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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글렌 굴드 특별반 판매 공지 편지를 받고, 예전의 어떤 글을 찾아보다가 아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의 말미에 가서 가슴이 아파오네요. 겨우 5개월 후에 닥칠 어떤 일도 예상하지 못 하고 행복해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심함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리고 이런 얘기는 왠지 20대 주축, 30대 주축의 인라인 사랑방이나 스키 사랑방에서는 못 하겠고, 40대 주축이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여기서나...

(252) 제목 : 구정 연휴의 시작에 음악을 들으며... / 박순백 - 2001-01-20 10:56:46   

전 벌써부터 구정 연휴 기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정말 행복한 날입니다. 오늘은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음악 좀 듣고, 9시에 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14층 부모님 댁에 가서 먹고...

오늘 토요일인데 열심히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오후에 일본 시가고겐(Shiga-gogen) 스키장에서 3박4일 스킹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집사람과 딸을 마중하러 공항에 나가고, 와서 좀 있다가 천마산 야간 스키를 가던지...(시가고겐은 월드컵 알파인 사이트 중 하나입니다. 엄청나게 큰 스키장이지요. 아시다시피 고겐은 고원을 의미하는 일본어입니다. 월드컵 스키의 전설로 남은 스웨덴의 잉게마르 스텐마크가 은퇴 후에 한동안 일본인들에게 스키를 가르치던 곳이기도 합니다.)

- 양성식, 그가 들고 있는 바이얼린은 1727년 산 과르넬리.

다음 주 금요일에 회사 출근입니다.^^ 지금 양성식의 바이얼린 연주를 듣고 있는데 정말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은 음악입니다. 클래식 기타가 바이얼린 연주를 받쳐주고 있는데 그 것도 너무 좋고... 그가 가진 바이얼린이 과르넬리인데 정말 소리가 어쩜 저렇게 생생하고, 가늘고, 여린 듯하다가도 귀에 와 꽂힐 듯이 강렬한지요?

정말 마크 레빈슨의 음은 천상지음(天上之音)이란 극찬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 것만이 아니고, 스피커도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T/W이고, CD도 Teac의 프로페셔널한 VRDS급의 제품이라서 다른 컴포넌트가 받쳐주는 것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저런 소리가 기계에서 울려 나오는 지...

아시다시피 일본인들이 구극(究極)의 앰프, 구극의 소리 기계라 칭송하는 마크 레빈슨에는 소리를 채색(colorize)하는 놉(knobs)들이 없습니다. 그냥 볼륨만 있습니다.^^ 마크 레빈슨이 처음에 정한 그 대로, 거기서 나오는 소릴 들으라는 일종의 강요이지요.^^ 근데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게 그렇게나 즐거울 수 없습니다. 그냥 순종하면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랄까요? 전에 류재영 박사께서 마크 레빈슨의 소리를 들으시고는 이에 대해 "기계이긴 하지만 경외심 같은 걸 가지고 들을 만하다."는 표현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전 '이 이상의 극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대단히 정확한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너무나도 좋은 소리가 온 집안을 맴돌고 있습니다. 거실에서 나는 소리를 안방문을 열어 놓고 듣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제가 안방에 있는 컴퓨터에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스테레오 분리도 안 된 채로 그냥 열린 방문을 거쳐 흘러 들어오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래도 그 소리의 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안방에는 전에 거실에서 사용하던 매킨토시 앰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앰프에는 플로어형의 셀레스쳔(Celestion) 스피커가 물려 있고, 파이오니어의 CDP가 달려 있습니다. 영국 오디오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스피커라서 대단히 멋진 소리를 내는 스피커입니다. 하지만 소리는 역시 상대적인 것이어서 거기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아플 정도(?)의 심정이 됩니다. '겨우 이 정도의 소리???' 정말 이해되지 않을 일입니다만, 마크 레빈슨 팀(?)의 투명하면서도 강한 소리에 비하면 너무나도 거칠고, 둔탁한 소리가 나서 실망하게 됩니다. 정말 처음에 매킨토시 팀의 소리를 듣고, 전 '뭔가 매칭이 잘 못되었던가, 기계 중의 하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었습니다.

같은 레코드를 마크 레빈슨에서 먼저 들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시간 동안 음악을 끊음으로써 귀를 청소한(?) 뒤에 이번에는 매킨토시 팀의 소리를 먼저 들었습니다. 근데 이 게 웬일입니까? 아주 멋지고도 따뜻한 소리가 나오더군요. 반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단히 훌륭한 소리였습니다. 한동안 그 소리를 즐기다가 다시 그 레코드를 마크 레빈슨 팀에 물려 보았습니다. 그 때 느낀 것.

'오...!!!!!!!!!!!!!' 그냥 그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그야말로 경외심을 가지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경건한(?) 심정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을 비교하려고 한 것이 참으로 바보같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킨토시 팀에게 마크 레빈슨 같은 소릴 기대하지 말고, 앞으로는 철저히 매킨토시 팀다운 소리를 내게 만들자는 것으로 생각을 고쳤습니다. 그래서 매킨토시의 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놉들, 즉 베이스(bass), 트레블(treble), 그리고 콤프(Comp)의 모든 놉들을 돌려가면서 최대한 마크 레빈슨의 소리에서 먼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전엔 베이스와 트레블을 중간에 두었지만 둘 다 조금 강하게 하고, 콤프의 놉은 원래 Precise, Flat, Loud 중에서 Precise나 Flat에 두었던 것을 라우드로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음이 마크 레빈슨 팀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했습니다. 어찌 보면 약간 탁하고, 무겁고, 강하고, 퍼지는 그런 소리가 되었습니다. 마크 레빈슨 팀의 최강점인 투명성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음이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좋더군요.^^ 왜 가끔 거꾸로 가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르게 만들어 낸 음이 따뜻함을 주고 있었습니다. 마크 레빈슨 팀의 음은 맑고, 투명하지만 그런 성격을 지닌 산속의 시냇물이 그런 것처럼 차갑거든요. 근데 매킨토시 팀에서는 얕은 강가로 흐르는 시냇물에서처럼 따뜻함이 느껴지고, 그 밑에 고여 쌓인 붉은 빛 황토도 보이는 듯 한 것입니다.^^

딸내미 방에 가져다 놓은 야마하 팀(이 건 모두 야마하 기기에다가 영제 B&W 북쉘프형 스피커가 물려 있음.)의 소리를 들으니, 이 건 B&W의 맑고, 힘찬 특성과 이상하리 만큼 깨끗한 소리를 내어주는 야마하 기기들의 특성 때문인지, 그냥 맑고, 깨끗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B&W 특유의 힘은 어디로 갔는지? 그냥 맑습니다. 그러다 가끔 소리가 가벼워서 소리가 공중을 떠도는 듯합니다. 딸아이도 이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즐겨 듣던 조그만 삼성 오디오 컴포넌트의 탁한 소리를 견디지 못 하고, 그 걸 치워 달라고 하여 마루에 내 놨을 정도입니다. 그 크리스마스 선물용의 조그만 가전제품 급의 오디오 컴포넌트보다 (역시 오디오파일들이 보기에는 가전제품 급인) 야마하 시스템의 소리가 낫다는 걸 알게 된 것이지요.

그 애가 나중에 시집갈 때 정도면 매킨토시 팀이나 마크 레빈슨 팀의 소리를 구별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나 시집갈 때 거실에 있는 거 저 주세요."라고 하면???^^ 줘야겠죠.

"나 장가갈 때 박스터 저 주세요."라고 아들놈이 얘기하면? 절대 못 주죠. 왜냐하면 그 건 위험한 물건이니까요. 만약 아들놈이 40세 정도에 그 걸 달라고 하면 당연히 주겠지요. 그 땐 젊음으로 운전을 하지 않고, 노련함과 침착함으로 운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테니까요.

오랜만의 휴식다운 휴식이 저를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Comment '8'
  • ?
    윤세욱 2007.09.12 15:02
    [ netadm@dreamwiz.com ]

    잊어버리기야 애초부터 불가능하실 일이고,
    최소한 자주 떠올리지신 마시라고 이런 저런 말씀을 안드렸는데...

    하기야 그게 사람 마음으로 될 일이겠습니까만...
  • ?
    유인철 2007.09.12 15:07
    [ richell@엠팔.컴 ]

    현세를 사는 누구나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
    Man is mortal.
    아이가 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기 시작할 때 부터,
    비로소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모두에게 진리가 되는 명제인 것 같습니다

    내일을 안다면, 오늘을 살 수 없겠지요.
    오늘의 소소한 일상에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다보면 내일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그간 보던 29"짜리 아날로그 TV가 드디어 맛이가서,
    42" LCD 디지탈 TV를 하나 질렀습니다.
    새로 장만한 TV로 모처럼 DVD를 한편 꺼내서 보았는데..
    안소니 홉킨스와 알렉 볼드윈 주연의 The Edge.

    중간에 마음에 새길만한 대사가 나오더군요.

    "A good plan today is better than a perfect plan tomorrow"
    오늘의 좋은 계획이 내일의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겠지요.
    내일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지난번 딸내미 보러 뉴질랜드 갈 때,
    처음으로 유서라는 걸 써보았습니다.

    애비, 에미가 한 비행기로 가는데..
    만약의 불상사가 생기면 어쩌겠습니까?
    나중에 애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별 짓을 다한다고.. -_-
    유서의 내용은 마누라한테 밝히진 않았습니다만.. ㅋㅋ

    가끔씩 update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현재가 더 충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물론, 한번에 많은 얘기들을 남길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예전에 만들어 놓은 가족까페에 이 얘기 저 얘기 써 놓으려 하는데..

    지금이야 딸내미가 듣기에는 이해도 안가고 흥미없는 얘기들이지만,
    그 놈이 커서 제 나이때 쯤 되면
    아빠는 내 나이때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구나.. 하고
    시간을 거슬러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 ^^
  • ?
    유인철 2007.09.12 15:20
    [ richell@엠팔.컴 ]

    알지도 못하는, 알수도 없는
    내일의 일을 기준으로 해서 오늘을 살 수는 없는일.
    누구나, 오늘을 기준으로 해서 내일을 살겠지요.
  • ?
    박순백 2007.09.12 15:37
    [ spark@dreamwiz.com ]

    [유인철 선생님] 전 이런 미래를 애에게 얘기한 적도 있어요. 1989년이면 1981년 생인 그 애가 아주 어렸을 적.

    http://drspark.paran.com/cgi-bin/fabbsview.cgi?section=sparklife&start=20&pos=16

    아래 유인철 선생님의 얘기는 데자뷰 같아요.^^ 위 링크의 제 글을 읽어보시면
    저도 그런 소릴 1989년에 했고, 그게 아마도 대략 그 나이 정도에 그런 생각에
    잠기게 되는 거 같아요. 딸내미를 둔 아버지들은...

    "지금이야 딸내미가 듣기에는 이해도 안가고 흥미없는 얘기들이지만,
    그 놈이 커서 제 나이때 쯤 되면
    아빠는 내 나이때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구나.. 하고
    시간을 거슬러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 ^^ "
  • ?
    이승준 2007.09.12 16:06
    [ sjlee@bi.snu.ac.kr ]

    이제까지 들어본 스피커들 중에 노틸 802가 손꼽을 정도로 좋더군요.
    아무래도 매킨토시에 탄노이, 마크레빈슨에 B+W를 물리셔야죠. ㅎ
  • ?
    박순백 2007.09.12 16:20
    [ spark@dreamwiz.com ]

    제가 원래 매킨에 탄노이를 물렸었습니다. 근데 마크에 물린 후에
    비교도 안 되게 더 나은 소리가 나는 바람에 그걸로 고정시켰습니
    다.^^ 제가 좋아하는 소리의 조합은 그것이었던 듯.
  • ?
    윤세욱 2007.09.12 16:23
    [ netadm@dreamwiz.com ]

    사진의 꽃은 은광표 선생이 사 간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 ?
    윤세욱 2007.09.12 16:32
    [ netadm@dreamwiz.com ]

    사진의 마크 27은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물건입니다.
    현재는 그보다 스피드가 빠른 29가 물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7은 음질은 좋은데 문제는 트러블이 아주 잦다는 점입니다.
    제 손을 거쳐간 대부분의 27이 꼭 드라이브 단의 콘덴서,
    그것도 아주 특수한 스펙의 것이 타버리거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형님.
    마크는 버리셔도 됩니다.
    티악도 남 주셔도 됩니다.
    그저 탄노이 그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만큼은 현근이를 통해서라도 물려주십시오.
    앞으로 그런 품격 있는 스피커는 나오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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