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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아 한글로 쓰여진 파일 하나를 찾다가 꽤 오래 전에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이 사이트 어디엔가 이 글이 실려있기는 하겠다만, 그걸 찾기 귀찮아 그 글을 복사해서 이곳에 다시 실어둔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 소프트웨어 업계에서의 지난 3년

(주)한글과컴퓨터 상무이사 박순백(언론학박사, 수필가)

바깥세상 돌아가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산자락에 틀어박혀 세월 가는 줄 모르던 대학 사회를 떠나 정보 산업계로 투신한 지 3년이 흘렀다. 대학에서는 그 다섯 배나 되는 15년을 근무했지만, 필자가 지난 3년간 겪은 변화의 양은 대학에서 겪은 것의 다섯 배는 족히 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한 마디로 이 업계는 밖에서 바라보듯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전공은 언론학이지만 필자가 전공보다도 훨씬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맹활약을 하던 분야는 컴퓨터 분야였다. 물론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과목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산학 분야가 아닌 컴퓨터 활용 분야였으며, 이것은 취미를 조금 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의 취미 중 두 가지는 글쓰기와 컴퓨터이다. 컴퓨터(PC)가 가장 훌륭한 글쓰기 도구라는 걸 알게 된 후 일찍이(79년) 이것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주로 쓰는 글도 수필로 시작해서 나중엔 컴퓨터 관련 칼럼들을 더 많이 쓰게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컴퓨터 칼럼을 쓰려면 다방면에 걸친 깊은 지식이 필요하여 관련 외국 잡지나 단행본들을 뒤적이는 것이 또다른 취미가 되었다. 그로부터 얻은 지식들에 필자의 판단이 곁들여진 칼럼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의견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에 대해서 이 정도면 꽤 많이 아는 게 아닌가?’하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적성이 정보산업계 쪽에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의 컴퓨터 칼럼니스트 생활과 저술 활동을 통해서 업계의 많은 사람들과 친교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 업계에 투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컴퓨터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이 분야에 대한 적성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곧 인식하게 되었다. (주)한글과컴퓨터(한컴)로 적을 옮기기 직전, 필자가 한컴의 개발부문장 회의에 참석을 한 일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된 때문이다. 컴퓨터에 대해선 뭐든 다 안다고 착각했던 필자는 거기서 진행 중인 안건 중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며, 낯선 얘기들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몇 년 동안 한컴의 자문위원으로 있어서 한컴의 사정에는 누구보다도 정통하다고 생각했던 것마저 부정되고 있었다.

한컴으로의 이적을 결심한 것은 창사 이전부터 친분을 가지고 있던 이찬진 사장이 필자에게 회사의 성장과 함께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호소했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적 직전에 한컴에 들릴 때마다 이 사장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굳이 필자의 도움이 필요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장은 나름대로 우리 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초창기로부터 그간의 어려움을 헤쳐 오면서 터득한 충분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오랫동안 일하던 직장을 옮긴다는 것이 새삼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의 곁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정보산업계에 대한 매력, 그리고 한 번 마음먹은 일을 되물릴 수 없다는 생각에 40줄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한컴은 기존의 도스(DOS) 운영체제에 기반한 프로그램으로부터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던 윈도우즈 운영체제로 전이하던 시절이었다. 필자가 우연히 참여했던 개발부문장 회의에서 나누어진 안건들은 윈도우즈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는데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당시까지도 도스 친화적이던 필자에게는 개발에 따른 심층적인 대화 내용들이 상당히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회의 내용 중에는 네트워킹에 대한 깊은 얘기들도 있었다. PC통신의 초창기에 앞장서 나갔던 경험은 있지만 누구나가 까다로워 하는 네트워킹에 대한 심층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까닭에 필자가 프로페셔널한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실체를 접하면서 겁을 집어먹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데는 한 달 정도가 걸렸고, 그 같은 일에는 금방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지레 겁먹고 시작한 직장 생활이다 보니, 그 밖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사장이 필자와 12년의 나이 차가 있는 같은 뱀띠인데, 그도 회사에서는 ‘한물 간 세대’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균 연령 25.5세의 젊은 회사에서 마흔 둘의 나이는 자신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 부담스러운 나이였다. 홀로 유일한 40대라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직원들과 생활하면서 이상스레 벽이 느껴지기도 했다. 반바지, 티셔츠, 슬리퍼, 물든 머리, 말총머리 등을 보면서 넥타이까지 바짝 졸라맨 정장 차림의 자신이 참으로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스트레스 때문에 자주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맞곤 했다. 입시를 앞두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밤을 새워 본 일은 있어도 그런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리란 건 상상조차 못했다. 잠이 부족한 날은 운전을 하다가 차가 막히면 졸기도 했다. 그러다가 워낙 잠을 못 잔 어느 날은 차가 달리는 중에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눈을 내리 감아 버린 일까지 있다. 다행히 앞뒤에 차가 없어서 사고는 나지 않았는데, 차의 진동을 느끼면서 스스로 졸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자 소름이 바짝 끼쳐 오면서 소스라쳐 눈을 떴다.

그 이후, 이래서는 새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단호한(?) 결정을 내려 버렸다. 젊은이들과 생활하려면 그들의 행태에 적응(adaptation)하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를 넘어서 그들과 철저히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우선 박사 학위를 밟는 도중에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칼이 젊은 직원들에게 거리감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한 때는 ‘지혜의 상징’이라 생각하며,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던 머리를 새까맣게 물을 들였다. 그리고 기성복조차 마다하고, 몸 치수에 딱맞는 맞춤 양복만을 고집하던 구태(舊態)도 과감히 벗기로 했다. 단추가 3개 혹은 4개가 달리고, 색깔이 있고, 헐렁해 뵈는 캐주얼한 양복을 몇 벌 사 입었다. 와이셔츠 대신 촤이니즈(Chinese) 칼라의 셔츠나 터틀넥의 폴라를 입기도 하고, 몇 가지 다양한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직원들이 입은 청바지를 보니 캘빈 클라인과 게스가 많기에 그 브랜드의 청바지를 몇 벌 사 입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그런 차림을 유지했다.

필자의 변신을 40대의 주책이라고 치부한 사람도 있겠지만, 당사자로서는 그 상황에 동화되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 차림이 주위의 직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그들과의 동화 노력을 통하여 스스로 쌓았던 벽을 허물었고, 그로부터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에는 마음이 편해져서 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려 반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찌 보면 15년간 길든 사회를 떠나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으로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불혹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의 항로에 접어든 배는 얼마든지 좌초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그 위기를 넘긴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대학은 일상이 대체로 정해져 있고, 모든 것이 관례로 굳어 있는 매우 정적인 사회(static society)이다. 실로 루틴한(routine) 일들이 반복되고 있어서 단조롭고 짜증나는 날들도 많은 동시에 언제나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는 안정감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하지만 그런 사회의 안온함과 평안함을 박차고 나온 필자에게 신생 소프트웨어 업계의 하루하루는 지나치게 동적(dynamic)이었다. 이 건 그야말로 “내일을 알 수 없는” 그런, 오리무중의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단지 한 가지의 막연한 믿음, ‘정보화사회에서 정보, 그 자체를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이니 잘 되리라.’는 신념 하나가 멀리서 등대처럼 깜빡이는 가운데, 한 치를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앞길을 헤쳐 가는 대양일주(大洋一舟)와 같은 것이 한컴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화려한 신데렐라였으나, 안에서는 그 고질적인 불법복제로 인하여 골치를 썩이고, 소프트웨어의 정신적인 가치, 그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금융기관들의 냉대에 가슴 아파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한컴은 그런 업계의 최선두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어려움을 남보다 먼저 겪고,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선구자의 아픔을 숙명으로 지닌 회사였다.

이젠 위인전의 반열에까지 올라간 빌 게이츠(Bill Gates)조차도 인터넷의 가능성에 코웃음을 치다가 혼쭐난 일이 있다. 이제와 생각하면 인터넷의 부상은 PC의 출현이 인류에게 미친 것 정도의 대단한 사건이고,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걸 전세계 정보산업계의 대부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고 알려져 온 빌 게이츠조차도 몰라봤던 것이다. 예측 불가능, 불명확성, 불확정성의 논리가 이처럼 정확히 들어맞는 분야도 달리 없다는 생각이 전혀 틀린 게 아니다. 최초에는 한 개의 언어로 시작해서 이젠 컴퓨터의 환경 중 하나로 변해 버린 자바(Java)는 아직도 커 가고 있는 신출내기이지만, 이것이 곧 인터넷만큼의 충격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 이미 훌쩍 커 버린 어떤 새로운 현상이 있음에도, 우린 한 때 인터넷이 빌 게이츠의 눈밖에 있었듯이, 그 실체를 못 보아 나중에 뼈저린 후회를 할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업계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다양한 가능성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만약 필자가 안정된 대학 사회, 그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루가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랬더라면 다가오는 정보화사회의 미래 모습을 남보다 먼저 내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인 미래를 미리 체험하고, 기뻐하는 행운을 가졌을 리 없다. 그런 행운을 넘어, 그 미래의 일부를 몸소 창조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만끽할 수 있었을 리도 만무하다. 이로써 필자가 비로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길들여져, 이 정보산업계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음을 고(告)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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