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제2의 히틀러인가?

출생과 시대적 배경
베냐민 네타냐후가 태어난 1949년은 이스라엘 건국 이듬해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선포했고, 그 직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네타냐후가 태어난 것은 그 전쟁의 포성이 막 잦아들던 시기로, 이스라엘이 휴전협정을 맺고 국가로서의 첫 숨을 고르던 때이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거의 같은 나이이며, 타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 공동체, 즉 디아스포라(diaspora)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 본토에서 태어난 첫 세대, 이른바 사브라(sabra)에 속한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씨를 흩뿌리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고향이나 모국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민족 집단을 가리키며, 역사적으로는 특히 유럽과 중동 각지를 떠돌며 살아온 유대인 공동체를 지칭하는 데 쓰여 왔다. 사브라란 이스라엘 태생의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팔레스타인 자생 선인장의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겉은 거칠고 속은 달다’는 뜻을 담은 이 말은 이주민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나고 자란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유럽 디아스포라의 비극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함께 성장한 첫 세대라는 사실은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이 된다.
가족적 배경과 이데올로기의 뿌리
그의 아버지 벤치온 네타냐후는 저명한 역사학자로서, 중세 유대인 박해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이다. 특히 스페인 종교재판 시대의 유대인 학살을 연구한 인물로, 그의 학문적 세계관은 유대 민족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박해받아 온 존재라는 인식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 아버지의 역사관은 아들 베냐민의 세계 및 세계사 인식에 깊게 각인되었다.
네타냐후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상당 기간을 보냈으며, MIT에서 건축학을, 이후 하버드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는 이스라엘 특수부대 사예렛 마트칼 출신으로 군 복무 경험도 있다. 그의 형 요나탄 네타냐후는 1976년 엔테베 공항 인질 구출 작전을 이끌다 전사한 군인으로, 이스라엘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형의 죽음은 베냐민에게 또 하나의 깊은 심리적 상처이자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적개심의 구조
네타냐후의 아랍인과 주변국에 대한 적개심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조화된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벤치온은 아랍인과의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고 믿었으며, 유대 국가는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이른바 “수정주의 시오니즘”에 가까운 입장을 평생 견지했다. 베냐민은 이 신념을 유산처럼 물려받았다. 더불어 형의 전사는 그에게 아랍 세력이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섬멸해야 할 실존적 위협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혀 주었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오슬로 협정에 처음부터 격렬히 반대했으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해 왔다. 이 협정은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이에 체결된 역사적인 평화 협정이다. 노르웨이의 중재로 비밀 협상이 진행되었고,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공식 서명했다. 협정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공식 승인하는 상호 인정이었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일부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두 국가가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을 향한 첫걸음으로 평가받았다. 라빈과 아라파트, 그리고 협상을 중재한 시몬 페레스는 이 공로로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오슬로 협정은 수십 년에 걸친 유혈 충돌 끝에 타협과 공존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강경파는 이를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굴복으로 간주하며 처음부터 강력히 반대했고, 협정은 이후 양측 강경파의 저항 속에 사실상 사문화되는 길을 걸었다. 그에게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결해야 할 분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위협이며, 하마스든 헤즈볼라든 이란이든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일한 적으로 간주된다. 이 세계관 안에서 외교와 타협은 나약함이고, 무력만이 생존을 보장한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현재의 참극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완전히’를 뜻하는 holos와 ‘불에 태우다’를 뜻하는 kaustos가 합쳐진 말이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바로 이에 대한 기억과 연결되는 네타냐후라는 인물이 안고 있는 가장 깊고 처참한 모순이 있다. 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조직적으로 자행한 학살로, 그 수가 약 600만 명에 이르렀으며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정치적 반대자 등을 포함하면 희생자 수는 1,100만 명에 달한다. 나치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십 개의 강제수용소와 절멸수용소를 운영하며 가스실, 총살, 강제노동, 기아 등의 방법으로 이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이고 계획적인 집단학살로 기록된다. 그것은 유대 민족의 집단적 외상이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명령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자체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 위에 세워진 것이다. 네타냐후 역시 그 서사를 정치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소환해 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란의 위협을 설명할 때마다 히틀러를 들먹이고, 적을 묘사할 때마다 나치의 언어를 빌려 쓴다.
그런데 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가 그토록 혐오한다고 말하는 참혹한 역사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다. 2025년 초까지 집계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5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 절반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다. 가자지구의 병원은 폭격당했고, 식량과 물과 의약품의 반입은 봉쇄되었으며, 주민들은 거듭된 피란 명령에 쫓겨 갈 곳 없이 남쪽으로 내몰렸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집단학살 협약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본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네타냐후는 전범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아이러니가 가능한가? 유태인의 고통의 기억이 공감의 원천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면죄부로 전환되는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한 가지 답은, 네타냐후에게 홀로코스트란 보편적 교훈이 아니라 유대 민족만의 독점적 서사라는 점이다. 타민족의 고통은 그 서사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죽음은 그의 언어 체계 안에서 “인간 방패” 뒤에 숨은 하마스가 초래한 결과로 처리된다. 이것은 단순한 냉혹함이 아니라, 고통을 위계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이다.
또 다른 답은 정치적 생존이다. 네타냐후는 현재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다. 그에게 제기된 혐의는 크게 세 가지로, 언론사 소유주들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대가로 규제 혜택을 제공한 혐의, 통신 재벌로부터 고가의 선물을 받은 뇌물 혐의, 그리고 잠수함 구매 계약과 관련한 사기 및 배임 혐의이다. 이 재판은 202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코로나 팬데믹과 잦은 총선, 그리고 전쟁 등의 이유로 수차례 중단되거나 지연되었다. 실제로 네타냐후 측은 전쟁을 이유로 재판 일정 연기를 반복적으로 요청해 왔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그는 전시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재판은 뒷전으로 밀린다.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는 그에게 이데올로기적 신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 생존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 동기가 결합될 때, 외부의 어떠한 압력도 그를 멈추게 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심리적 기제
역사는 종종 잔인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박해의 기억을 가장 크게 외치는 자가 새로운 박해의 집행자가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베냐민 네타냐후가 세계 앞에 보여주고 있는 비극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피해자 정체성의 무기화”라고 부른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집단적으로 경험한 민족이나 개인은 그 고통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항구적인 피해자로 정의하게 된다. 이 정체성이 굳어지면, 자신이 가하는 폭력은 언제나 방어로 재해석되고, 상대방의 고통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부수 피해로 처리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이를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분석처럼, 억압받은 자가 억압자의 논리와 방법을 내면화하여 권력을 획득했을 때 동일한 방식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것이다. 피해의 기억은 공감의 윤리로 승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방어막이 된다.
더 나아가 이것은 개인의 병리가 아니라 집단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심리학자 허버트 켈먼이 분석한 “도덕적 배제”의 기제가 여기서 작동한다. 도덕적 배제란 특정 집단을 자신의 도덕적 고려 범위 밖으로 밀어내는 심리적 과정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네타냐후와 그를 지지하는 이스라엘 강경파의 언어 안에서 인간이 아니라 “인간 방패”나 “테러리스트”로만 호명될 때, 그들의 죽음은 도덕적 감각을 작동시키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한 것도 바로 이 도덕적 배제의 기제였다. 유대인을 인간의 범주 밖으로 밀어낸 나치의 언어가 학살을 심리적으로 가능하게 했듯, 팔레스타인인을 같은 방식으로 호명하는 언어가 지금의 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가장 절절하게 체득했어야 할 자들이 그 교훈의 핵심을 가장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응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튀르키예 외무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현대판 히틀러’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공식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 영장이 발부된 인물임을 지적하며, 그가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특히 레바논에 대한 공습을 멈추지 않는 배경에는 평화 협상을 무산시키고 세력을 넓히려는 의도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비판은 튀르키예에만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도 이스라엘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비판하며 즉각적인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유엔에서도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이사국이 이스라엘의 행위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4월 10일 자신의 X(전 트위터) 계정에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뒤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달린 영상을 공유했다. 거기서 격렬한 논란이 촉발되었다. 그는 “이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적었다. 그런데 해당 영상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 아니라 2024년 9월 서안지구 카바티야에서 이미 발생한 사건의 영상이었으며, 영상 속 인물도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시신이었다는 논란이 일었다. AP통신 등 국제 통신사는 영상 내용을 확인했고, 독일 DPA통신은 희생자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보도했다. 즉, 영상이 묘사한 내용 자체가 완전한 가짜뉴스는 아니었으나, 2년 전 사건을 현재의 일처럼 제시한 계정을 무검증으로 인용하는 경솔한 행위였음은 사실이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일 전날에 이루어진 유대인 학살 경시를 포함한 이재명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용납될 수 없으며 강력한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이 한국 현직 대통령을 실명으로 거명하며 “규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수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 외교부도 즉각 입장을 내고, 이스라엘 외교부가 대통령의 글을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표명한 것으로 오해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동시에 “홀로코스트 피해자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이며 이스라엘을 달래는 이중적 대응을 취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번쯤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며 재반박했다.
국내 야당과 반대 진영의 비판 논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타국 정부와의 불필요한 감정적 갈등을 멈춰야 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적절한 시기와 장소, 방법이 있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북한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국제 분쟁에는 거침없는 훈계, 이재명 정부의 선택적 인권”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SNS 발언이 대통령직의 무게에 걸맞지 않는 즉흥적 행동이라는 것, 그리고 인권 기준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핵심 비판이다.
이 비판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며 시민 수천 명을 사살했을 때도 이 대통령은 직접 언급한 적이 없고,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공동제안국 참여를 막판까지 고심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구호선박 나포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에도 그에 대한 별도의 언급이 없었던 점도 지적받는다. 공식 외교 채널이 아닌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영상을 공유하며 사안을 키운 것도 대통령의 공적 지위를 고려하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이 품고 있는 문제점도 명확하다. 야당 비판의 상당 부분은 이 대통령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했는가에만 집중하며,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위 자체에는 눈을 감는다. 발언의 형식과 절차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더라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행위를 면죄하는 논리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민의힘이 이 사안을 6·3 지방선거와 연계해 보수 결집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다는 보도는, 이 비판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외교적 우려인지를 스스로 의심하게 만든다. 인권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정작 그 인권의 내용에는 침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대통령이 비판한 선택적 외면과 다를 바 없다.
한편, 이 사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다. 알자지라는 이 대통령과 이스라엘 간의 충돌을 비중 있게 다루었고, 한 이집트 소셜미디어 채널 운영자는 “이스라엘이 지난 48시간 동안 스페인, 한국, 파키스탄, 터키와 갈등을 빚었다”고 언급하며 이 대통령의 발언이 국제사회에 조용히 퍼졌다고 전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정부 차원보다는 언론과 시민사회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는 형태로 나타났다.
대외적인 압박과 함께 네타냐후 총리는 내부적으로도 큰 법적 위기에 봉착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레바논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겠다며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 법원은 전쟁을 이유로 중단되었던 네타냐후의 부패 혐의 재판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네타냐후 총리는 실제 감옥에 갇힐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의 정치적 생명이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끝으로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함께 태어나 그 나라의 가장 긴 집권 기간을 기록한 지도자이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있는 유산은 안보가 아니라 고립이며, 승리가 아니라 전범 딱지이다. 홀로코스트를 가장 큰 목소리로 소환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집단학살의 집행자가 된다는 것, 피해의 언어로 가해를 정당화한다는 것, 그것은 개인의 타락이기 이전에 권력이 기억을 어떻게 왜곡하고 소비하는가를 보여주는 냉혹한 역사적 교훈이다.
히틀러와 네타냐후를 단순히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비교가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고, 식량과 물을 무기로 삼으며, 국제법을 무시하고, 반대 목소리를 적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 자행되든 같은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역사는 피해자의 자격으로 가해를 면제해 주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의 후예라는 사실이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네타냐후가 사브라 세대라는 사실도 그가 저지른 일의 무게를 조금도 가볍게 하지 않는다.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그것을 말해준다. 전범은 처벌받아야 한다.

자식을 비롯한 가족, 친인척, 측근들 보면 히틀러보다 더 할수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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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두 문단은 정말 100%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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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나 네타나후 똑같은 전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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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내용 삭제 및 수정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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