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3910 좋아요 571 댓글 5
전체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제가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닙니다만(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대단히 오버하시고 계시는군요.  요즘 우리사회가 삼성이나 서울대 욕하는게 유행인듯 합니다만, 아래 글은 특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1970년대 동경대 본고사 문제 베껴내면서 뭔가
대단한 시험제도라도 있었던 마냥 그를 고집하는 서울대의 현재의 모습이 누구
탓이겠습니까?

------------------------------

아마 최재원님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시절의 무슨 이야기를 누구한테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안타깝습니다. 서울대의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도 대단히 잘못 알고 계시고요. 마치 모정당의 모국회의원의 모습이 연상되는군요. 순수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박순백 박사님의 많은 팬들이 실망할 수 있는 글입니다. 나머지 글들이야 최재원님의 자유이지만, 이정도 글 쓰실려면 꽤 시간이 걸릴텐데, 이왕 미국가셨으면 열심히 공부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Comment '5'
  • ?
    최재원 2005.10.09 02:37
    죄송합니다. 제가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어머님 손잡고 가서 대구 체육관에 가서 향도 올리고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력고사 세대인 저로선 수능세대가 국어시간에 논리나 오류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심지어 우리 대학의 논리학 교재도 오번역이 많더군요. 저의 글이 논리적으로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논거를 제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제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고 생각하셔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 주장자 공격의 오류가 아닌가요? 삼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느 언론 기사를 읽으시고 그 언론기사에 기대어(권위호소의 오류) 성급하게 비판을 하셔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전문지 법률컬럼니스트로 활동한바도 있는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는 두개의 석사를 가진 학생으로, 미국에서 학교의 관련 임원과 학회 관련자, 그리고 한국의 기자분 등 토론을 통해 얻어낸 연구성과물을 싣는 것인데 단지 귀하의 지지정당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서 아무런 논거제시도 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박순백 박사님과 중학생때부터 교류를 해 오고 있습니다. 귀하의 다른 글은 찾아볼 수 없는 걸로 봐서 어쩌다가 찾아오신 분 같은데, 이 글도 안 읽으실 것 같지만 좀 안타깝네요.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논리적인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하겠습니다만은 학생으로서 공부가 더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 논지파악이 안되신 것 같은데, 제 글의 취지는 일본 황국신민화 교육과 주입식 교육의 견지에서 우리나라가 논리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어학습에 장애가 있으며, 아시아 역시 그러한 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제국주의의 한계때문에 세계경제가 정체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세계평화 역시 양자의 장점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문화교류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서울대를 비판한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 진보주의, 보수주의, 신자유주의를 제국주의의 반발 내지는 그 틀안에서 발전되어온 개념이라는 점에서 비판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이종문화간 적극적 문화교류를 주장한 글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일본 동경대 학부 교양강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동인대생은 바보인가라는 책과 뇌를 단련하라라는 책 등에서도 이종문화간, 이종전공간의 다양한 교류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종전공간의 교류가 협소하고, 일반 교양의 수준이 미국 토플시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과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교양과목의 강화를 피력한 책입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교양학부 운영과 교양과정 강화를 하는 제도의 혁신 또한 이 책에 기원한 것입니다. 제목만 보고 동경대 비판서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나, 제 글의 서울대 관련 일부 몇문장만을 보고 오해를 하셔서는 안되겠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엘리트 그룹에 편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약자가 강자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숨죽이며 살아가지 않도록 지식을 전해주기 위해, 미래의 선생님이 되기 위함입니다. 시험점수 잘 받기 위해서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것은 일제 황국신민화 교육의 확연한 잔재입니다.

    어휘력은 영어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글도 적절히 사용해야 할 어휘가 있고, 가려서 사용해야 할 어휘가 있습니다. "오버," "실망," 그리고 "열심히 공부" 등등은 공부를 하는 학생과 학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군요.

    귀하가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찬성하는 모 교수님의 의견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의 글을 좀더 자세히 읽어 주셨으면 좋겠군요. 일본 제국주의, 그리고 서구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지 그 한계속에 있는 한국 권위주의 사회와 교육시스템의 결과물인 서울대를 비판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서울대도 발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항을 제시했는데 그를 비판하시면 좀 섭섭하군요.

    본고사 부분만 좀더 가필하겠습니다. 우선 미국의 새로운 SAT시험에 있어서 추가된 작문시험은 명문대학의 경우엔 입학사정에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관적인 작문시험의 경우 짧은 시간에 수백만명의 글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고, 실제로 역대 대통령 이름을 틀리거나, 실제로는 없는 통계자료를 엉터리로 인용한 작문이 고득점을 하는 등 문제점이 노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프랑스의 주관식 대학입학 시험문제에 대해서 입니다. 매년 사회의 이슈가 되는 이 시험문제 역시 출제위원회가 모범답안을 마련하고, 객관적인 요소별 점수를 제공한 다음, 마지막으로 각 지역의 위원회가 다소 융통성을 가지고 이 점수표에 의해 채점을 하게 됩니다.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특정한 행정대학원이 아니라면 학부별로 되어 있는 파리1,2,3 대학(이것은 종합대학이 아니라 인문대학 등의 개념으로 특정학부 대학을 말합니다)에 진학하는 학생이라면 입시에 쫒기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독서를 한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본고사 논란이 일었던 논술시험이나, 기타 시험의 예를 봅시다. 학생들은 일단 수능의 특정등급(앞으로 도입될 등급제도) 혹은 특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특정 대학의 논술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깁니다. 내신도 그렇죠. 그러니 학생들은 충분한 독서의 시간을 갖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논술학원이나 과외를 통해서 독서로 공급받지 못하는 정보를, 그러니까 논리적 근거나 에피소드, 우화 등을 표로 도식화해서 외우는 것입니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있을 수 있지만, 영어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한 특정 명문대학의 논술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러니 논술시험의 결과가 특별히 다르지 않고, 결국 소수 정예 논술반을 들은 학생들이 외워놓은 논거로 작성한 논술시험을 채점해서 입학생을 선출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 최초의 논술시험에서 50%가 넘는 학생들이 "착한이의 대표는 파리 경찰서장"이라고 하는 에피소드를 기술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소수정예로 가르치다 보니 이렇게 다수가 동일한 에피소드를 작성하는 일은 없어졌겠지만, 같은 학과에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둘이상이라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여전히 있는 것이지요.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토플 시험 라이팅 준비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해당 주제별로 정해진 논거를 표로 외우고, 심지어 에세이 전체를 몇개 외우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운이 좋아 그대로 베껴쓰고 나왔다가 수십명의 토플 성적이 취소가 된 예가 2003년인가 2002년 겨울인가에 있었습니다. GRE의 경우에도 성적이 취소가 되고, 우리나라만 그 이후부터 컴퓨터 시험이 아닌 필답지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것이 왜인지 모르게 눈물 흘리며 슬퍼해야 하고 국민들이 모두 가서 공무원 앞에서 서명하고 조문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노태우대통령이 군인 출신이란 것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다른 지방 사람은 모두 간첩이라고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똘이 장군에 나오는 진짜 뿔달린 돼지 수령이 북한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국사 교양수업이든 법학 전공수업이든 대학수업을 듣게 되면,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워온 교과서의 내용은 단지 통념일 뿐 정확한 지식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자신의 전공이 아닌 영역에 대해선 철저히 진실로 세뇌당한채 말입니다.

    단적으로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나라 국사책에서 고려사 부분중 훈요10조와 관련된 것이 있습니다. "차령이남은 등용하지 말라"는 취지의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강이동, 차령이남"이라 해서 고려왕조 창건에 끝까지 항거한 한 호족가문만을 지칭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국사교과서는(최소한 학력고사 세대인 제가 배울때까지는) 금강이동을 삭제하고, 대관령과 같은 고개 이름인 차령을 산맥이름인 차령산맥으로 가르치면서 마치 호남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고 하는 내용인양, 호남지역차별의 증거인양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재가 될 길이 좁았던 호남에선 문화가 발달했다고요. 어용국사 학자 한사람의 잘못입니다.

    참고로 윤보선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맞붙었을 때에는 서울과 중부는 윤보선, 영남과 호남은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에 DJ와 선거를 하면서 이런 엉터리 어용학자를 이용한 호남 고립론으로 영남 역 지역주의를 이용해 각자가 패권을 유지하는 형태로 지역주의가 발전되어 온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언론의 왜곡된 정보나 특정 교수의 식민사관 등에 의한 주입식 교육에 의존한다면 사회인으로써 진짜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실제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 통계를 보아도 인구비례 별로 뽑힌 것이 드러나죠. 물론 온천지역이나 수도권의 경우 왕의 행차시 특별과거 수시가 있었기에 좀더 많은 인원이 통계에 잡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중등교육 교과서는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왜곡까지 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국민에게 세뇌시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뿌리는 일본의 황국신민화 교육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는 일본식 주입교육입니다.

    외국의 문물을 주입식으로 잘 받아들여 응용만 잘 하면 수출을 할 수 있었던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교육방식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1위를 하고,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단기순위이긴 합미다만, 품질 1위를 달리고 있고, 서울대의 황우석 교수님이 최초로 연구성과를 내는 등 우리가 1위를 달리는 분야에선 주입식 교육은 그야말로 장애물일 뿐입니다. 창의성이 중요해 지는 것이지요. (저는 삼성전자나 서울대 욕하기 위해 글을 쓴게 아닙니다. 2등국가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서울대 역시도 일본식 주입시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큐가 높다고, 그러니까 외워서 시험문제 푸는 수능점수가 높다고 해서 창의성이 담보가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풍부한 독서와 글쓰기가 장려가 되어야 하는데 본고사를 하거나, 수능이 단순히 어려운 문제유형으로 변별력을 제고한다면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통해 수학문제 유형별 풀이법 외우기에 모든 시간을 투여해야 합니다. 영어나 다른 과목은 두말할 것 없구요. 그러면 대학가서 창의력을 키워야 하는데, 고등학교때까지 힘들었다고 놀아버리거나, 또다시 취직시험 문제 유형 외우기에 빠져 들어 버립니다. 이런 시스템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 제 글의 취지입니다.

    미국에서 UC버클리를 제외한다면 미국에서 1년중 배출되는 박사의 숫자가 제일 많은 학교는 미국의 어느 대학도 아닌 서울대입니다.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분들이 박사논문을 쓸때마다 미국인의 도움이 없으면 완전히 비논리적인 논문으로 퇴짜를 당합니다. 만약 일본 주입식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서 아주 간단하고, 미국인은 아니, 비아시아 인은 초등학생도 다 알고 쓰는 기본 논리교육을 받게된다면 미국에서 1등인
    박사 배출학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가 순위 100위안에도 못드는 학교를 벗어나지 않겠습니까? 비꼬는 것이 아닙니다. 동경대 출신도 마찬가지니까요. 이것이 일본의 제국주의 교육정책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저의 글의 전취지 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보자는 것인데 글의 일부만을 보고 학자에게는 써서는 안될 어휘를 쓰셔서 비판을 하시니 다소 섭섭합니다.

    언젠가는 영어를 공부하시게 될 터인데 그 전에 미국 논리학 교재 한권 쯤은 공부를 하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듯 싶네요. 정치인을 미워하고, 자기 의견에 반대되는 글에 대해서 비판을 하시는 비판 정신은 높이 존경합니다만은, 시류에 타서 언론기사에만 기대어서 비슷한 비판이 나오는 대로 개인의 의견없이 신문과 같은 논조의 비판을 하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좀더 공부합시다. 비판은 겸허히 받겠습니다.
  • ?
    최재원 2005.10.09 02:37
    저 혼자 영어 공부해서 적당히 미국변호사로서 안주해 살면 그 뿐이라면 이렇게 비난을 들으면서 발표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는 친구끼리만 노하우를 공유하는 엘리트 그룹에 들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 이쁜 효빈이 아빠인 저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 미국 학생들은 놀면서, 예체능 취미를 즐기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 창의적인 토론으로 공부를 하는데, 우리 후배들과 후손들은 왜 고등학교에서 쓸데없이 자율학습에 시달리고, 암기강요에 시달리면서 정작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대학교에서 부턴 다른나라 학생들에 지고,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지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안주하고, 그것을 비난하면 공격해서 자기의 위치만을 지킨다면 그 혼자는 편안히 살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후손은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의 마음은 부모만이 아는 것입니다. 자식이 싫어해도 부모가 가르치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보니까, 자신이 경험해 보니까 그것이 보다 덜 나쁜 길이니까 자식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좀더 공부해 봅시다. 우리. 저는 이 주제로 평생을 공부할 학자입니다. 두개째 받은 석사나 앞으로 받게될 박사나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 위치를 정해 줄 수 있을 지언정, 세계평화라는 거대한 주제에서 제가 담당할 연구의 분야는 정해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저는 냉철히 보고 있습니다. 선배나 자신의 학교, 그리고 유력한 권위자는 안내만 해 줄뿐 결국 세상을 살기 위한 자신만의 의견과 길은, 결국 자신이 고뇌하고 고생해서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남보다 좋은 조건에 있다고 거기서 정체한다면 더이상의 발전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서울대가 현재의 위치에서 정체되고 외국 대학에 돈을 들여서 세계 대학순위가 올라가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일본 동경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진짜 세계 대학 10위권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황우석 교수님을 비롯해 얼마든지 우리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본고사 시스템이나, 수능 시스템 그리고 일본식 주입식 교육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이것을 개혁하자는 것이 저의 글의 취지였습니다. 또다른 오해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 ?
    김용빈 2005.10.12 12:02
    [최재원 선생님] 이곳은 글을 남기시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글을 읽고 가는 곳이며 그동안 쓰신 글이 전혀 없다고 어쩌다가 찾아오신 분이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하시게 되면 오히려 최 선생님께서 남기신 좋은 글들이 이로 인해 빛이 바래질 수도 있을까 좀 우려가 됩니다. 아무쪼록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의 글을 그냥 비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실줄 아는 여유도 갖추신다면 더욱 훌륭한 분이 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저의 의견입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써주신 글들 잘 읽고 갑니다. 이곳 험한 미국 유학생활에서 좋은 성과 있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 ?
    최재원 2005.10.12 22:59
    긴글 읽어주시고, 소중한 말씀 전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요즘 외신보도나 한국관련 미국 정치인들의 발언 등을 보면, 속이 상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걸 그대로 보도하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신문보도도 그렇구요. 도무지 나라를 생각이나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하원외교위원회 전문위원 이란 사람이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형제라고 지칭한 북한을 카인과 아벨을 비유하면서, 형제를 죽이지 않으면 UN사무총장 후보의 자격이 없다라고 직격탄을 날리면서 UN사무총장 선거에 절대적 비토권한을 가진 미국의 네오콘의 입장에서 협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울분을 느낍니다.

    그냥 다른 의견이라면 얼마든지 수용이 가능하지만, 전쟁이 나면 제 부모님이 살고 있고 제 형제자매가 살고 있는 한국도 전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미국 사람이야 한국인 백만명쯤 죽어도 아무상관 없겠지만, 그중에 제 스승, 친구,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인으로써는 참을 수가 없는 발언들입니다.

    서양의 네오콘 입장에서는 악마는 죽여야 하고, 카트리나의 도둑은 총살 해야할 범죄자로 밖에 안보이겠지만, 동양의 사랑, 자비의 입장에서는 악한 의견을 가진자도 용서해야 할, 구제해야 할 불쌍한 사람이고, 카트리나의 도둑도 교육을 받지 못한 나쁜 의견을 가진 사람일 뿐, 굶주림의 절도에 총을 맞아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악마는 없습니다. 악마같은 생각을, 나쁜 의견을 가진 나쁜 사람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제 주위에도 북한의 인권을 나쁘다고 말하며, 한국의 인도적 쌀지원을 비난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지원하지 않으면 인권개선될 것이라고 하죠.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으로 민주화가 될 수 없듯이, 정권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민주화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인도적 지원, 민주화 교육지원과 같은 그 나라의 주민이 깨달아서 민주화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입니다.

    세상에 국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테러리스트는 국적이 없다며, 국가간의 협정인 포로대우에 관한 제네바 조약을 무시하고, 재판없는 구금과 고문을 자행하는 국가도 있습니다. 국제법에 관한 지식이 없습니다. 저는 미국인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미국 로스쿨에선 국제법에 관해 관심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았더니 어릴때 미국에 온 한인교포가 이러한 법률해석을 한 담당자이더군요.

    북한인권법을 제출한 하원의원들 역시 그들이 법안을 만든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보좌관인 한인교포들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념이나 지지정당이 다른 것은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가족이 한국에 살고 있지 않다거나, 미리 도피를 시킬 수 있다고 해서,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미국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고 있는 나라는 작년부터 중국이 아닌 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에 전쟁이 나면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도 미국으로 유학생을 보내기 어렵게 됩니다. 유학생으로 학교를 운영하던 미국 대학들이 작은 나라 한국의 문제로만 보지말고 정말 세계평화가 무엇인지 보다 현실적인 문제(자기 대학의 재정압박)로 살펴보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다른 의견이라면 논거를 가지고 이념이 다르다던가 생각이 다르다던가 해서 이견을 제시한다면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살지도 않았으면서"라거나 "공부나 열심히 하시라"고 하는 것이 일방적인 비난일뿐 그 어디에도 다른 의견은 없습니다.

    얼마전에도 올림피아드 문제를 그대로 베껴서 수시문제를 제출한 서울대의 오류에 대해서 일본식 교육에서 벗어나 미국식 교육의 장점도 받아들여 기본적인 논리교육을 실시하면 아시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왜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대만 비난하느냐고 잘못 읽고 비난하는 글에서 무슨 다른 의견을 찾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최소한 같이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전취지는 읽지 않고, 자기 관련 기관이 비난되어 있다고, 같이 힘든 공부하는 사람에게 "너나 공부 잘하세요"라고 비아냥대는 것이 옳바른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것을 보고 자신이 다치는 것을 싫어해서 가만히 두는 작은 착한이는, 싫은 그 나쁜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저나 그분이나 어린 학생이 벌써 언론기사만 추종하고 권위주의나 엘리트주의에 안주해서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자기 그룹의 일부를 건드리는 것은 무조건 악구를 하는 것은 빨리 고쳐야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원인이 가장 간단한 영어 논리인 충분조건(IF/THEN), 필요조건(ONLY IF/THEN), 충분조건의 한 변형(IF/THEN NOT), 그리고 필요충분조건(IF AND ONLY IF/THEN)조차 가르치지 않은 일제 황국신민화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도 고등학교에서 수학의 집합 명제로 배우지만 시험에 안나온다고 무시하는 내용입니다. 그것이 영어 배울때 쓰기와 말하기의 기본이 된다는 것은 도무지 배우질 못했습니다.

    미국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왜 유독 일본의 식민지국가들은 모르는 걸까요? 충분조건의 참과 거짓은 딱 정해져있습니다. 애매한 것은 MAYBE로 논거가 될수가 없습니다. 일본 식민지 국가 출신 학생만 이 MAYBE가 될수고 있고, 안될수도 있으니 논거로 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영어논문이 콩글리쉬, 아시안 영어가 되어버리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논리 오류중 가장 간단한 예 두가지만 들겠습니다. 권위주의 호소의 오류 혹은 여론호소의 오류가 첫째입니다. 국민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혹은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정치인이 말했으니까 그게 무조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영어의 통념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그것은 틀렸다는 전제하에 얘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네이티브의 영어를 아시아인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이유입니다. 흔히 뉘앙스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수학처럼 딱딱 떨어져야 하는 미국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이 안되는 것입니다. 권위주의 호소의 오류가 잘못된 것은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라 해도 그의 말까지 모두 옳다고 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논거가 있어야 하고, 그 논거가 거짓이 아니라야만 그의 주장은 옳은 것이 됩니다. 사람이 훌륭하고 과거를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훌륭한 말만 할 것이란것은 논리모순입니다. 이것을 무시하고 권위를 추종하는 것이 아시아의 권위주의이구요. 미국 수업에서 객관성이 없다고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주장과 주장자의 혼동인 주장자공격의 오류가 있습니다. 즉, 자기가 생각할 때, 권위가 없거나 부패한 사람이 말을 했으니 그 주장은 틀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 죄를 지었다고 그 사람의 모든 말이 틀렸다는 것은 논리모순입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우리나라의 언론사설은 모두 주장자가 이념이 어떻다느니, 혹은 주장자도 부동산투기를 한다느니 하면서 그 사람의 주장은 틀렸다고 비난합니다. 왜 주장이 틀렸는지 논거도 없이 말입니다. 물론 국민여론이 그렇다고 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공론 호소의 오류, 즉 권위호소의 오류의 전형이므로 아무런 논거도 없는 사설들이 지면을 덮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기본적인 논리오류나 기본논리의 교육이 빠져있는 한국과 아시아에선 영어쓰기 점수가 유럽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듣기가 문제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은 논리적인 글쓰기가 안되기 때문에 논리적인 렉쳐도 못듣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왜 유독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국가만 전세계 토플평균에서 급격히 떨어졌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기본논리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제국주의 지배자나, 독재정권 그리고 심지어는 민주주의 권위주의 정권조차 국민의 논리적인 비판을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유물주의 역시 자신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꺼려합니다. 중국인이나 북한 사람이 영어의 기본 논리와 논리오류에 대해서 배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단지 토플점수만 올라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정권을 바꾸기 보다는 차라리 각 나라의 국민들이 논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보급하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UN이 캄보디아 등에 라디오 보급운동과 영어 등의 교육방송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일 논리교육을 받고 난 후라면 그분도 분명 논리모순인 주장자공격의 오류인 "어려서 그때 살지도 않았으면서"라거나 "오바" 등등으로 저의 신뢰성이나 권위를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권위호소의 오류인 "요즘 삼성 공격이 유행인가"하는 신문기사를 인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교육의 문제입니다. 제가 그분에게 유감이 없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타산지석의 의미입니다. 저와 같이 공부하고 있는 다른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수 있으니까요.

    저는 네오콘, 보수주의와 서구 제국주의, 일본식 제국주의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비판정신이 잘못 사용된 우리 운동권의 진보주의, 신진보주의,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모두를 비판합니다. 동서양의 장점을 가지고 동서양의 단점을 비판합니다. 따라서 어느 일부분만을 보고 보수공격=진보, 진보공격=보수 이렇게 섣부른 오독과 기존 이론이나 과거경험만으로 틀에 가두어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랑의 정서와 서양의 합리적인 논리를 상호간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배워가자는 취지의 글이므로 단순 양비론이나 양시론의 흑백논리로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동양의 사랑이 넘쳐 부패한 구조, 서양의 합리성이 넘쳐 수십만이 전쟁에서 죽건말건 이념을 위해선 그래도 좋다는 냉혈한 논리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동양의 부패나 권위주의를 성숙시키기 위한 서양의 합리적 논리, 서양의 냉혈한 논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동양의 성숙한 사랑(혹은 자비)을 교류를 통해서 세계의 시민들이 교육받아 가자는 것이 저의 글의 전취지입니다.

    그런데 일부분만 떼어가지고 동양 부패했다고 하는게 잘못이라거나, 서양의 논리가 냉혈하다고 하는게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너나 공부 잘하세요"라는 글에서 제가 무엇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요즈음 언론사의 댓글토론을 봐도 그렇고, 어떠한 논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념과 권위주의, 그리고 폭언만이 넘치는 것은 그냥 두어서는 백해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하고는 무관하게 논거도 없이 비난하는 것은 논리교육을 통해서 고쳐져야 하는 잘못된 관행입니다.

    김용빈 선생님의 소중하신 도움말씀 고맙습니다. 바로 받아치는 글을 쓴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신조는 아무리 우리의 학생들이 성숙하지 못해 폭언을 하고, 레포트도 못쓴다고 해서, 인터넷 자료 표절과 짜깁기로 논문을 쓰는 것을 더이상 봐주는 방식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해서 학생들이 그렇다면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영어 선생님의 게시판에서 논리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정말 아무도 모르더군요. 우리가 SAT verbal이나 GRE verbal 그리고 토플 렉쳐나 라이팅, 각종 스피킹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대학의 논리학 교재 역시 미국의 논리학 교재를 번역한 것인데, 오번역이 너무나 많더군요. 철학과 학생이나 수학과 학생이 배우는데 실생활엔 도움이 안될 어려운 것 정도란 생각밖엔 안들겠더라구요. 우리나라 대학교육협의회에서 논술을 안내하면서 담당교수님이 대표적인 예로 들어놓은 간단한 삼단논법조차 논리모순이더라구요. 이것이 제가 한국의 논술도입에 비판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좋겠는데(한국어 논리는 영어 논리와 틀리다던가 등의 이유로), 한국의 논리 책이 영어 논리책을 번역한 책인데 엉터리로 오번역이 되어 있으니 더이상 반박의 여지는 없습니다.

    아예 제가 정리한 책을 출판할까도 생각했습니다만, 도무지 배운 적이 없어서 모르는 것을 책을 통해서 공부한다고 알게되겠습니까? 결국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늘리는 수밖에요. 영어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면서 말이죠. 교류가 최고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용빈 선생님의 겸허한 수용의 말씀에 적극 공감입니다. 고맙습니다. 다만, 저의 신조와는 다른 것도 있으므로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어서 또 죄송합니다.
  • ?
    하태욱 2005.10.23 01:47
    입시에 대학 부분은 상당한 곡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더이상 동경대의 그늘에 있지도 않지요. 글을 읽다보니 자꾸 서울대 이야기가 눈에 거슬립니다. 우리 사회의 소위 SKY라는 명문대가 일재 잔재의 영향에서 못벗어나고 정체되어 있다는 투의 말은 상당히 동의하기 힘들군요.
    최근 서울대, 특히 고려대는 발전을 위하여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학 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학생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대학들이 학문을 할 만한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꼭 알아 주십시오. 학생의 수준은 감히 뛰어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최근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은 그들만의 뚜렷한 논리체계를 갖추고, 상당히 창의적인 면도 많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어 보심도 좋을듯 합니다. 덧붙여 저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지요. 그래서 요즘의 대학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현 교육부의 정책이 진짜 실력있는 학생을 선발하려는 -다양하고 독자적인 전형을 통하여- 대학 당국의 노력과 상반되기에 이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이는 일제의 잔재도 아니고, 교육평등을 왜곡되게 실형하는 교육정책의 마인드 문제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영어는 우리말의 문법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생소한 언어체계이기 때문이며, 논리력이나 뭐 그런거 따지기 전에 진짜 영어를 못하는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영어공부 열심히 했냐'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 빠를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영어를 능히 못하는게 열심히 안해서 그렇다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현재 저는 카투사로 복무중인데, 제 주위에 외국 한 번도 안갔다 오고도 영어 잘하는 카투사들 참 많습니다. 논리나 그런거 보다는 언어감각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대부분)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이죠.

    그냥 근무중에 두서 없이 몇 자 적어봅니다.. 스키시즌 다가와서 박사님 홈페이지 구경하러 왔다 글을 읽어보니 감히 몇 자 적어보겠다는 욕망이 일어 적어보았습니다. 논리 이런거 따지지도 않고 제 생각나는 데로 적어 보았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58 칼럼 네오콘, 진보를 넘어서. 제국주의 극복방법은? 2 최재원 2005.10.04 4150 725
» 칼럼 [re] 영어못하는 이유도 일본 제국주의 잔재? 5 민미경 2005.10.08 3910 571
56 칼럼 영어 못하는 이유도 일본 제국주의 잔재? 5 최재원 2005.10.08 4936 629
55 칼럼 동서양의 글쓰기와 사법제도의 차이점_검찰 구속관행을 중심으로 3 최재원 2005.10.19 4776 419
54 칼럼 인권의 어머니, 고 로자팍스 여사를 그리며... 3 최재원 2005.10.28 4995 928
53 칼럼 선진국가화에 필연적인 양극화의 문제점, 해결책은 없나. 4 최재원 2005.11.01 4206 718
52 칼럼 이념과잉과 논리적 토론부재의 사회 최재원 2005.12.01 3418 682
51 칼럼 분쟁해결론과 독점금지법으로 살펴본 미국과 한국의 문화 1 file 최재원 2007.05.16 3650 699
50 칼럼 석유수출국, 그리고 수출대기업을 가진 나라의 양극화 3 최재원 2007.05.18 3992 754
49 칼럼 미국에서 배우면서 느낀 영어 그리고 교육제도 13 file 최재원 2007.08.27 5772 726
48 칼럼 영어교육, 결국 기초부터 학교에서 바로잡아야 최재원 2008.02.08 3206 636
47 칼럼 실생활에서 살아숨쉬는 공부_합리성의 평가가 필요 2 최재원 2008.02.28 4219 699
46 칼럼 영어는 나와 다른 문화의 하나, 문화로 즐기고 익혀야. 4 최재원 2008.03.14 4158 717
45 칼럼 로스쿨은 시험용 공부가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되는 훈련을 하는 곳이 되어야겠죠. 4 최재원 2008.03.28 4069 728
44 칼럼 일본식 영어 용어, 발음, 문법교육에서 벗어나야 6 최재원 2008.04.05 5126 767
43 칼럼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보고, 단점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2 최재원 2008.04.24 3869 680
42 칼럼 합리적인 정보를 갖춘 건전한 민주시민이 필요합니다. 최재원 2008.04.30 2622 515
41 칼럼 논리모순_수학의 오류에 빠진 감세정책 논란 7 최재원 2008.05.05 3783 706
40 칼럼 토마토는 채소라던 미 대법원, 소는 육식동물이라고 판결할 것인가? 21 최재원 2008.05.05 5135 508
39 칼럼 한미 쇠고기 합의는 법적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_국가간 재협상 가능하다. 8 최재원 2008.05.07 4697 63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