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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에 관한 "질문"[스키 Q&A]에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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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스키(3)-스키가 내게 준 선물 ‘국어 1등급 멘탈’

 

 공부방 동생들과 스키를 타러 갔다. 그때 재밌던 여운을 잊지 못 해, 당일치기로 동네 남동생들과 함께 무주로 떠났다. 내 친구 남동생은 스키를 부담 없이 타기에 나랑 상급자를 겁 없이 내려가며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 설천 상단에 도착했다. ‘슈퍼지(Super G)’라는 슬로프 앞에 섰다. 이곳은 처음 볼 때 ‘저걸 타고 내려가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일반 등산객도 그 주변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 하며 구경을 한다. 경사가 압도적이다. 다른 코스 보다 짧지만 웬만한 상급의 경사보다 무서워 보인다. 

 

 동생이“누나 가자~” 하고 자기 혼자 내려갔다. 나는 ‘어어...‘ 하다가 위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사이드 슬립으로(11자를 경사면의 수직으로 세워서 옆으로 슬금슬금 내려오는) 한 1미터 정도 내려왔다. 동생이 저 밑에서 고함을 질렀다. “야 빨리 내려 와라. 안 오나???” 이미 찔끔 밑으로 온 상황이라 위로 올라가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근데 나는 진짜 무서웠다.  온몸에서 긴장감이 감돌고, 숨이 가빠졌다. 

 

 그런데 동생은 계속 재촉했다. 나는 한 10분 정도 망설였다. 그리고 오케이! 싶었고   마음먹고 내려왔다. 이 경험은 나에게 정말 의미가 있었다. 내가 두려움을 극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는데, 용기를 가지기까지 나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두려움에 떨고 가만히 있고 싶어 한다. 그래도 계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이 일은 시간의 압박이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되는 것 같았다. 염호승이 내려오라고 궁시렁거리긴했어도 적당히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또 그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지 어디에 초점을 둘 지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심란한 마음보다는 다음에 할 턴에 집중했고, 그러니까 무서워도 그냥 그것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순간을 지배하는 감정을 잊는데 도움 되는 행위였다.

 

 그러면서 나는 은근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공포를 시간만 많으면 이겨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도 생생하게 관찰했다. 또 무엇에 초점을 맞추며 내 마음을 정돈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슈퍼지에서 베이스를 바라보는 심정은 수능1교시에 국어시험지를 받은 상황과 비슷하다. 내 기준으로는 슈퍼지가 더 강렬하고 온몸으로 느껴지긴 해도, 수능장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기본적인 상황은 똑같다.

 

 2년 전 그렇게 불국어라며, 1등급 커트라인이 84점으로 폭락한 그해, 나는 1등급을 수능에서 받았다. 멘탈 시험이냐고 그 해 수능을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험장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고, 이것도 대비를 해야 한다. 나는 그런 준비를‘스키’ 타면서했다.

 

 우선 진짜 무서운 걸 경험해 본 게 컸다. 그리고 그걸 이겨낸 것까지! 그니까 무서움에 대한 자극이 무뎌진 것도 있다. 또한 내가 그런 생명의 위험을 뚫고 뭔가를 하는 게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다. 다만 수능시험장은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그때는 어떻게 할 건지 새로운 고민도 해야 했다. 그리고 수능장에서 긴장하면 가만히 있고 싶어질 수 있으니, 뭘 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정리해서 나만의 방식을 만들었다. 집중하려면 어떤 관점으로 읽고, 순간적으로 이해 안 되고 당황할 때 무슨 행동을 할 건지. 스키 탈 때 턴을 하는 것에 집중하듯,  목표 행위를 정리해서 시험장에 갔다. 그리고 슈퍼지 여러 번 내려 와보니까 ‘대범하게’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수능도 그렇게 치려했다. 

 

 나는 겁이 많은 성격인데(반박불가 찌질이), 수능날은 국어시험에서 슈퍼지에 익숙해 진 마음으로 쳤다. 어려운 것도 모르고 그냥 문제만 풀다 나왔다. 그래서 집에 와서 채점하고 망했다는 생각만 했고(점수는 낮았으니까.), 언론사에서 극악의 난이도라 했을 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물론 “스키를 타서 국어1등급이 되었습니다!”라고 주장은 못 한다. 다만, 스키가 큰 게임에서 나의 평온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는 건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다. 그냥 재미있는 취미였는데, 인생에 도움도 되어서 스키가 더 좋아졌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스키강사 정진서랑’ https://blog.naver.com/skitrangs/221820173633)

 

 

IMG_1920.jpg

 

Comment '8'
  • ?
    미등록 2020.02.23 06:53
    스키로의 경험으로인한 자신감
    그 자신감으로 극복한 두려움(?)..무얼 이야기 하려는지 알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흔히 군대로 극복을 하는데(저만 그럴수도..ㅠㅠ)
    군대에서도 버텼는데 이것쯤이야..^^

    내가 사랑한 스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웹툰을 보는듯한 느낌도 있고,라디오 드라마를 듣는듯 그 모습이 상상이되어 좋습니다^^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 ?
    정진서랑 2020.03.11 23:34
    군대는 안 가봐서 모르겠네요 ㅎㅎ
    그래도 저랑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신 것만으로 동지애가 느껴집니당

    재밌게 읽어주셔서 저도 기쁘고 다음 편은 방금 올렸습니당ㅎㅎ
    이 점 참고 해 주세요~~~
  • ?
    산과호수 2020.02.23 08:22

    누구나 스키를 배우며 한번쯤은 느껴보았던 이야기를 잘 표현해주셨네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기대됩니다.  응원해요  ^^

  • ?
    정진서랑 2020.03.11 23:35
    ^^ 따뜻한 응원히 힘 입어!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 ?
    도전왕 2020.02.24 09:41

    사실 저도 베이스가 무주인지라, 글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슈퍼G 위에서 보면 어마무시하죠. 슈퍼G에서 얼어 붙였다는 얘기들 들으니 마눌님이 떠오르네요. 용평 레인보우 패러다이스(차도)에 갔다가, 초반 경사에서 마누라가 거의 30분을 울먹였었거든요. 애들하고 저하고 다들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얼어서 못 내려오더라고요. 그 때 좀 덜 다그쳤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지금도 됩니다.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소리치지 말고 용기를 더 줬어야 하는데요.  그 때 마누라가 한 말이 생각나서 댓글 답니다. "자기는 생명이 걸렸다고...."

  • ?
    정진서랑 2020.03.11 23:38
    결국 해피 엔딩이면 아내분도 다그쳐 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도 동생이 빨리 오라고! 라고 고함질러 준 걸 나중에는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내려가야 하는 강력한 동기게 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당시에는 궁댕이를 발로 차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요ㅠㅠㅋㅋㅋ

    무주가 베이스라 하시니 반갑습니다.
    가족끼리 안전하고 즐겁게 타시길!
  • profile
    Dr.Spark 2020.03.14 19:53

    대단합니다.^^

    전 도와드릴 게 없는데, 위 본문의 글들이 (아마도 글을 옮기면서 생긴 문제인 듯)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그걸 제대로 수정해 놨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스키칼럼 페이지)으로의 포워딩 시에 썸네일이 필요하기에 블로그에서 사진 하나를 가져다 첨부해 놨습니다.

  • ?
    정진서랑 2020.04.25 17:51
    수정까지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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