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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4 14:07

세종대왕의 치명적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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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치명적 오류?

사람들은 살면서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는데 교육이나 혹은 살다가 생긴 가치관에 의해서 그리 되는 것이라고 본다.

우선 가장 존경하는 여자를 하나 대라고 하면 프랑스의 여류 지식인 시몬느 베이유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쓰기로 하고 고등학교만 나온 시몬느 베이유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느꼈던 그녀의 (겉으로는 훨씬 화려한 직업을 가진?) 대학교수 레벨의 친구들이 쓴 전기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남자 중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인데, 나이가 좀 든 다음에는 나의 선친이 그 위에 올라서서 첫 번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소중한 우뇌적 감성을 물려주었던 아버지는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크게 내세울 것 없는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주먹황제 시라소니도 그랬다는데 일제시대 한 때 압록강 철교를 넘나드는 보따리장사였다) 나의 이 소중한 우뇌적 감성을 물려 준,  DNA적인 끼를 물려준 이유로 존경한다. 물론 이 유전인자는 어쩌면 아버지만이 아니고 조상대대로 수십 혹은 수백 대에 걸쳐서 누적된 것일 수도 있다.

요즈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중에서 초서로 휘갈겨 쓴 부분들이 많이 번역이 되자, 사람들은 그의 성웅으로서의 면모에서 벗어나는,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들과 별로 다름 없는 감성과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사실들에 대해서 꽤 큰 충격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 중에 애인과 어제 밤을 같이 보냈다는 부분과 권율과 원균 두 사람의 판단력의 형편 없음을 비난하는 낙서 등). 그런 저런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한계성이나 특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에게 투영된 전쟁 중의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흠을 별로 잡을 수 없는 완벽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종대왕의 면면을 한 번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양녕대군이 상당히 야심만만하고 언젠가는 대국 (명나라)에 싸움을 걸 인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도 그의 그런 저런 성격 때문에 아버지인 태종의 견제를 받고 눈 밖에 벗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종은 왕조를 길게 보존하기 위해서 명나라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을 얌전한 아들을 후계자로 지정하였을까?

세종임금은 우리나라 임금들 중 가장 총명하고 문예를 창달한 분으로 손꼽히지만 이 글은 그 분을 결코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동전의 뒷면처럼 역사의 이면을 한 번 보는 것도 재미있는 시각일 것이다.

세종임금 시절에 삼포왜란이 18년간이나 지속되어서 왜구 때문에 아주 골치를 앓았다. 고려 말의 공민왕 시절에도 정지 장군이 군선을 건조하고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으로 하여금 화포를 많이 만들게 하여 왜구를 격퇴하고 공을 많이 세우는데, 그의 9대 손에서 나주 출신의 정충신이 나와 임란과 이괄의 난 평정 등에 큰 공을 세운다. 어머니가 노비 출신이었지만 그의 천재성은 권율에게 인정을 받아 권율이 임란 중에 전라도와 충청도의 남부를 지키는 결정적인 공을 세우도록 하여 정유재란 때 전라도가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왜군들에게 코와 귀가 베이게 되기 전까지는 곡창 호남을 지켜서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바로 정충신의 시호가 금남군이고 현대사에 있어서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린 바로 금남로라는 거리명의 원조가 되었다. 충장로도 억울하게 죽은 의병장 김덕령의 시호에서 나온 것이니 광주의 두 길거리는 알게 모르게 임란에서 나라를 지킨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출세한 사람들이 바로 호남의 정충신과 영남의 장영실이다. 장영실도 원래 아버지 쪽 집안은 꽤 뼈대가 있는 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앞에 나온 삼포왜란의 왜는 바로 일본의 왜가 아니고 비류백제 멸망 이후 (경제적으로 고립되지 않으려는 광개토왕, 장수왕의 첩보전의 결과로 해상무역을 담당하던 비류백제와 중국에서 사용되던 화폐인 철전의 원료인 철을 생산하던 금관가야가 멸망함) 중국으로 건너가서 주산군도를 거점으로 해상무역을 하던 사람들의 역이민 시도였다고 한다. 바로 이 삼포왜란에서 그 역이민자들을 철저하게 적으로 몰아서 쫓아내 버린 것이 세종임금 대였다. 그렇게 해서 쫓겨 간 갈 곳 없는 주산왜들은 (그들이 왜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주원장이 주산군도의 비류백제 후예들을 중원 역사상 최초로 성공적으로 소탕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왜이倭夷라고 부른데서 기인함)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한 때 중원을 활보했던 적도 있고 해서 주원장에게 가진 원한을 일본인들에게 돌려 중국애들 별거 아니라고 풍신수길을 부추겼다 (이 부분은 김성호 씨의 주장) 풍신수길은 일본을 통일한 후에 넘쳐나는 사무라이들의 힘을 다른 데로 돌려서 추종하도록 만들 겸 “명을 치는데 길을 빌려 달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데 풍신수길은 이 비류백제 후예들에 의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를 맹신하고 명과 한 판 붙어 보리라고 결정을 한 것이다. 역이민자의 입장으로 돌아 온 주산왜들을 받아 들이지 않고 적으로 여겨 완전히 쫓아버린 삼포왜란은 바로 진짜 왜들에 의한 임진왜란을 촉발시킨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주산왜들의 해안침탈은 결국 고려와 조선이 평저선을 화포로 무장하여 연안해전에서 일본 배들을 격침시키고 나라를 지키게 하는 데 훈련을 시켜 준 결과가 되었다. 그것도 비류백제계인 자신들과 가장 피가 통하는 전라도 수군에게 훈련을 시켜 진짜 왜를 막아내게 한 셈이다.

세종 임금 시절에 아주 애매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가집의 부인이 젊은 선비와 사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임금은 부녀자만 교수형에 처했다, 아무리 유교적인 비융통성을 감안해도 지금의 여성단체들이 그 때 존재했더라면 천인공노할 사안이었다.

훈민정음은 최초의 창제목적이 지금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설이 있다. 장학사 H씨 등의 주장에 의하면 세종 임금은 중국식 발음을 한문서적에 달기 위한 발음기호로 훈민정음을 개발했다 그것도 여진족의 어문학자들을 주로 동원했다. (만주족이 남긴 희대의 보물 같은 유산, 강희자전에는 청나라 시대 중국에 살던 모든 족속들이 볼 수 있는 발음기호를 가진 자전을 강희제 때 만들었는데 이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 일부가 착각을 하여 할각절 표기법으로 보아서는 한자가 동이족의 소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민족 포함, 어떤 족속이 보아도 자기네 발음기호로 보이게 만들었으니 이 강희자전의 편찬에 참여했던 여진족 역관이나 언어학자들의 노력과 천재성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세종의 중국발음 식 표기 시도에 대해 나중에 음운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걱정하여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최만리, 정창손, 하위지 등이었고 결국 중국말 식 표기를 세종은 포기하고 그냥 우리말의 표기용으로 쓰기로 한다. 근자에 어느 유명 정치인이 최만리가 한글창제를 반대했으니 역적이라고 말했다가 해주 최씨 문중에서 엄청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집현전 학자들 중 일부가 한글창제에 참여는 했지만, 한글창제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중국말 식 한자음을 다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이 사람들이 목숨 걸고 반대를 안 했으면 지금 우리나라의 언어는 중국과 한국 두 언어의 믹스가 되거나 엄청난 혼란이 초래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녕대군과 평양기생의 로맨스 사건,

말년의 형님 양녕대군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세종 임금이 벌였던 쇼 아닌 쇼, 양녕대군이 평양을 다녀 오도록 하면서 절대로 주색을 멀리 하라고 엄명을 내려 보내면서 사실은 평양감사와 짜고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 들게 한 후에 둘이서 정이 들게 만들고 억지로 이별을 하고 돌아와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다시 그 기생이 병풍 뒤에서 나타나게 하여 형님에게 기쁨을 선사하였다. 굳이 스스로 만든 법 (명령) 까지 위반해 가면서 형님에게 로맨틱한 경험을 하게 한 사실은 어찌 보면 형님을 생각하는 두터운 형제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형인 양녕대군은 힘 없는 자신을 가지고 어린아이 다루듯 놀았던 동생인 세종임금이 내심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또 그래서 그 때 생겼던 권력이라는 것에 대한 미련은 나중에 세조의 왕위찬탈을 위한 쿠데타에 적극 동조하게 된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사육신 사건이 알려진 것보다 다소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라면 그 사육신들은 정말 억울하게 죽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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