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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파주 화석정에 간 지연이
2001.07.23 19:16

지연이의 빈 자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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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목 : 지연이의 빈 자리 - 2 / 박순백 - 2001-07-23 19:16:13  조회 : 2040 

지연이의 빈 자리 - 2

"도련님,
정말 이상하지요.
살아 있을 땐 옆에 있는 게
성가시기까지 했던 사람인데,
왜 그이가 가고 나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지요?
아무 일도 않던 그이가
밉게만 보였었는데...
하는 일없이 밥만 축낸다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그이가 가고 나니
웬 일들이 이렇게나 많지요?
그이가 그런 허드렛일을
그렇게나 많이 했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항상 노는 줄 알았어요.
집안에 작으나 손대야만 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어요.
내가 밖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게
모두 그이의 도움이었단 걸
이제 알겠네요.
단지 옆에 있기만 한 걸로도
내게 큰 힘이었다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되지요?
제가 왜 이렇게 미련했지요?"

오래 전,
급사(急死)한 사촌형을 두고
여걸(女傑)로 불리곤 하는
형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항상 술에 절어 살던,
무기력한 남편의 존재를 보며,
그 역할을 의심했던 형수님.
처음엔 몰랐으나,
시간이 갈수록
허수아비 같던 가장의 손길이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는 한탄이다.

지연인 형님 같지 않았으니
이 기막힌 경우야 말해 뭣하랴?
온갖 성가신 일들을
도맡아 하던 애.
엄마 심부름의 단골이고,
시키지 않은 일도 나서서 하던 애다.

아파트 1층에 쓰레길 버리러 갈 때면
웬 쓰레기가 그렇게나 많은가 싶다.
그 일은 대개 지연이가 맡아 하던 일인데...
허드렛일도 마다 않고 하던 지연이.
티도 안 나고 빈도만 많은 귀찮은 일들.
군말 없이 제 일 삼아 하던 지연이.

현근이와 내가 나서서 돕는데도
지연 엄마의 잔일은 끝이 없다.
엄마 친구 지연이의 손길이 없으니
방관자이던 우리 둘마저 바쁘다.
그렇게나 많은 일을 했었다니...
그걸 이제야 알고 고마워하다니...
무심했던 아빠의 타성적(惰性的)인 삶.

말도 별로 없이,
항상 조용하던 앤데도
없는 듯 나타나던 앤데도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그 애가 우리에게 주던
정신적인 만족들...
지연 엄만 지연이의
유머 감각을 그리워한다.


- 지난 2월 용평에서 아빠와 함께 선 지연이. 네가 이제 내 곁에 없다니...

이젠 결코 메울 수 없는
그 큰 빈 자리.
지연이가 떠난 자리는
실로 공허(空虛)하다.
무슨 일을 하건,
언제 어딜 가건,
그 애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당황스럽다.

그렇게 소중한 아이와 함께 한
지난 스무 해.
그걸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하는데...
아직은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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