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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산수유마을 뒷산, 추읍산에 오르다.

 

 

[2021/09/15, 수]  지난주(붙여쓴다)의 내 백운산 등산 후기를 보신 페이스북 친구 김일환 선생께서 양평의 추읍산(趨揖山, 583m) 등산을 권하셨다. 원래 이번 주(띄어쓴다)에는 백운산의 바로 옆 산인 광덕산에 오르려고 했는데 추읍산으로 예정을 바꿨다.(광덕산은 그 정상부의 "조경철 천문대"가 있기에 고 조 박사님에 대한 추억으로 거길 가보려고 했던 것이다.) 

 

추읍산은 작년 3월에 양평 산수유마을을 방문하며 흥미를 가졌던 산이다. 서울 근교엔 두 개의 산수유마을이 있다. 하난 이천의 최고봉인 원적산 부근에 있고, 또 하난 양평의 추읍산 부근에 있다. 이 두 산수유마을은 구례의 산수유마을에 미치지는 못 하지만 그 나름 대단위의 산수유마을이라 할 수 있다. 

 

양평의 산수유마을은 내리, 향리, 주읍리의 세 마을을 통칭한다. 주읍리는 "산수유꽃마을"을 자칭하는데 여기가 가장 산수유나무가 많고, 그 다음이 내리 산수유마을이다. 두 마을 중간에 있는 "향기로운 마을"의 의미인 향리(香里)는 사실 산수유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그래도 산수유축제 시에는 축제장 중 하나가 개설된다.) 어쨌든 이 산수유마을엔 수령이 400~500년이 된 산수유나무가 무려 15,000주나 있고, 매년 산수유축제가 그곳에서 개최된다.(코로나 발생 이후엔 잠시 축제가 중단되고 있다) 그리고 내리엔 양평 한우 사육 농가들이 특히 많아서 이 산수유축제의 공식 명칭은 "산수유한우축제"이다. 가로수가 산수유나무이기도 할 정도로 이 지역은 이른 봄부터 샛노란 산수유꽃으로 빛나고 늦가을에서 초겨울엔 새빨간 산수유 열매가 나무에 달려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작년엔 코로나로 인해 산수유한우축제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난 가족들과 함께 두 번이나 이 지역을 방문했다. 처음엔 내리(내동)부터 방문했는데, 고향의 정취를 그대로 닮은 마을 풍경에 심히 매료된 바 있다. 뒷동산은 둥그렇게 불쑥 솟아오른 낮은 산이었는데, 산의 형세가 기묘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 산의 이름은 칠읍산(七邑山)이라 했다. 집사람과 함께 동네 어귀에서부터 걸어서 산기슭까지 올라갔는데, 거기서 추읍산 등산로 안내판을 보게 되었다. 동네사람들이 칠읍산이라 하여 그런 줄 알았는데, 안내판에 보니 추읍산이란다. 

 

알고보니 이 산은 국립지리원의 지도상으로는 추읍산도 아닌 주읍산(注邑山)으로 표기되어 있는 산이었다. 원래 추읍산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마을 이름이 추읍리에서 주읍리로 바뀌는 바람에 주읍산(注邑山)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95년에 다시 추읍산이란 이름을 되찾은 것이라 한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추읍산이 "趨揖山"으로 현재의 한자표기와 같고, 해동지도 등엔 "趨邑山"으로 "읍" 자만 달리 표기되어 있다니 그 이름의 연원은 꽤 깊다. 이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있는데 양평이나 원덕리 쪽에서 보면 남북으로 길게 마름모꼴로 보이며 북쪽으로 낮아지는 형상이다. 내리, 향리, 주읍리의 산수유마을에서 보면 이 산은 엄마의 가슴이나 임산부의 배처럼 둥글게 솟아오른 형태이다. 그리고 이번에 알았는데 이게 용문면 쪽에서 보면 상단이 더 뾰족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추읍산의 추(趨)와 읍(揖)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추(趨)는 달릴 "추", 달아날 "추" 자이다. 읍(揖)은 두 손을 위로 모으고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다는 것이다. 양평읍 쪽에서 본 이 산이 남북으로 높낮이가 다르게 길게 놓인 형상이 마치 북쪽에 있는 양평에서 가장 높은 산, 용문산을 향해 허리를 굽힌 것처럼 보이기에 그렇게 명명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설명이란 생각이 든다. 난 산수유마을에서만 이 산을 보아왔기에 이 산이 그런 또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등산에 앞서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내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의 산임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 이 산을 찾는 수도권의 등산객이 많아 졌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양평의 추읍산은 서울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이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고, 길도 좋고, 입산료도 주차비도 들지 않기에 자차를 이용한 등산객들이 쉽게 갈 수 있다. 더 큰 이유는 경의중앙선이 개통된 이후에 양평역에서 11.6km 떨어진 다음 역으로 원덕역(원덕리 소재)이 생겼기 때문이란다. 원덕역에서 하차하여 잠시 신내천변을 걸으면 등산로 들머리에 닿게 되니 오가기에 편하다. 주말이면 경의중앙선 열차는 등산객들로 가득한데, 이들의 대부분은 팔당역과 거기서 한 정거장 떨어진 운길산역에서 대부분 하차한다고 한다. 팔당역에서 내리면 근교 등산의 메카인 예봉산이나 예빈산에 오를 수 있고, 운길산역에서 내리면 수종사가 있는 운길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산은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어 연계산행도 가능하고, 그 때도 이 두 역을 오가면 된다. 그러므로 원덕역까지 오는 등산객의 수는 한정되고, 그 때문에 보다 한적한 등산을 할 수 있다보니 추읍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란다. 

그래서 난 자차를 이용하지만 집을 떠나며 원덕역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추읍산의 모양으로 아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양의 산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당연히 산수유마을에서 등산을 시작하려고 맘먹었지만... 원덕역 부근에서 접근할 수 있는 추읍산 등산로는 두 개이다. 하난 원덕역 출발이고, 또 하난 삼성리 출발이다. 그리고 삼성리와 원덕리는 신내천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우선 삼성리부터 들른 후 원덕리에 가기로 했다. 가까운 백운봉과 먼 용문산을 바라보며 양평쪽에서 달려가 지평면에 이르니 역시 추읍산의 모양이 용문산에 절하는 형상이 맞다. 

 

삼성리의 별내체험마을에 이르러 "소원나무"라 불리는 500년된 느티나무 뒤로 낯선 모양의 추읍산을 봤다. 마을 옆을 흐르는 신내천을 지나 등산로에 접어든다. 작은 산 하나를 지나면 곧바로 본격적인 추읍산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거기서 원덕리로 향하는 신내천변의 도로를 달려가는데, 이정표에 "거무내길"이라고 쓰여있는 걸 봤다. "거무내"는 흑천(黑川)의 순우리말이다.(삼성리 쪽엔 거무내마을도 있단다.) 그리고 이 흑천이 신내천의 다른 이름이다. 실제로 신내천 물을 보면 맑고도 깨끗한데, 일부 구간은 물색이 푸르다 못 해 검어보이기는 한다. 천 바닥에 흑색돌이 깔려 그렇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부근 산들의 그림자가 비쳐서 강물색이 어두워보이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삼성리에서 조금 더 가면 천 위로 그리 높지 않게 서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잠긴다는 잠수교 하나가 있고, 그 입구에 추읍산 이정표가 붙어있다. 잠수교를 건너면 곧 등산로 입구가 된단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신내천변 길이 큰 도로에 막히는데, 거기에 원덕교차로가 있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원덕역이 있다. 원덕역엔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주변 노상에 차를 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꽤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리고 원덕역 간판엔 추읍산이란 표기가 부기되어 있었다. 지자체가 원덕역과 추읍산을 그런 식으로 연결시켜 가는 과정인 듯하다. 

 

원덕역을 떠나 이날의 등산 시작점인 내리 산수유마을로 향하는데 그 거리는 6.7km였다. 중간에 충남 아산에 있는 동네와 같은 이름의 공세리가 있다. 거길 달리다 왼편의 불곡리 산길로 접어들면 금방 내리 마을 입구에 도달한다. 추읍산 등산로는 대략 5~6개(잘 사용되지 않는 것까지는 7개)가 되는데, 그 중 두 개는 산수유마을에서 시작하는 내리의 1코스와 주읍리의 3코스이다. 난 1코스로 올라가 3코스로 내려올 셈이었다.

 

주민들이 아직도 추읍산을 칠읍산이라 부르는 것은 이 산이 양평의 너른 들녘에 홀로 우뚝 서 있기에 그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산에 오르면 주변의 일곱 개 고을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칠읍(七邑)은 양평면, 개군면, 옥천면, 강상면, 지평면(전 지제면), 용문면, 청운면의 일곱 고을이다. 이번에도 확인했지만 동네주민들은 모두 칠읍산으로 부르고, 추읍산이란 이름을 싫어하는 느낌이었다.

 

600m도 채 안 되는 이 산은 동네 뒷산으로 만만히 보기 쉬운데 들녘에 홀로 우뚝 선 산의 모양 때문에 산기슭에서부터의 경사가 대단히 센 것이 특징이다. 내 등산 파트너 중 한 분인 김현목 선생께서 이 산에 오른 일이 있는데 "약간 과장해서 네 발로 기어올라야 하는 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산수유마을 뒤에 우뚝 선 산이라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한 번 올라가보리라고 생각했던 산이다. 그래서 김일환 선생의 추천을 받자마자 이 산에 오르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다.

 

내리 마을회관(마을정보센터)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거기서부터  추읍산이 있는 동네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된다. 내리는 전형적인 양평의 농촌이다. 동네에 가득한 수천 그루의 산수유나무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살기 좋은 동네로 알려졌는데, 실제 그 동네를 걷다보면 살기 좋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동네가 남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산에 둘러싸여 안온한 느낌이 들고, 그런 가운데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추읍산에서 발원한 작은 시냇물 소리가 들리니 그 평화로움 만으로도 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그곳엔 농촌 마을답지 않은 세련된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음을 보게 된다. 소위 전원주택들이다. 그런 주택들은 인터넷 부동산 정보에 의하면 시골집으로서는 결코 싼 편이 아니다. 호가가 5-6억 원이나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주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쨍한 햇살을 만끽하며 눈을 들 때마다 보이는 추읍산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며 진행했다. 왠지 모를 만족감에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추읍산 등산을 권한 페친 김일환 선생은 이 산을 등산하고 그 감상을 말해 달라셨는데 사실 추읍산은 내게 이미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난 이미 산수유마을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추읍산 등산을 동경하던 차이니 그 마을을 다시 걷고 추읍산을 대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추읍산은 내게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극강의 좋은 편견으로 만족감에 젖어있는 판국이니...^^;

 

마을 안쪽으로  끝까지 진행되는 산수유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끝자락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더 올라가다 보니 삼거리가 나타나고 오른편으로 갈라지는 길에 커다란 등산 안내도 간판이 나타난다. 거기서  등산로를 재확인하고  난 (당연히) 그 오른쪽 길로 향했다. 그러나 한 20여 분을 갔는데도 등산로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가 내리의 둘레길로 조성된 4.2km의 코스란 걸 알게 되었다. 그 길로 가다보면 왼편의 산으로 등산로가 있으리라는 기대로 갔던 것인데 중간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니 그 길의 끝이 산 아래로 향하고, 그 종착점이 내리 산수유마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등산 안내도 옆의, 올라가던 방향으로 직진해 보았다. 거기도 등산로 이정표가 안 나타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왼편으로 휘어지는 곳에 첫 번 째 이정표가 보였다. 거기서 좀 올라가 막다른 곳의 집이다 싶은 곳 앞에 다시 큰 추읍산 등산 안내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안내판 앞에 산으로 향하는 큰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마을에서 계속 이어지는 산수유길이 거기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진행하니 경사가 높아지는데 거기까지 전원주택 형태의 집이 있었다. 또한 그 앞의 언덕도 전원주택 단지로 개발이 되어 있었다. 그곳을 돌아오르는 산길은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였고, 차의 교행이 불가한 도로였다. 그 시멘트 도로가 언덕 위에서 끝이 났지만 그 위로는 오프로드의 임도가 계속되었다.  임도가 시작된 곳에 "바람의 숲"이란 산림욕을 할 수 있는 휴게시설이 있었다. 그것 이외에도 명상의 숲이나 진달래동산, 책읽는 숲 등이 같은 용도로 만들어 진 걸 볼 수 있었다. 거기 설치된 의자나 누워쉴 수 있는 기다란 등의자는 아주 고급스럽끼까지 했다. 그런 시설을 맘 대로 쓸 수 있는데 거기 그런 시설이 있는지조차 몰라 거기에 못 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그 실정이 아쉬울 정도였다. 

 

거기까지는 추읍산이 아니라 그 앞의 작은 야산이었는데 거기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추읍산 기슭은 언뜻봐도 상당한 경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니 생각한 대로였다. 경사가 상당했다. 그렇다고 하여 정말 엎드려 네 발로 올라갈 만큼은 아니었지만 '등산폴이 없으면 여길 어떻게 올라가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1.3km 정도 되니 기어서라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곳은 등산로 옆에 설치된 로프에 의지해 올라가야만 할 정도였다. 

산을 오르는 중엔 숲이 우거져 주변 풍광을 볼 수 없는 게 유감이었다. 어쩌다 한 번 내리나 향리 쪽의 풍경, 그리고 그 너머의 남한강이 조망되곤 했다.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추읍산은 전형적인 육산이라 다 흙길이다. 등산로가 넓지도 않은, 사람들의 흔적이 그리 많지 않은 소박한 등로가 계속된다. 햇볕을 가리기에 충분한 높이로 나무들이 솟아있다. 대개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류의 도토리나무들과 소나무가 지천이다. 가을에 접어든 후에 안 보이던 하루살이며 모기들이 달려드는 게 귀찮았다. 비가 며칠 온 후에 해가 나고 날이 더워지니 걔네들이 되살아난 듯하다.

 

바위가 거의 없는 흙길에 경사가 심하다보니 발이 미끄러지기 쉬운데도 이 산엔 나무계단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스테인리스 봉을 박고 거기 로프를 걸어놓은 구간이 몇 군데 있을 뿐이었다. 여하간 그 경사가 대단한 곳이 몇 군데 있어서 '이런 곳은 오르기는 그나마 편하다하겠는데, 내려올 때는 어떨까?' 싶었다.(나중에 하산시에 반대편 등산로에서 경험했는데 줄을 잡고서도 발이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여서 당황할 정도였다.^^) 여하간 추읍산은 아주 매력있는 산이었다. 만만해 보이나 결코 그렇게 보면 안 되는 산이었지만 600m에도 못 미치는 산이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산기슭의 몇 이정표는 "추읍산 정상"이라고만 쓰여있었는데, 중간부터는 남은 거리가 표시되고 있어서 좋았다. 짧은 거리라 해도 이정표에 거리를 표시해 두면 그걸 보며 안도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은 거리가 800m, 450m, 140m로 줄어들면서 사방이 트인 정상에서 주변경관을 즐길 생각이 들게 되니 그에 대한 기대심으로 계속 즐거웠다. 정상에 가까운, 정상이 40~50m밖에 안 되는 곳에 있는 헬기장엔 올해 들어 등산을 하며 처음보는 크지 않은 억새군락이 있었다. 햇빛을 등지고 하얗게 빛나는 억새로 인해 저만큼 떨어져있던 가을이 내 앞으로 돌진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추석이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이니... 

 

정상 바로 아래는 아주 큰 도토리나무가 서 있고 그 넓은 그늘 아래 쉴 수 있는 휴식시설이 있었다. 그늘 아래 통나무 여러 개를 엮어 만든 평상이 하나, 식탁과 의자 일체형의 야외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산객들이 점심을 먹기 편하게 배려해 놓은 것이다. 거길 지나 정상에 이르니 중앙 부위에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북동쪽 뒤로 큰 등산 안내도와 추읍산에 대한 설명을 써놓은 홍보판이 있었다. 하지만 아주 맑은 날이라 시야가 완전히 트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 주변의 나무들에 가려 조망이 막힌 부분이 많았다. 칠읍산으로 부르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특히 추읍산이 절한다는 대상인 용문산은 커다란 나무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헬기장까지 다가가서 살펴봤는데 그곳에서도 나무에 가려 백운봉이나 용문산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심지어 정상에서는 산 아래 가장 가까운 개군저수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헬기장에 가서 보니 저수지가 잘 보였다.) 멀리 여주나 양평이 살짝 보이고, 멀리 좌에서 우로 길게 흐르는 남한강이 잘 보이며, 용문면이 잘 보이는 건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원덕역 등은 나무에 가려 안 보였다.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떨어지면 그 땐 잘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거기서 정상 인증 사진을 찍은 후에 좀 전에 지나온 휴식시설에 가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평일이라 산을 오르는 동안 다른 등산객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 했다.(그건 하산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예정 대로 반대편 길로 들어섰다. 대개 어떤 산의 정상에는 여러 등산로가 있을 경우 그 앞에 이정표 하나씩을 세워놓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아니면 한 개의 통나무에 여러 방향의 이정표를 여러 개 달아매는 수도 있다. 하지만 추읍산 정상엔 그런 게 없었다. 그 역시 아쉬운 일이었다. 

 

정상에서 좀 내려간 곳에서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 이정표는 정상, 내리 방향, 주읍리 방향, 그리고 지제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지제면은 이미 2006년에 지평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는데 웬...????  심지어 추읍산 정상의 등산 안내도에도 지평면이 지제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 내리 방향의 등산로가 있으리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그게 좀 희한했다. 그리고 내가 갈 곳은 내리도 지제면도 아니고 당연히 주읍리였기에 이정표의 주읍리 표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길이 내가 생각하는 주읍리 방향이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오른편으로 내려가야할 텐데, 이상하게 그 길이 자꾸만 왼편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면서 로프가 설치된 분명한 등산로가 있고, 등산 안내도 간판도 서 있기에 가다보면 그 반대편으로 향하는 주읍리 방향의 등산로가 나오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가도가도 등산로가 계속 주읍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대편은 용문면 쪽이다. '설마???'하면서도 '벌판에 우뚝 선 산에서 가 봤자 얼마나 더 가겠냐?'는 편한 마음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사용한 지 오래 된 게 분명한, 가끔 나무에 가로막히기도 하는 임도가 나타난다. 어쨌든 큰 길이 나오니 안심이 되었고, 이미 되돌아가기엔 힘들어질 정도로 많이 내려왔기에 그냥 그 길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왼편 가까이 농막 같은 것이 보이는 가운데, 그 임도가 막혀버렸다.???? 도저히 뚫고 갈 수 없을 만큼 빽빽한 수풀이 가로 막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억지로 수풀을 헤치고 왼편 아래의 농막 쪽으로 내려갔다. 거긴 버섯농장이었다. 거기서 일하고 계신 노부부에게 물으니 그곳은 (용문면) 화전리라고 한다. 그리고 주읍리는 그 산의 오른편 너머에 있는데 그리로는 길이 없다고 한다. 꽤 멀리 돌아온 것이다. 내가 이정표에서 주읍리를 가리키는 팻말 쪽으로 내려왔음에도 그 길은 지제면(현 지평면)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주읍리로 밑을 향하지 않고, 추읍산 아래 야산의 능선을 거쳐 주읍리 방향이 아닌 그 반대편의 용문면으로 내려온 것이다. 지도 앱을 살펴보니 거기서 연결된 지방도를 통해 목적지에 가면 되는 것이었다.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지만 일단 지리 파악이 되니 맘 편하게 천천히 용문에서 지평면을 향한 70번, 341번 지방도의 지평로를 걸어 수곡리를 거친 후 주읍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오른편 위에 보이는 추읍산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거기서는 추읍산이 약간 홀쭉하면서도 길쭉하게 보였고,  정상부가 둥글지 않고 뾰족하게 보였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많이 달라지는 게 추읍산의 매력이었다. 수곡리에서는 느티나무와 소나무 등에 둘러싸인 수곡서원(水谷書院)의 멋진 모습에 끌려 거길 들러보기도 했다. 서원은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라도 멋진 환경 속의 지방문화재를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거길 떠나 조금 내려오다 오른편을 보니 무슨 능 같은 것이 보여서 그에 대한 관심으로 옆 동네길을 따라 그곳에 가봤다.(난 그런 데 관심이 많다.) 거기가 바로 수곡서원이 있게 한 향리의 문사, 치헌 권경유(痴軒 權景裕) 형제의 묘역이었고, 그곳엔 치헌단각(癡軒壇閣)이란 비석을 간직한 각이 서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해가 부쩍 짧아졌다. 오후 6시가 넘어 7시를 향해 가니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주읍리를 지나 개군저수지가 있는 향리를 거치는데 거기서 보는 주읍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석양에 물든 풍경이 되니 추읍산이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향리를 지나면서 어두워진 산간도로를 통해 출발지인 내리의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원래 추읍산을 내리에서 올라 주읍리로 내려왔다면 오르내리는 게 약 3km 정도이고, 주읍리에서 내리까지도 2~3km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에 걸리는 시간도 서너시간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가민(Garmin) 스포츠 시계에 기록된 결과를 보니 5:51:09로 거의 6시간이 걸렸고, 산행과 주변 도로의 트래킹 거리를 합쳐서 무려 18.64km를 걸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에 다시 주읍리의 3코스로 올라 내리의 1코스로 내려와 볼 참이다. 이틀만에 같은 산에 오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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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글쓴이 좋아요 이름
40 소개 [불편해소] 등산화 안쪽 텅(혀/tongue)이 말리는 문제의 해결 2 file 2021.10.20 1153 Dr.Spark 0 박순백
» 후기 양평 산수유마을 뒷산, 추읍산(칠읍산)에 오르다. file 2021.10.19 422 Dr.Spark 0 박순백
38 소개 우중등산 후 비에 젖은 등산화를 말리는 방법과 편리한 도구들 file 2021.10.14 1955 Dr.Spark 0 박순백
37 소개 워터 블래더(water bladder) 사용의 필요성, 구입 방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청소 도구 세트 file 2021.10.14 1009 Dr.Spark 0 박순백
36 후기 포천 백운산 및 도마치봉(주봉보다 더 높은 봉) 등산 2 file 2021.10.10 938 Dr.Spark 0 박순백
35 후기 북한강을 보러 간 화야산-고동산 종주(삼회리 사기막 출발) file 2021.10.09 534 Dr.Spark 0 박순백
34 후기 용문산 정상, 가섭봉을 다른 두 분과 함께... file 2021.10.07 283 Dr.Spark 0 박순백
33 리뷰 워터 블래더(수낭, 물주머니) 튜브 고정용 자석식 클립 file 2021.10.07 1286 Dr.Spark 0 박순백
32 후기 문호리 푯대봉과 알바 천국, 매곡산 file 2021.08.31 616 Dr.Spark 0 박순백
31 소개 [아웃도어 큐레이터] 외국인이 엄청 놀라는 한국의 독특한 등산문화와 풍경 BEST 5 4 file 2021.08.26 1478 Dr.Spark 0 박순백
30 후기 어드벤처 게임을 하듯 재미나게 오른 홍천 팔봉산(八峰山) 2 file 2021.08.19 353 Dr.Spark 0 박순백
29 소개 설악산 중청대피소 철거 논란 9 file 2021.08.19 1156 Dr.Spark 0 박순백
28 후기 경기도에서 가장 멋진 산, 운악산(雲岳山) file 2021.08.13 806 Dr.Spark 0 박순백
27 후기 축령산(祝靈山, 886.2m)과 서리산(霜山, 832m) 종주 file 2021.08.12 489 Dr.Spark 0 박순백
26 후기 경기오악(京畿五岳) 중 하나, 감악산(紺岳山) file 2021.08.09 649 Dr.Spark 0 박순백
25 후기 두물머리가 내려다 보이는 예빈산(禮賓山) 등산 file 2021.08.07 436 Dr.Spark 0 박순백
24 후기 철원(鐵原)의 명산, 금학산(金鶴山) file 2021.08.05 508 Dr.Spark 0 박순백
23 후기 운길산, 수종사, 그리고 등산 file 2021.08.05 263 Dr.Spark 0 박순백
22 후기 광주시-하남시의 진산(鎭山) 검단산 등산 file 2021.08.03 376 Dr.Spark 0 박순백
21 후기 아차산, 용마산 산행 - 가벼운 트레킹이 가능한 347m의 낮은 산 file 2021.08.01 339 Dr.Spark 0 박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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