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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를 이르는 GMO를!

 

6~7년 지났다. 절임배추와 양념을 만들어 판매를 했던 일이. 처음엔 배추 값이 폭락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 정보만을 전달하는 목적이었는데, 일을 벌려놓고 보니 기본부터 확실히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다양한 김치의 재료들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게 되었었다.

백김치나 동치미가 아닌 경우 우리는 고춧가루를 빼놓고 김치를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만큼 다른 양념보다 고춧가루는 소금과 젓갈만큼이나 김치와 떼어낼 수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17세기 요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디味方)이나 여타 기록들을 살펴보았을 때 처음부터 김치에 고추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시지만 아버님의 기억으로도 할머니께서 김치에 고춧가루를 넣으시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슷한 정도로 대할 수 있으셨다고 한다. 그저 100년 남짓 되는 시간에 고춧가루가 폭넓게 우리 음식문화에 뿌리를 내렸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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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농가들이 어느 정도의 고추농사는 대부분 짓지만 고추를 이야기하면 영양, 청송, 순창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순창은 고추농사를 지어 생산된 고춧가루를 대부분 고추장을 만드는데 사용하며, 가장 규모가 큰 고추산지로는 단연 영양군을 들겠다. 영양군은 주변의 영주, 봉화, 청송, 안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생산된 고추를 받아들여 가공해 유통을 하기에 최대 산지로 손꼽는데 무리가 없다.

김치란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도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오래전엔 침채(沈菜)란 말이 있었을 뿐 김치란 말은 이 침채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보인다. 沈菜란 말 그대로 나물 등속을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니 동치미나 백김치, 물김치와 같은 형태로 시작되어 점차 지금의 모습에까지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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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년~1824년)가 쓴 실생활의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규합총서(閨閤叢書 : 1809년)에서 고추가 사용된 흔적이 보이는데 지금과 같은 형태까지는 아니다. 빙허각 이씨의 형편이 비록 귀한 집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당쟁에 휘말려 생활이 그다지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하기에 왕실이나 양반가와는 다른 음식문화가 탄생되어 고추를 이용하여 맛을 내지 않았을까 유추한다.

또한 농사법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기 이전까지는 고추가 대량생산될 수도 없었기에 지금처럼 고추장을 만들거나 김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할 형편도 되지는 못 했겠다. 고추는 병에 약하고, 기후에 따라 작황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작물이다. 따라서 대량유통이 될 성질의 양념이 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가 아닐까 한다.

당시엔 중국에서 수입하는 후추도 이용되었던 모양이지만 가격이 비싸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이용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후추와 비슷한 성질의 전통적 향신료로는 산초가 여러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산초는 정황상 초피를 그리 불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매운탕이나 김치에[ 지금도 널리 이용되는 전통적 향신료는 산초가 아니라 초피란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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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고추라 했을 때 최근엔 청양고추로 대부분 생각하는데 이 청양고추는 1983년에 개발된 품종이다. 그 이전엔 ‘조선고추’란 이름으로 매운 고추가 재배되었다. 80년대까지 고추는 길이가 길고 비교적 두꺼운 호고추와 조선고추 두 가지가 재배되었던 기억들을 할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모종을 구입해 고추를 재배하는 방법과, 고춧가루를 빻기 전 가위로 고추를 가르며 얻어지는 고추씨를 소독해 밭에 직접 뿌리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모종을 키워 옮겨 심는 기술은 농사법이 다변화되며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밭에 씨를 직접 뿌리는 방법이 우리의 전통적 고추농사법이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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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왜 시작부터 ‘청양고추를 즐겨 먹기도 미안하다’라 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1983년 이전엔 청양고추란 말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매운 고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이전에 먹을 수 있던 조선고추는 이젠 만날 수 없다. 그런 처지에서 청양고추가 우리농산물로 재배는 되지만 특허권이 우리에게 없다보니 매년 새로운 종자를 구입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1997년 IMF사태로 인해서 외국계 회사로 종자에 대한 특허권이 넘어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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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양고추 외에도 그동안 우리가 보유하고 있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의 종묘를 모두 소유하게 된 기업은 ‘몬산토’란 다국적 기업이다. 몬산토는 원래 월남전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하여 참전용사들이 고통스럽게 살게 만든 고엽제를 생산하던 회사로, 아스파탐, 폴리염화 바이페닐(PCB) 등을 생산하던 화학 기업이었다.

그랬던 몬산토가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의 종자 회사를 인수하며 비약적으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이미 식량이 중요한 자원으로 부를 창출할 가치가 충분하다 느꼈기 때문이겠다. 그러면서 농업기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로 변신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연 매출액이 약 149억 달러(약 16조3500억원)에 달하게 되는데, 영업이익만도 약 35억 달러(약 3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2013년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80%와 대두(콩)의 93%가 몬산토에서 만든 GMO다.

잠시 여기에서 GMO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GMO는 유전자변형생물체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세계 2위의 GMO 수입국인 대한민국도 몬산토의 GMO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 서글픈 일이 아닌가.

이러한 몬산토가 재산권을 행사하게 된 청양고추를 우리 농산물로 알고 먹는 처지에서 또 무엇이 그들이 노리는 제 2의 청양고추가 될지는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Comment '3'
  • ?
    최경준 2014.12.11 12:07

    아 청양고추의 저작권이,,,

  • profile
    Dr.Spark 2014.12.14 18:48

    "외국계 회사로 종자에 대한 저작권이 넘어간 까닭이다."

     

    여기서 저작권이란 단어를 제가 "특허권"으로 고쳤습니다.ㅋ 역시 글 쓰는 분이라서 저작권이 입에 올라 위 글의 바로 전에 특허권이라고 맞게 쓰시고도 다음 문장에서 그걸 저작권으로 쓰셨더군요.^^

     

    그러고 보니 청양고추마저도 이제 우리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군요.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씁쓸해지는군요.ㅜ.ㅜ

     

  • ?
    한사정덕수 2014.12.15 19:38
    잘 다녀오셨는지요?
    분명 어딘가 이상하게 꼬인 걸 본 거 같았는데 역시 매의 눈으로 살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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