네요. 당근 야그의 신뢰도를 높이기 쪼매 어렵기는 하지만 틀리면 틀린 대로, 맞으면 맞는 대로, 결국 붓 가는 대로 주절거릴 참이니 잘못된 부분에 대해선 사정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득달같이 수정하겠습니다.

탄노이(Tannoy)사는 "웹스터 대사전"에 등재되어있을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디오 기기(특히 스피커) 메이커입니다. 정확한 창사년도는 지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왜냐면 2차대전 당시 영국의 군사기술에 탄노이사의 기술이 쓰였다는 기록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아마 잠수함 음향탐지관계가 아니었나하고 기억되는데 자신은 없군요.

"Tannoy"는 미국식으로 읽으면 "태노이"인데 영국에서는 "타노이"로 발음합니다. (영연방(英聯邦) 사람들의 "A"발음은 하여튼 알아줄 만 하지요. 페이지(page)를 "파이지"로 발음해서 저를 한참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넘들입니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탄노이라고 말하는데 시장에서 "태노이" 했다가는 가수 "태진아"로 혼동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탄노이"라는 이름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기로 합니다.

"아? 뭘 봐?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탄노이사는 회사 창립 초기에는 스피커가 아닌 전자부품을 생산했는데 그 가운데 탄탈륨(tantalum) 합금을 이용한 정류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사 이름을 탄노이라고 짓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탄탈륨-tantalum"과 "합금-alloy"을 합성해서 회사 이름을 만든 것이지요. 그러다가 나중에 스피커 쪽으로 제품 생산방향을 바꾸면서 지금도 초기 모델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있는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이라는 동축(同軸)형 유닛 "모니터 실버(Monitor Silver)"를 생산하게 됩니다. 모니터 실버는 "모니터 레드(red)"를 거쳐 "모니터 골드(gold)" 이후 "슈퍼 레드 모니터(SRM)" 어쩌고저쩌고 등으로 발전하게 되지만 원 설계가 60년 이상 된 이 스피커 유닛은 스피커 콘(corn)지(紙)의 제작방법과 자기회로(磁氣回路)의 자석 재료정도만 바뀐 채 지금까지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듀얼 콘센트릭에 대해 잠깐 부연드리겠습니다. 듀얼콘센트릭이란 일종의 상표(商標)인데 탄노이사에서 생산하는 스피커 가운데 고역과 저역스피커의 중심축이 똑 같은 것을 말합니다. 저역 스피커의 자기회로 뒷부분에 고역스피커를 만들고 그 사이에 고역(高域) 스피커의 혼(horn)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표현이 영 서툴러서 상상하기가 어려우실 터인데 그림을 잘 보시면 가운데 금빛으로 반짝이는 부분이 고역스피커의 혼(horm)입니다. 이런 타입의 스피커 특징은 음상정위가 명확합니다. 사람이 제 자리에 확실히 서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지요. 아니면 오페라에서 가수가 왔다리 갔다리하는게 정확하게 느껴지거나...

탄노이사의 창설자는 "G. 파운튼((파운틴?) Guy. R. Fountain)"이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녹음 모니터용 스피커를 설계 제작하면서 이 모니터 실버 유니트를 인클로져에 집어넣은 후 하나 하나의 제품에 자기 서명(autograph)을 넣고 모델 이름도 서명이란 뜻의 "오토그라프"라고 지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이 사람 이름 파운틴"Guy. R. Fountain)의 두문자(頭文字) 딴 "지알에프(GRF)"라는 모델도 있는데 이 지알에프가 또 오디오의 전설이 됩니다. 조금 있다가 지알에프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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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rk: 내가 원래 가지고 싶었던 게 GRF Memory였었어.^^ 콰드 앰프에다가... 그 때 내 또래들은 그저 그 게 최곤줄 알았다니까?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사히 펜탁스 스포트매틱 카메라가 최고로 좋은 줄 알았던 것처럼...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2000/7/14, 23:31:08
제 목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Vol. 2)

오토그라프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엊그제 말씀드린 일본의 소설가 겸 오디오 평론가 "고미 고스스케"의 오디오 관련 수필과 평론 때문입니다. "고미 고스스케"는 얼마전 재일동포 유미리씨가 수상(受賞)하여 더욱 유명해진 "아꾸다까와"상을 탄 사람으로서 아꾸다까와상(賞)은 한국의 "이상문학상(李想文學賞)"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권위 있는 상입니다. "고미"는 X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문학가였는데 귀와 눈은 높아서 그 비싸던 오토그라프와 음반들을 갖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고료가 팍팍 나오는 통속소설을 씁니다. 그는 예술을 위해 자존심을 팔아야했던 가슴아픔을 수필을 통해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T/W

"나는 오토그라프로 베토벤을 듣고자 눈물을 흘리며 포르노를 썼다."

아! 불쌍한 고미고스스케... 예술에 대해 그렇도록 풍부한 감수성을 가졌으면서도 그까짓 빵 몇 조각을 얻겠다고 순결한 영혼이 직장에서 핍박당하고있는 "스왕자 윤세욱"의 경우와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을 수가 있을까요!

"우웩!"

하하하! 잠깐만 옆으로 외도를 좀 하겠습니다. 요즘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순백형님 말씀대로 힘 좀 쓰면 "전축(電蓄)"쯤이야 우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애초 음악예술이란 것이 귀족의 전유물이었듯 1900년대 만 해도 오디오 기기(그래봐야 유성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기계들)값이 기와집 한 채 에 맞먹을 정도로 비쌌습니다. 음반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나중 이런 기계식 음향기기(유성기)가 전기를 이용한 전기축음기 - 이른바 전축이 되었을 때는 값이 더더욱 비싸져서 개인이 전기 음향기기를 가진다는 것은 번개도사가 포르쉐를 소유하는 것 보다 더 거창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오토그라프는 이 시대의 포르쉐였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나팔의 용도는 녹음회사(당시로는 최첨단 하이테크기업)의 녹음 모니터용이었으며 당연 모노시대를 풍미했었던 기계이지요. 요즘처럼 물건이 넘치고 전자기술이 발달한 시절에도 방송국용 장비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방송용 시디플레이어 가운데는 천 만원 가까이 되는 게 수두룩하고 TV방송용 카메라가 얼마나 비싼지 잘 아시지요? 예를 들어 "이케가미"나 "소니"는 그냥 휴대용으로 어깨에 매고 다니는 ENG라도 몇천 만원이 훌쩍 넘으며 스튜디오용은 억대가 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귀하던 당시 최첨단 하이테크 회사의 검측장비로 사용되었으니 얼마나 비싼 물건이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가 가난한 것은 똑 같은데(아! 왜 자꾸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될까요...) 눈 높은 고미는 얼마나 그게 갖고 싶었을까요!(언제 시간 나면 눈 높다는 표현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때문에 오토그라프에 대한 고미의 경도(傾倒)와 숭배는 거의 종교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후 일본인이 궁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풍요로운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과 특히 영국에 대해 전통적으로 기를 펴지 못하는 일본인의 기질이 예술을 사랑하던 문인 혹은 기타 먹물들에게 고미의 그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에 곁들인 오토그라프를 통해 많은 꿈을 심어주게 됩니다. 오토그라프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에 있어서의 귀족 증서였던 것입니다.

오토그라프는 바로 그런 스피커입니다. 크기도 무척 컸거니와 구조 역시 특이했습니다. 오토그라프가 활약할 당시는 전자기술과 음향공학의 여명기였습니다. 그래서 전축의 출력이 아주 낮았기 때문에 일단 스피커에서는 큰소리가 나와주어야 했습니다. 전문용어로 "능률"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특성은 극장용 앰프라고 해봐야 3-5와트가 고작인 당시 상황에서 저역(低域)만큼은 그냥 "직접 방사(Direct radiation)" 스타일로 설계하는 것이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저역까지 혼을 사용하는 구조를 갖도록 하는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혼(Horn)이란 말 그대로 나팔을 뜻합니다. 확성기의 앞부분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요? 바로 소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소리를 모아 큰 소리를 내게 하는 것에 유리한 물건입니다. 음향이론에 따르면 혼 구조로 저역을 내기 위해선 혼의 길이가 길고 개구부(開口部)의 직경이 커야합니다. 해서 예전 극장용 스피커들은 다 대형 혼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혼은 당연 커다란 극장의 스크린 뒤에 턱하니 자리잡고 앉아 낭랑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커다란 저역용 혼은 길이가 4-5m에 개구부 직경이 제 키에 맞먹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토그라프는 이렇게 커다란 저역용 혼을 교묘하게 요리저리 접어서 비록 덩치는 좀 크되 그래도 인클로져라고 말하는 스피커 통 안에 집어넣은 것이지요. 부득불 무게는 100kg이 훨씬 더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요. 우리는 그런 형태를 "접은 나팔(folded-horn)" 구조 혹은 스피커의 뒷면에 음향부하를 걸었다고 해서 "백로드 혼(Back-Loaded-Horn)" 타입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혼 스피커는 소리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한번 맛봐버리면 다른 스피커는 싱거워서 듣기 어렵습니다. 그 낭랑하고 여유로운 소리가 커다란 인클로져 안에서 뭉실 뭉실 흘러나올 때는 장강(長江)의 큰 파도가 앞 파도를 밀고 넘어오는 것 보다 더 유장(遊長)한 느낌을 주거든요. 에너지에 대해선 이삼천 청중에게 소리를 쏟아 부을 정도이니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런데 고미에 있어서 오토그라프는 여기에 품위와 격조까지 더한 것이었던 겁니다. 질과 양의 겸비라고나 할까요.

저희가 방문했던 음식점 "시골밥상" 사진에서 여러분이 보셨던 그 뉘리끼리한 스피커가 바로 이 오토그라프입니다. 국내에는 오토그라프 "맛" 스피커가 꽤 돌아다니는데 제가 맛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국내의 오토그라프는 대부분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오토그라프의 인클로져 설계도면이 시중에 오픈 되어있는데 이 설계도에 맞추어 인클로져를 국내에서 제작하고 아까 말씀드렸듯 모니터 실버가 아닌 어떤 유닛도 외부 형상이 거의 똑 같기 때문에 여기에 모니터 실버 계열이 아닌 다른 유니트를 집어넣고 오토그라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국내에 오리지널 오토그라프는 단 4-5조 정도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 또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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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rk: "어깨에 매고 다니는 ENG라도 몇천 만원이 훌쩍 넘으며 스튜디오용은 억대가 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거 요즘은 3억에서 5억 정도해. 껌값치곤(?) 꽤 비싸지?^^

"장강(長江)의 큰 파도가 앞 파도를 밀고 넘어오는 것" --> 아니, 스키 용어를 여기서 쓰면 어떡하냐?^^ 이우사 선생이 이 글을 보면 "보소, 인세 내소. 내 쓴 것 뻬끼묵었으니..." 할끼다.^^


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2000/7/14, 23:33:09
제 목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Vol. 3)+추가 사항

결국 일본에서는 고미고스스께 및 기타 고미의 추종자들을 통해 탄노이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구미 오디오 업계가 가장 큰 시장으로 생각하는 일본 시장에서 확실한 제품이미지를 형성한 탄노이사는 이 오토그라프 등속을 통해 회사의 규모를 무럭무럭 키웁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그렇잖아요? 뽕밭이 바다가 되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는 법. "애드가 빌쳐"라는 이름도 빌어먹게(?) 생긴 묘한 영국인 하나가 희한한 스피커를 설계하게 됩니다. 이름하여 "밀폐형". 예전 스타일로 말하자면 저음을 내기 위해선 무조건 커야했던 스피커가 이 인간이 설계한 스피커 하나로 크기가 책장 위에 얹어도 될 만큼 작아져 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름도 "북쉘프(Book-shelf) 타입". 물론 이것 말고도 오디오에 있어서 여러 혁명적 제품과 이론이 나오게 됩니다만 하여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탄노이사는 옛 영화(榮華)를 뒤로하고 몰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의 대규모 오디오 그룹 "하만-가든"산하로 팔려갑니다. 이 대목에서 M&A를 생각하시는 분은 주식투자의 귀재가 되겠습니다. 각설하고 이렇게 넘어가 버린 회사를 탄노이사의 종업원들이 다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주식을 사들여 재건합니다. 그리고 이 종업원들이 절치부심하여 새로운 스피커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이름하여 "프레스티지(prestige)" 시리즈. 프레스티지 시리즈는 옛 오토그라프 시절의 탄노이 사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탄노이사가 모든 역량을 결집해서 만든 스피커 계열의 이름인데 이 프레스티지 시리즈가 탄노이사에게 대박을 터뜨려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탄노이사는 알텍(ALTEC)사의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시간이 나면 이 알텍사에 대해서도 한번 나불거려 보겠습니다).

프레스티지 시리즈는 제일 아래서부터 말씀드리자면 10인치 유닛을 사용한 "스털링", 12인치 유닛의 "에딘버러", 그리고 15인치 유닛을 사용한 "지알에프 메모리(GRF-Memory)", 그리고 바로 오늘의 주인공 "웨스트민스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의 유닛 구경도 "지알에프 메모리"와 똑같은 15인치입니다. 이 가운데 최고로 많이 팔린 모델이 바로 "지알에프 메모리"인데 얼마나 팔렸는지 자세한 매출액은 모르겠습니다만 이 품목 한가지만으로도 제가 알기로는 백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알에프 메모리(G.R.F.-Memory)"...

어딘가 낯 익으시지요? 예. 맞습니다. 바로 이 모델이 G. 파운틴 씨와 관련이 있는 모델인데 마케팅에 관심 있으신 분은 이것을 주목해 주십시오. 마케팅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지알에프메모리(이하 메모리)는 그렇게 많이 팔린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원래의 모델 설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유령과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원래의 모델 "지알에프(GRF)"는 파운틴 씨의 이름 이니셜을 딴 모델로서 오토그래프와 같은 시대에 팔리던 물건입니다. 들어가는 유니트도 오토그래프와 똑 같은 15인치 듀얼 콘센트릭이었고 외관도 약간 작기는 했습니다만 이미지는 오토그라프와 비슷했지요. 인기에 대해선 잘난 형 밑에 못난 동생이 되어버리듯 오토그라프에 눌려 그저 그런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탄노이가(家)의 명성은 여전히 갖고 있었고요.

탄노이사를 재건한 종업원은 어느날 파운틴씨의 유고(遺稿)를 발견하게됩니다. 거기엔 인클로져의 설계도를 만들기 위한 스케치(!)가 하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직 설계도 단계에 이르지 못한 말 그대로의 "스케치"였습니다. 그런데 탄노이사는 이 스케치를 바탕으로하여 자기들이 새로운 인클로져를 설계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이고 이걸 잡지와 평론 등을 통해 광고를 때립니다.
"(옛 오토그라프를 설계했던)파운틴 씨를 기리며...(GRF-Memory)"

얄미울 정도지요? 품위 있는 외관에 예전 그 비싼 오토그라프의 이미지를 덧씌운 뒤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가격을 책정한 겁니다.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지알에프와는 내용이 달랐거든요. 텅 빈 스피커 통이 무어 그리 원가가 먹힐 게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덩치로 나타내어지는 격조와 품위는 무척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스피커 역사상 이만큼 공전절후(空前絶後)의 히트를 기록한 모델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무게가 80kg 가까이 육박했고 국내 가격도 400만원 정도에 일본에서도 70만엔 가까이 갔으니 절대로 작은 스피커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여튼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차라리 가구에 가까울 만큼 고고한 외관에 탄노이사의 전설과 파운틴 씨의 이미지가 어울려 이 스피커의 대히트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럼 웨스트민스터는 무엇이냐? 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오토그라프에 대비되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탄노이의 진정한 후계자였던 것입니다. 메모리가 지알에프의 사이비 후계자라면 웨스트민스터는 오토그라프의 법통을 이어받은 현세적 발현입니다.

모양은 달라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전 오토그라프는 모노시대에 활동한 기기였기 때문에 방의 모서리에 넣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눈썰미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래서 "시골밥상"에서 코너에 모셔져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 마구리가 튀어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코너형 스피커는 크게 보아 네모상자가 아니라 세모 상자입니다. 그런데 스테레오 시대로 오면서 스피커를 통해 입체적 무대를 만들기 위해 스피커를 코너에서 빼 내와야 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는 형상이 네모상자가 적당해 진 것이지요. 결국 탄노이의 전통과 정수는 웨스트민스터에 결집되어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처음에 순백형님께서 "메모리"를 말씀하실 때 샵 주인들과 주변 오디오파일들의 말에 동의하신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웨스트민스터를 요구하시네요. 건방지게도 형님의 생각에 참견한다면 참 잘하신 것입니다. 메모리는 겉모양은 예쁩니다만 소리는 평범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는 아닙니다. 구조 자체가 아예 메모리와 다르거든요. 메모리는 그냥 통입니다. 커다란 "헬름홀쯔" 공명상자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 때문에 좋은 말로 풍성한 저역이 나옵니다만 나쁘게 말하자면 솜덩어리 같은 저음이라서 무척 컨트롤하기 어렵거니와 이렇게 벙벙대는 저음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나중엔 대책이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는 저역이 혼 타입이라서 소리가 저역 혼의 긴 음도(音道)를 한참 돌아 나오는 효과로 인해 느긋한 느낌을 줍니다. 웨스트민스터에 비판적인 사람은 이것 때문에 이 스피커는 둔하고 느리다고 악평을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풍격(風格)이라고 두둔해줍니다. 호불호(好不好)가 확실히 가려지는 스피커이지만 저는 이것이 웨스트민스터의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성이 없는 스피커는 말 그대로 평범한 스피커 일뿐이며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평범한 스피커입니다. 순백형님께서 지금 갖고자 예약하신 게 바로 이 웨스트민스터이고 이 웨스트민스터의 계열 변천사에 대해선 얼마전 순백형님께 올린 편지를 통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주절거리는 것도 에너지가 꽤 필요하군요. 처음 시작할 때는 한 10여 페이지쯤 써 봐야겠다고 작정했는데 막상 쓰다보니 이리저리 왔다갔다해서 중심도 없고 몇 장 되지도 않는 게 말만 많았습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십시오. 기약은 드릴 수 없지만 머리 속 혼란이 조금 정리되면 추가로 더 "썰"을 풀게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장담을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것은 보름 안에 꼭 순백형님의 거실에 이 웨스트민스터라는 녀석을 꼭 들어 앉혀 놓겠습니다. "스왕자" "스왕후" "스공녀" "스공자" 이 네 사람이 "스"씨 가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아이고 배고파라... 스씨 스씨하다보니 스시(초밥) 생각나네잉!

"순백 형님! 언제 남가(南家)로 초밥이나 한번 배터지게 드시러 가시겠슴둥?"
"어이구! 저 촌놈... 얌마! 초밥은 배터지게 먹는 게 아냐. 그냥 깔작거리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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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rk: "(시간이 나면 이 알텍사에 대해서도 한번 나불거려 보겠습니다)."

이 약속도 꼭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전에(배신 때리기 포도주 모임) 내가 이에 대해 물어 봤었잖니? 내가 좋아하는 스피커 중에 알텍 랜싱의 제품이 있는데, 이 게 내가 어릴 때 영화광이었고, 집앞에 극장이 있었는데, 그 극장에서 쓰는 거대한 스피커가 알텍이었다고... 그래서 내가 한 때 북쉘프형의 알텍을 하나 사서 쓰지 않았겠냐?^^ 그리고 JBL의 L이 역시 랜싱이기에 내가 알텍 랜싱과 J. B. Lancing의 관계가 어찌되냐고 물었을 때 그 얘기까지 네가 해 준 일이 있는데, 그 얘기도 곁들여주기 바란다. 딴 사람들은 다 못 들었잖아?^^

그리고 그 후진 하만 카돈(Harman-Kardon) 사가 탄노이를 인수했다니 황당하다. 그 제품도 좋은 게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대개는 엉성하고 제품의 질도 별로인 것만 있던데... 하이 피델리티나 스테레오 리뷰 지 등에 광고는 많이 실렸지만... 예전엔 내가 이 잡지들을 몇 년치 씩이나 사서 순서대로 여러권씩 모아 검정색 하드 카바 제본을 해서 집에 보관할 정도의 광이었음. 집사람이 이사갈 때마다 그 때문에 고생을 하기에 95년도에 눈물을 머금고 버렸는데... 그 거 지금은 어느 오디오 매니아의 서가에 잘 꽂혀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가 봐도 범상치 않은 책으로 보이는데다가 그 책 안에 내 손으로 쓴 갖가지 자료들도 있고, 책마다 그 잘난 내 영어 사인을 다 해 놓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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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가 스시에 가서 그 좋은 민어탕으로 일단 배를 채운 후에 초밥 좀 사서 배터지게 만들면 그도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초밥 맛을 제대로 보려면 초밥부터 먹어야 할 텐데... 그럼 민어탕을 뒤로 해서 배를 터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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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윤세욱
글쓴 날짜 2000/7/18, 20:28:32
제 목 '탄노이' 추가 사항

며칠 전 웨스트민스터 잡설(雜說)을 긁적거린 뒤 집에서 자료를 뒤져보았습니다.

탄노이사는 1926년도에 창사 되었더군요. 회사가 "그 후진(^_^)" 하만 카돈(Harman-Kardon) 산하로 팔린 게 1970년대 초반이구요. 종업원이 "하만 카돈(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하만 인터내셔널(Harman International))" 그룹으로부터 주식을 전량 되사들인 것이 1976년으로 나와있습니다.

가격은 제가 많이 틀렸더군요. 1989년도에 일본에서 "지알에프메모리"가 100여 만엔 정도였고 "웨스트민스터"가 190만엔 쯤. 그리고 그 다음해 "웨스트민스터 로얄"이 출시되면서 첫해엔 300만엔 그 다음해엔 310만엔이 되는데 일본의 엔화시세가 그 당시 날마다 널뛰듯 하던 때라 외국 제품의 가격이 수시로 변합니다. 요즘은 330만엔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하만 인터내셔널"이란 그룹은 엄청나게 큰 오디오기기의 지주회사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리기로 작정하고 있는 "JBL"도 그 회사 소유입니다. 박사님 말씀마따나 "하만 카돈" 레이블로 만들었던 기계는 미군 면세품목 리스트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할만큼의 별 볼일 없는 제품들이었지만 (비싼 녀석은 의외로 비쌌고요) 회사 자체는 메이저 레이블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공룡 같은 녀석입니다. "제너럴모터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폰티악", "캐딜락", "뷰익", "쉐벌레이"... 모두 다 GM 것이잖아요. "하만..."도 그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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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rk: 호, 제가 하만 카돈을 우습게 봤군요. 하긴 제가 본 건 싸구려만 본 거니까.

전에 제가 우습게 봤다가 나중에 생각을 고친 회사가 또 있지요. 페이스 리니어(Phase Lenear) 사입니다. 이 회사는 크기는 작은 회사인데, 제품을 보면 컴팩트 오디오 시스템 같은 것들만 나오기에 우습게 봤는데, 그들의 제품 개발력이 대단하더군요. 일본의 그 잘 나가던 회사들이 다 이 회사의 메카트로닉 컴포넌트들을 가져다 쓰더군요.
Comment '2'
  • ?
    나원규 2008.04.13 00:07
    [ afagom@gmail.콤 ]


    그냥 써 봅니다. (집에서 회삿일 하는 중 잠깐)
    저~위에, 윤세욱 선생님께서 태노이 스피커의 동축형 유니트 설명하시던 부분에
    '금빛 부분이 고음 유니트의 혼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부분이요.
    물론 소위 튜울립 모양이라는 미니 혼이 거기에 들어 있긴 합니다만, 그것이 드라이버(진동판)과 일체로 움직이니, (그 자체이니)
    혼이라 하기도 좀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요,
    이 중앙에 있는 고음부(트위터)는 중저음부의 콘지 자체를 혼으로 쓰는 겁니다요.
    게네들 아이디어 좋죠?
  • ?
    윤세욱 2008.04.30 14:35
    [ netadm@dreamwiz.com ]

    [나원규 선생님]

    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튤립 모양의 미니 혼은
    소위, 웨이브 가이드라고 말하는 위상정합기로서(디퓨져 역할이 더 크겠지만요),
    진동판과 일체는 아닙니다.

    탄노이의 15인치 동축형은
    탄노이 사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아픈 환자가 병상에서 뒤척거리듯 무지하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모니터 실버, 레드, 골드 이후
    385, 386을 거쳐 3808이나 3838 혹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많은 모델 체인지를 거쳤고,
    심지언 RCA RC-1A 흉내를 내 콘지 뒤에 늑골 붙인 모델까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저역 콘을 혼 모양으로 설계해 혼의 연장을 노렸다고 마케팅을 했는데,
    실제 효과는 조금 있었습니다만,
    혼의 크로스오버 주파수를 고려해 보면 왜 그게 마케팅이란 걸,
    그리고 콘지의 움직임을 생각해 보면 왜 그게 썩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는지를
    잘 아시게 될 겁니다.

    좋으신 지적,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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