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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06.01.25 13:37

앞서 갔던 전자 카페(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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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8265 좋아요 866 댓글 6
김명신 선생의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하면서 전자 카페 얘기가 나왔었다. 아래는 내가 받은 편지에 그 내용 중간에서 하이픈(-)을 하고 답을 직접 적어 넣은 것이다.


제목 : Re:긴급 질문- PC통신 시절에 대하여
날짜 : Tue, 24 Jan 2006 17:08:19 +0900 (GMT)
보낸이 : 박순백(Soon-Pack Park)
받는이 : 김명신
함께 받는이 : dhahn@microsoft.com, ssahn@wow.hongik.ac.kr, yikisung@dreamwiz.com

글 중간에서 답하겠습니다.

From: ""김명신"" inmyeye@///////.net
To: spark@dreamwiz.com
Date: Tue, 24 Jan 2006 16:29:21 +0900 (KST)
Subject: Re:긴급질문- PC통신 시절에 대하여

박순백 부사장님께,

* 초창기 피시통신 시절에 대한 너무도 중요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너무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네티켓이란 단어가 1988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면 미국보다 먼저 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었다고 보는게 맞는지요?

- 당연히 우리가 먼저 만들어 사용한 것입니다. 당시 엠팔 멤버였던 한규면(한승헌 민권 변호사의 차남) 선생이나 전에 얘기한 묵현상 선생, 염진섭 선생 등이 컴퓨서브의 골수 사용자였었기에 그 쪽 사정에도 저희가 정통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세계 최초의 BBS인 CBBS(Computer Bulletin Board System의 줄인 말)가 1978년에 등장했습니다. X-Modem이란 세계 최초의 PC용 파일 전송 프로토콜을 만든 와드 크리스텐센이 만든 BBS로서 이게 민간 BBS의 효시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비해서는 10년 늦게 PC 통신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들은 8비트 PC로 PC통신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컴퓨서브(CompuServe) 같은 대형 BBS가 등장한 것이니까요.(이 컴퓨서브가 인터넷 시대의 아메리카 온라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여간 얘네들은 나름 대로 온라인에서도 예절을 잘 지키는 분위기여서 굳이 네티켓 운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왜냐하면 PC 통신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꽤 앞서가는 사람들이고, 지적으로도 완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데 우리 나라에서는 시범 가정을 통해서 H-Mail을 사용하게 하니 초등생부터 ! 60대의 할아버지들이 같이 온라인에서 xxx 씨로 서로 호칭을 하는 등 문제가 생긴 것이고요.

* 우리나라 최초 게시판인 전자사랑방과 그 이후의 엠팔 BBS(게시판 및 글쓰기 형태와 게시판의 분위기 등..)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전자사랑방은 H-Mail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H 메일의 H는 한글(Hangul)입니다. 한글 메일의 의미이지요. 그래서 한메일이라고도 했습니다.(다음 커뮤니케이션의 한메일 이전에 같은 이름으로 데이콤의 한메일이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클럽명으로 사용했던 "엠팔"은 현재 엠파스의 메일 시스/프로그램이라는 재미난 일도 지적될 필요가 있겠군요.^^)

H-Mail은 메일과 전자 게시판(electronic bulletin board)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격적인 의미의 전자 게시판(BBS: Bulletin Board System)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BBS는 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를 꼭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시스템 내의 검색(search)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H-Mail은 이런 걸 안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민간 BBS인 엠팔 BBS(EBBS라고 호칭했었습니다.)가 그런 모든 기능을 가진 BBS였던 것입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 그 자체였지요. 온라인에서 서로 만나 Offline Meeting을 e-Cafe에서 여러 번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프라인 미팅을 당시에는 일본 네트워커들의 영향을 받아서(서로 교류를 많이 해서 상호 방문도 했었습니다.) 아이볼 미팅(eyeball meeting/눈동자 마주치기 만남)이라는 그들이 잘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키도 했었습니다.  아이볼 미팅은 요즘 인터넷 시대에 소위 "번개"로 불리는 미팅인데, 그 때도 이렇게 했던 겁니다. 일단 PC 통신 초기에 지금 인터넷 상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그 때 시험되고, 정리되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글 쓰기는 전에 말씀 드린 대로 네티켓이 강조되는 분위기였고, 서로를 "xxx 님"으로 호칭하고 어떤 공통 주제에 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어떤 게시판에서는 글쓰기 염진섭 선생은 이젠 시집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지만 그 때 H-Mail board에 시를 여러 편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 판타지 소설을 쓴 분(이름 잊었음.-_-)은 엠팔 회원으로서 EBBS에 그걸 올렸었습니다.

* 전자편지 및 게시판 운영을 위해선 한글 프로그램이 필수일텐데요, 흔히들 한국 IT산업의 발달이 우리말과 상관성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 성공과 한글이 갖는 과학적 원리에도 관련있다고 보고있는데, 이와관련해서 한글이 다른 언어에 비해 갖는 어떤 상대적 우월성, 자판과 타이핑에서의 적합성이나 용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그리고 한글프로그램과 관련한 어떤 에피소드를 알고 계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당시 우리 엠팔의 골수 멤버인 안대혁 선생님입니다. 현재는 MS에 근무하고, 위의 dhahn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PC 메이커 각사의 조합형 한글이 난무하고, 대형 시스템의 완성형 한글이 난무하던 혼란스러운 시기가 바로 PC 통신 초창기입니다. 그리고 1200BPS 모뎀 한 개의 가격이 40만 원, 2400BPS 모뎀은 70만 원하던 시기이고, PC와 모뎀을 가져도 통신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그 프로그램 가격이 무려 40만 원 정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KT 연구원 묵현상 선생이 "Revolt of the Empals"(속칭 리볼트)라는 국내 최초의 공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내게 됩니다. 소위 Public Domain(공개) Software가 묵현상 선생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후 메디콤이란 또 하나의 공개 통신 프로그램이 다른 엠팔에 의해 개발되었고, 그 후에 여러 개의 공개 소프트웨어가 나타나면서 다른 다양한 공개 소프트웨어 유틸리티 프로그램들이 개발됩니다. 하여간 리볼트 때문에 PC 통신이 꽃피게 된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당시에 난무하던 모든 코드들을 하나로 통일해서 어떤 PC에서도 쓸 수 있는 만능 통신 프로그램이 駭것이니까요.

자판은 2벌식, 3벌식으로 나뉘어 많은 논쟁이 있었지요. 당시에는 한글에 적합한 공병우식 타자기의 3벌식이 영어 자판의 쿼티(Querty) 자판처럼 획기적인, 즉 자판 배열이 과학적이고, 속타가 가능하고, 손의 피로가 적은 것이었는데, 결국 정부가 표준으로 민 2벌식이 승리를 했습니다.(이거 무지하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여간 이 한글 문제(코드 등)의 최고 전문가는 안대혁 선생님이니 그 분에게 질의하십시오.^^

* 안상수 교수의 전자까페가 개설된 시점이 정확히 언제쯤인지요? 1988년 정도가 될까요?

- 참조자 ssahan은 안상수 교수님입니다. 안 교수님께 문의하시면 정확한 데이터가 나옵니다.

또다른 문의 사항이 있을 때는 엠팔 2대 회장인 계원예술대 전자출판과의 이기성 교수(우리 나라 최초의 컴퓨터 관련 베스트셀러인 "컴퓨터는 깡통이다"를 저술한 분입니다.)에게 문의하셔도 됩니다. yikisung@dreamwiz.com  이 분이 기억력이 워낙 좋으셔서... 한글 코드 문제에 대해서도 도가 튼 분입니다. 혹시 위의 이메일이 작동 않으면 031-420-1835(이것도 좀 오래된 전화인데...-_-)로 연락하세요. 아니면 계원예술대 홈 페이지에서 이기성 교수를 찾으시면 됩니다.  

수고하세요.

- 차후에도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서신을 보내주세요. 답변드리겠습니다.

답변을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명신 드림


- Spark: 아래에는 위의 서신을 참조한 안상수 교수님이 보내주신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거의 10년 전 얘기다. 당시 PC 통신 초창기에 이런 카페가 있었던 것다. 홍대 부근에... 홍익대 타이포그래피 전공자 안상수 교수와 국민대 조형예술학부 금누리 교수가 함께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하고 많은 PC방들이 있지만, 여긴 오늘의 모습에 견주면 PC방이나 출발의 의미는 보다 고결했던 곳이다.(클릭하면 큰 사진.)







아래는 예전 e-Cafe 자리의 금누리(왼편), 안상수 교수. 그 자리에는 동남부동산이 들어섰다. 복덕방이 된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



Comment '6'
  • ?
    최재원 2006.01.25 14:03
    [ saro@dreamwiz.com ]

    89년 고1때 동호회 모임을 하느라 지방에서 올라와서 전자카페에 가서 마구할멈이라 불리던 누님을 뵈었던
    기억이 있어요. 온통 까만색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대학교 다닐때 가보니 2층에 있는 진짜 카페가
    되었던데 참 기억이 새롭네요. 창립식때 백명 넘게 있었다는 전설같은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훗.
    안상수 교수님은 언제 뵙던 진짜 멋지세요. 역시 디자인을 하시는 분 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상수 교수님과는 글자꼴의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 보호와 관련해서 인연이 있었는데, 당시에
    고등법원에서 보호가 안된다는 판결이 있었고, 제가 반대되는 판결평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로앤비 대표로 계시는 이해완 판사님께서 같은 취지의 판례평석을 법관들의 세미나에서 발표를
    했고, 이것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쳐서 글꼴 자체는 저작권 보호가 안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다는 결정이 나왔었지요.

    지방에서 상경해서 전자카페 한번은 가봐야 PC통신을 한다고 할 적의 추억이 그립네요. 훗.
  • ?
    김용빈 2006.01.25 14:04
    [ ybkim108@gmail.com.nospam ]

    아.. 언제나 그리운 전까입니다. 숱한 처녀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던 박순백 박사님의 모습을 생전 처음 뵌 것도 이곳 전까에서였죠. 박순백 박사님이 저술한 책을 읽고 컴퓨터 통신을 처음 시작했던만큼 처음 뵈었을 때의 느낌이란 아마 배용준을 지금 만나도 그런 느낌이 아닐 것입니다.

    컴퓨터 하면 무조건 베이지색이었던 시대에 까맣게 칠해놓은 컴퓨터와 모뎀의 연결음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그리운 그곳입니다.
  • ?
    김용빈 2006.01.25 14:05
    [ ybkim108@gmail.com.nospam ]

    결국 엠팔과 전까가 저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셈이네요. 약대 대학원생이 이렇게 미국에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꼭 성공해서 저의 터닝포인트로서 전까를 언급할 날이 왔으면 하는게 저의 바램인데 과연 그날은 올지.. ^^
  • ?
    조원준 2006.01.26 18:37
    [ june90@nate.com ]

    호롱불의 기억이...
  • ?
    공성배 2006.01.27 17:00
    [ ssambaq2@naver.com ]

    호롱불 3.96c 버젼 맞나요?
    밀키웨이등도 있었는데.. 갑자기 호롱불 보니 3.96이라는 숫자가 문득
    생각나길래..
  • ?
    나원규 2006.02.14 09:31
    [ afagom@_gmail.com ]

    1200보드 모뎀 처음 달았을 때 생각이 납니다. 와,

    아이볼 미팅은 아마 HAM들의 실제 만남을 아이볼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용어가 일본 햄에서 우리나라 햄으로 전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볼 미팅은 요즈음의 번게 보다는 요즈음의 '오프 모임'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번게'는 원래 예정이 없었는데 온라인 의사소통 중 갑자기 직접 만나는
    것이 주선되어 만남을 가지는 것이고, 아이볼 미팅은 사전에 충분히 준비되고 공지된
    후 이루어 지니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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