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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에 관한 "질문"[스키 Q&A]에 하시기 바랍니다.
연재4】  후지모토 스스무의 시대 – 자오에서 제11회 인터스키 개최
(원문 http://shiga-zin.com/rensai/shigazin04.html)

        마루야마 쇼지의 은퇴

1971년 제9회 인터스키는 일본의 스키 레벨이 높음을 세계에 보인 대회가 되었다. 그 인터스키 후 일본인 스키어의 정점이었던 마루야마 쇼지는 그 해를 마지막으로 데몬 심사회에서 은퇴했다. 핫포네는 커다란 에이스를 잃게 되었다.

        삿포로 올림픽과 칼 슈랑츠

다음 1972년은 삿포로 올림픽의 해였다. 동양의 눈과 얼음의 제전은 개회식 전날까지 개최가 위태로운 사태가 되었다. 그것은 IOC 의 브란디지 회장이 스키의 알파인 경기 선수들 중 올림픽출장 자격을 줄 수 없는 프로가 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력 선수의 참가는 용인할 수 없다는 통고가 있었다.
지명된 팀의 수뇌들은 삿포로 그리고  IOC 와의 절충을 계속하여, 오스트리아는  선수단을 모두 철수하자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브랜디지 회장의 최종안은 “오스트리아의 수퍼스타, 칼 슈랑츠만은 허락할 수 없다” 라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그날 밤늦게까지 IOC에 굴복해야 하는가 계속 옥신각신 했다. “칼이 나갈수 없는 올림픽이라면 나도 안 나가!” 라는 의견에 칼은 조용히 말했다 “내일 아침 나는 여기를 (선수촌을) 나간다. 제군들은 전력으로 싸워 오스트리아에 메달을 가져오기 바란다” 눈물로 그 밤은 저물었다. 칼은 다음날 홀로 선수촌을 뒤로 했다. 주위를 둘러싼 기자들에게 칼은 이렇게 말했다. “가난뱅이에게 올림픽 메달의 기회가 있어도 좋은 것 아닌가” 라고.

(원문에는 문제가 된 칼 슈랑츠의 크나이슬 스키 광고 사진이 있습니다.)

        스위스팀의 대승리, 오스트리아팀의 부진

나는 삿포로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칼의 원통함을 생각했다. 온 세계 빅 타이틀을 전부 손에 넣은 칼이 단지 하나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올림픽 금메달, 그것에 도전할 최후의 기회를 몰수당했던 것이다.
칼 슈랑츠는 그 시즌에 최고로 컨디션이 좋았다. 12월부터 1월까지 월드컵의 4개의 활강에서 4연승, 35세를 넘은 칼의 레이싱 모습에 유럽인들은 “이것으로 칼의 최후의 금메달은 삿포로에서” 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칼이 없는 활강은 루시, 콜롬반*의 스위스의 에이스들이 원, 투 피니쉬, 칼이 없는 대회전도 이탈리아의 영웅 구스타보 토에니*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칼이 나올 수 없다면 나도 돌아간다” 고 울었던 안네마리 프롤*도 ‘컨디션이 무너져’ 스위스의 시골 소녀 마리테레즈 나딕*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
스위스 팀의 대승리, 오스트리아 팀의 부진, 그렇게 인상 지울수 있었던 삿포로였다.

(* Bernhard Russi, Roland Collombin, Gustav Thöni, Annemarie Moser-Pröll, Marie-Theres Nadig , http://en.wikipedia.org/wiki/Alpine_skiing_at_the_1972_Winter_Olympics#Downhill에서 확인했습니다.)

        핫포네에서 제8회 데몬스트레이터 심사회가 열림

삿포로 열기의 직전, 핫포네에서 제8회 데몬스트레이터 심사회가 행해졌다. 가르미슈 대표였던 젊은이들이 상위를 다퉜다.
북해도의 후지모토가 전 종목에서 안정된 역량을 보이고, 우라사의 프린스 히라가와 히토히코, 베테랑이 된 세키 겐타로의 추격이라고 하는 전개가 되었다. 그 최종일, 뜻밖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1위 히라가와, 2위 후지모토, 3위 세키 4위 橘 康男, 5위 요시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결과에 의문을 가졌다. 대회 후 모든 자료를 손에 넣어 각 종목의 점수를 검토해 보았다.
한 종목의 점수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위에 후지모토의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계속 하위까지 찾아도 믿을수 없는 낮은 점수였던 것이다. 무엇인가 작위가 느껴졌다. 취재를 반복하여, 나는 그 당시 스키저널 지에 연재되고 있던 <일본인의 스키>에 그 문제에 대해 썼다. 뭔가 작위가 있었다고 생각되나, 핫포 대회 사무국은 “숫자를 잘못 적은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 기사가 나간 직후 SAJ 의 모 이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가 씨가 말씀하신 대로 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의 개회식 전에, 성적의 정정을 발표할 생각입니다”라고.
후지모토는 전화를 걸어와 “선생님이 알아 주신 것이 기뻐서”라고 울었다.

        O사는 스키교사를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다음해인 1972년, 지난해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아닌 양 제 9회 데몬심사회가 진행됐다. 당시 데몬스트레이터 심사회 주변에는 기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O사의 스키를 신지 않으면 데몬이 못 된다” “데몬심사회는 O사의 운동회가 아니냐”라는 것이었다 .
바드 가스타인에 갔던 5인은 전부 O사 였고, 그 이후의 모든 데몬 심사회는 O사의 스키를 신은 남자들만의 경기였다. O사는 스키교사를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데몬 심사회 대회장에선 O사의 텐트가 세워져 사장은 쌍안경을 가지고 꼭 모든 선수들의 활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Y사를 신은 후지모토를 톱으로 하는 것은 뭔가 어색한 공기가 있다는 것이 엿보였다. 다음해부터 후지모토는 스키를 O사로 바꿔신고 출장했다.
1위 후지모토, 2위 세키, 3위 요시다, … (이하 10위까지 생략합니다.)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순위가 아니었을까. O사 스키이외의 스키를 신은 것은 3위에 들어간 알파인 레이서, 요시다의 N 사뿐이었다.
지난해 나에게 “성적의 정정을 한다”고 말했던 이사는 그 해 이사에서 제외되었다.

        후지모토의 3연승

스키를 바꾼 후지모토는 우승을 계속했다. 1972년 제9회부터 74년 11회까지 후지모토 스스무는 3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2위는 우라사의 세키 겐타로.
1975년 체코의 빈케타토리에서 열린 제10회 인터스키 파견 데몬은 후지모토, ….등 10명이었다.
제10회 인터스키는 새로운 지도법, 새로운 기술. 이론의 제안은 없이 인터스키운동이 25년을 경과하여 새로운 흐름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테마가 주어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빈케타토리에서 다음의 1979년 제 11회 인터스키가 일본의 자오에서 개최될 것이 정해졌다. 3년마다 개최되던 것이 11회부터 4년 마다 하기로  되었다.

        데몬심사회중지의 움직임

72년 가을 흘러나온 데몬 심사회 폐지라고 하는 쇼킹한 뉴스는 일본의 스키계를 뒤흔들었다. 데몬심사회는 72년 삿포로 (올림픽) 의 해에는 제10회를 누적하여 일본 스키계 최대의 행사가 되어, 일반 스키팬에 있어 놓칠 수 없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리고 기초 스키의 전일본 선수권 대회라고 불리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 행사를 둘러싼 무드는 화려한 것이었다.
9회 데몬 심사회를 마친 72년 가을, SAJ 의 이사회에서 당시 들끓고 있던 데몬심사회에 대한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격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 비판은 요약하면 다음의 3개로 좁혀진다.

1) 상업주의와의 유착이 두드러져 건전한 아마추어 스포츠를 왜곡시키고 있다.
2) 채점의 방법이 불명확하여 순위, 평가에 작위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3) 선발된 데몬의 SAJ 조직내의 자리매김이 불명확하다.

라고 하는 것. 그리고 중간적인 의견으로서 “데몬심사회가 행해져 온 10년간 기초스키계가 충분히 발전하여, 이젠 이런 행사는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라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
삿포로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생각한 이사들이 폐지론을 주창, 교육본부의 이사들이 존속을 주장했다.
9월3일, 스키연맹이사회는 데몬심사회의 폐지를 결정. 그 뉴스는 일본의 스키계를 동요시키는 대경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결정은 3주간의 시간이 지나 철회되었다. 거기에 뭐가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        제10회는 후지모토 스스무의 압승

뭔가가 변할거라고 기대되었던 제10회 데몬심사회는 3월 하순의 핫포네에서 개최되었다. 거의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던 제10회였지만, 예선의 종목, 방법이 변하고, 제1일째의 예선 5종목의 성적상위 60인이 본선에 출장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선 종목은 슈템 크리스티니아로부터 패럴렐 크리스티니아. 패럴렐 크리스티니아로부터 웨데른이라고 하는 두 개를 조합하는 것이 되어 꽤 가혹한 것이 되었다.
쾌청한 가운데 예선이 끝났으나, 그 밤부터 핫포네는 봄바람이 불어닥쳤다. 악천후에 의해 본선의 9종목은 4종목이 취소. 최소된 종목은 급사면 패럴렐. 중사면 웨데른. 게렌데 슈푸룽. 악설 활강이었다. 어떤 종목도 과거의 데몬 심사회에서 명승부라고 불릴만한 기억을 남겨, 명수라고 불리는 남자들의 이름을 깊이 새길 종목이었다.
어마어마한 비가 내리는 가운데 5종목이 소화되어 1위 후지모토, 2위 세키 겐타로, 3위 사에구사 카네미치(三枝兼径)가 되었다. 1, 2위 차는 24점. 후지모토의 압승이었다. 6위에 알파인 경기의 세계에 있던 핫포의 마루야마 다카후미가 되었다.

        스스로 믿은 길을 걷기를 계속한 요시다의 은퇴

이 대회에서 극히 특이한 경력을 가진 데몬스트레이터가 은퇴를 표명했다. 제6회대회부터 이 10회까지 대체로 상위에 들었던 요시다 였었는데, 점차로 다리힘이 약해진 것을 보여 9위로 후퇴, 이 해 요시다는 36세가 되어 있었다.
홋카이도 후라노 에서 쌍동이 형제로 태어난 요시다는 형인 다케시가 와세다, 동생인 츠요시가 니혼 대학 에 진학, 형제가 같이 전일본 대학, 전일본, 국대에서 겨루었고1960년 스쿼 밸리 올림픽 특훈 지정 선수가 되고, 올림픽을 목표로 했었다. 스쿼 발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요시다는 68년 자비로 아스펜 인터스키를 견학한다. “세계는 변한다” 요시다는 그렇게 확신하고 귀국했다. 그 때가 30세. 아스펜의 데몬 스트레이터와 별도로 제5회 데몬 심사회에 출장 12위가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스키에 심하게 치우쳐 있던 일본의 기초 스키계에서 경기 스키로부터 들어와, 그리고 프랑스 스키 기법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요시다의 스키는 꽤 이질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요시다는 스스로 믿는 길을 걷기를 계속했다. 첫 출장한 68년 5회 12위였던 요시다는 계속 6회 4위, 7회 4위, 8회 6위, 9회 3위란 상위를 랭크 하길 계속하여,  10회 대회까지 일본 스키계에 영향을 주어왔다.
요시다는 가르미슈 인터스키에 참가한 후, 일본팀을 떠나 샤모니의 ENSA 를 방문, 거의 1년간 프랑스의 스키를 배워, 프랑스 스키에 대해 다시 확신을 가지고 귀국한다.
요시다의 스키는 당시 일본의 스키계에서 연구되던 신기법, 곡진계 기법에도 통하는 것이었다.

        자오 인터스키를 향하여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본토 일본에서 개최된 자오 인터스키에 나가고 싶다. 그것은 스키 타는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꿈이 주어지게 된 것이었다. 빈케타토리의 75년부터 4년간 데몬 심사회는 자오 인터스키를 향한 대표권 다툼이 된다.
후지모토가 가면 세키가 추격하는 그러한 도식의 가운데 새로운 싹이 자라고 있었다. 핫포네의 마루야마 다카후미, 사에구사, 우라사의 야마다 히로유키, 그리고 도쿄에서 출장한 마스터 치하루, 혼마 히사시 들이 있었다.
후지모토와 톱을 다투고 있던 세키 겐타로도 은퇴했다. 홋카이도에서 출전한 데모쟁이 후지모토와 핫포네 및 우라사의 싸움은 끝나고, 자오 인터스키를 향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것이다.
자오 인터스키 이전의 1977년, 제 14회 데몬 심사회의 상위 랭킹은 마루야마 다카후미, 사토 마사아키, 야마구치 마사히로, 야마다 히로유키, 나카무라 준이치 등이었다.

        축제, 그리고 국제 친선은 자오의 인터스키에서 멋지게 결실을 맺었다

1979년 제11회 인터스키가 일본 자오에서 열렸다.
그 인터스키는 과거 열 차례의 인터스키와 전연 다른 것이었다. 세계 스키를 타는 나라의 지도자, 연구자가 모여 스키에 관해 정보를 교환하고, 스키의 기술을 비교하여 지도이론을 다투는 장이라고 이해되었던 면모는 자오에서 거의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온 세계의 스키 관계자들이 4년에 한 번 모여 친목을 다진다는 측면만이 눈에 띄는 축제가 되었다.
일본의 스키 관계자들의 “인터 스키는 기초 스키의 올림픽이다” 라고 하는 설명을 납득하여 현지 야마가타 현 야마가타 시, 그리고 자오 온천 촌에서 이 행사를 지원하게 되었다.
눈위에 설치된 데몬스트레이션 슬로프 위에 각국이 겨루어, 화려한 스키 쇼가 전개되고, 밤의 온천 거리는 온 세계의 스키교사들이 교우하는 장이 되었다. 그러한 교우의 고리 가운데 다수의 일본 여성들이 있었다. 국제친선, 그것은 자오 인터 스키에서 멋지게 결실을 맺었다.

        후지모토가 이끄는 집단을 “후지모토 마굿간”이라고 부르게 된다

제11회 인터스키에는 일본인 데몬스트레이터는 40명이 인정되어 30명의 SAJ 데몬과 10명의 SIA 데몬이 참가했다. 그 30명 가운데에 현역에서 물러난 후지모토가 만든 몇 명의 데몬스트레이터가 있었다. 사토 마사토, 요시다 코이치 들이었다.
후지모토는 데몬스트레이터를 은퇴한 후, 데몬을 양성하는 학원(塾숙)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데몬을 목표로 하는 스키어들이 모여 데몬이 되기위한 기술을 철저하게 주입하고 있었다.
어떻게 활주하면 고득점을 끌어낼까, 세밀한 부분까지 엄격하게 지도하고 있었다. “턴하는 중에 폴의 링을 설면으로부터 높이가 어느 정도라면 좋을까” 라고 하는 정도까지, 주의시키는 소리가 날아다녔다. 젊은이들의 스킹은 양식미를 궁극적으로, 정확하게 이쁘게 완성해 가고 있었다.
1979년 자오 인터스키, 이후의 데몬심사회의 상위는 후지모토 문하의 스키어들에 의해 점해지는 모양새가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후지모토가 이끄는 집단을 “후지모토 마굿간” 이라 불리게 되었다.

           일본인은 스키를 즐기는 방법을 유럽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구하고 있다.

자오 인터스키 개최 기간중 하루는 프란츠 호피힐러 교수를 안내하여 잔게 언덕 (ざんげ坂)에서 지죠오 산정까지 갔다. 그 때 교수는 일본의 일반 스키팬들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SAJ 의 연수회 등에 불려와 방일했던 때의 일본의 스키교사들의 기술을 알고, 생 크리스토프에 간 일본인 스키교사를 가르쳤던 교수는 일본의 일반 스키어들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진, 일본인은 어째서 그렇게도 넘어지는 건가, 뭔가 일본인 만이 다른 골격을 가진게 아닐까 하고 생각되네”라고 말하며 잔게 언덕의 모글 위에서 넘어지고 있는 스키어들을 어이없이 보고 있다. 거기에는 모글의 사면 위에 넘어져 깔깔 웃고 있는 일본의 스키어들이 있었다. “어째서 넘어지면서 웃고있는 건가” 교수에겐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었다.
“일본인은 스키를 즐기는 방법을 유럽인들과 다른 방향으로 구하고 있다” 그것이 교수의 일본의 스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        인터스키 운동의 원점으로 돌아가

그 자오에서 다음의 제12회 인터스키가 이탈리아의 섹스텐에서 개최할 것이 결정되었다.  40년을 유럽의 스키장에서 사는 나도 모르는 섹스텐이었다.
이탈리아의 대표, 아잉크 교수가 말했다. “인터스키는 이런 축제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다음의 인터스키를 인터스키 운동의 원점으로 돌리기 위해 준비한다” 라고.



Commen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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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선 2012.01.28 19:43
    [ 1629kk@hanmail.net ]

    올림픽 레이서 이야기도 있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오가사까 안신으면 데몬 못되는때도 있었나 봅니다.

    일본이 예전에 ``채점의 방법이 불명확하여 순위, 평가에 작위가 끼어들 여지,,등등으로 데몬 제도 폐지를 결정했었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그들 조차도 큰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수많은 고민을 했었나봅니다.

    일본은 데몬을 양성하는 학원까지 생겨서 데몬이 되기 위해 스키타고 데몬이 되기 위한 스킹을 만들고 교육했다는데 우리는 주로 레이서 출신들이 데몬이 되

    고 탑 데몬이 된점은 많이 다르네요.

    일본 애들 ``턴하는 중에 폴의 링을 설면으로부터 높이가 어느 정도라면 좋을까” 라고 하는 정도까지, 훈련시킨다면 ,, 자꾸 이렇게 큰 기준이 아닌

    작은 부분 보여주는 쪽만 발전하다간 농담으로 나중에 오른턴 할때는 오른쪽 콧구멍으로 주로 숨을 쉬고 왼턴은 왼쪽 콧구멍을 쉬라고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좀 큰 기준으로 타고 평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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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백 2012.01.30 12:19
    [ spark@dreamwiz.com ]

    지난번 스타힐에서 김윤식 선생님을 만나니 스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무지 많으시더군요.^^


    - Avery Brundage

    미국인인 애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는 육상 선수로서 세계육상연맹 회장을 한 이후에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지요. 그 사람은 아마추어리즘을 마지막으로 고수한 IOC 위원장인데, 1972년 삿포로 올림픽에서 칼 쉬란쯔를 퇴출시킨 것에 대하여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 올림픽 이후에 올림픽이 오픈 대회가 되는데 기여(?)한 사람이지요.


    - Karl Schranz on Kneissl(오스트리아 키츠뷔헬에서의 슬라롬 경기 중)

    칼 쉬란쯔는 낄리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지만 불세출의 선수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요. 1968년도 그레노블 올림픽의 회전 부문 우승자가 그라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나 프랑스의 텃세로 기문 하나를 잘못 지나친 것으로 생각되어 실격을 했어야 할 낄리는 1위가 되고, 칼 쉬란쯔는 말도 안 되는 실격 처리가 되고...(칼이 경기할 때 누가 코스를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그는 2nd run을 했고, 낄리보다 시간이 앞섰는데 프랑스 심판이 시비를 걸어 실격 처리.-_-)


    - 칼 쉬란쯔가 우승한 줄 알고...-_-(왼편 나중에 은메달을 딴 오스트리아의 Herbert Huber, 중간 칼 쉬란쯔, 오른편 나중에 금메달로 확정된 된 낄리. 이 대회의 동메달도 오스트리아의 Alfred Matt였음. 원칙 대로라면 금, 은, 동메달을 오스트리아에서 휩쓸게 되는 일이 생겼을 듯.)


    - Austrian Ski Super Stars

    왼쪽부터 Hias Leitner(1960 스쿼밸리 올림픽 회전 은)
    Anderl Molterer(1956 코르티나 담페쪼 올림픽 GS 은/DH 동)
    Toni Sailer(1956 올림픽 최초의 알파인 3관왕)
    Franz Kneissl(크나이슬 스키 창업자)
    Karl Schranz(1964 인스부르크 올림픽 GS 은, 월드컵 우승 DH 12회, GS 9회, SL 2회, 월드 챔피언쉽 금 3개, 은 1개, 동 1개)
    그리고 Ernst Hinterseer(1960 스쿼밸리 올림픽 SL 금/GS 동, 스키어/엔터테이너 한스 힌터지어의 아버지).

    Karl Schranz Today - 호텔 칼 쉬란쯔
    http://www.hotelkarlschran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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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2012.01.31 05:59
    [ goldof7seas@gmail.com ]

    강정선 선생님, 원글 연재를 하신 시가 진 선생은 원래 유럽의 경기 스키 취재를 수 십 년 하신 분으로, 점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분입니다. 원문엔 그냥 'O' 사 스키판이라고 했는데 어찌 오가사까 판이라고 단정하셨는지요? ^ ^;
    '...폴의 링이 설면으로부터...' 이러한 것은 원래 해외로 파견할 목적의 선발전이 내부 경쟁이 심해지면서 너무 자세, 양식을 따지는 것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또 이런 걸 추구하는 걸 좋아하지 않나 합니다.
    내용 중의 '데몬 심사회'는 결국 나중에 이름을 바꾸어 '기술선'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나옵니다. ‘데몬 심사회’가 스키 강사 및 순수 아마추어 스키어들이 참가하는 행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경기인 출신이 아닌 참가자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압니다. (경기스키 선수들이 기술쪽으로 넘어오는 얘기도 나중에 나옵니다.) 또, 현재도 일본 기술선 상위 입상자들 중 몇몇은 일본 국내 레이싱 경기도 병행하는 것으로 듣고 있고요...
    한국 기선전은 17년 전쯤엔 경기인 출신에게 보이지 않게 불리함이 작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냥 들은 얘기고, 옛날 얘기이지요. ^ ^;

    박사님, '역사를 알아야 현재가 보인다.' 고 어떤 偉人 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는데요...? ^ ^ 보충해 주신 내용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브런디지 위원장은 참 무섭게 생기셨습니다.

    칼 쉬란쯔의 1968년 경기 장면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우선 참 멋있습니다. 전에 테니스 캐논 서버들 시절에 ‘그들은 농구공으로도 서비스 에이스를 할 것이다!’ 라는 상대 선수의 푸념이 떠오르는데요, 이쪽으로 바꾸면 ‘그들은 205cm 작대기 스키로도 카빙을 했던 것이다!’ 가 될 것 같습니다. ^ ^

    칼 쉬란쯔와 장 끌로드 낄리가 함께 한 사진은 그대로 작품이네요. 자세히 보니 낄리가 목에 건 고글 밴드가 그대로 프랑스 국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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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백 2012.02.02 11:47
    [ spark@dreamwiz.com ]

    칼 쉬란쯔의 사진은 회전 경기여서 그런데, 실제로 그 당시의 컨벤셔널 스키를 타는 모든 GS 선수들의 사진을 보면 아주 완벽한 카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French Technique 관련 스키 서적에 보면 카빙에 관한 챕터가 따로 있었고, 그건 이미 오래된 기술입니다. 단지 카빙 스키가 출현해서 카빙을 더 쉽게 만들었을 뿐이지요. 그리고 당시 스키 선수들이 사용하던 스키는 저와 같은 아마추어의 205cm 길이가 아니라 대개 230-240cm 정도의 길이였습니다.

    세베(Cebe) 고글 밴드가 프랑스 국기인 것처럼 저 낄리의 오징어 같은 "낄리 특유의 털모자"의 아래 부분에 있는 것도 삼 색의 프랑스 국기입니다. 그 털모자는 지금은 없어진 Demetre라는 상표의 100% 울 스웨터 전문회사 제품인데, 낄리 만을 위해서 만들어 준 모자입니다. 낄리를 좋아하는 저도 저 모자를 썼었습니다.^^

    지금도 Demetre가 살아 있는가 보려고 구글 검색을 해 봤는데 역시 없는가 봅니다.-_- 참조: http://goo.gl/wl07M 아래 검색 결과에서 보이는 것처럼 빈티지 울 스웨터로 이베이에서나 팔리고 있는가 봅니다.ㅜ.ㅜ 한 때는 세상을 풍미하던 최고의 스키복이었는데...(60~70년 대에는 스웨터와 쫄바지가 스키복 패션이었습니다. 그러다 원피스 스키복, 투피스 스키복으로 발전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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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백 2012.02.02 12:07
    [ spark@dreamwiz.com ]

    아래 두 개의 사진 중 위의 것은 왼쪽이 젊은 시절의 접니다. 미즈노 스웨터 스키복을 입은...
    그 왼팔 팔굽 부분을 보세요. Demetre의 팔굽과 똑같은 모양이지요? 그 부위가 잘 굽어지고,
    넘어져도 안 아프게 패딩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웨터를 입고 스키를 탔다는 게 안 믿어지실 겁니다.^^ 근데 그런 낭만적
    이면서도 우아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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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2012.02.03 17:52
    [ goldof7seas@gmail.com ]

    박사님은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안 변하셨네요. ^ ^ 멋있습니다.

    패딩 스웨터 스키복을 보니까 저도 하나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81년도 국민학교 6학년 때 어머니가 신세계 백화점에서 사다 주셨었지요. 그 때 제게 스키는 다른 우주 얘기였지만...

    또 하나의 기억은, 88년 종로학원에서 재수할 때 '종합 영어의 맥'의 저자인 이광용 선생이 영어 수업에 유사한 옷을 입고 들어오셨는데, 화려한 그 옷이 칙칙한 교단에 어울리지 않아서였는지, 재수생들이 한꺼번에 와 - 하고 웃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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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칼럼 '기술선~인터스키로부터 일본의 스키를 말한다' 시가 진 연재 번역 5 【연재05】가르미슈부터 자오까지. 데몬스트레이터 심사회의 변질 http://shiga-zin.com/rensai/shigazin05.html (이 번역은 문제가 많은 번역임을 미리 알려드립... 2 김윤식 2012.02.05 2262 65
» 칼럼 '기술선~인터스키로부터 일본의 스키를 말한다' 시가 진 연재 번역 4 연재4】 후지모토 스스무의 시대 &#8211; 자오에서 제11회 인터스키 개최 (원문 http://shiga-zin.com/rensai/shigazin04.html) &#61557; 마루야마 쇼지의 은퇴 1... 6 김윤식 2012.01.27 2773 73
101 칼럼 '기술선~인터스키로부터 일본의 스키를 말한다' 시가 진 연재 번역 10 【일본의 스키를 말한다 연재10 시가 진】 「양식미」 에서 「속도」 스키로 원문은 http://shiga-zin.com/rensai/shigazin10.html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원... 1 김윤식 2012.02.28 2222 62
100 칼럼 '기술선~인터스키로부터 일본의 스키를 말한다' 시가 진 연재 번역 06 【연재06】 SAJ SKI교본을 보다 (그 1) 원문은 http://shiga-zin.com/rensai/shigazin06.html ※ 연재 06은 연재05에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며, 별도의 시점에서 집... 김윤식 2012.03.07 2091 44
99 정보 '2012 일본 니카타현(Niigata) 스키 세미나 참석 후기. 2012년 10월 10일(수)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2 일본 니카타현니가타현(Niigata , 新潟縣) 스키세미나에 초정을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일본 니카타현(Nii... 조성민 2012.10.11 2724 19
98 정보 '09 Salomon X3 RC CS Boots Review . 4 반호석 2009.01.30 7339 688
97 정보 '09 Salomon X3 LAB Boots Review - 새로운 LAB 부츠. . 반호석 2009.02.10 5468 334
96 공지 '07/08 피닉스(Phenix) 장갑 FSC1602 - 가볍고, 깔끔한 디자인과 타이트한 피팅감 '07/08 피닉스(Phenix) 장갑 FSC1602 - 가볍고, 깔끔한 디자인과 타이트한 피팅감 12월 5일 스타힐로 야간 스키를 타러 갔었습니다. 스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려... 8 조성민 2007.12.08 5546 479
95 공지 '07/08 HEAD iSuperShape Ski - 부드러움과 우수한 그립력의 회전계 데모스키 '07/08 HEAD iSuperShape Ski - 부드러움과 우수한 그립력의 회전계 데모스키 제가 요즘 목동 스키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숏턴 시즌 강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5 조성민 2008.01.14 6229 497
94 정보 '06 여름 뉴질랜드 스키투어(김건수 데몬과 함께 하는) 겨울 시즌이 끝나고, 다시 여름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여름을 겨울로 지내기 위해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 이것만으로는 또 다시 시즌을 맞기에는... 7 천만희 2006.04.15 4285 281
93 시승회 "피스랩 A to Z" - 무료강습회/ 8월 9일~10일 2 file 피스랩 2019.08.01 672 3
92 정보 "서울대 스키부 60년사" 출판 file 문병천 2023.01.30 996 0
91 이벤트 "김현민 인터스키스쿨" 스키어를 위한 티셔츠 제작!^^ 1 file 김현민 2018.09.07 1069 0
90 칼럼 <펌글>스키꾼 스키타령-Homo Smiss들의 스키입문 [신입과 선입의 스미스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처음부터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스키를 잘 타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처음으로 스키를 잘 타려... 4 박민구 2006.11.06 6021 701
89 칼럼 <스키꾼 스키타령> Homo Smiss들의 통과의례 -- '스미스캠프' [신입과 선입의 스미스 여러분들께 드리는 글] 어제는 개장식, 오늘은 개강식이라야 하는데...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저마다 스키장에 도착하셔서 출장 채비에 부... 309 안영빈 2006.11.13 3454 71
88 정보 <부산> 프로페셔널 스키테크닉(Professional Ski Technique - 프로스키) 이론강습회 안녕하세요 드림스키어 김창수 입니다. &lt;10월 2일에 열린 제 2차 프로페셔널 스키테크닉 이론강습회&gt; 올해는 전무후무하게 10월에 시즌오픈이 되는 신기록을 남... 3 김창수 2010.11.03 3109 215
87 정보 <부산> 프로페셔널 스키테크닉 이론강습회 시즌2 "참가자 명단" 본 행사는 지난 10월 28일(금)에 이미 끝난 행사입니다. 자꾸 참가 신청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셔서 부득이하게 내용을 지웁니다. 감사합니다. 드림스키어 1 김창수 2011.10.24 2290 69
86 정보 <베어스타운> 프로페셔널 스키 테크닉(Professional Ski Technique - 프로스키) 이론+실기 강습회 안녕하세요. 드림스키어 김창수입니다. &lt;성황리에 부산에서 개최된 프로페셔널 이론 강습회 in 부산&gt; 이제 다음주면 서울근교의 스키장도 오픈할것 같고 본격적... 2 김창수 2010.11.21 2830 208
85 정보 <동영상>늦었지만 못가보신 분들을 위해 타이거월드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7월 6일과 7월20일 두번의 모임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잘 봐주세요~~~~ 더위야 물럿거라~~~~ 얼~~쑤!!! ^___^ &lt;object type='application/x-s... 신교봉 2008.07.27 3866 431
84 정보 <3차> 프로페셔널 스키테크닉(Professional Ski Technique - 프로스키) 이론강습회 안녕하세요 드림스키어 김창수 입니다. &lt;10월 2일에 열린 제 2차 프로페셔널 스키테크닉 이론강습회&gt; 이제 10월도 중순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1, ... 3 김창수 2010.10.12 2594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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