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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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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목 : [고성애] '내 사랑 알프스' / 박순백 - 2001-08-27 16:12:58  조회 : 3997 


집사람이 지난 20일에 나와 함께 이정순 선생을 찾아 뵌 후기를 자신의 홈 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아마도 아래 글은 내가 쓴 행복한 시간의 길이란 것과 일맥상통하는 글일 것이다.

난 요즘 이 게시판에 글쓰기를 자제하고 있다. "애도의 장"에 실린 오재철 선생의 글을 읽은 후,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접어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번호 #70 /70 날짜 2001년8월24일(금요일) 14:53:43
이름 고성애 E-mail kosa@dreamwiz.com
제목 '내 사랑 알프스'

- 최초의 알프스 스키장 시절에 지어진 알프스 산장. 알프스 가족의 꿈이 담겨있던 오스트리안 샬레 스타일의 산장이다.

20일 저녁 무렵 이대 뒤의 '내 사랑 알프스'에 갔다. 지하 1층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사실 서류 떼러 다니느라 종일 굶은 탓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먹어 보는 그 곳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1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가서 이정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Spark는 내게 절대로 울면 안 된다고 신신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날 껴안아 주고는 그대로 흐느끼시는 그 분 모습에 애써 참으려 했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한동안 두 손 서로 마주 잡고 우린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아픈 마음들을 이야기하다가, 4층 살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벌써 몇 년 전이던가? 우리 애들 어렸을 적, 명종이, 나미가 각각 경희대, 이대를 다니던 시절. 우린 이 곳에 와서 활기 넘치던 행복한 시절의 가족 모습을 보았었지. 김성균 선생님은 알프스 스키장을 만들 때의 그 어려움들, 즐거움들, 산장에 오가던 정 많던 사람들 이야기들을 들려 주셨었다. 기타를 들고 와서는 '내 사랑 알프스'라는 노래를, 자신이 자작한 곡이라고 자랑하시면서 들려주시기도 했었다. 난 그 이래로 집에서 그 노래를 나지막이 부르며 행복한 그 가족 생각을 하곤 했었다.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가끔 들러 보는 '내 사랑 알프스'는 나와 Spark의 모델이었다. 우린 그런 사랑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집을 지어서 사는 게 꿈이었다. 6각형의 창문들이 여러 개 나 있는 3층 모두는 이정순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었다. 내가 그곳을 아주 맘에 들어 하자, Spark는 이 다음에 내게 그런 집을 지어서 작업 공간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지하에서 4층에 오르기까지의 벽에는 오스트리아 풍의 샬레와 꽃들을 배경으로 알프스 스키장에 그려진 것과 비슷한,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명종이, 나미의 스키복 입은 모습, 이정순 선생님의 알프스 풍의 옷 입은 예쁜 모습들. 처음에는 그것들을 모두 서양화가인 이정순 선생님이 그린 것일 줄 알았다. 근데? 그것 모두는 김성균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온 가족이 살집이라고 자신이 모든 재료를 구해 와서 튼튼하게 지었다고 자랑하시던 집이었는데, 일이 잘못되어 9월 중순경에는 그 집을 떠나신단다. 어쩌다가 남편과 아이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집마저 잃고 떠나야 된다니...

사진 작가이기도 하셨던 김성균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았다. 이집트, 그리스 등에서 5년에 걸쳐서 찍으셨다 던 사진들. 그 사진첩에는 잘 배열된 사진 중간 중간에 그 분 글씨로 아주 함축된 표현의 글들이 쓰여져 있었는데... 그 글들에 표현된 어구가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 분이 글도 잘 쓰시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재주도 많으신 분!

그 아름다운 분, 이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변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사람들이 나 보고 말랐다고 애처롭다고 했었지만, 이 선생님의 뼈만 남은 마른 모습에 나는 비교 대상도 아니다.

돌아오는 길! 다시 꼬옥 안아 주시며 기운 잃지 말고 힘내서 살아야 된다고 하시는데, 그 뼈만 만져지는 등에 손이 닿아 그것이 슬퍼 또 눈물이 났다. "이 집, '내 사랑 알프스'를 반드시 되찾으셔야 돼요."라는 내 말에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일렁인다. Spark는 이 담에 이 집을 우리가 사자고 나지막히 이야기 했다.

김성균 선생님이 떠나신 지 벌써 3년! 그런데도 이정순 선생님의 그 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가족 중 누구를 잃는다는 것은 가슴 저미는 깊은 슬픔이다. 3년 후일지라도, 나 또한 그런 깊은 슬픔 한 가운데에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은 진한 아픔을 느꼈다.

언젠가 나이든 할아버지가 지쳐 힘 빠진 다리로 할머니 산소에 찾아다니는 것이 정말 서럽고 힘들다던 글을 읽었었다. 나는 그 글을 접한 후, 내가 조금 더 살아서 지쳐 후들거리는 다리일지라도 남편의 산소를 찾아다니겠노라 다짐했었다. 근데? 이제 나는 멀쩡한 건강한 다리로 내 딸의 무덤을 찾아 다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그것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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