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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도
2007.06.26 16:17

평생의 후원자를 잃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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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5010 좋아요 278 댓글 78
저로 하여금 ‘사는 게 뭔지?‘란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했던 어머니가 이제 세상에 살아계실 날이 많지 않은 듯합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지산 스키장에서 받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던 게 지난 3월 25일입니다.

그 때 거의 돌아가실 듯하던 어머니를 보며 제가 원했던 것은 1년도 아니었고, 며칠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단 하루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루만 더 사셔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6월 26일. 단 하루를 더 원했던 제게 이처럼 오랜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이니 하나님과 어머니에게 더 이상 뭘 더 바라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든을 넘기신 지 오래이니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지금도 본인이나 자식의 입장에서 억울하지는 않게 오래 사신 편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입장에서야, 자식된 도리에서야 더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 없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지난번처럼 간절한 소망을 한 번 이룬 상황에서는 더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란 생각,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노환이니 건강이 특별히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요. 하지만 당장 돌아가실 것 같던 분이 살아나시고, 의사표현을 하시고, 웃으시는 걸 보니 ‘이젠 정말 더 오래 사시려는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은 더 사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상태가 더 호전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밥을 드실 수는 없는 상태였었고, 죽이나 병원에서 만든 환자용의 특별한 미음 같은 것으로만 연명해 오셨습니다. 처음엔 환자를 돌보기 편하게 구해 놓은 병원 침대의 레버를 돌려 윗몸을 일으켜 드리고 식사를 하시도록 했었는데, 한 달 전부터는 그렇게 일어나시는 것조차도 어지럽다고 하셔서 계속 누워만 계셨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하시고, 필요한 의사표현은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워만 계시니 연로한 어머니의 상태는 계속 나빠만 가는 듯했습니다. 원래 건강하던 사람도 다쳐서 누워만 있는 경우 뼈마디가 굳어서 상처가 나아도 움직이는 데 불편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노인의 경우는 더 말할 수가 없지요.

일어나시지 못 하고 계속 누워만 계시니 나중엔 팔다리를 움직이는 일조차 힘들어 하시고, 몇 번이나 욕창이 나려고 하여 옆에서 간호하는 아주머니께서 더 수고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계속 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듯한 근거 없는 믿음에 마음은 편한 상태였었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말씀하시는 것도 힘들어하시며 말씀이 어눌해져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게 변하셨고, 나중에는 말씀을 하셔도 그걸 우리가 알아듣지 못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나 저희나 좀 답답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끔 어머니의 손발을 주물러 드리려 했으나 가볍게 주물러도 그 부위가 아프다고 하시는 바람에 주물러 드리지도 못 했습니다. 노부모의 손발을 주물러 드리는 건 왠지 자식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의 봉사인 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마저도 허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가끔 상황이 안 좋아지시는 적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금방 다시 좋아지시는 일이 몇 번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갑자기 건강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어젠 주위 사람들을 잘 알아보시지도 못 하더군요. 그 전날까지 아침에 인사를 드리면 말씀은 못 하시지만 “다녀와.”라는 의사 표현을 입모양으로라도 하실 수 있으셨었는데... 하지만 어제는 죽도 못 드실 정도의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다 나으시겠지.’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어머니를 뵈니 나아지시기는 커녕 어제보다도 훨씬 더 안 좋아지셨습니다. 이젠 물도 잘 넘기기 힘든 상황으로... 돌아가실 듯한 상황에서 일어나시는 바람에 의외로 오래 사시려는가 보다는 은근한 기대를 한 적도 있는데, 그게 오늘까지 3개 월 정도밖에 안 되는 (지나고 보니) 짧은 시간이었다니?

아버지의 경우도 임종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몸이 말라 나중엔 뼈와 피부만 남으신 것처럼 앙상해 지시더니,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음식이나 물을 잘 못 드시는 상황에서는 링거 주사라도 놓아드렸으면 좋겠는데, 현 상황에서는 워낙 말라서 혈관을 찾아 링거 바늘을 꽂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을 멀쩡히 눈을 뜬 채로 지켜봐야하는 단계까지 온 듯합니다. 참 자식으로서 못 할 노릇입니다. 왜 대부분 인간의 최후는 이런 식이어야 할까요? 그렇게 서서히 쇠락해 무너져가듯, 촛불이 꺼져가듯... 왜 살아생전 대부분의 시절처럼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늙고, 병들어 추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가야하는 건지...

50대 중반에 이르러 이제 인생에 대해 이해할 만하고, 반쯤은 달관한 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로서도 건강히 살다가 아름다운 임종을 맞는 것이 흔치 않은 행복이라는 걸 자꾸 느끼게 되니 삶에 대한 회의 같은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결국 또다시 몇 달 전과 똑같은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하는... 부모의 존재는 살아계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자식들에게 큰 정신적인 버팀목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제의 기원은 지난 3월 달에 가졌던 기원과는 조금 다르지만...

몇 년의 여생을 바라는 건 제 정신으로 바랄 일이 아니고, 1년만 더 사셔도 좋겠으나 그것도 무리한 바람이고, 한 달만 사신다면 그건 최상이고, 하다 못 해 며칠만 더 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젠 이런 일을 두 번째 겪게 되니 며칠마저도 사치로 느껴집니다.

일생 저의 든든한 후원자이셨던 어머니. 제가 해보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던 바로 그 어머니. 속을 많이 썩인 아들이나 애들은 다 그런 거라고 이해해 주시고, 그래도 자식이라고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우리 어머니.

이제 생각해 보면 40대 초반까지도 어머니 속을 썩이는 일이 혹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50줄에 이르러서야 그런 게 전혀 없어진 듯. 참 한심한 아들이지요.

이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편하게 가셨으면 하는 것. 어머니의 큰 아들은 어머니의 고통 없는 임종을 기원합니다.

내 평생의 후원자를 잃는 슬픔.




지난번, 저와 집사람의 결혼기념일(4월 22일)을 기해 샀던 두 대의 자전거 값도 노환 중에 있으셨던 어머니가 직접 주신 것입니다. 정말 우리 어머니는 끝까지 저의 막강한 후원자이셨지요. 제가 해 보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신 분.
Comment '78'
  • ?
    이종화 2007.06.27 10:45
    [ airing@kornet.net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제 편히 쉬고 계실 것입니다.
  • ?
    김용경 2007.06.27 10:57
    [ ryankim4u@네이버.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편안하게 잠드시길...
  • ?
    이해철 2007.06.27 11:06
    [ hchlee@신비로.컴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김영곤 2007.06.27 11:22
    [ youngmbc@gnmbc.co.kr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김정주 2007.06.27 11:42
    [ jjkim9@dreamwiz.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 ?
    공천규 2007.06.27 12:08
    [ kck1009@hanmail.net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이형탁 2007.06.27 12:17
    [ comace@empal.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이상학 2007.06.27 13:15
    [ leezoro11@hotmail.com ]

    좋은곳으로 가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 ?
    이민주 2007.06.27 13:18
    [ zoomini@gmail.com ]


    좀 전... 점심시간에 시간 내어 문상 다녀왔습니다.

    고이 가소서.
  • ?
    허주환 2007.06.27 13:49
    [ bariharok@naver.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김한수 2007.06.27 14:03
    [ ezbike@ezbike.net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전준무 2007.06.27 14:51
    [ jjmokok@paran.com ]

    삼가 고인 의 명복을 빕니다.
  • ?
    홍현무 2007.06.27 15:39
    [ aggrosk8er@naver.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실 거라고 바라겠습니다.
  • ?
    강명성 2007.06.27 16:36
    [ liemania@nate.com ]

    편안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말로 할수 없겠지만 당신은 편히 쉬시고 계실 겁니다.
    명복을 빕니다.
  • ?
    서영석 2007.06.27 17:23
    [ dotcom@dreamwiz.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임재우 2007.06.27 17:43
    [ lebleu2u@gmail.컴 ]

    정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홈페이지를 통해 뵈온 박 박사님이지만 담담하신게 오히려 좋아보입니다.
    아직은 젊은 저 또한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웃지만 뒤로 가슴아픈 사연이 많은 박사님에게 진심으로 위로 드리며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어머님에게 명복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드립니다. 아멘...
  • ?
    진균 2007.06.27 18:14
    [ shsek38@yahoo.co.kr ]

    삼가 고인 의 명복을 빕니다.
  • ?
    이승상 2007.06.27 19:37
    [ lsse1836@dreamwiz.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진을선 2007.06.27 19:50
    [ zinzinny@naver.com ]

    ▶◀ 좋은 곳에 가시기를 빕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때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말이 어쩜 그렇게 입밖으로 내보내기가 쑥스럽던지..
  • ?
    한갑진 2007.06.27 20:23
    [ myspiderxvp@naver.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나형석 2007.06.27 20:32
    [ kiwi0000@dreamwiz.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성민수 2007.06.28 10:10
    [ route73@naver.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정용채 2007.06.28 10:13
    [ qms1660@nate.com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김영무 2007.06.28 13:07
    [ gainspace@empal.com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백승현 2007.06.28 15:23
    [ mikpek@네이버.컴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요즘 프로젝트 마감이 얼마 안 남아서 가끔 들어와서 새글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댓글이 많아져서 무슨일 인가 했네요.

    박사님 힘 내세요.
  • ?
    이형관 2007.06.28 23:25
    [ coresemi@naver.com ]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 ?
    윤원상 2007.06.29 07:55
    [ y1sang@naver.com ]

    그래도 염 하실때면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실 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김동욱 2007.06.29 12:53
    [ bungyman@드림위즈.컴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후에 박사님처럼 웃는 얼굴로 부모님을 보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하염없이 허전하기 하겠지만 서도 말입니다.
    좋은곳에서 편히 쉬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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