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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았으나 낯선 풍경이 많은 천호동을 빗속에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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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수] 강동구 천호동은 내가 어릴 적부터 살던 곳이다. 중간에 경희대에 재직하면서 20년 정도를 제기동과 이문동으로 이사해 살았고, 그 후에 다시 천호동으로 돌아왔다. 조선말기부터 오랫동안 경기도 구천면에 속해있던 이 지역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구천면 곡교리에서 성동구 천호동으로 바뀌었다. 말하자면 1751년 이후 경기도의 구천면에 속했다가 1902년에 구천면 곡교리가 되었고, 이것이 1963년에 이르러 성동구 천호동이 된 것이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는 강남구였다가 그 해 말경에 강동구가 되었다. 난 곡교리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의 변화를 지켜보며 살아왔다. 천호동이 변화가 더딘 중소도시의 느낌을 유지하던 것이 1980년대 중반까지였다. 지금도 큰 길가에서 좀 들어가면 그 때의 모습을 가진 풍경들이 더러 보이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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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런트(excellent)란 단어를 변형시켜 만든 브랜드인 eggcellent란 - 뭔가 달걀요리를 하는 음식점 기분의 - 간판을 보면 현재이나 길가의 건물들은 예전 중소도시를 생각하게 하는 천호동 구시가
 

어제 와부읍 도곡리의 맨발걷기 메카 "금대산 황톳길"을 걸으며 왠지 '비가 내릴 때 여기 와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우중 등산을 해 본 분들은 그런 심정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아실 것이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빗소리 이외의 다른 소리는 없는 어둑한 산중의 등산로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게 된다. 고독한 가운데 내면과의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자기성찰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그 맨발걷기의 성지에서 그걸 꿈꿨던 것이다. 

 

오늘 오후에 비가 많이 왔는데 어제 자동차공업사에 맡긴 차를 찾아와야 했다. 뒤 펜더의 스크래치로 인해 녹이 슨 곳을 복구해 달라고 맡겼던 것이다. 긁힌 곳을 샌드페이퍼로 연마하고, 거기 퍼티(putty / 빠데)를 발라 굳히고, 다시 매끄럽게 샌딩을 한 후에 래커칠을 하는 공정이다. 어제 도곡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업체를 검색했는데, 집에서 약 1.9km 정도 떨어진 길동에 적당한 업체가 있어서 거기 맡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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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km의 빗길을 걷기 위해 미드컷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고 나왔다. 등산화 끝에 부착한 클립으로 바지 끝단을 물려놓았다. 이러면 바짓단이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비를 맞았을 때도 빗물이 발목 위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왠지 비오는 오늘 우산을 쓰고 걷고 싶기에 길동의 자동차공업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역시 차만 타고 다니던 길을 걸어가니, 그것도 비오는 날 아주 큰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가니 평소에 그냥 스쳐가던 풍경이 많이 달라보인다. 들고 나온 올림푸스 펜(Olympus Pen) 미러리스 카메라로 그런 광경들을 몇 장 찍어보기로 했다. 자주 지나다니던 곳인데도 어떤 건 무척 낯설었다. 천호동은 변치 않는 모습을 가진 구사거리 쪽과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신사거리 쪽이 있다. 난 구사거리에서 길동을 향한 길을 걸어갔다. 가면서 내가 살고 있는 2001 아웃렛 위 20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사진도 찍어봤다. 가면서 보니 천호동의 곳곳이 다 공사판이다. 이 동네의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고있는 공사현장들이 가득했다. 

 

천호동에서 길동으로 향하는 길 중간의 높지 않은 고개를 걸어가며 보니 그 길과 오른쪽으로 한 블록 건너 신사거리에서 길동으로 가는 길의 중간은 모두 낯선, 꽤 높은 건물들이 많았다. 가면서 눈에 띄는 것들을 아날로그 감성의 사진들로 찍었다. 흑백이나 칼라 빈티지 사진, 혹은 세피아 칼라로 찍었다. 고개를 넘어 가면 옛날엔 좌우가 모두 논이었고 성내천이 좌우를 가로 질러 흐르던 곳이 나온다. 물론 현재의 그 길동사거리 부근은 이젠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정신 없이 분주한 지역이 되어 있지만... 

 

빗길 1.9km를 걸어가며 “걸어야만 비로소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것들”을 봤다.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길 한 켠은 중소도시 영화촬영 세트 같은 풍경이고, 오른편은 아주 현대적인, 어찌 보면 미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그 미래적 풍경의 지역을 지나면 나오는 신시가지 관통 도로 건너편은 또다시 중소도시 촬영 세트 같은 골목풍경이 펼쳐지기에 거긴 “강풀만화거리”가 조성되어 구수한 옛 풍경을 보여주는 관광 특구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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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의 낡은 건물들 틈에 이런 세련된 조각작품과 적당한 공간감을 부여하는 건물이 서있어서 대조적이다.

 

역시 등산을 많이 한 내겐 1.9km가 너무나도 짧은 거리였다. 차를 찾아와야겠기에 그 거리에서 그쳤지만 마음으로는 최소한 그 다섯 배 정도의 거리를 걷고 싶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니 더많은 걸 구경하지 못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매끈해진 뒤 펜더를 살펴본 후 만족한 기분으로 운전하여 돌아왔다. 크지 않은 스크래치와 녹 땜빵에 무려 35만 냥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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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색 빠진 빈티지룩으로 찍은 이 사진의 점포 유리창엔 걸그룹 뉴진즈(New Jeans)의 포스터 두 장과 민지의 큰 독사진이 있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Olens가 무슨 샵인지는 모르겠다. 뉴진스에서 제일 예쁜 건 다니엘이지만, 가장 매력있는 건 리더인 민지이다.

 

천호동에서 오래 살았지만 여긴 내 고향이 아니다. 내 고향은 여기서 8km 떨어진 경기도의 현 미사강변도시(중 황산)이다. 그곳은 미사강변도시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골풍경도 가진 곳이었는데, 이젠 거의 강남 수준의 건물들이 들어찬 완전한 도시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오히려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자주 방문하는 (군생활을 했던) 강원도 철원을 비롯, 역시 자주 가는 경기도 파주나 양평 등지의 몇 동네와 비슷하니 거길 맘속의 고향처럼 느끼게 되었다. 요즘 자주 가는 남양주 와부읍의 도곡리도 그렇다. 도곡리나 양평의 어느 동네로 이사해서 살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이 가을비가 그치면 선선해져서 본격적인 가을날씨가 오리라던 전날의 TV 뉴스를 상기한다. 가을이 왔고, 추석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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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도색을 마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 길의 끝부분 지역은 천호자전거거리이다. 빗물이 질펀한 도로의 풍경이 좋았다.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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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것이 내가 살고있는 동아아파트이다. 한 때는 천호동의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많이 낡았다. 저 2001 아웃렛을 밑에 둔 아파트의 대지 중 상당 부분은 내 아버님이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제재소를 운영하시던 곳이다. 거기 천호동 최초의 2층 양옥집이던 우리 집도 있었는데 난 아직도 그 집자리의 18층에 산다. 질긴 인연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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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구사거리의 중심가이다. 오른쪽 끝건물이 천호로데오거리의 시작 부분인데, 내가 아주 어린시절에 저곳에 우리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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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로데오거리 입구. 여긴 거의 옛모습 그대로이다. 오히려 중간의 길은 양편의 보도를 넓히는 바람에 훨씬 좁아져서 일방통행 차로로 변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차가 못 가게 하고 인도로만 쓰는 게 나았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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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 구사거리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 지역의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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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무빙"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건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란다. 그 원작 웹툰을 그린 사람이 만화작가 강풀이고, 그가 이곳 (천호동 옆 성내동) 출신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강풀만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 부근에... 오늘이 20부작 드라마 무빙이 18, 19, 20회를 방영하여 종영되는 날이다. 이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예쁜 고윤정(장희수 역)이다. 나무위키 무빙 - https://bit.ly/3sVY8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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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모텔의 그래피티. 이걸 보면서 '아하, 맞아. 상호협의하에 해야 마땅한 거지.'란 생각을 했다.^^; "예스"가 필요하다. 아니면 모두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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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근의 건물들은 다 영화촬영용 중소도시세트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제 새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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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를 중간에 두고 양편의 풍경이 극히 대조적인 곳이다. 왼편이 구도심의 풍경을 그대로 지닌 곳이고, 오른편은 새로 개발된 구역이라 모든 게 신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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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지역에서 워낙 많은 건축공사가 행해지고 있어서인지 이 부근엔 부동산 업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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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오른편엔 이런 곳도 있다. 이 앞 대로를 차로 그렇게 많이 지나갔는데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못 봤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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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보다보니 이게 학교였다. 이 학교는 학교같지 않다. 학교의 주차장도 아파트 주차장 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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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 1.9km를 걸어서 일정자동차공업사 앞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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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이다. 지금 이 자리는 예전에 비교적 깊은 산속이었다. 당시 천호동의 구서국민학교(후에 천호초교)에 다녔기에 이 부근의 국도를 걸어다니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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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자전거거리로 통하는 도로. 비는 끈질기게 왔다. 지구를 식히려는 저 윗분의 노력. 그렇게 가을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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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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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호동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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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호동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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