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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찬의 스키 오디세이] 진짜 스킹은 '칼질'이 아니다.

 

 

⑨ 상급 스키어와 3D 움직임

 

       기사 원문보기:http://v.media.daum.net/v/20180111070304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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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설 백컨트리 스킹을 위해 설산을 오르는 정우찬 프로. /사진=양재명 작가

 

 

캐나다에선 카빙을 가르치지 않는다. 스키 기술의 꽃, 카빙을 안 가르친다니 웬말인가. 스키를 조금밖에 모르는 이라도 귀를 의심할 것이다.

한국의 스키장에서 스키의 고수라 불리려면 급사면의 슬로프에서 멋진 카빙라인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카빙'이란 스키의 에지가 설면을 파고 들어가 눈 위에 날 자국을 그리며 스키를 타는 기술이다. 나무판 위에 날카로운 조각칼로 선을 그은 듯한 자국을 만든다는 뜻이다.

 

카빙은 스키 제작술과 궤를 함께한다. 스키의 가운데 부분을 모래시계 모양으로 좁게 만들어 사이드컷이라 부르는데 이는 1990년대 말 '슈퍼 사이드컷 스키'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부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이후 거의 모든 스키에 적용됐다. 한국에선 처음부터 '카빙스키'로 불리며 도입됐다.

따라서 이 스키를 신으면 누구나 카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스키어들이 카빙을 추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칼질'을 누가 더 잘 하느냐가 고수의 판별 기준이 된 셈이다.

반면 필자가 16년간 근무한 캐나다 휘슬러에서는 학생에게 카빙 턴을 가르치지 않는다. 휘슬러는 북미 최고의 스키장이자 세계 3대 스키장의 하나로 스키의 성지다.

 

◆블랙 다이아몬드와 카빙

 

캐나다에선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우선 학생 수준을 레벨1부터 레벨6까지 구분한다. 레벨1은 처음 스키에 도전하는 사람이고 레벨6은 한국의 최상급 스키어에 해당한다. 레벨6이 스키 강습을 받는 이유는 대부분 '블랙 다이아몬드'를 정복하기 위해서다.

북미의 스키장에선 슬로프의 난이도 표시를 초급자는 녹색 동그라미인 '그린 서클', 중급자는 청색 사각형인 '블루 스퀘어', 상급자는 검정 마름모인 '블랙 다이아몬드'로 나타낸다. 따라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탄다는 것은 스키 고수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블랙 다이아몬드를 한국의 상급자 코스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한국의 상급자 코스는 휘슬러에서 대개 중급에 해당한다. 경사가 급해 블랙 다이아몬드로 분류되더라도 고르게 정설돼 있으면 블랙 다이아몬드로 여기지 않는다.

블랙 다이아몬드 코스는 대부분 정설이 안 된 급사면이다. 수많은 스키어가 스키를 타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자연 범프, 정설이 안 된 파우더, 나무 사이로 타는 트리스킹 코스 등이 블랙 다이아몬드에 펼쳐져 있다.

 

상급 스키어 대부분은 이런 지형에서 스키를 즐긴다. 정설 사면에서의 스킹에 관심이 적다 보니 카빙을 향상시킬 이유도 없고 기회도 적은 것이다.

학생이 원하지도 않는 카빙을 가르친다며 고르게 정설된 사면에서 스키를 타다간 레벨6 고객에게 원성을 산다. 그래서 정설 사면에서는 몇가지 필요한 연습방법을 소개하고 이를 연습시킨 뒤 블랙 다이아몬드로 안내한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블랙 다이아몬드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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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설 스킹을 즐기는 정우찬 프로. /사진=양재명 작가

 

 

◆낯선 환경과 3D 움직임

 

블랙 다이아몬드 지형에서는 스키를 3D(3차원)로 움직여야 한다. 전후·좌우·상하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울퉁불퉁하고 파우더로 덮인 사면에서 스킹을 할 수 있다. 좌우의 움직임이 중시되는 카빙 테크닉에 편중된 스킹을 하면 전후와 상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울퉁불퉁한 사면에서 밸런스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이런 환경적 차이와 이에 따른 기술의 차이를 알고 나면 '캐나다에선 카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필자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스키 환경과 기술은 외국과 많은 차이가 있다. 차이가 많다는 것은 한국의 스키어가 경험할 수 없는 낯선 것이 많다는 의미다. 낯선 환경에선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카빙만을 연습한 스키어는 정설사면에서는 멋지게 활주하지만 상급자 슬로프인 블랙 다이아몬드에선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설로 덮인 광활한 설원에서의 스킹을 꿈꾸는 스키어가 생각보다 많다. 정설된 사면에서만 스킹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한계 짓지 않은 이들이다. 하지만 꿈은 대부분 꿈에서 그친다. 부드러운 파우더에선 그토록 갈고 닦은 카빙이 별 소용이 없어서다.

 

한번 도전했다가 흰눈을 온몸에 두른 눈사람이 되고 나면 상급자라는 자존심은 무참히 꺾인다. 어떤 이는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해외스키장의 파우더나 블랙 다이아몬드에서 절치부심하는 반면 어떤 이는 정설 사면만을 찾아 '편식' 스킹을 하기도 한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스키의 본원적 출발점을 돌이켜 본다면 판단의 기준은 바뀔 수 있다. 스키는 눈 덮인 자연의 한복판에서 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즐기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스키어라면 카빙만 연습할 것이 아니라 슬로프 한쪽에 조성된 모글 코스에도 도전할 것이다. 또 눈이 오는 날이나 뭉친 눈에서도 안정된 스킹을 시도할 것이다. 즐겁게 스키를 즐기다 보면 전후와 상하 움직임이 좋아진다.

새로운 스키환경과 문화를 겪고 싶은 스키어는 이런 3D 움직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세계 어느 스키장에서나 엑스퍼트 스키어로서 설원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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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찬 프로(스키칼럼니스트, CSIA 레벨4)

 

☞ 본 기사는 <머니S> 제522호(2018년 1월10일~1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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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tzologo.jpgtop_img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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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UN 2018.02.14 22:57
    공감! 100%!
    글도 쉽게 잘 쓰시는군요.
    이런 내용이 더 널리 전파되면 좋겠습니다.
    "편식" 재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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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찬 2018.02.19 17:33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글인데 잘 이해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많은 스키어들이 보다 다양한 환경을 접하고, 스키를 즐겁게 탄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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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진개 2018.02.19 11:17
    저도 공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상급자가 되기 위해서 카빙숏턴에 너무 큰 노력을 들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분도 글에 올리셨지만, 선수나 데몬 분들 제외하곤 최상급코스에서 카빙숏턴으로 자유자재로 속도조절하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무주 레이더스 상단 같은 최상급코스 전 구간을 쉬지 않고 카빙숏턴으로 완주하시는 분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속도때문에 중간에서 한두차례 쉬고 내려오시죠. 중상급코스에선 숏턴보다 카빙으로 미들턴이나 롱턴 쏘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데 굳이 카빙숏턴으로 느리게 내려올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구요.
    말씀하신대로 다양한 설질의 블랙다이아몬드 최상급코스에서 자유자재로 속도조절을 하면서 내려오는 것이 진정한 아마추어 상급자의 척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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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찬 2018.02.19 17:39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키를 즐겁게 타자'는 것이 제 스키철학입니다. 스키를 즐기는 방법은 많습니다. 스키를 즐기기에 한국의 환경적 제약이 많다면,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요즘 시대에 굳이 한국에서만 타야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러한 흐름은 점점 보편화 될 것입니다.
  • ?
    NeoZeppelin 2023.02.02 23:53

    올시즌 가장 즐겁게 탄 스킹이 바로 폭설 온 비발디에서의 이틀 이었습니다

    올마운틴과 가벼운 모글, 두대의 스키로 엉망이 된 상급, 최상급 슬로프를 슬렁슬렁 꿀렁꿀렁 폴짝폴짝하며 탔는데 그렇게 재미날수가 없었습니다

    시즌 다 가기 전 또 한번의 폭설을 기대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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