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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욱 칼럼
2008.04.04 15:15
[윤세욱] 골드문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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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골드문트 --; / 반호석 오디오 기기 섭렵을 즐긴 지 이십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동안 곁을 스쳐간 브랜드가 수십 개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중 몇 브랜드는 사라지고 없고 어떤 브랜드는 소유자가 바뀌었으며 어떤 브랜드는 제품의 컨셉이나 성격 혹은 마케팅 포인트가 변했습니다. '시장에서 좀 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었고, 구입하면 덕 보는 기계라고 말해가며 어느 것은 구매를 강권하기도 했으나 이름이 거론되면 곤혹스러운 느낌이 드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직역하면 "황금의 입"이란 뜻의"골드문트(Goldmund)"가 그 예입니다. 이런 느낌을 주는 브랜드가 두어 개 더 있습니다. 하나는 FM 어쿠스틱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지난 번 말씀드린 윌슨 오디오입니다. 제 곤혹스러움은 이 회사 제품들의 가격표에서 유래됩니다. 너무 비쌉니다. 얼마나 비싸냐 하면 보통 제품의 가격대가 세 개 회사 모두 기천만원이 훌쩍 넘고 기함(Flagship) 모델은 억대 이상의 가격표를 붙인 것도 있습니다. 말이 쉬워서 억이지 그게 보통 돈입니까? 몇 백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수 천만 원짜리 오디오 기기 앞에서 느끼는 왜소한 기분을 여러분께서 이해하실 수 있으실런지... 하여튼 가격은 그렇습니다만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는 게 그간 오디오를 즐겨온 경험자로서의 주장입니다. 오디오 개발자들이 “독창성”과 “세련됨”을 받침대 삼아 자신의 제품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로선 비싸기만 한 오디오 제품이 예술품이라곤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보석상 티파니의 물건이 모두 예술품 반열에 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랍니다. 예쁜 겉모습과 신기한 소리가, 그리고 그것에 깃든 제품 개발자의 독창성이 인간이 추구하는 “진선미”의 가치 가운데 “미”자리를 차지할 권리의 충분조건은 아니니까요. 물론 예술품을 돈으로 평가하는 것은 속물스럽지요. 그러나 현실세계에선 이것 외 대안이 없으므로 돈으로나마 예술품을 평가해 보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역은 정답이 아닙니다. 비싸니까 예술품? 천만에요. 비이성적인 제품 가격이야말로 속물의 표본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증표일 뿐이지요. 430만 엔,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하면 자그마치 4,300만 원 짜리 가격표가 붙은 골드문트 사의 DA 컨버터에 대한 한 오디오 평론가의 말씀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오디오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고가(高價)이게 마련이다.” 오디오 평론도 참 힘든 직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가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며 납득이 되질 않는 것에 대해 변명이나 면죄부도 발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비싼 제품에 대해선 이 따위 실소가 어울리는 평론도 나오는 것입니다. 골드문트의 앰프 가운데는 심지어 2천만 엔짜리 가격표를 붙인 것도 있습니다. 펜티엄 4 프로세서를 이용한 앰프의 이상 유무 진단기능 등을 집어넣은 뒤 밀레니엄 어쩌고 해서 오십 세트 한정 생산했다는데 그래도 그렇지 오디오 파워앰프 한 세트가 2억 원 -소도시 아파트 한 채 가격이라면 도저히 현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비싼 제품이 자동차나 여타 다른 공산품처럼 한눈에 드러나는 성능 차이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한편 외관과 내부 역시 가격표에 걸 맞는 비용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전혀 없으니 그걸 무슨 수로 포장합니까? 결국 위 평론가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비로소 가치가 존재한다’는 현학적인 언사나 구사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하여튼 골드문트는 제게 좀 그렇습니다.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격표를 붙인 뒤 “너 이것 입을 수 없지?”하며 고객을 고르는 고급 의류 매장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FM 어쿠스틱스나 윌슨 오디오나 혹은 골드문트를 대할 때의 제 심정입니다. 물론 소리까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투박한 시골 촌부가 빈티지라면 가냘프고 섬세하며 기계로 깎아 낸듯한 세련됨을 갖고 있는 도회지의 미인이 골드문트입니다. 하이엔드에 싫증이 나서 빈티지로 선회한 지 여러 해 지났지만 가냘프고 섬세한 미인이야 언제나 “많을수록” 좋지요. 냉기가 도는 금속성 반짝임이 골드문트에 대한 단순한 음질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순백 박사님껜 ‘시체실 같은 소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기계적 특징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참 한 가지 잊었네요. 스피커도 만든 골드문트이고 이들이 만든 에필로그라는 모델은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앰프만 언급 드립니다. 스피커는 자료가 불충분하고 시청 기회도 드물었으며 제품 역시 혹독한 가격 때문에 시중에 많이 굴러다니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용서 급구. 선불. 옷 줌.” 골드문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스위스 IBM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미쉘 레베르숑”씨가 1980년 대 “레퍼런스(Reference)" 턴테이블을 생산하던 골드문트사를 인수해서 만든 브랜드입니다. 미메시스라는 앰프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이 주창한 마케팅 문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앰프 기판에 발생하는 진동을 센서를 통해 분석하여 속도가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소리로 튜닝 했습니다.” 존재감 있는 외관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는 소리에 대해서만큼은 그들 나름대로 소신과 결과가 일치했다는 평가입니다. “미메시스 2(Mimesis 2)"와 “미메시스 3(Mimesis 3)”이라는 도시락처럼 납작한 앰프 세트가 그들의 데뷔 제품입니다. “미메시스 7”도 있는데 이건 유럽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국내에 주로 돌아다닌 물건은 2와 3입니다. 프로용 테이프레코더를 생산하던 스텔라박스도 골드문트 산하인데 레퍼런스 턴테이블을 만들던 회사 이름이 골드문트였으며 레퍼런스는 그 당시의 하이엔드 턴테이블의 열 배 가까운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다는 것도 사족 겸 말씀드립니다. 미메시스가 출시될 당시의 하이엔드 앰프라면 마크 레빈슨의 27이나 크렐의 80B 정도였습니다. 가격은 대략 오십만 엔에서 칠십만 엔 부근. 출력은 A 클래스 80에서 100와트 정도에 무게는 40KG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는데 미메시스 시리즈는 크기도 얇고 무게도 가벼운 것이(6.7KG) 가격은 백만 엔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밀한 공작기기를 보는 것처럼 손잡이는 소위 깔깔이 가공이 되어있었고 비록 용량이 작을망정 내부 트랜스도 좌우 채널을 분리하고 한 채널에서도 +와 - 를 별도로 구성한 다음 제어용 트랜스도 따로 마련해서, 트랜스가 총 다섯 개나 들어간 호사스러운 회로구성입니다. 그 뒤 납작한 외관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중간 미메시스 6과 7을 징검다리 삼아 무게가 65KG을 넘는 미메시스 9로 훌쩍 진화(?)했는데 이후 골드문트의 앰프는 다양하게 모델이 바뀌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제품이 나오긴 했지만 음질과 외관에 대해선 일관된 컨셉을 갖게 됩니다. 덩치는 무겁되 아이러니컬하게도 속은 텅텅 비어 있으며 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미메시스 9의 모노 버전인 9.2라는 모델이 있는데 모노 구성이니까 오른쪽 왼쪽 두 덩어리입니다. 한 덩어리에 65KG이니 양쪽 채널 합하면 130KG입니다. 앰프가 20KG을 넘어가면 들기가 뻐근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고 30KG정도가 되면 쉽게 들기 어려우며 40KG가 넘으면 허리 부상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 정도 무게라면 절대 혼자 못 듭니다. 근데 속을 열어보면 이건 간신히 옮겨서 볼트 열어본 사람 김빠지도록 아무것도 없습니다. 트랜지스터 여섯 개. 평활 콘덴서 두 개가 설치된 드라이브 기판 한 장, 그리고 트랜스 두 개. 이게 내장(內臟)의 전부입니다. 근데 어떻게 65KG이나 나갈까요? 비밀은 단순합니다. 뭐 비밀이랄 것도 없습니다. 껍데기로 무게를 잡았습니다. 두께가 6mm나 되는 철판을 용접해서 케이스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광고를... “메커니컬 그라운드” 무게를 그라운드 시켰다는데, 중력이 그라운드 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전 잘 모릅니다. 아마 아인쉬타인도 잘 모를 듯싶습니다. 어쩌면 미쉘 레베르숑씨는 약력(弱力)과 강력(强力) 그리고 전자기력(電磁氣力)과 중력(重力)에 대한 통일장(統一場)이론을 확립한 최초의 물리학자가 아닐까요. “중력 접지”... 하여튼 발상은 참신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신한 발상이 납득이 되질 않는 가격표-물경 삼천 칠백만원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1990년 가격입니다) 그래서 한때 IBM 방계 회사에서 일 해본 것을 경험 삼아 이런 장난기어린 생각도 해봤습니다. “IBM 출신이라서 비싼 가격표에 익숙한가 보다.” 하여튼 골드문트는 이렇습니다. 음질이야 각자 눈의 안경이니 선병질적으로 날씬한 아가씨를 좋아할 분도 계실 것이고, 관리비가 덜 든다는 핑계로 육덕이 푸짐한 사람을 선호하는 저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골드문트에선 쥑이는 소리가 난다”고 말씀하셔도 저로선 항변이 불가능합니다. 또 실제 전형적 하이엔드 오디오 소리가 나는 것만큼은 맞습니다. 예를 들어 재즈 연주에서 브러쉬로 심벌을 싹싹 문지를 때 나는 서그럭 서그럭 소리나 하이햇이 쩔꺽쩔꺽 맞부딪치는 소리가 “틀림없이” 나옵니다. 저역도 전혀 부풀지 않고 중역 역시 깔끔하니 소리만큼은 훌륭하지요. “세욱아! 그럼 어쩌란 말이냐?” 일화 한 가지 말씀드리고요. 수입상 이름을 잊었는데, 이 레베르숑씨가 한국의 수입상에 들러 직원들에게 마케팅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자리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한 직원이 레베르숑씨에게 질문했습니다. “알루미늄 패널을 통해 음질을 만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패널을 가공할 수 있으며 가격도 2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게 정말 그렇게 특수한 알루미늄입니까?” 통역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레베르숑씨 왈. “당신 같은 사람은 당장 나가라.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당신 같은 사람과는 같이 일할 생각이 없다.” 글쎄요. 제가 직원이라면 절대 납득이 가질 않는 대응이고, 직원 하나 설득 못하는데 어떻게 손님에게 몇 천만 원을 지불하라고 말할 수 있을지... 그래서 박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오늘 이야기의 결론을 내릴까 합니다. “흐흐흐... 저라면 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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