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5814 좋아요 870 댓글 4




(친구의 결혼 선물)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허위적 올라왔다.

“철환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왜 뛰어왔어요. 아기도 등에 업었으면서.....

이마에 땀 좀 봐요.”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지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먹기 위해

거리에 나 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수천 수만이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어제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오스스한 별을 보았다.

개 밥그릇에 떠있는 별이

돈보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울먹이던 네 얼굴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 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축의금 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Comment '4'
  • ?
    김상욱 2005.10.22 11:19
    한국의 눈 소식을 보고 싶어 들어왔다가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실화에요?..재가 무지해서..차믕로 행복한 사람 같습니다. 위에 나오는 책 한권도 안 읽어봣느데..창피하네요..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
    김선혁 2005.10.26 12:14
    너무 좋아서 퍼가요... 감사합니다.
  • ?
    이기영 2005.11.09 10:54
    참 좋은 친구분을 두셨네요....그 좋은 우정 깊이 간직하세요....저도 넘 좋아서 퍼갑니다.
  • ?
    강민정 2005.11.09 12:05
    너무 가슴이 아프고 따뜻합니다..퍼갑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10203 동영상 CSIA and KSIA 3 file 박순백 2013.04.28 4416 0
10202 잡담 어제 무주에서 겪은 황당한 해프닝.... 21 file 장봉헌 2017.12.23 3907 0
10201 잡담 주로 서울분들은 어디로 스키장 많이 가시나요? 7 서영호 2016.12.28 1639 0
10200 잡담 젓가락 다리가 아니었구나... 24 김기태 2016.12.27 3015 0
10199 잡담 궁금합니다 1 이해선 2017.09.16 591 0
10198 잡담 정말 신앙심이 대단합니다. 16 file 강정선 2014.07.09 3374 0
10197 문화/예술 작은?음악회. 아름답네요. 2 안준혁 2017.05.07 529 0
10196 -_- 요즘 제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입니다. 2 이정환 2013.05.02 2547 0
10195 잡담 스키를 좋아하다 생긴 버릇 1 file 박순백 2013.09.09 3977 0
10194 문화/예술 좋은(?) 사회 문제 - 잡지의 부록 file 박순백 2013.09.11 3355 0
10193 기타 날에 비친 내 얼굴(뒷방이 사라졌다) 6 file 최경준 2013.05.03 2857 0
10192 단상 [김윤식] 무서운 양 5 file 박순백 2013.06.09 2879 0
10191 기사 한국 스키 강사님들이 미국 스키 강사로 일할수 ..... 1 리쳐드박 2013.05.16 2834 0
10190 기사 신명근 선생이 뉴요커가 되고 싶어할 이유 하나 2 file 박순백 2013.05.18 2738 0
10189 기사 미국에서의 스키 취업의 길이... 1 file 리쳐드박 2013.05.16 3365 0
10188 기타 정신줄 놓은 기자들,,, 23 최경준 2013.04.19 3996 0
10187 기타 마눌이 15년 다닌 직장을 사표내고 시골간다고,,, 1 file 최경준 2013.04.18 1492 0
10186 기타 1등의 재귀환 1 file 이정호 2013.02.22 909 0
10185 기타 생선초밥과 성 정체성 3 최경준 2013.01.07 1349 0
10184 동영상 [서종모] 남자가 생각할 수 있는 costume의 모든 것. 1 file 박순백 2013.05.23 3290 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511 Next
/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