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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06.07.27 17:47

먼 길 가는 친구

조회 수 3566 좋아요 707 댓글 1
어젠 대구엘 다녀왔어요. 오후2시에 출발해서 갔다가 돌아오니 새벽2시.
친구를 보고 왔습니다. 곧 먼 길 떠날 친구라 볼 수 있을 때 얼굴 보려구요.

이 친구가 카이스트 경영정보 대학원을 나와 금융 관련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게 업무인지라 저번에 만났을 때 재무설계 이야기며 내가 만든
자료들, 그리고 만들려는 재무설계 프로그램이랑 사업화 가능성 등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었지요.

나름대로 그쪽 방면에 공부를 많이 한 친구라 좋은 조언들을 많이 해주더군요.
한국 펀드 평가의 우재룡박사도 개인적으로 잘 알고, 학계에 진짜 실력있는
사람들도 많이 소개해주겠다고 했었지요.

그 때만 해도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더니 어제 본 친구의 모습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우릴 잘 쳐다보지도 않더라구요. 벌써 한 발 쯤은 제 놈 다음 세상에
들여놓은 듯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더군요.

아쉬운 마음에 옛날 푸르던 대학 시절 객기와 취기로 벌였던 한바탕 해프닝들이며
술자리면 늘 올라오던 추억담들을 다시 벌려놓았더니 그제서야

'그랬엇지...'

한마디 알아 먹을 말을 들려줬어요.

잠시 그의 손과 다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이젠  모두 빼앗긴 친구의 육체가
순간 무서웠어요. 살집 두둑하던 그의 얼굴이 이젠 내 손바닥만해지고, 몸
곳곳엔 구멍이 뚫려 파이프가 꽃혀 있었어요.

한 존재가 이렇게 사그러져 간다는게 너무 무서웠습니다. 자신의 의지도
이젠 모두 사라지고 그저 몇 줄기 플라스틱 관에 의지해서 바로 다시 빠져나올
음료수며 물이며 40년 가까이 해오던 동물적 관성에 의해 그렇게 결국은
놓아버릴 끈을 놓지  않고 있다가 재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듯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는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
.
.
.
.
.
.
.
잘가라 친구야. 잘가라. 맘 아프고 아쉽지만 여기 까지니까 좋았던 기억들만
잘 가지고 가라. 나도 될 수 있으면 오래 오래 좋은 기억들, 안 까먹을께.

먼 길 조심해서 가라. 안녕.
Comment '1'
  • ?
    박순백 2006.07.28 09:47
    [ spark@dreamwiz.com ]

    친구의 죽음.
    몇 겪어 봤는데
    다른 것과 많이 다른 그런 경험입니다.
    좀 쓰린 경험이 되더군요.
    사실상 자신과 가장 가까운 죽음으로 느껴집니다.
    느낌의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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