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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2001.07.26 16:39

욕심 없이 착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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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목 : 욕심 없이 착했던... / 박순백 - 2001-07-26 16:39:48  조회 : 1733

욕심 없이 착했던...

가족들의 운동구를 정리하다 보면
이젠 꼭 한 가지씩이 남는다.
연이의 스키가 눈에 띄고,
연이의 스키화가 눈에 띄고,
어쩌다 내가 빌려쓰기도 했던
그 애의 폴이 눈에 띄기도 하고...

대개는 엄마가 쓰다가
연이에게 물려 줬던 것들이다.
그러다 겨우 두 해 전에
제 것 하날 선물 받았다.
아직도 새것 그대로인 인라인 스케이트는
내가 연이에게 선물했던 것.
주인 잃은 그 장비가 눈에 띌 때마다
가슴 한 편이 허전해 온다.

연이는 욕심이 없어서
제것을 고집하지 않았었다.
야간용 스키 안경이나,
별로 쓰지 않는 고글이나...
공동으로 쓰는 물건 중
제일 허름한 게 그 애 몫이곤 했다.
참 착한 애였다.

그래도 아빠를 닮은 그 애는
어쩌다 유별난 구석도 있었다.
한 땐 단색의 옷만 입고,
조금이라도 화려한 옷은
거부하던 애였다.
매일 검정색 옷만 사와서
내게 핀잔을 받기도 했었다.
애답게 별 것 아닌 일로
고집을 부리기도 하는 애였다.

그래도 평범함, 착함, 순수함,
그런 것들이
그 애를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말이었다.

욕심이 없는 그 애였는데,
떠나면서는 너무 큰 욕심을 냈다.
그 젊은 모습으로 기억되려고
그렇게도 일찍 떠났나?
유명인들 중엔 일찍 떠나
오래 기억되는 이들도 있다지만

'너야 평범한 애였는데,
남들처럼 살 사람이었는데,
그리 일찍 떠날 이유가
과연 뭐였더란 말이냐?'

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기를 바랐다.
나이 들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끔 부부 싸움을 해서
엄마에게 전화 걸어 하소연하고,
어쩌다 아이들 손잡고 친정에 오고...

연아,
나이 든 네 모습,
난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너야 항상 이 아빠의 어린 딸이 아닌가?
그러니 앳된 모습 그대로
내 남은 일생에 기억되리라곤
정말 꿈도 못 했다.

넌 착한 애였는데,
그런 일로 내 속을 썩힐 줄은 몰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널 용서했지.
내 딸인데 뭐...
부모 속을 썩히는 건,
자식들의 특권이 아니냐.

편히 잠들어,
좋은 세상에 갔기를...
거기서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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