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렐코(Norelco)의 추억 - Philips Series 9000 Electric Shaver
개짓(Gadget)거리 - 노렐코(Norelco)의 추억
History
내게 노렐코(Norelco)란 이름은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모습과 함께 한다. 아버님은 항상 노렐코 브랜드의 3구짜리 전기 면도기를 사용하셨었다. 난 면도를 할 때 면도기의 대명사가 된 질레트(Gillette)의 레이저(razor) 면도칼 제품을 주로 사용했다.(어쩌다 플레이보이 지에 광고된 걸 보고 쉬크 사의 제품도 써봤지만 질레트가 더 나았다.) 가끔 아버님이 사용하시는 노렐코 전기 면도기를 써봤는데 그게 질레트 레이저 면도기에 비해 덩치가 크고, 사용하기도 불편했고, 수염이 잘 깎이지도 않았다. 한 번은 아버님의 면도기가 고장난 걸 보고, 마침 생일 선물로 당시의 최신형 노렐코 전기 면도기를 사드린 일도 있었는데 그때 아버님이 꽤 기뻐하셨던 기억도 있다.
노렐코는 네델란드 필립스(Philips) 사의 전기 면도기 브랜드이다. 필립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던 1940년대부터 미국엔 필코(Philco)란 브랜드가 있었다. 필립스는 필코와 엇비슷한 발음으로 혼동되는 걸 막기 위한 당국의 조치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명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노렐코(Norelco)란 이름이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북아메리카필립스전기회사(NORth american phiLips ELectrical COmpany)였다.(이 영단어들 중에서 대문자만 발췌한 것이다.)
1981년에 필립스 사는 필코 사를 병합하여 미국에서도 필립스란 이름을 맘 대로 사용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미 널리 알려진 노렐코란 이름을 보존했다. 이유는 미국인들이 유럽 브랜드 제품의 사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필립스가 필코와 매그나복스(Magnavox) 사를 병합한 이유이다.(오디오용 진공관 중의 필코 제품들은 필립스 사에서 만든 것이다.)
현재 필립스-노렐코 브랜드로 판매되는 제품들은 필립스의 약간 저렴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필립스 면도기의 최신 버전인 9000 시리즈는 첨단의 미래형 디자인을 하고 있고, 성능이 기존 제품들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좋은 제품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20만 원대에서 시작하고, 40만 원대 후반에 가격이 포진하고 있는 프리미엄 제품도 있다.(면도기 하나의 가격이???) 하지만 동일한 메커니즘과 부속들을 공유하고 있는 필립스-노렐코 제품들은 해외직구를 통해 여분의 칼날 커버와 함께 5-6만 원대에 구매할 수도 있다. 실용성을 따지는 분들은 이걸 선택하면 된다.
필립스 Series 9000 제품의 사용
전기 면도기가 잘 안 깎인다는 편견이 얼마 전에 사라졌다. 어떤 분이 사용법을 바꾸면 그런 편견이 사라질 것이라고 하여 그분의 말씀 대로 깎아보니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전엔 무리하게 힘을 주어 날을 얼굴에 밀착시켰는데 그걸 가볍게 굴곡에 따라 스치듯 밀면 된다고 하기에 그렇게 해보니 힘들이지 않고 수염이 깎이는 걸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멋진 디자인으로 나온 필립스의 신제품을 구입하게 됐고, 그게 바로 9000 시리즈의 제품이었다.
이 시리즈의 제품은 시작가도 그렇지만 프리미엄 제품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40만 원대 후반으로 꽤 비쌌는데 그건 굳이 필요치 않은 치장과 있으면 좀 더 나은 액세서리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성비를 고려해서 구입했는데도 다나와 최저가로 24만 원대였다.
구입하고 보니 아버님 시대의 노렐코가 가진 크고 두툼한 믿음직스러운(?)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뭔가 첨단 제품의 냄새가 나는 예쁘고도 날렵한 제품이었다. 써보니 성능이 놀라웠다. 가볍게 누르면서 스치듯 지나가는데도 턱이나 인중의 굴곡진 부분에 있는 수염들이 여지 없이 잘라져 나갔기 때문이다. 한두 번 밀면 그 자리가 매끈해졌다. 만족스러웠다. 아버님이 이 제품을 사용하셨더라면 감탄하시며 좋아하셨을 것이란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이 제품은 적절한 압력으로 매우 정밀한 밀착 면도가 가능했고, 힘을 많이 안 주기에 피부를 보호해주는 면에서 탁월했다.(피부 마찰을 기존 제품에 비해 25% 줄였단다.) 얼굴 윤곽에 맞는 입체적인 밀착이 특징이었다. 전기 면도기에 압력 컨트롤 센서를 채용했다더니 그 장점이 빛을 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염의 밀도에 따라 힘도 자동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어떤 상태에서나 일관된 면도의 성능을 보장한다는 기술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전기 면도기들이 가지고 있는 면도날 자동 연마 기능은 전보다 훨씬 더 강화됐단다. 건조한 상태나 젖은 상태에서의 면도도 가능하고 짧은 시간의 충전으로 코드 없이 50분 정도까지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니 그것도 편리하고 에코 프렌들리하다. 구렛나루 정리용 트리머(trimmer)도 덤으로 끼워주는데 나야 뭐 수염을 기르지 않으니 그게 필요는 없지만 덧자란 귀밑머리를 잘라보니 그것도 쉽게 잘려서 좋았다.
- 트리머
이틀 써 봤는데도 만족도가 높은 걸 보면 앞으로도 계속 이 제품을 쓰게 될 듯하다. "내돈내산" 제품이니 거지 같은 제품에 만족한다는 쓰레기 리뷰는 아니다. 내가 사랑한 아버님의 추억과 함께하는 필립스 제품에 대해 그런 불경한 행동을 할 리는 없지 않은가?(하나 더 사고 싶어도 10년 이상 고장이 안 나서 고민인 내 전동치솔도 필립스 제품이다. 이것도 신제품이 뭔가 더 나아졌을 텐데...)
- 트리머와 코드는 안에 넣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