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08.10.14 17:13
[윤세욱의 자동차 헛소리] 푸줏간의 무딘 칼
조회 수 3798 좋아요 439 댓글 0
가끔, 어떤 자동차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혼다자동차를 파는 처지이니 혼다를 탄다고 말씀드리는 게 자연스럽겠습니다.
질문하신 분 역시 그걸 기대하실 것이고요.
하지만 현실은 아닙니다.
“아니, 왜 혼다를 팔면서 혼다를 타지 않고......”
거짓말을 말씀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기대에 어긋나는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는 한편 설명 역시 제 몫입니다.
차를 바꾸지 못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제일 큰 것은 경제적 문제 때문입니다.
제 차는 2002년 식입니다.
주행거리는 12만 킬로미터 정도고요.
6년 넘어 7년 가까이 사용했고 마일리지도 작지 않으니
한국의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쯤은 폐차장에서 금속 오징어포가 되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야할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고객의 의아심과 제 스스로의 욕심을 어기면서도 계속 타고 다닙니다.
아직은 굴러다니기는 하니까요.
물론 제 차 상태가 완벽한 건 아닙니다.
사용하는 동안 손가락 숫자론 부족할 만큼의 고장이 있었고,
기름은 많이 들다 못해 거의 꿀꺽꿀꺽 들이키는 수준인 한편,
명색에 V6엔진을 올린 차가 굼뜨기로는 아들 녀석 심부름 마치는 속도보다 느립니다.
특히 고장의 문제라면 유전자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 가끔 시동이 안 걸리는 병폐까지 있습니다.
엊그젠 아내가 이 차를 끌고 장보러 나갔다가 시동이 안 걸리는 바람에 차를 내팽개치고 집에 걸어 들어왔더군요.
물론 차를 바꿀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차종의 경제성을 따지고, 차량 간의 득실을 계산해서 고객에 정보를 제공하는 게 업무의 한부분입니다.
그래서 자동차의 경제성에 대해 누구보다 자주 주판을 두드려보게 됩니다.
아울러 회사에서 아옹다옹 몇 년 버티는 데 성공한 덕분에
큰 양은 아니되 차 구입 시 약간의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려 날마다 차를 바꾸고 싶은 유혹 속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실행에 옮기는 전투에 나서기만하면 팔부능선에서 번번이 전사하고 맙니다.
말씀드렸듯, 계산 끝내보면 새 차를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몇 푼 절약할 수 있다고 답이 나오니까요.
가끔은 제가 지혜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실, 사람이 돈을 벌고자 하는 근본 이유가 쓰기 위해서이니만큼
쓰지 못하는 돈이란 화장실의 티슈보다 더 쓸모가 없는 물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인생이란 게 동방삭처럼 삼천갑자씩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노래 가사처럼 “늙어지면 못 노니까” 힘 있을 때 적당히 놀아 주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심지언, 남편 용돈에 대해선 바닷물보다 짜게 구는 왕소금 아내조차
고장 나서 시동을 못 거는 꼴을 본 다음엔 차를 바꿔도 좋다는 윤허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결행을 못하고 있는 저는 꽁생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쨌든, 푸줏간 부엌에 잘 드는 칼 없다고 차를 팔면서도 좋은 차는 못 타고 다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저도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 한 가지 더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아내가 팽개치고 온 차는 제가 가서 살살 달래서 다시 시동을 걸어 끌고 왔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 버는 재주가 부족한 만큼 몸으로라도 때워야지요.
배터리가 멀쩡한데도 전자회로에 문제가 생겨 시동이 안 걸리는 차를 고치느라 숯검정이 잔뜩 묻은 손을 바라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번만큼은 반드시 복권을 맞춰내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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