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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게시물은 홈페이지 관리자에 의하여 " 안중찬의 독서 일기"란으로부터 이동되었습니다.(2012-05-10 17:15)



'내가 쓴 글 맞아?'
11년쯤 전에 어떤 잡지에 기고한 나의 글을 읽으면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내 글을 읽었다는 어떤 이가 그 내용을 소재로 질문을 했는데 처음엔 멍했었다. 기술적인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풀어 쓴 비유의 글이었는데, 질문을 받고 말을 한참 돌리다가 결국 내 입장을 정리하여 대답을 하긴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글은 내 글이 맞고 나만의 독창적인 비유임에 틀림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 그런 일이 생긴걸까?

기억력의 한계는 전 인류에 해당되는 공통된 고민거리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모든 독서가 단지 일시적이고 덧없는 지식을 제공할 뿐이라고 말한다.
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는 아예 자신이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읽은 책에 말하는 것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하는 상황이 대등한 조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비단 혼란일 뿐일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단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책만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이명박의 자서전을 이야기하다가 정주영을 이야기 하고, 박정희를 이야기 하고, 조정래를 이야기 하다가 박경리를 이야기 하고,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이야기 하다가 서양 대하소설인 빨강머리 앤을 이야기 할 수도 있으며, 뜬금없이 광우병에 미국 대선을 이야기 하고, 버락 오바마에서 힐러리 클린턴으로, 힐러리의 이야기는 빌 클린턴의 자서전 My life로, 그리고 그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마르케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게 된다. 마르케스의 화려한 글발을 논하다 보면 어느새 이문열로 넘어 오고, 이문열의 이야기가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으로, 다시 전두환의 이야기로 빠져들다가 그의 최측근 장세동을 말하고, 전두환을 히틀러에 빗대다가 괴벨스의 최후를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다가 흥미롭게 진행되다 보면 그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무리가 대화의 소재가 되는 책을 모두 읽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 년 동안 국내에서 쏟아지는 책만 해도 수만 권에 이르는데 어찌 모두 읽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루도 책을 놓지 않는 나라도 150~200권이 한계이다 보니 우리는 틀림없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나처럼 취미가 독서인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직업이 독서와 무관하지 않은 출판계 사람이나 이 책의 저자처럼 책을 주제로 강연을 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모든 책의 소재를 다 읽어야만 그 직업을 가질만한 자격이 되는 걸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일까?

이 책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독서가 능사는 아니다. 비독서를 통해서도 성실한 독서보다 더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으며, 이른바 교양에 대한 강박관념 혹은 두려움을 떨쳐내는 방법, 비독서의 멋이 이 책 안에 있다.
활자 중독증? 물론 나에게도 있다.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어떤 어떤 책을 읽었다고 나열만 하는 사람도 있고, 그에 감탄하는 사람도 널려 있다. 그가 읽은 책의 느낌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이 책의 기획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독자로서 나는 최소한의 기억을 위해 말도 안되는 후기를 남겨 보기도 한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읽은 책이라도 이 책이 제시하는 비독서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독서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 투자 가치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라면 당신은 어떤 입장일까?

책과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꿈 꾸는 책 좋아하는 이라면 이 책만큼은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독서를 이야기 하면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 보라는 나의 모순 또한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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