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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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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제목 : 모른 척 연이 생일을 지나 보내고... / 박순백 - 2003-02-05 08:59:45  조회 : 3848


번호 # 2/4 크기 13K
보낸 날짜 2003/02/04 22:46:56 [GMT+09:00]
보낸이 박영주 yzpark@dreamwiz.com
받는이 박순백 spark@dreamwiz.com
제목 사죄의 글

박순백 박사님, 고 성애 교수님 두 분께:

어느 듯 저도 마흔 중반에 이르려하니 적은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렵거나, 난처하거나, 익숙치 않은 그래서 어색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가장 적절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헤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아직 애에 불과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그러한 상황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제 모습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편지는 조금 전까지 몇 시간을 고민하다가,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쓰는 것입니다만, 지금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워서, 이 상태에서 쓰는 제 편지가 오히려 두 분께 누를 끼칠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이미 20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젠 잊자고 다짐하고 계실텐데 제 편지가 그 아픈 상처를 다시 쑤셔대는 악행이 될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글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것을 실제로 보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두 분이 지난 세월 동안 겪었던,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만 맴돌고 글로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눈앞이 자꾸 흐려져 글 쓰기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어줍잖은 글로 감히 위로하려 하거나 이런저런 충고 같은 것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분께 닥친 불행에 대해 아직 어린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그 슬픔과 아픔, 그리고 노여움 등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런 감정들을 글로나마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을 두 분께서 제게 나누어 주실 수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먼저 사죄부터 해야겠습니다. 죄송스럽습니다.
오늘에서야 두 분을 삼켜버린 그 불행한 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진작 편지라도 드렸을텐데 그러지 못했었습니다.

사실 2001년 6월 말부터 작년 6월 말까지 독일에 있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쯤 국내 신문에 난 기사의 제목만 대충 확인하는 것 외에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거의 들어가 보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로 떠나기 전 6개월 동안도 이메일 확인 외에는 인터넷 접속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00-01 시즌에는 스키장에도 못 갔었습니다.) 돌아온 후 박사님 칼럼은 이 번 스키 시즌 직전에 열어 보았는데,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 항목이 하나 생긴 것 같았고 그게 두 분의 따님과 관련된 것이라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지만 확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박사님의 스키 관련 글 중에 따님에 관한 아주 짧은 언급을 보고는 제 마음 속에 먹구름이 잠깐 스쳐 갔지만, 저는 굳이 외면했었습니다. 아마 따님을 외국에 유학 보내셨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별일이 있을 턱이 없지 그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언급이 제 뇌리를 떠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오후 3시 반 까지 두 건의 수술을 끝내고 제 방으로 돌아와서는 저녁 회진 전까지 남은 두 시간을 이용해 늦었지만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아니면 구청에 가서 만기 지난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할까 고민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인터넷 서핑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걱정도 되고 해서 말입니다. '유학 보내신 거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그 일이 일어난 후 두 분께서 써 놓은 글들을 몇 편 읽다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눈앞이 자꾸 흐려져서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컴퓨터를 끄고는, 이런 때 독한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꿎은 담배만 연속으로 피우고 술 대신 커피만 연거푸 마셔댔습니다.

저 역시 술을 입에 대지 못합니다. 한 잔의 맥주도 제겐 치사량에 가까운 독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 독한 것으로 한 잔 마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제게도 만 10세의 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딸 또한 두 분 따님 만큼 여리고 여린 아이이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요구하지 못하고, 남 앞에서 너무 수줍어하고 말입니다. 딸아이를 부를 때 저희는 '지어나'라고 부릅니다. 나무랄 때는 여늬 부모들처럼 성을 넣어 이름을 부르지요. 두 분 따님의 이름에서 점 하나가 빠진 이름입니다.

그런 제 딸을 생각하고 두 분의 따님을 생각하면, 두 분께 닥친 일이 남의 것이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따님을 저는 가까이서 본 적이 없습니다. 2000년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올림픽 공원에서 인라인을 박사님께 배우던 중 두 분을 따라온 따님을 멀리서 몇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받은 느낌은 참으로 어여쁘고 참하게 생겼다, 그리고 두 분 모두 따님을 자랑스러워 하실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딸애도 저렇게 예쁘고 참하게 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서툰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못 마시는 술로 스스로 위로해야 할 처지이니까요.

또 하나 사죄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 분이 고통받고 계시는 것도 모르고 작년 3월과 4월에 박사님께 스키 여행 다녀온 것을 사진과 함께 보내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사진들 중에 제 딸아이의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사진들이 당시의 두 분께 아픈 상처를 마구 헤집어 놓는 악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알았더라면 제 딸애와 함께 찍은 사진들은 빼버렸을 텐데 두 분께 큰 죄지었습니다. 모르고 그렇게 했다지만 지었던 죄가 어디 가겠습니까? 그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파 옵니다. 제가 보낸 사진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떠올라왔을 두 분의 따님에 대한 추억에 몸부림 쳤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스키장 같은데서 절 만나면 주먹으로 제 머리통을 한 대 쥐어 박아버리십시오.

앞으로 어떻게 두 분을 뵐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마 두 분의 모습이 보이면 어딘가 숨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두 분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더라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제 줄여야 하겠습니다.

저도 이젠 퇴근해야겠습니다.

박 영주 드림

 



- Spark: 원 이런 일로 이처럼 긴 서신을 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집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난 2월 2일 일요일이 지연이 생일이었습니다.
알고 지나가지만,
지금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아이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이 자기 기만 같아서
그냥 모른 척 지나갔습니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젠 일부러 My Lovely Jenny에 글을 안 쓰려고
합니다.
그게 무책임하게 내 아픔을 털어놓는 것처럼
여겨지는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살면서, 살아있는 동안
그 아이를 잊고 살 수 없다는 것이 고통이지만,
함께 살았던 그 기간을 기억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노력하면서...

그리고 지금은 전혀 믿을 수 없지만
후생이 있어 그 아이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생을 마감하는 때가 오기를
진정으로 기원하며 삽니다.

그런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현세의 삶이 고통스럽지 않겠지만
아직 그런 믿음이 없어
바쁜 생활 속에서는 잊고 사나
혼자 있는 시간엔 항상 그 애를 생각합니다.

특히 먼 길을 혼자 운전해 갈 때
라디오라도 켜고 그 내용에 집중하지
않으면 계속, 그 길을 가는 내내
그 애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 애를 떠올리면,
모든 게 아쉬움 뿐입니다.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살아있는 한 멍에처럼
남아있을...

억지로 생각지 않으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그걸 알면서 용기있게 위로해 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 정말 고맙고,
위로 받으며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아직도 그 애를 기억하고,
저처럼 슬퍼해 주는 분들이 있음을
알 때, 우리 남은 가족 3인의 생이 다할 때
비로소 영원히 잊혀지고 말 그 아이의
한 때의 존재가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는 것.
제겐 감격입니다.

그리고 실로 큰 위로를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From : 211.118.99.133

 

 

 

 

김정기 오늘 우연히 이곳을 들르고야 말았습니다.자제분을 가슴에 묻고 힘겨우셨을 박사님의 남모를 고통 제가 주제넘게 조금이라도 져드려도 될까요? 맨처음 청순해 보이는 한 소녀를 보고 박사님의 따님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여느 부모들 처럼 자제분들에 대한 사랑이 남 다르시구나 생각했습니다.박사님께서 쓰신글들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아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일상의 자리로 되돌아 오실때까지의 힘드셨을 시간들이 되려 강해지는 시간들 이었을꺼라 믿고 싶습니다.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어드리지 못할꺼라 잘알면서도 그런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따님을 다시 만날 그날까지 변함없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3/03/06 22:29:45
211.58.1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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