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2010.04.23 17:54

[독후감] 시간을 파는 남자

조회 수 1908 좋아요 156 댓글 0

제목 : 시간을 파는 남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21세기 북스



[저자의 말] 중에서 일부 발췌...



이 책을 읽고 난 독자의 마음이 편치 않을 거란 걸 나도 알고 있다.

우리의 지배하는 체제의 힘에 우리가 내맡겨져 있다고 느낀, 즉 전면적인 절망감과 무기력을 경험한 이들이 꼭 맺음말을 써 달라고 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책을 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 아니던가? 근로자도 사용자에게 반기를 들고 현재의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일어나지 않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는 돈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변수의 미묘한 작용으로 지탱된다. 바로 이 사실을 인식해야 하며 이 변수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자유사회의 개인들이 경제를 작동시키고 성장을 유도하며, 번영을 제공하는 이니셔티브를 개발하도록 추동하는 원동력은 바로 이윤의 추구다. 한편, 과도한 탐욕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인 인간의 기본권을 뛰어넘고 결국 자우경제체제 자체의 근간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역사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경제위기를 유발되었다.

21세기 초입 오늘날의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체제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산주의 정권들은 도미노처럼 하나하나 무너지고 말았다. 달리 말해 개발과 성장은 자유시장체제 아래에서 가장 효율적인 모습을 갖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사회를 번영으로 유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으로 18세기에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의 우월성을,  경험으로 확인하는 데는 거의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다른 고전파 경제학자로  공리주의를 주창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경제의 목표가 사회의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있다고 했다. 이렇듯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경제활동이 사회전체 공리의 최대화라는 의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우 훌륭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 주장은 대답하기 어려운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과연 공익, 아니 더 어렵게는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새로운 기준점이 필요하다.

서구계가 영성에서 멀어지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음에 따라, 인간은 모든 일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각종 체제가 오히려 인간의 주인이 되고 말았는데, 특히 시간이란 것이 인간의 주인이 된지 오래다.

경제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측면들을 통합해야 한다. 에리히 포름은 이렇게 말했다. "왜 건강한 경제를 유지하려면 아픈 사람이 있어야 하는가?" 경제는 (당분간은) 지탱되지만 개인들은 견디지 못한다. 한편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들임을 잊지 말자.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앞서 사라져버린 유토피아를 대신할 유토피아가 황급히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유토피아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를 지배하는 현 체제는 긍적적인 측면도 많지만 때로는 인간을 노예화시키며, 체제를 지탱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에게 고통을 준다.

에리히 포름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의 '개인화' 과정이 어떻게 고독감을 수반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런 고독감은 다른 사람이나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인간은 무분별한 소비나, 국가, 교회, 파시즘이 주도하는 전체주의 체제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전체주의 체제가 아니라 좀더 지각하기 어려운 체제에서 살고 있다. 우리를 노예화하는 체제는 대단히 미묘하다. 인간은 우리의 자유, 그리고 자유체제의 노예다.

자유체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만 그 반대는 '비자유'이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유체제를 받아들인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에 반기를 드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유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막다른 미로에 갖힌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자유를 누리되, 자유에 의미를 부여하자. 우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이를 찾는 공식도 존재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자.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의 필요를 고려하자.

-체제는 개인의 시간을 부당하게 많이 빼앗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인간에게 사랑과 인류애, 영성, 협력, 연대와 다른 이에 대한 도움을 표현할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 점을 잊는체제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위대한 경제학자인 샤비에르 살라 이 미르틴은 여러 글과 저서를 통해 자유주의의 능력은 바로 복지와 부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유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술했으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이 해결책이란 자유주의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세상의 불평등, 그리고 자유가 불가피하게 생산하는 형식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폐해를 완화하는 해결책이다.

이 책은 여러분에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요청하는 초대장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낙관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극복할 것이며, 인간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유발하는 폐해에 대한 해결책을 항상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여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말했듯,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변화는 각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러분의 시간 역시 여러분의 것이며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다.


2005년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


2010년을 맞은 우리 대한민국은 쏟아져 나오는 88만원 세대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그들은 사회에 내던져진 순간 집값을 내기위해, 또 먹고 살기 위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해도 계속 통장에는 남는 돈이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세대다.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 사회의 진보가 나아갈 길에 이 정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진보지식인들 중에 많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진보라 하면 '실패한 공산주의'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거나,  왕권 세습제의 조선시대의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나가는 '이씨 왕조에서 김씨로 성만 바뀐 김씨 왕조'의 전제정치를 따라가려는 수구꼴통세력들의 목소리만 크게 들린다.

이런 쉬운 글을 쓸 수 있는 세련된 진보들은 우리나라엔 다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현재 우리가 힘들다고 '과거의 실패한 체제'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현 시대는 그런 쪽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진보의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봐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얘기하면 이 책은 돈 주고 사 본 후에 "뭐 이따위 책을..."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정도로 좀 황당한 책이다. 바쁘신 분들은 본문은 읽지 말고 맨 뒤의 [저자의 말]부분만 읽어도 될 것 같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좋아요
66 단상 눈 오는 날 청담동에서. 조무형 2010.02.15 4828 191
65 단상 [독후감] 올림픽의 몸값 - 오쿠다 히데오 이선호 2010.02.26 2075 190
» 단상 [독후감] 시간을 파는 남자 이선호 2010.04.23 1908 156
63 단상 민주주의 시민의 각성과 사회통합 최재원 2010.07.21 2525 295
62 단상 독도 문제.. 이종국 2011.04.04 1145 108
61 단상 글로벌리즘에 관한 단상 조무형 2011.04.10 1311 76
60 단상 KAIST 영어강의와 영어로 모든 것을?? 이종국 2011.04.15 1830 81
59 단상 세월이 갈수록 멀리해야 할 것들 이민주 2011.08.16 2411 124
58 단상 이제 너희 차례 윤세욱 2011.11.20 1588 53
57 단상 그 때나 지금이나 조무형 2011.12.03 1179 68
56 단상 재미교포가 본 한류 1 - 한국 걸그룹의 미국 TV 습격기 김용빈 2012.02.21 515 26
55 단상 재미교포가 본 한류 2 - 왜 샤이니가 차세대 선두주자인가 김용빈 2012.02.21 426 25
54 단상 재미교포가 본 한류 3 - 남미는 거저먹기다 김용빈 2012.02.21 510 30
53 단상 재미교포가 본 한류 4 - 미국 한류 사건 베스트 16 김용빈 2012.02.21 1033 13
52 단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홍민이 2012.05.08 413 17
51 단상 불신의 사회, 권위주의를 파괴하기 보단, 신뢰의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빠른길이 아닐런지요. 최재원 2013.01.31 796 8
50 단상 알통의 크기가 이념을 결정한다구요? 재밌는 과학보도가 있었군요. 최재원 2013.02.19 776 7
49 단상 Jay Giedd박사님의 뇌과학 연구와 게임산업 규제의 위헌성에 대해서 최재원 2013.02.19 722 6
48 단상 박원순 시장님의 영어 연설과 인터뷰 방법을 배우신 경험담을 읽고서 최재원 2013.02.19 1015 8
47 단상 나쁜 학생은 없고, 나쁜 선생님만 있다라고들 하지요. 시험제도의 과학화가 필요합니다. 최재원 2013.02.19 844 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