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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그가 삼각산과 한강물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아주 오래전 청소년기로부터 중장년이 될 때까지 한 사람만 생각하면 난 가슴 한 편이 아려왔었다. 그 사람은 450년전에 태어난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인 김상헌 선생(金尙憲 先生)이다. "가노라 삼각산아..."로 시작되는 시조를 지은 분이다.

 

명나라를 숭상하며 자란 당시 조선의 관리 김상헌은 청나라(처음엔 후금)가 설 때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우며 청을 배척하는 척화(斥和)에 앞장 섰고, 그에 대한 상소문까지 올린 바가 있다. 그러다 청이 명을 멸망시킨 후 청은 김상헌을 괘씸히 여겨 그를 청의 수도인 심양(Shenyang)으로 압송하였다.

 

심양으로 끌려가던 그가 그렇게 가면 다시는 못 보게 될 당시 조선의 중심, 한양을 상징하던 삼각산(현 북한산)과 한강을 보며 읊은 시조가 바로 그것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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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의 "라" 자 오른편 아래의 묘가 김상헌 선생의 묘이다. 

 

애써 담담한 척 지은 시조이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너무나도 처절한 내용이다. 청에 가면 참수를 당할 수도 있고, 여생을 옥살이를 하다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대역죄인(?)의 신분으로 올려다 보고 굽어본 - 그의 평생 마지막의 - 삼각산과 한강수가 아니었겠는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조를 읽고 그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후 난 계속 그 시조를 볼 때마다, 그 시조가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장년이 되도록... 그러다 어느 땐가 다시 그 시조가 떠올랐고 그 때 비로소 궁금해졌다. 난 김상헌 선생이 심양에 끌려가 죽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실제로 그 사실을 확인해 본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구글 검색을 해봤다. 그...런...데... 김상헌 선생은 살아있었다. 참수를 당한 것도 아니오, 평생 옥살이를 하다 죽은 게 아니었다. 청의 심양에서 4년, 조선의 의주에서 2년 옥살이를 한 후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그를 어여삐 여긴 효종에 의해 다시 관직에 머물다 천수를 다 누리고 갔다는 걸 그제야 안 것이다. '다행이다. 다시 조선의 하늘 아래로 돌아와 아픈 마음으로 올려다 봤던 삼각산을 보고, 한강수 푸른 물가를 걸으며 감회에 젖었겠구나.' 그런 기쁨으로 며칠을 살았다.

 

작년 7월 15일에 페이스북 친구인 임동관 작가(사진)가 올린 포스팅을 보니 거기 첨부된 사진 중 하나가 석양 무렵의 한강과 멀리 있는 북한산(삼각산)을 담고 있었다.(골수 스노우보더이자 자전거 라이더인 그가 라이딩 중에 찍은 사진이다.) 그걸 보며 난 다시 김상헌을 떠올렸고, 7월 18일에 그가 잠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산5번지의 안동 김씨 석실묘를 찾아갔다.(와부읍 석실마을 소재) 

 

그 묘한 첫 만남의 기억은 역시 '다행이다!'란 안도감과 그를 이승에서 만나는 듯한 기쁨이었다. 당시의 느낌을 간단히 메모해 두고 그걸 어느날 페이스북이나 내 홈페이지의 "붓 가는 대로"란에 올리려다 그만 뒀다. 이유는 그 기쁨을 나 혼자 좀더 오래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나처럼 오래 마음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450년전에 한 사람이 그 시조를 썼고, 그 시조는 조국에 대한 충절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으며 고교나 대학입시에 출제될 수도 있는 대상일 뿐이었을 테니... 그리고 나처럼 가슴아팠을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속단해 버리는 바보짓을 않고 압송 이후의 상황을 추적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김상헌 선생이 살아서 조선땅을 다시 밟았음에 안도했을 것이다. 

 

어쨌건 2021년 새해 들어 두 번째로 대설이 예보된 1월 12일 화요일에 난 다시 그를 만나러 갔다. 작년 여름(7월)에 갔을 때보다 훨씬 더 멋진 함박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그가 나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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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 뒤의 논 부근에서 멀리 김상헌 선생의 묘가 있는 곳을 바라 본다.(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의 흰눈이 쌓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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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의 시조를 적은 배경 사진이다. 와부읍 석실마을(석실리)에서 올려다 보고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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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마을에서 마을 뒤 야산을 오른다. 고갯마루로 향하는 길이다. 차가 교행하기 힘든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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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사진의 비닐하우스 건너편에 신 안동 김씨(장동 김씨) 석실묘로 오르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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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 이런 묘가 하나 있고, 그 뒤로 멀리 많은 묘비와 문인석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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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오며 뒤돌아본 앞서 사진의 묘. 눈이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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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에 들어섰다. 대설이 예보된 날, 함박눈이 계속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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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오른쪽 최하단의 외떨어진 묘이다. 연지(蓮池)가 있는 곳에서 약간 오르막을 오른 곳에 있다. 그곳에서 묘역 전체를 보기 위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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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의 묘에서 묘역 전체를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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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서 김상헌 선생 묘를 망원으로 당겨 찍었다. 좌우로 두 개의 문인석이 있고, 왼편 문인석 뒤에 뭔가 작은 비와 안내판이 있으며, 그 중간에 묘와 묘비가 있다. 그리고 오른편 문인석 뒤에 표지석으로서의 묘표(墓標)가 있다. 고인의 출생, 사망, 그리고 생전의 행적 등을 적는 것이 묘표이고, 특별한 사람의 경우 유명인이 묘명(墓銘)을 따로 새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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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 둔덕 위가 김상헌 선생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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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최하단의 연지. 여름엔 연꽃으로 뒤덮이는 곳이다. 대개 7월 중순에서 말에 걸쳐 연꽃이 피어난다.(작년 7월 18일에 이곳을 처음 방문했었다. 근데 이 해는 왜 그런지 능내역 주변 연꽃마을이나 이곳에도 연꽃이 피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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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을 고려할 때 산을 뒤에 두고 있으나 앞에 물이 없어서 이 연지를 조성했을 것이다. 이런 묘역의 조성 시에는 풍수지리를 무척 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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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하단의 비석들과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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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쪽으로 오른다.(이 사진은 나중에 내려온 후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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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면서 왼편에 있는 다른 묘들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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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편 위에 안내판과 함께 있는 것이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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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묘역의 안내판 두 개 중, 묘 앞에 있는 유일한 안내판이 김상헌 선생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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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의 오른편 뒤쪽에서 찍은 사진. 

오른편 멀리 보이는 것이 석실마을이다.

 

여긴 석실마을의 산인데, 김상헌은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청음(淸陰)"이란 호이고, 그 다음으로 알려진 것이 "석실산인(石室山人)"이란 것이다. "석실리 산에 사는 사람"이란 의미이니 살아서 석실산인으로 불린 그는 죽어서 정말 석실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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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기념물 제100호 김상헌 선생"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실은 맨밑에 "묘" 자가 쌓인 눈에 묻혀서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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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은 인조 (仁祖)와 그의 아들 효종(孝宗)을 모셨는데, 효종은 인조와 인열왕후의 둘 째 아들로 태어나 그의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8년만에 돌아왔다. 청에서 생활하다 돌아와 청을 흠모하던 형인 소현세자는 인조의 미움을 받기도 했는데, 소현세자가 갑자기 사망함에 따라 둘 째가 세자로 책봉되고 나중에 효종으로 즉위했다.

 

김상헌은 반대파가 많아 여러 번 관직을 떠나기도 했지만 청으로 압송되었다 6년만에 돌아온 사람이니 같은 청나라 동기(?)인 효종이 그를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효종 즉위 후에 김상헌이 "대로(大老)"란 존경을 받은 것은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大老=Great Ol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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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판의 QR코드. 이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읽으면 m.cha.go.kr로 연결된다.(근데 엄청나게 느리게 접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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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의 QR코드 리더를 가져다 대면 이런 사이트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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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달라붙은 문인석의 머리가 운치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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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고 있는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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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을 기리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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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은 안동 김씨인데, 조선조에 상용, 상헌 형제가 정승이 되고, 상헌의 후손이 세도가문의 주류를 이루게 됨에 따라 이들을 장동 김씨(壯洞 金氏)로 칭한다. 결국 이는 신 안동 김씨의 일파이다.

 

이들 일가가 살던 마을이 와부읍 석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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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明朝鮮文正公淸陰金先生尙憲之墓

유명조선문정공청음김선생상헌지묘

 

"황제국 명나라 제후국인 조선의 문정공 김상헌의 묘"라는 내용이다. 이 "유명"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믿지만 당대엔 어쩔 수 없었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사대적인 묘비를 만들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른 해석은 "有明朝鮮(유명조선)"을 "명나라가 있던 시기에 존재한 조선"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는 후대의 해석인데, 사실 김상헌은 명나라를 사대하는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의리로 청을 배척했던 걸 생각한다면 앞서의 해석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 태어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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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에서 석실마을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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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리(석실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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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20) 07/18(토)에 처음 들렀을 때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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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2020) 7월 18일. 왼편 밭에는 깨를 심어놨고, 하얀 깨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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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으로 향하는 길. 고갯마루로 올라가다 오른편에 이런 입구가 있다. 원래 입구는 석실마을에서 석실묘를 볼 때 오른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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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의 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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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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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인 남양 홍씨의 묘라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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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안동 김씨/장동 김씨 묘역인 석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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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일부 - 중앙 위에서 두 번째 묘가 김상헌 선생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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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묘 - 근데 도산석실각이라 쓰인 걸 보니 이곳에 한 때 비석을 안에 둔 각이 서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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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김씨 서윤공파 종중에서 관리하는 묘역이다. 장동 김씨의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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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편 중단의 묘가 내가 들어온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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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맨 아래 만들어진 연지(연못). 연꽃의 계절이라 연꽃이 많이 피어있어야할 것 같은데 아쉽게도 겨우 몇 송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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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려다 보이는 것이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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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기념물 표시 비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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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안내판 / 경기도 남양주 와부읍 덕소리 산5(석실로336번길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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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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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비, 묘표(손자가 묘명을 쓰고, 비를 세웠다.), 그리고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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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明朝鮮文正公淸陰金先生尙憲之墓

유명조선문정공청음김선생상헌지묘

 

황제국 명나라 제후국인 조선의 문정공 김상헌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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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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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헌 선생의의 묘 윗단에서 내려다 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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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최상단에서 굽어본 장동 김씨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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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2021/01/12, 화)도 나와 함께 김상헌 선생 묘에 가고, 작년 7월 18일에도 나와 함께 갔던 집사람(고성애)

 

오른편은 흰 깨꽃들이 만발한 깨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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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삼각산(북한산 국립공원) / @2017DKLIM(임동관, 2017.07.16) 

 

이 멋진 페이스북 사진을 작년에 보고 다시 김상헌 선생의 시조를 머리에 떠올리며, 그로부터 이틀 후에 김상헌 선생의 묘를 처음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임동관 / 2020/07/16 포스팅 - https://www.facebook.com/dongkwan.lim.1/posts/3373430986034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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