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경험과 느낌을 기록한 글입니다.
이 글과 관련된 어떠한 제작이나 개조 혹은 이로 인한 후속 사안은 이 싸이트 및 글 작성자와 연관이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캐나다(加國)에 살고 있는 윤가(尹家)입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7-8년 전부터 커피-에스프레소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면 끝을 보려는 못된 성정 때문에 이 취미에서도 한심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열 번 남짓 추출장비-espresso machine 바꿈질을 하고,
"자작" 로스터(roaster)로 생두를 직접 볶아 숙성 시킨 후,
"자가 개조"한 상업용 그라인더를 이용해 볶은 원두를 분쇄해서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닌거죠 뭐.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사이트 주인장 Dr. Spark(이하 spark)께서도 저와 비슷한 취미를 갖고 계시고,
그 분 역시 촌놈(?) 유전자 인증필이시라서 제 부잡스러움을 이해해 주신다는 것.
요 근래, spark와 채팅 도중 로스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형님.
커피는요.
시중 판매되는 건 쩐내날 수도 있고요.
맛있게 드시려면 직접 볶아야 되고요.
그러려면 당연 로스터가 필요하고요.
근데 로스터란 게 디게 웃겨요.
이른바 가정용 로스터는요. 로스터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접하고요.
그렇다고 몇 천불 몇 만불 짜리 업무용은 비싸고, 덩치가 너무 커서 번거롭고요.
그래서 윤가 놈이 짱구를 돌려 자작해서 쓰는데 그게 어쩌고 저쩌고......"
열용량이 블라블라
로스팅 프로파일이 재잘재잘
개조할 때 고려할 게 궁시렁궁시렁 나불나불 떠들다가 결국 철퇴를 맞았습니다.
"그거 재밌겠다.ㅋ
네 이눔!
빨리 글로 써서 올리지 못할까!"
이래서 몇 년 만에 나타나 기껏 하는 짓이 "커피 관련 헛소리(咖啡之歌)"라는 걸
귀향 신고 겸해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의 씨앗을 말려서 볶은 후
볶은 씨앗을 그라인더로 갈아 분쇄된 가루에 물을 붓고 추출된 액입니다.
시중엔 말린 씨앗, 말린 씨앗을 볶은 것, 그리고 볶은 씨앗을 분쇄한 것,
심지언 분쇄된 커피가루에서 커피향을 추출해 말린 가루- 이른바 인스턴트 커피까지 다양한 형태의 커피 원료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커피는 각 단계를 거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나 품질 그리고 특성이 변합니다.
"15, 15, 15 rule"이란 게 있습니다.
볶은 후 15일 이내, 분쇄 후 15분 이내, 추출 후 15초 이내 마시는 게 좋다는 의미죠.
가루커피보다는 볶은 원두, 볶은 원두보다는 생원두(생두)가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 확률이 높고,
생두를 직접 볶아서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생각-15 이내의 싱싱한 커피-때문입니다.
커피를 볶는 도구(roaster)는 가정용과 업무용 사이의 간극이 무척 넓습니다.
가정용은 가격이 몇 백 불에서 $2,000 안팎이고,
주방에 놓아도 위화감이 없을 사이즈나 디자인인데 비해
업무용은 최소 몇 천불에 보통 몇 만불 대역이 일반적이고 아주 대형은 억대가 넘는다고도 하더군요.
뭐 사이즈 따위야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원도 다르고 배연설비 가스 배관 연결 등등이 필요해 가정집 실내에 설치가 불가능합니다.
제가 사는 캐나다는 주택 여건이 한국과 달라서 1kg 용량 세미 업무용 정도는 집에 설치하기도 하던데
그래도 주거공간 안에 넣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기껏해봐야 지하실이나 차고 정도?
그래서 저 정도 레벨 자가 소비용 로스터는 대부분 가정용 로스터를 씁니다.
저는 이런 배경을 뒤로 하고
돈 안 들이면서 주변에서 쉬이 입수 가능한 부품들을 이용해 볶아보려고 했는데
경험이 스승이라고, 직접 시도해보니 필요기능과 제품들의 약점이 보이더군요.
가정용 로스터엔 몇가지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용량이 너무 작습니다.
대부분 제품이 200그램 이내의 원두를 볶을 수 있고, 커봐야 1파운드(454g).
둘째.
실은 이게 가정용 로스터의 가장 큰 핸디캡인데, 로스팅 품질이 형편 없습니다.
셋째.
비쌉니다.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보장하면서 필요한 용량을 가지려면 최소 $600 정도이고,
$1,000 이상 장비도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가정용 로스터는 크게 보아 프라이팬, 팝콘, 열 드럼 세 종류의 가열 방식으로 나뉩니다.
프라이팬 방식은 말 그대로 프라이팬에 원두를 넣고 위에서 주걱이 돌면서 커피를 저어주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커피 손수 볶아 쓰실 요량이시라면 이건 사지 마십시오.
로스팅이라고 말할 수준도 안 됩니다.
주걱이 저으러 올 때까지 원두가 뜨거운 프라이팬 표면과 "조용히"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접촉 부분만 국지적으로 탑니다.
예컨대, 원두의 등딱지는 퍼런데 배때지는 까만 거죠.
꽃게도 아니고.....
커피 로스터의 핵심이 온도조절 잘해서 골고루 볶는 것인데, 그걸 로스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커피 전체적으로도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온도가 다르고, 골고루 열이 퍼지지도 않습니다.
"How do I know?
Don't ask."
두번 째 카테고리 열풍식은 프라이팬 보다는 낫습니다만
이것도 시원찮다는 수준에선 프라이팬과 난형난제.
원리적으론 뜨거운 바람이 커피를 공중에 날려 골고루 볶는다고 하지만
열풍 용량이 작아서 커피 전체에 골고루 열이 전해지기 어렵고 시간과 온도 컨트롤이 거의 안 되기 때문에
홈 로스터가 요구하는 스펙의 커피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볶을 수 있는 커피의 양도 200그램 정도가 맥시멈일 겁니다.
저의 경우 하루 커피 소모량이 볶은 원두 기준 50g 이상인데 이 용량이라면 원두가 숙성도 되기 전 다 소모되는 양이고,
묵혀 놓고 쓴다고 해도 2-3일 상관으로 커피를 볶아대야 한다는 이야기이니 이건 취미가 아니라 돈도 못 받는 알바죠 뭐.
이 타입 로스터는 가정용 팝콘기계 혹은 에어 프라이어와 원리가 같습니다.
실제로 팝콘 로스터로 커피를 볶아쓰는 사람도 있고요.
세번 째 카테고리 열 드럼에 이르러야 조금 로스터다워집니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원통형 금속 바구니(drum)에 커피를 넣고 열이 가해지는 드럼을 빙빙 돌리는 겁니다.
열원으로선 전기 혹은 프로판 가스 따위를 쓰고요.
기실 상업용 로스터(드럼식)도 규모가 크고 센서가 많으며 쿨러가 부착 되는 등 좀 더 기계화 되었다는 것 뿐
원리는 이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납득이 가는데 현실이 냉엄해서
판매되는 기성 제품 가운데 성능과 기능 그리고 용량과 가격 모든 걸 만족하는 게 없더군요.
그럭저럭 지명도를 가진 "Behmor2000"도 최대 1 파운드이고 가격도 비싸며 (최소 몇 백 불 이상)
사용 편의성도 시원찮습니다.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서 드럼을 돌돌 돌리는 타입 따위는 일견 온도 컨트롤이 되는 것 같아보이긴 합니다만
적시에 적당한 온도를 가하는 성능은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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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욱표 로스터 상세부분까지 보여드리려던 게 처음 계획이었는데
글도 매끄럽게 써지지 않고 사진 업로드 같은 것도 낯설어 진도를 못 내보냈습니다.
그렇더라도 몇 년만에 나타나 명색 글이란 걸 올렸는데 짤 하나도 없다는 건 독자에 대한 성의가 아니라고 생각들어
어제 볶은 커피와 아침 점심으로 만들어 마시는 라떼 사진을 첨부합니다.

케냐AA 500그램을 "City"와 "City+" 중간 단계로 볶았습니다.
로스팅 소요 시간 16분.
수분 손실율 13.5% 정도 됩니다.

라떼 아트 그린지 시간이 조금 되어 거품이 주저앉았습니다.

이건 아트 그린 후 1분 이내 찍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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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일 내에 후속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가국윤가가배지가(加國尹家咖啡之歌)"에 부치는 글
가국의 윤가는
박순백
가국의 윤가는 나와 같은 촌놈이라
생전 둘은 경기와 남도에서 땅이나 팔 팔자.
그런 어느날 윤가가 촌놈이길 거부하고,
먼 가국땅으로 건너가 좌판을 벌였다.
함께 즐기던 오디오는 내팽개치고,
나무 잘라 가구 만들고, 알리 부품 조립해
드론 날리고, 어쩌다 한 번 토렌스(Thorens)
턴테이블을 개조하며 추억을 더듬는다.
오디오 선생이 딴짓을 하니 내 취미도
시들해져 허구헌날 수많은 개짓으로
개짓거리나 하고 자빠지게 만들었으니...
이제 그 변덕스런 오디오 선생놈은
가배에 빠져 라떼 예술에 심취하고,
이제 더욱더 함몰하니 가배 콩을 굽는다.
원래 윤가가 남의 상품에 만족하지 못 해
멀쩡한 걸 두드려 고물 만들던 사람이라
그 못 된 개버릇 남주지 못 하니 이젠
가배콩도 손수 굽는다 난리를 친다.
이 역시 남의 냄새 싫다고 직접 뚝딱 대
디자인 개념 멀리 던져버리고 실용 중시,
뚝닥대더니 콩볶이 기계를 만들어냈다.
아는 게 병이라 작은 것에 만족 못 하니
그 더러운 성질로 뒷걸음치다 명기 창출.
찬란한 그 이름 윤가의 세욱이니 세워라.
먼미래 대대손손 그 장대를 높이 세우거라.
Mr. Yoon of Maple Land
(The Curious Adventures of My Younger Audio Teacher Yoon Se-wook in Canada)
By Dr. Spark
Mr. Yoon, from the countryside, like me,
We were simple folk, you see.
Cultivating land was our common fate,
In Gyeonggi or Jeolla, we’d sit and wait.
But one day Yoon said, “Enough, no more!”
He left our homeland, for a foreign shore.
No more audio, no speakers, no bass,
In Canada, he set up a garage workshop in grace.
Chopping wood, crafting chairs, like a pro,
Building drones, with Ali Express in tow.
Once in a while, a Thorens he'd fix,
Reminiscing the turntable tricks.
Now my audio hobby’s on the decline,
I fiddle with gadgets, though they don’t shine.
Thanks to my teacher with whimsical whims,
My toys feel hollow, my interest dims.
Yoon’s into coffee - he brews it with flair,
Latte art swirls floating in air.
Obsessed with beans, he roasts them right,
Not content with anything light.
A man who hated the standard brand,
Hammering things with his own hand.
Now he’s roasting with a homemade rig,
Practical? Yes, but it’s far from design big.
His mind won’t settle for things that are plain,
That same old habit drives him insane.
Yet through his fury, genius is born,
Se-wook’s erection, a legend re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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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방식의 로스터기는 아마 이런 제품인 듯 합니다. 이렇게 로스팅을 하고 있으면 일단 감성적인 측면에서 커피 맛과 향이 조금 더 업그레이될 것 같긴 합니다. ㅎㅎ
글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음 편도 기다려집니다.
링크: 보카보카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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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만 있는 제품인 듯합니다.ㅋ 그에 비해서 윤“세우기” 선생의 기계는 일단 덩치도 좀 있고, 기본 제품이 탁상용 오븐인데다가 거기 강력 모터, 온도계 등등 많은 배려를 더한 제품이라 차원을 달리하는 듯합니다.
가배윤가가 조선윤가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완성도 떨어지는 건 상품으로 안 치던 사람이죠. 그 못 된 성정에 더욱더 손재주를 끌어올려 사람 손 가는 일 전부에서 남다른 결과물을 내는 사람이 된 바, 저런 하이브리드 제품을 만들어 낸 듯합니다. 구워낸 결과물을 보니 열풍식 가정용 홈로스터를 사용하는 저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가배윤가의 열풍로스터 까내리기는 저와 나눈 카톡 대화를 통해 껀수를 하나 잡은 덕분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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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英詩) 쓰기에 대하여...
박순백
오늘 캐나다로 이민 간 내 오디오 선생 윤세욱(손아래임)의 자작 커피 로스터 만들기 관련 글에 장난스레 운률과 농담과 성적 암시를 담은 시를 올리고, 그걸 영시로도 번역해 넣었는데... 윤 선생이 그걸 신기해 했다.(하, 이 오디오 선생놈이 나 알기를 개떡으로...ㅜ.ㅜ)
그래서 나의 영시 쓰기에 관한 시도가 적잖이 오래된 것임을 증거를 찾아 보여주기로 했다. 서재를 뒤져보니 지금 보면 낯뜨겁지만 최초로 영시 쓰기에 도전한 글이 나타났다. 그건 "내가 사랑한 여자"란 글로서 1991년 8월 26일에 쓰여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글 안에 담긴 영시는 "1979년 3월 23일 자"이니 내가 대학원에 들어간 지 1년 후에 쓴 것이다. 이걸 뒤늦게 찾아서 그런 때가 있었음을 나중에 글로 쓴 것이다. 당시에 존재했던 금성통신의 24x24 도트 매트릭스(dot matrix) 프린터 PRT-30으로 인쇄된 무려 A4용지 8매에 해당하는 긴 글 중에 포함된 영시이다.
군 제대 후 3학년 2학기로 복학했던 당시는 내가 영어에 미쳐서, 취미 삼아 영어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던 시절이다. 영어가 좋아서 영문과로 편입하거나, 글쓰기를 위해 국문과로, 아니면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로, 혹은 내가 적성을 가진 체육학과로의 편입도 생각했었다. 결국 취직이 잘 되는 신문방송학과를 떠날 수 없어서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에 영문과 편입을 생각하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 때 내가 세운 목표는 영문학을 대표하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 노튼 앤쏠로지(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두 권(현재는 세 권 패키지이나 당시에 두 권으로 구성)을 다 읽는 것이었다.(관련 글: https://www.drspark.net/ski_talk/677480 ) 두 권을 쌓아놓으면 실제로 베게 높이가 될 만큼 방대한 서적이다. 이걸 대학원 졸업 이전까지 다 읽었다.
대학원 재학 중 우리 대학에 교환교수로 온 영문학자 레이 그리피스(Dr. Ray Griffith, Univ. of Wisconsin, Madison) 교수의 문창법(Creative Writing) 강의를 듣고 계속 영시 습작을 했다. 대략 미국 중학교 후반에서 고교 초반 정도의 영어 레벨로 영시를 써보려고 했으니, 그것도 라임(rhyme/脚韻)까지 지키는 시를 쓰려했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당시의 영시들을 읽어보면 한심하면서도 낯뜨겁다. "없는 단어일 경우 명사를 동사화해서 표현하는 것도 동적이면서도 긍적적인 거라서 바람직하다. 현대시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다" 이런 그리피스 교수님의 말씀을 초장부터 충실히 따랐는데, 지금 보면 어불성설의 이상한 짓이다. 그건 영어에 통달한 경우에 할 일이 아닌가?(배운 대로 하려다 보니...^^;) 같은 단어를 피하려고 씨소러스(thesaurus) 사전을 들고 동의어(synomym)를 찾고, 라임을 맞추려고 같은 발음으로 끝나는 다른 단어를 찾는 8비트 애플용 애너그램(Anagram)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수많은 단어 중 적당한 의미까지 가진 걸 고른 후에 앞서 쓴 문장을 바꿔야했으니 그 고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제한적으로나마 내 감정을 영어로 표현하면서 가급적 의미와 운률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체득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이제는 그런 일에 꽤 익숙해져서 되는 대로 운률있는 문장을 만든다.(틀리거나 어색해도 되는 게 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니...^^;)
아래는 첨부한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인쇄한 글의 일부 내용이다. 이 글은 집사람을 만나게 된 경위를 무려 8매에 걸친 글로 쓴 것이고, 그 글 중에 포함된 집사람의 이름 고성애(高聖愛)의 한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풀어 그걸 주제로 쓴 영시이다. 1979년에 내가 이 짓을 시작했다는 게 웃기긴 한다. 지금 읽어보니 당시의 실력에 한숨이 절로 나오고 낯이 뜨겁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첫 시도는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A-A의 운률이 A-B로 바뀌기도 하고, 도저히 라임을 찾을 수 없어 동일한 단어를 두 번 써서 피해가기도 하는 등의 꼼수까지...^^;
어쨌든 그랬었다는 걸 잘 세우는 놈, 윤세우기(윤세욱) 오디오 선생에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아래 예시 맨 밑에 오랜 세월을 지낸 오늘 같은 내용으로 쓴 영시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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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된 도트 매트릭스 인쇄본의 글. 아래 예시된 글 첫 머리에 언급된 여자는 집사람을 만나기 전에 만난 같은 동아리의 1년 후배이다.(집사람은 동아리의 2년 후배)
내가 사랑한 여자
- 불출이란 소리를 듣기 위한 글 -
Spark. August 26. 1991
- 이 글은 전에 쓴 어떤 시가 있음을 잊었다가 우연히 그 걸 찾아, 읽어본 후의 느낌을 다시 기억하여 기록한 것이다. '다락방' 계명해 선생님께 답장을 하다가 상기해 낸, 만용으로 쓰여진 어떤 시를 읽은 감상이다. -
옆집 누나를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그 건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이다. 언제나 사랑을 앞에 두고는 쑥스러워 항상 비극으로 끝나곤 했던 강아지 풋사랑 (puppy love)을 어떤 여자를 만나 종결짓기 까지 난 꽤도 헤맸다.
길지도 않은 세월동안 정말 많은 여자들을 좋아했다. 사랑한다는 생각은 없이 단지 어떤 그리움과 동경으로 보낸 스물 이전의 세월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지샌 밤도 많다(철없는 그리움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어떤 형태였든 그것은 내 영혼을 살찌게 한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시절을 지나 정말 인생을 생각하며, 지난 일을 돌아보며 진실로 내가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게 해 준 여자는 하나.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헤어졌지만 다행히 그녀와는 헤어지지 않았다. 그렇게나 싸워댔는데도 그런 미움보다는 우릴 잇고있는 끈이 워낙 질긴 탓에 우린 같이 살게 되었다. 나와 그녀를 닮은 애가 둘. 이젠 담담히 지난 날을 얘기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우리의 남은 날들을 그려보고, 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 관해 새로운 싸움을 벌이는 그런 생활에 관해 얘기할 차례이다.
1973년 가을, 군에 가기 전에 이 결벽증에 걸린 남자는 제일 먼저 여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 나 꿈에서 본 적 있어? 내가 조금 사랑하고, 날 무척 사랑했던 한 여자가 어느 날 저녁 내게 한 소리다.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도 안 해보고 그저 평소와 같이 대답했다. "아니, 미쳤냐? 꿈에서 널 보게? 내 꿈에 네가 왜 귀신처럼 출몰을 하냐?" 그러자 그녀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맥주 마시기를 집어치우고 위스키를 시켰다(난 그 때 맥주조차 안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아뭇소리 없이 위스키를 몇 잔 마시는 걸 난 호기심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야, 너! 네가 뭐야?" (그녀는 내가 나가던 클럽의 1년 후배였다). 갑자기 그녀는 앙칼지게 말했다. '아니, 얘가? 이 착한 애가?' 난 놀라서 그렇게만 생각했을 뿐이다. "너, 내가 말하면 농담이나 했지? 야, 니까짓게 뭔데? 너 그럴 수 있니? 내가 뭐야?" "...... 난 거기서 말을 잊고 말았다.
그날 밤 완전히 늘어진 그 애를 연희동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애의 부모에게
-1-
* 아래는 5쪽과 6쪽에 걸쳐있는 내용이다.
것도 그 때 알았다. 졸림을 억지로 참다가 갑작스레 코피가 터지면 그것이 보고있던 책장을 시뻘겋게 적셨다. 그 피묻은 책장을 보면서 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정말 급작스레 영어실력이 늘게 되었다(요즘 좀 지껄이고,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때 키운 실력이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한 고등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하는 녀석이 자신이 영문 타자기를 두드려서 쓴 두 권의 추리소설과 함께 영시 모음집을 보여준 때문이었다(그는 영문학을 전공하여 이제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고 3시절에 이미 영문시집을 출간하였다). 그로부터 받은 쇼크로 인하여 난 차를 타나, 내리나, 길을 걸으나, 잠을 자나 영어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영시작법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며칠 후 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하여 영어로 시를 써보고 싶었다. 1979년 어느 삼월 봄날의 미친 짓이었다.
LOFTY, SACRED LOVE
- By Spark on his then sweetheart, now spouse
on March 23, 1979
Her life influenced me greatly
She affluenced my life happily
When I saw her first
I was attracted by
Then I thought she, my lady, first
as a stony boy then and before
While I was in love time passed by
As it was before
While I was in the army
She wrote letters to me
Always only me she thought of
All ways only me she take care of
She made me as comfortable as possible
She made her as beautiful as possible
She became my life, my spouse now
She has affluenced my life as you know
Her name, KO SUNG AE
means
'Lofty' was her life
'Sacredly' has lived she in He
'Love' that's all she has pursued after
Only for me
위의 글을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해석할지 모르지만 내가 스스로 해석한다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위의 글을 쓸 때는 어떤 생각으로 그같은 표현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지금과는 조금 다른, 보다 애틋한 글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보다 딸리는 영어실력으로 찾을 수 있었던 최상의 단어를 쓴 것으로 기억된다). 내 처의 이름은 고성애이다. "높을" '고.' "성스러울" '성,' "사랑" '애'이다. 그녀에 관한 시이므로, 그녀의 이름자를 따서 제목을 지었다. 이건 그녀의 이름풀이이기도 하고,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기도 했다. 그녀의 희생에 대한 작은 보답인양 난 글의 리듬을 생각하며, 별로 맞지도 않는 각운을 생각하며, 내 머릿속의 많지 않은 단어들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위의 시를 썼던 것이다. 한 고결한, 그리고 성스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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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읽어보면 미국애들 고1 정도의 수준에서 '시에선 살짝 일탈을 한 표현이나 단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기본적인 문장 구조를 잡고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핵심 단어들은 적당히 사용했고,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 상태에서 쓰려고 했음을 알겠다. 감정을 담아내려 노력한 것과 시의 맥락에서 중요한 주데를 다뤘고, 감정 표현에 있어서 어휘 선택에 신중하고 구조를 만들어 간 걸 봐도 대략 고딩 레벨의 영시. 창의성이야 있다해도 그건 시도(try) 자체만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언어적 한계가 있음에도 그 한계를 넘어선 감정을 전달하려는 엉뚱한 노력을 했으니 역시 학습 과정에서 쓸 수 있는 시라는 것이 긍정적인 수준.^^;
이제 영어 사용이 좀 편해진 상태에서 프린트된 한글 버전의 시를 읽고 써 본다면 이런 레벨로 쓸 수 있는 건데, 이렇게 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Lofty, Sacred Love
By Spark on his then sweetheart, now spouse
March 23, 1979
Her life, a beacon, shaped mine so true,
She brought me joy, in all I’d do.
When first I saw her, she caught my eye,
From that moment, she was the apple of my sky.
As a stony boy, before love’s start,
She melted the ice that gripped my heart.
Time passed swiftly, love in its wake,
In the army, her letters would make
My days brighter, her words like a plea,
A promise of love, forever with me.
She did her best to comfort my soul,
To look her best, to make me whole.
Now, she’s my life, my wife by name,
Her love, like a never-dying flame.
Her name, KO SUNG AE, holds its grace,
'Lofty' describes her life's embrace.
'Sacred' the way she’s lived in He,
'Love' for me, eternally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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