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하나의 아픔
연이의 49제.
특별한 행사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이별해야 하는 날,
떠나 보내야 하는 날이라니,
'그래야겠지.' 생각하면서도
실제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세월로써 치유될 아픔이지
인위적 처방이 있을 수 없다.
그날 받은 오래간만의 전화 한 통.
윤 PD님과의 반가운 통화.
"소식 들었지요.
마음 아프시겠어요.
세월가야 덜해 지지요.
잊혀질 리 있나요?
저도 동생을 잃었었는데...
제가 대학 3학년 때,
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
버스 사고였지요.
벌써 그 애가 간 지 18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18년, 그게 길지 않더군요.
머지 않은 과거의 일 같아요.
18년, 잠깐이더군요.
고향에 가면 그 애 무덤을 찾지요.
그 앞에 서면 너무도 마음 아파요.
동생에게 잘못했던 일만 떠오르며,
뼈저리게 후회하고,
깊이 용서를 빌고...
내가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런 얘길 들으며,
남의 일 같을 리 없었다.
'아, 비슷한 일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심정으로 사는구나.'
'너의 죄를 사하노라.'
누구라도 그런 후회에 대해
이런 마음이 들었으리라.
누구라도 용서할 자격이 있다면
그렇게 용서하리라.
"제가 장남이랍시고
동생이 부모님 말씀을 안 듣기에
여러 번 때렸었거든요.
'왜 그랬나?' 생각하면서
지금도 가슴아파 합니다.
그 애 무덤 앞에 서면,
잘못했노라,
용서하라 말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요."
잘못이랄 수 없는 잘못.
18년의 세월로도 감형되지 않은 그 죄는
이미 사함을 받은 것이겠음에도...
"너의 죄를 사한다."는 확언을
그 분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 하는 한
죄지은 누구라도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 자신의 정죄로부터
풀려날 수 없다.
내게도 비슷한 많은 후회들.
매를 들지 않고,
말로 해야 했을 많은 일들.
다르게 해야 했을 많은 일들이
모두 후회로 남고,
떠난 그 애에게 용서받고 싶은 일들이다.
'그 땐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
변명하고 싶은 일들이다.
가족을 떠나 보낸 이들의
공통적인 그런 후회들.
남의 죄를 사할 수 있으나,
내 죄에 대해선 용서되지 않는다.
이 땅에 인간이 창조된 후
숱한 죽음들이 있었는데,
그 뒤에 그만큼 많은
아픔들, 후회들이 숨어 있었다.
이제 그 중 하나를 내가 겪을 뿐.
수많은 아픔들 중 겨우 하나를
내가 경험하고 있을 뿐.
연이에게 말하고 싶다.
"결코 그런 게 아니었노라."고...
그 애 앞에서 그리 말했다면
"아빤 참..."
이런 말로 그 애가 용서했을 일.
그러나 그 애가 없는 지금
그런 용서를 구하지 못 한 게
가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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