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간 바나나
지연이가 좋아하던 과일 중에 바나나가 있었다.
난 별로 그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바나나를 잘 먹었다.
난 그 밋밋한 맛이 싫었는데...
익지 않은 바나나의 떨떠름한 맛이 싫었는데...
아이는 왠지 그걸 좋아했다.
난 바나나는 싫어했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좋아했다.
바닐라와 바나나의 맛은 서로 달랐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어도
어쩌다 딸아이를 위해 바나나를 사곤 했다.
딸아이는 떠나기 전날
제 엄마와 바나나 한 뭉치를 사 왔다.
며칠 전에 사 온 체리를 잘 먹었다며
집사람은 체리도 여러 뭉치를 사 왔다.
그 애가 떠나고
난 그 바나나 뭉치가
거꾸로 놓인 샘물(mineral water) 단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바보,
먹으려고 샀으면
그걸 먹고 갔어야지.'
바나나 뭉치는 그렇게
삼우제를 어제로 보낸 오늘 아침까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바나나는 잊혀져 있었다.
집사람이 사 온 체리는
어제 삼우제에 가면서 가지고 갔다.
내가 몇 개의 체리를
그 애가 잠든 곳 위에 놓아주고,
그걸 풀로 덮었다.
오늘 아침,
어젠 잊고 못 가져간 바나나 중 하나를 떼어
사무실에 가져왔다.
지금 그 일부를 잘라
입안에 넣으니
전에 없던
바나나의 향기로움...
내 아이가 좋아했던 그 향기를
어째 이제야 알게 된단 말인가?
잊혀져 샘물 단지 위에서 혼자 익은
바나나의 향기로움 속에
내 예쁜 딸의 향기가 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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