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왔다, 이 한 겨울에... 이게 말이 되나?

아는 분이 원주 부근 샘밭에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백 년이나 된 농가를 리노베이션하여 멋진 별장처럼 꾸몄다. 오래된 한옥의 멋과 현대식 내장이 잘 조화된 멋진,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다.
이분은 내 지인이자 오랜 직장 동료이기도 한데... 원래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살며, 거기서 대학 나오고 거기서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차린 분이다. 실은 이분이 ”아래아 한글“이 탄생하기 전에 대단한 기능으로 중무장한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한글 2000”을 개발한 분이자, 한컴퓨터의 설립자 강태진 대표이다. 한글 2000이 개발되던 당시엔 컴퓨터에서 한글을 구현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었다. 한글 카드를 만들어 이를 설치함으로써 텍스트를 구현하는 방식이 존재하던 때였으나 그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한글 2000은 한글을 컴퓨터 화면에 그래픽으로 처리하여 표시하고, 다양한 폰트를 숱한 워드프로세싱 기능으로 구현한 본격적인 워드프로세서였다.
강 대표는 한글 2000을 들고 한국으로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IT 산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도 현역이다. 이분이 북촌 생활을 하다가 샘밭으로 내려간 것이 내 기억으로는 채 2년이 안 되는 듯하다. 가끔 그 샘밭의 별장스런(?) 집과 집안 구조를 보며 부러워하던 차이다. 집주위에 잔디도 심고, 나무도 심고, 마당에 연못까지 파고 관상어를 기르는 등 시골생활을 만끽하고 계시다. 집에 곤충도 들어오고, 마당 연못에 뱀도 출현한다는 걸 보니 시골다운 시골인 듯하다. 전 같으면 당장 달려가 구경했겠는데, 집사람이 병석에 든 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런데, 오늘 강 대표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하셨다. 페이스북 포스트의 제목이 “정월에 찾아온 제비”였다. 사진이 여러 장 곁들여 있었다. 그 오래된 집의 안 서까래 한 켠에 제비집이 두어 개 있는데, 이 한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제비가 돌아온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멀쩡히 오늘 날짜로 찍은 사진으로 인증을 하니 아니랄 수도 없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대개 봄에 돌아오지 않는가? 봄은 아직 멀고, 걔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은 겨울의 초입을 조금 지난 이 시점에 왜 돌아왔단 말인가? 이 한파에 추위에 약한 걔들이 돌아온 것 자체가 해외토픽에 날 일이다.


이 추위에 걔네들은 대체 어디 있다가 되돌아온 것일까? 그 집에 살던 애들이 돌아온 건지, 아니면 다른 집에 살던 애들이 돌아온 건지, 도대체 어디 살다가 이날을 기해서 왔단 말인가?
걔네가 강남을 오가는 철새가 된 건 상기한 대로 추위에 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추위가 닥치기 전에 따뜻한 강남으로 떠나 잘 살다가 한국에 봄이 오면 불현듯 고향으로 되돌아 오듯 날아오는 것이다. 왜 한국을 고향으로 여긴다고 생각하느냐하면, 걔네들이 한동안 피한을 하는 강남은 대개 상하의 나라들이다. 그러니 그 따뜻한 데서 내리 살아도 별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근데 한국의 봄을 기해 돌아오는 걸 보면 얘네들의 고향이 분명 한국일 거란 것이고...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 “강남 갔던 제비”라는 말의 ‘강남’을 중국 양쯔강, 즉 장강 남쪽에 있는 그 강남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현대의 조류학자들이 GPS 추적기를 달고 살펴보니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지의 동남아였다고 한다. 멀리로는 인도네시아나 호주 북쪽까지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남에서 돌아온 이 제비들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필리핀이라고 해도 2,600km나 먼 거리를 날아서 돌아온 것이다. 만약 갔던 곳이 호주 북쪽의 도시인 다윈 정도라면 무려 6,000km가 되어 필리핀 거리의 두 배 이상이 된다. 그러니 그 먼 거리를 이른 시기에 되돌아 온 것도 말이 안 되고, 이 추위에 왜 돌아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얘길 그분 페북의 사진 밑에 댓글로 달았더니... 해쉬태그 언급을 하신다. ‘해쉬태그라니?’ 그래서 뒤늦게 해쉬태그를 보니...
그 포스트의 맨밑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알리익스프레스배송이많이빨라졌구나 #시골살이 #샘밭스토리 #시골살이 #샘밭스토리
Swallows are in the nest #saembatstory
아, 내 꼬리를 무는 질문과 고민의 연속이 맞닥뜨린 것이 이 허망한 결과라니...ㅜ.ㅜ 그 미친 놈의 알리익스프레스는 뭔 제비 모형까지 만들어 파는가 말이다(하긴 알리는 우리 상상력이 못 미쳐서 그렇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참을 수 없었다. 이 허망함을 채울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했다. 결국 내가 추가 조사를 진행한 바, 강 대표님 댁의 제비들은 ‘강남’에서 온 것이 분명함을 확인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강남은 양쯔강 하류의 남쪽 지역을 뜻한다. 그리고 저장성의 항저우 시는 양쯔강 이남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알리익스프레스의 본사는 이곳 항저우시에 위치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항저우는 명확하게 예전부터 불러온 개념인 강남 지역에 속한다.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따뜻한 기후 덕분에 농업과 상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항저우는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도시이다. 중국인들이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항저우는 강남을 대표하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으로 꼽혀왔다.
알리익스프레스와 모기업인 알리바바 그룹의 본사가 강남인 항저우 위항구와 빈장구 등에 넓게 퍼져 있다는 걸 파악한 것이 내가 느끼기에 큰 위안이 된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의 본사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항저우 서쪽에 있는 시시 캠퍼스 부근인데, 이곳은 양쯔강의 남쪽이면서 강남 특유의 수변 경관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항저우 출신이거나 그곳과 관련된 옛 시인들의 한시에는 꼭 제비가 들어간다.
항저우 시인들의 제비 관련 시
백거이 (白居易) - 전당호춘행 (錢塘湖春行) - 당나라 시인. 항저우 자사(지사)를 역임하며 서호(전당호)를 사랑함.
孤山寺北賈亭西,水面初平雲腳低。
幾處早鶯爭暖樹,誰家新燕啄春泥。
亂花漸欲迷人眼,淺草才能沒馬蹄。
最愛湖東行不足,綠楊陰裏白沙堤。
고산사 북쪽 가정의 서쪽, 수면은 막 평평해지고 구름 발은 낮게 깔렸네.
몇 군데 이른 꾀꼬리는 따뜻한 나무 차지하려 다투고, 어느 집 새 제비인가 봄 진흙을 쪼는구나.
어지러이 핀 꽃들은 점점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얕게 돋은 풀은 겨우 말발굽을 가릴 정도라네.
호수 동쪽 풍경 가장 사랑하여 발길 떼지 못하니, 푸른 버들 그늘 속 백사제라네.
주방언 (周邦彥) / 서룡음 (瑞龍吟) - 북송의 시인. 항저우(전당) 출신.
章臺路。還見褪粉梅梢,試花桃樹。
愔愔坊陌人家,定巢燕子,歸來舊處。
장대길에, 매화 끝엔 꽃가루 지고 복사나무엔 꽃이 피려 하네.
고요한 마을 집집마다, 둥지 틀 제비들 옛 살던 곳으로 돌아왔구나.
3장염 (張炎) / 청평악 (清平樂) - 남송의 시인. 항저우(임안) 출신.
去年燕子天涯,今年燕子誰家
지난해 제비는 하늘 끝에 있더니, 올해 제비는 어느 집에서 머무는가?
하지장 (賀知章) / 영류 (詠柳) - 당나라 시인. 항저우(소산) 출신.
직접적으로 제비를 노래한 것은 아니나, “이월의 봄바람은 가위와 같다”는 표현이 제비 꼬리를 연상시켜 제비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메타포임.
碧玉妝成一樹高,萬條垂下綠絲絛。
不知細葉誰裁出,二月春風似剪刀。
푸른 옥으로 단장한 듯 나무 한 그루 높이 솟아, 만 가닥 버들가지 초록 실처럼 드리웠네.
이 가느다란 잎사귀 누가 마름질해 냈을까, 이월의 봄바람이 가위와 같구나.
‘역시 강남에서 온 제비였어.’ 이 생각으로부터 큰 위안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