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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2009.10.16 18:15

인문학강좌 수업후기(9월17일)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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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강의가 시작되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본 사진보다 김성도 교수님은 ( 부사나 관형사는 생략... ) 멋지셨다.
외모도 물론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한 건 그 분의 인문학적 사유가 담긴 강의가 <건축함과 사유함>을 적으신 필체만큼이나 멋지셨다는 거다.

나는 김성도 교수님의 문체가 좋다. 가끔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단어와 표현법이지만 그렇기에 곱씹고 읽으면 읽을수록 해석이 깊어지기에 간단하게 말하면 고급문장이어서 좋다. <문명의 기계화가 인간의 삶마저 기계화시켜 버린 오늘날, 인문학적 사유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신 강의, 삶의 일상속에서 삶을 승리하게 만드라는 <심미적 소통>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하셨다.

신석기시대인의 원초적인 감수성,
때가 묻지 않는 야생적인 삶,
걱정마시라 인터넷이 무너져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돈이 쓰이지 않는 산책 즉, 걷기는 교환의 원리를 초월해야하는 것이다.

주옥 같은 , 펜으로 그대로 받아저 적어도 완벽한 문장이 되고 아포리즘이 되는, 그런 말을 쉬잖고 하셨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휘갈겨 적어대는 인사모팀 중에서 흰옷입은 내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수헙생처럼 한자도 빠뜨리지 않고 무조건 적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팀의 은순씨가 정갈하게 그 모든 강의를 한자 한자  한단어 한단어 동그라미 쳐가면서 색깔 펜을 동원하면서  정리할 때 말귀늦은 나는 그 옆에 앉아 베꼈으니 열강의 열기가 증명된 셈이다. 수업은 그렇게 진행되고... 그 어떤 단어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올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단어와 중첩된 또하나의 단어와 생각과 그리고 에피소드들이 둥둥 떠다녔다.

최근 나는 우리나라 대중 가수 루시드 폴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그와 마종기 시인이 주고받은 편지가 적힌 산문집을 발견하고는 그 날 이후 나는 완전히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그이 가사집이 담긴 물고기 마음을 탐독했고,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실린 모든 글을 밤새가며 읽었으며, 그의 노래 전체를 내 아이팟에 집어 넣는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은영 씨에게도 루시드 폴의 멋진 면을 설파했으며 올 크리스마스 때 그의 콘서트로 은영 씨를 유인하기 위하여 그의 책을 읽게 하고 노래를 듣게 유도했다. 은영씨가 아직 별말이 없는 것을 보면 , 루시드 폴의 매력을 아니 발견한 모양이다.

루시드 폴은 음유시인이다. 그리고 화학공학도였다.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건 , 그의일 기나 그의 산문과  그의 노래가 바로 오늘 김성도 교수님이 강의하신 주요내용, 즉 때가 묻지 않는 원초적인 감수성을 그대로 안고 있는 사람이기때문이다. 그는 산문에서,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그만큼 행복하게는 해주지 않았다며, 안정된 화학공학자의 길을 내버리고 인문학적 예술의 길로 자신의 인생 방향을 옮겨 실천한 사람이다. 이 시대에 그런 결정을 한 사람은 수 없이도 많겠지만, 그는 보통사람보다 멋지게 생겼고 목소리도 좋고, 가수고 남자기에 그 대표적인 표상으로 나는 그를 선택한 것이다. 김성도 교수님이 인문학적 사고, 그 삶에 대해 확신에 찬 어조로 설파하실 때. 왜 루시드 폴이 아른거린 걸까? (가끔 학생의 손은 열심히 필기를 해대도, 머리로는 딴 생각 한다는 것을, 교수님도 아실까.)

사실 인문학 강좌 후기에다 내가 사적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적으며 그 이유를 한단락이나 적는다는 거, 그거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인문학 강좌 그 시간에 동시에 수많은 단어와 이미지와 그리고 각오와 후회가 정신없이 밀려왔다는 거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이 책상 위에는, 그날 들었던 수업내용이 4장 가득히 노트에 적혀있다. 나에게는 그게 주옥 같은 글이고 문장이고 사유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 후기에 다 적질 못 하겠다. 강의의 주제가  내용을 요약하고 풀어서 적는 설명이 필요로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오직 단 하나의 의미로 함축되기 때문이다. <거창한 것 찾지 말고 일상에서 즐겨라.> 바로 이 문장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나는 사유를 하고 그것을 행동에 옯기면 되는 것이지 내가 내 자신을 위하거나 남을 위하여 설명해서 풀어갈 필요가 없다는 거다.


수업시간에 가장 감명 깊은 순간이 있었다.
동양최대의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에 가서, 석양이 물들어오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그동안 머물면서 , 풍경소리와 그리고 어디선가 울려퍼지는 북소리를 들으면서 잊을 수 없는  꿈 같은 풍경을 보고 들었다는 교수님의 체험담을 들을 때였다. 어디선가 내 귓가에 북소리가 둥둥둥 들려오는 듯 했다. 감동이 지나치면 그 순간 학생은 또 다른 풍경하나를 머리속에 그린다는 거.
이번에는 북소리였다. 북소리.

올 여름에 황금 물고기라는 르클레지오 소설을 감동깊게 읽었다. 아프리카가 고향인 귀머거리 어린 소녀가  누군가의 손에 팔려 유럽을 전전하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유랑한다. 그녀는  물고기 처럼 쉬지 않고 어딘가로, 순간 판단이되는 그 어딘가로, 정지라는 걸 모른 채 늘상 움직이는 소녀이다. 사람들을 그녀를 그물로 잡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본능적인 감각을 발휘하여 매번 그물을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글도 익히고 법 공부도 하고 사랑도 하고 가수의 길도 걷고 그리고 문학이라는 것, 예술이라는거에 심취하면서 지구를 돌고  돈다. 그러나 그녀가 늘 정착하지 못 하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나게 된 것은 그녀 본연의 안에 담겨진 물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강만 보면 짐을 쌓고 건너고 죽을 고비를 마다 않고 탈출한다. 그러다가 그녀가 비로소 어느 저편에서 들려오는 곳으로 몸을 향하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귀머거리,그녀가 그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그녀 부족이 울려댔던, 오후가 되면 석양이 지면 울려댔던, 먼 북소리였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그 북소리를 따라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그녀의 고향. 아프리카라는 곳. 결국 그녀는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황금 물고기가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북소리묘사는 압권이었다. 책을 읽는 내 주변 어딘가에서 먼 북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고개를 들어봤을 정도로 그 결말 묘사야말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필력을 어김없이 발휘했다고 나는 생각된다. 그런데 그 먼북소리를 부석사에 가면 들을 수 있다니...

이렇듯 첫수업 인문학 강좌- 김성도 교수님 강의 시간에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내 과거 한순간이 떠올랐고, 영화의 그 장면도 떠올랐고, 어느어느 사람들이  머리속에 오셨다가 마이크 소리가 거세지면 사라져버렸고 다시 마이크소리가 약해지고 교수님 강의가 진지해지고 나를 감동시키면 어김없이 사람과 이미지들이 내 머리속을 유영했다. 강의를 듣는 두시간 동안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났고 여러 곳을 여행했다.


강좌가 끝난 후, 발표시간 때 나는 차마 부끄러워 이 말을 하진 못 했다.

<오늘 강의는 제게 잊을 수 없는 시간이되었습니다. 예습의 힘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

나는 이말은 부끄러워 하지 못 하고 그냥... 강의가 좋았어요. 그 단순한 이 말만 해댔다.


친정아버지께서 어느 날. 우리나라는 노인에게 돈도 주고 뭐이리 좋은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말을 하셨다.
그렇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이런 좋은 강의를 무료로 대접받아가며 듣게 해주는,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다.


나는 인문학 강좌를 듣고 온 그날 남편에게, 주말에 시간내서 부석사 템플 스테이를  가자고 제안했고, 이유도 모르면서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11월 어느날. 부석사의 석양 아래서 먼북소리가 울려퍼질 때, 하루 내내 디지탈만 만지고 디지탈에 관련된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리고 디지탈로 밥벌이를 해 나갈 내 남편에게 황금물고기에 대하여 인문학 수업에 대하여 조간 조간 말해 줄 것이다. 아, 루시드 폴도 있다.



이상 인문학 제1강좌 수업 후기 끝. 보스턴에서.10월 16일 새벽 5시
후기 올리기가 숙제인데 이제야 그 밀린 숙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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