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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2012.12.26 15:46

남자의 얼굴

조회 수 2960 좋아요 20 댓글 4
최용희 감독님의 안내로 FIS에 official results를 확인하려 갔다가 길을 잃어 FIS points로 들어갔는데, 뜻밖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Kjetil Andre Aamodt. 이 사람이 아직도 달리고 있다니! 제가 이 사람의 사진을 보게 된 것은 90년대 명동 일본서적거리에서 잡지를 샀더니 따라온 피닉스 의류 카달로그에서였습니다.(왜 스키서적에 의류 마케팅 자료가 따라왔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때는 올림픽 메달이다 월드컵 포디엄이다, 그냥 北歐神話의 英雄再臨이었고, 얄밉게 얼굴도 紅顏이었어요. 20년이 흘러 이제는 넉넉한 중년의 얼굴이 된 그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어, 적습니다.

Stellan Skarsgård

이 배우 이름은 몰라도 얼굴 보면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으실 텐데, 원래 스웨덴 사람으로 이제는 미국 영화에 주요한 역할로 자주 나오지요. Aamodt의 지금 얼굴은 이 사람을 닮았어요.

Skarsgård이 지금처럼 넉넉한 얼굴이 되기 전에, 홀쭉 말랐을 때 찍은 영화로, Katherine Anne Porter의 동명 단편을 영화로 한 이 있습니다. 미국 남부의 이상한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농장주(Fred Ward분) 밑에서 묵묵히 일하는 (영어도 서투른) 일꾼으로 나와, 형제살해자 카인(이 어떻게 됐는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이 맞았을 여러가지 열린 결말 중 하나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운명을 연기합니다.

FIS에서 오모트의 (아버지가 핀란드 사람으로 모음이 겹치는 이름이라, 어떻게 읽는 게 좋은지 모르겠군요. 아아모트?) 바이오그라피를 보니 현재 모나코에 산다는데, 아침으로 절인 청어를 즐기는지 모르겠군요.(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자꾸 혼동하고 있습니다. 안 가봤거든요.)

백인치고 눈꺼풀이 두꺼운 것이, 두 사람이 닮았어요.

룬투

룬투(閠土)는 루쉰의 <故鄉>에 나오는 농민입니다. 작중 화자가 고향에 내려가, 총기발랄했던 소꿉동무가 과묵, 무표정이 된 것을  안타까와하고, ‘도련님’ 이라 부르는 것에 계층을 모르고 놀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몇 천 년, 지금까지, 어제내일 구분없는 중국농민 룬투의 생김을 묘사함에, 찬바람을 맞아 눈꺼풀이 두꺼웠다는 게 기억나는군요.

세계스키 엘리트였던 오모트의 얼굴에서, 그저 눈꺼풀이 두껍다고 농민 룬투를 떠올리는 것이 안 어울리나요. 제가 아는 중국 스키 강사들 대부분은 룬투와 같은 농민, 엄밀히 말하면 오모트는 강사는 아닌데, 스키를 탄다는 것만으로 억지로 갖다 붙입니다.

계급없는 농민이상사회를 세우겠다던 마오쩌둥의 토르소가 아직도 걸려있는 중국에서, 여름에 농사짓는 강사들이 ‘중국식사회주의’로부터 탄생한 부호들을 대할 때 룬투가 ‘도련님’을 어려워하듯이 합니다.

모든 게 유전자?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전에 ‘사회인류학 (혹은 사회진화론인지도)’ 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현생인류의 외모 및 행동이 다 유전자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번식노력이라는 건데요, 다 믿기는 그렇고, 재미삼아 읽을만합니다. (엄밀한science 는 아니고 헐렁한art 라고나 할까요.)

포유류 아니 영장류 중에서도 왜 인류만 얼굴을 이정도로 발달시켰을까. 배우자를 기억해서 부양하기 위해서랍니다. 모든 아이는 갓 태어났을 때 애비의 얼굴을 닮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닮은 놈으로부터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 (현대에 부성애로 충만한 아빠들이 출현하면서는 필요없어졌을 trick 일텐데요.) 커가면서 가면을 버리고 원 생김새로 돌아간다는 것.

잘 생겼다는 게 무엇이냐 – 얼굴이 얼마나 좌우대칭인가 - 이랍니다. 좋은 유전자를 지녔다는 증거라던가요. 몇 십 년 간 미녀 대회 입상자들, 키크고 늘씬해졌어도,  허리:엉덩이 사이즈 비율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별걸 다 재는 사람들이 있어요) 등, 유전자와 번식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얼굴을 망가뜨려

아름다운 외모를 망가뜨린 사람들, 대표로 쳇 베이커와 미키 루크가 생각나네요.

쳇 베이커는 ‘세월이 내 외모를 앗아갔어도 내 목소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는데, 젊었을 때도 뭐가 불만인지 ‘쳇’ 하는 표정이지요. 나이든 초상을 보면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의 아기천사와 악마의 모델이 한 사람이었다는 얘기도 생각나요.

미키 루크가 이렇게 변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 레슬러>에 나오게 됐을 때, 옛 친구 브루스 스프링스틴에게 편지를 썼답니다. (요즘 세상에 웬 편지? 손가락이 뚱뚱해서 자판을 못 두드리나요.)

‘이보게, 자네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겠지. 그런데 이젠 다시 영화를 찍는다네. 게다가 이번 얘기는 꼭 내 얘기같아…’ (물론 영어에는 ‘자네’라느니 이런 단어들이 없습니다만, 어떤땐 제 머릿속에서 이렇게 바뀌어 기억된단 말이지요.)

남자중의 남자, 더 보스 브루스는 당장 기타를 집어들고 밤새 노래를 하나 만들어 친구에게 줍니다.

안 들어 보셨다면 한 번 들어보시고, 옆에 기타가 있다면 들어 불러보셔도 좋습니다. 1절만 옮겨 놓습니다. 원래 Eb인데, G로 바꿔 부르는 게 쉽네요.

The Wrestler

              G                                           C    
Have you ever seen one trick pony in the field so happy and free,
             G                                                           D
If you’ve ever seen one trick pony then you’ve seen me,
              G                                                    C
Have you ever seen one legged dog making its way down the street,
             G                                                             D
If you’ve ever seen one legged dog then you’ve seen me,
                           C                     G                     D
Then you’ve seen me, I come and stand at every door,
                           C                 G                                 D
Then you’ve seen me, I always live with less than I had before,
                           C                                                       G          D          C
Then you’ve seen me, bet I can make you smile when the blood, it hits the floor,
Am                              Bm7                Am7
Tell me friend,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Am7                  D                     G
Tell me can you ask for anything more,

이 노래는 잘 부르면 안 됩니다. 발음이 나쁘고 박자가 안 맞아도 그냥 읊조려 끝까지 부르는 겁니다. 이 노래가 말하는 건 그런 거예요.

길어졌는데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Comment '4'
  • ?
    유신철 2012.12.26 19:21
    [ sinclair@chol.com ]

    재미있게 읽었고 참으로 놀랍습니다.
    김선생님의 영화 지식은 거의 백과사전 수준입니다.^^


    "Noon Wine"은 제가 모르는 영화라서 "스텔란 스카스가르드(발음 맞나?)" 검색을 해보니
    다빈치코드 후편인 "천사와 악마"에 나왔군요.
    클라이맥스에서 이완 맥그리거에게 맥없이 죽는 교황 경호실장으로..
    얼굴이 희고 김선생님의 지적처럼 눈주위의 지방이 많아 아마도 동스라브계통일거라 저도 생각은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첫째 아들인 카인은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자 패륜아임에도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않고 에덴동산의 동쪽 "놋"이란 곳으로 쫓아냈더니 그곳에서 아들딸 낳고 잘살았답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그 후손이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기 전까지 세상을 지배하던 호전적"네피림"족이라 합니다.



    쳇 베이커는 아마도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얼굴이 그렇게 되었겠고
    미키 루크는 젊은 시절 과도한 성형 부작용인 걸로 보입니다.
    나이들며 생기는 주름이야 하늘의 섭리이건만 세월의 흔적을 감춘다고 얼굴속에 너무 많은 걸 넣은 탓이죠.
    하지만 미키 루크는 얼굴의 보상을 근육질 몸매로 만드는 걸로 승화시켜서 전체적으로 그리 흉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성형 부작용으로 얼굴을 망친 대표적 인물로는 이 여인네를 언급안하고 지날 수가 없죠.

    영국의 유명 토크프로인 "조나단 로스 쇼"입니다.
    글래스 실로폰의 아름다운 연주가 끝나면 불과 수개월전의 "부륵 실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http://youtu.be/wASnvpQYu6I?t=5m10s

    자신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간직하려고 1941년 이후로는 자신의 최측근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이지않고
    결혼도 않고 80이 넘도록 그 흔한 파파라치 사진 한번 안찍히고 숨어 살다간 "그레타 가르보"처럼 살았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
    박순백 2012.12.26 19:40
    [ spark@dreamwiz.com ]

    Aamodt의 북구식 발음은 Åmot(아모트)이고, 영어식 발음은 "Ah-Mit"(아아미트)입니다.
    노르웨이에서 Aa는 물줄기이고, mot는 만난다는 의미여서 "두 개의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살던 사람들을 조상으로 둔 게 아모트입니다.

    앙드레 아모트는 저도 좋아하던 선수입니다. 그래서 전에 잡지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읽었고,
    그 이름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요. 전에 월드컵 경기 동영상을 보면 칼 같이 "아아미트"라고 발
    음되며, 그건 미국에도 Aamodt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에 이미
    노르웨이 이민자들 중에 Aamodt가 많이 끼어 있어서 북구어 아모트가 아아미트로 미국에서
    바뀌어 불리고 있습니다.
  • ?
    김윤식 2012.12.28 03:55
    [ goldof7seas@gmail.com ]

    유 박사님,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아는 것만 조금 알 뿐이지요. 1년간 미국 문학을 대표할 만한 소설들만 읽은 적이 있는데 <Noon Wine>은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전에는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요즘은 아쉽습니다.) 스텔란 스카스가르드가 미국에서 처음 찍은 영화입니다. 그 후 (첫 영화도 그랬지만) 주로 (미국인의 눈에 비친) 유럽 이방인 (즉, 수상쩍은 사람) 역을 해 왔는데, <굿 윌 헌팅>의 수학과 교수 역할, <로닌>의 스파이, <엑소시스트 - 더 비기닝>에서 원래 막스 폰 시도우가 연기했던 신부의 젊은 시절 역할이 기억납니다.

    카인의 뒷얘기를 항상 궁금해 했었는데, 알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분명히 후손을 남겼을 것이고, 그래서 서구 문화의 기저 가운데 하나인 ‘원죄 – 이브의 배신 못지 않은 형제 살해’ 가 사라지지 않고 인류의 핏줄에 남아흘러, 죄의식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듣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자세한 후일담은 처음입니다.

    사고로 얼굴이 망가진 케이스를 말씀하시니,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생각납니다.

    브룩 실즈 어렸을 때 얼굴은 '무기' 였습니다. 암살자에게 약속한 천국의 미인이었죠. (레이건을 쏘았던 남자의 동기가 조디 포스터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미인과 사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는지, 안드레 아가시는 이 여자와 살다가 헤어진 후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모처럼 메이저 경기 우승을 했습니다.

    그레타 가르보는, 어렸을 때 읽은 우리말에 관한 이야기책에서, '갈보'의 어원이라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에서 남자들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눈꼴사나왔던 20세기 초의 어르신네들이, 품행이 방정치 못한 여성을 두고 '가르보 같다' 고 한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 설을 뒤집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은데요.

    박사님, '오모트'는 일본 서적에서 보고 그렇게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모트는, '합수머리'이네요.
  • ?
    박순백 2012.12.28 10:42
    [ spark@dreamwiz.com ]

    김 선생님, 아모트는 중국 "합수머리" 출신이 아니고,
    한국 "양수리" 혹은 '더 한국'인(?) "두물머리" 출신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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