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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생각나는 ‘동심초’ 그녀
  • DrSpark
  • 25.12.24
  • 조회 수: 426

크리스마스 이브에 생각나는 ‘동심초’ 그녀

 

IMG_3496.png.jpg
 

 

요샌 크리스마스 시즌이 돼도 도통 기분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엔 12월만해도 마음이 들떠서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나 그 하루전만 기다리곤 했었다. 근데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친구들 모두가 그랬고, 우리 어린애들만 그런 게 아니고 어른들도 그랬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모두가 상기된 표정인 게 어린 내 눈에도 보였던 시절이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건 분명 거리에 울려퍼지는 다양한 크리스마스 캐롤 때문이었다. 당시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동네의 모든 교회들이 십자가가 달린 첩탑 아래 설치된 혼(horn) 형태의 큰 PA용 스피커를 통해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댔다. 요즘 같으면 소음 공해라고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 땐 그런 게 없었다. ‘공해’란 말조차 생기기 전(유행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뿐인가, 당시의 음반샵들도 모두 밖에 내놓은 네모난 박스형 스피커를 통해서 캐롤을 틀었다. 그리고 전자제품을 고치는 전파상이나 다방, 술집 등에서도 똑같았다. 그러니 거리 어딜 가나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렸고, 사람들은 걸으며 귀에 익숙한 캐롤이 나오면 콧노래로 그걸 따라했다. 내가 직접 목격한 바에 의하면 당시엔 스님들이 입은 승복이 지금처럼 회색의 한식 장삼이 아니고 모두 흰옷이었는데, 그분도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흥얼거리며 길을 가셨다. 당시 난 스님이란 말은 몰랐던 듯하고, “중”이라고만 했는데, 당시 생각이 ‘어, 중이 저 노래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신기해서 교회에 가서 전도사님을 뵐 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모두 함께 천국 가면 좋지”라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그 땐 유독 겨울이 추웠고,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찡한 느낌이 들었으며, 귀가 아려올 정도로 추웠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두 털모자와 토끼털 귀마개를 하고 집에서 어머니가 짜주신 긴 목도리를 목에 걸쳤으며, 손엔 벙어리 장갑을 끼고 다녔다. 그게 지금은 아련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이젠 그 시절이 가고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 그 당시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 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게 아마도 저작권 문제와 소음 공해 문제로 거리에서 캐롤이 사라진 후부터일 것이다. 요즘도 식음료를 파는 매장에서는 이 시즌이 되면 캐롤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처럼 음량이 큰 게 아니라 아주 작게, 거의 배경 소음 정도의 음량으로 들리니 어쩌다 한 번 ‘캐롤이로구나’란 생각이 들 뿐, 그 노래를 듣고 같이 흥얼거리거나 가슴이 들뜨는 일은 없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일과 함께 돌이키는 추억 하나가 있다. 지금은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데 어린시절엔 국민학교(초등학교) 상급반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교회에 나갔다. 유교적 전통에 충실한 집안이라 우리 집안에서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없었지만, 당시엔 교회가 그 커뮤니티의 놀이터와 비슷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나 동생들은 같은 교회에 나갔고, 부모님도 그걸 말리지 않으셨다. 당시에 나도 집안 분위기를 알기에 내가 크면 교회에 계속 다니지 못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다니는 동안엔 열심히 교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부러운 건 유아세례까지 받은 기독교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걔네들은 부모와 함께 교회에 나오는 것도 그랬고, 일찍부터 다니다 보니 찬송을 할 때 모든 노래를 잘 알고 따라부르며, 주기도문도 잘 외우고, 기도를 할 일이 있을 때 멋진 기도문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놀라기도 했다. 교회에선 그런 애들이 금수저란 걸 깨달았다.

 

당시엔 크리스마스 이브나 당일에 TV에서 꼭 기독교와 관련한 영화를 방영했다. 십계, 쿠오바디스, 삼손과 데릴라, 화이트 크리스마스, 34번가의 기적, 크리스마스 인 커네티컷 등이 그런 영화였다. 이들 영화 중 일부는 당시에도 헐리우드의 대작들이어서 엄청난 돈이 투자된 것들이고 정말 재미있었다. 커서 그런 영화들의 대부분이 헐리우드를 주름잡고 있던 유태인 자본가들에 의해서 제작된 것이라서 종교적인 색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때는 ‘나홀로 집에’ 등 몇 가지의 영화들이 크리스마스에 방영된 것도 보았는데, 지금도 이 때면 그런 영화들이 방영되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져서 모르겠다. 기독교 대작 영화들을 통해서 본 예수의 생이나 당시의 분위기는 살아오는 동안 항상 뇌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당시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여럿이 모여서 교회 신도의 집을 돌며 크리스마스 축송을 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걸 ‘새벽송’이라고 했다. 동네가 크고 신도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살기에 여러 축송 팀들이 구성되고, 축송 순례를 하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 자원자들이 거기 참여했다. 어떤 해인가는 시즌 중에 교회에 나가지 못 했는데 그들이 우리 집에 축송을 하러 와서 민망해 했던 일도 있다. 아마도 지금은 대도시화가 진척되면서 도저히 그런 행사를 할 도리가 없을 듯하다. 그와 관련된 특별한 추억이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 솜씨가 있는 아이들이 차출되어 손으로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를 교회 앞 길가에서 판매하고 그 대금을 교회에 헌금하면서 전도사님이 건네주신 일부의 돈으로 빵과 과자, 그리고 사이다를 사다가 교회에서 파티를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연말이면 교회가 교외에 가진 땅에 세운 허름한 수련관으로 1박 캠프를 가기도 했다. 난 특히 그런 행사를 좋아했는데, 그런 즐거움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한 연말 웍샵(수련회)에서 경험한 일이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교회를 나오던 여학생 중에 나 이상으로 내성적인 한 아이가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애였는데, 하얀 얼굴에 키도 크고 예쁘게 생겼다. 하지만 항상 무표정하다보니 뭔가 도도한 구석도 있어보여서 애들이 걔와는 별로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걔는 언제나 아이들과 떨어져서 혼자 앉았고, 혼자 기도했고, 혼자 찬송했다. 걔가 웃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해의 연말 수련회에 의외의 일이 생겼다. 그 문제의 여학생이 수련회에 가겠다고 신청을 한 것이었다. 그게 학생부의 작은 화제가 되었다. 몇 리더쉽을 가진 형과 누나들이 이 기회에 그 애가 보다 활발하게 교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했다. 그러니까 걔에게 특별히 잘 해주라고 했고, 자꾸 말도 붙이라는 당부도 했다. 우린 그러기로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도무지 우리와 어울리려고도 않고 말을 붙여도 대꾸도 잘 안 하니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짐을 옮길 때는 얘가 다른 애들과 함께 손을 맞춰서 짐을 나르는 게 대견해 보였다.

 

수련회에서는 여러 행사들이 진행되었고, 첫날 저녁에 회우(오락)모임이 있었다. 회우부장 형이 진행하는 여러 가지 게임에 참가하여 다양한 상도 받고, 벌칙으로 노래나 춤도 추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회우부장 형이 무척이나 능청맞고도 재미있었기에 그 시간은 아주 즐겁게 진행되었다. 둥글게 모여 앉은 내 맞은 편에 그 문제아(?)가 앉아있었는데, 걔는 왼편 가슴에 조그만 직사각형 검정색 네모 안에 흰색 선이 두 줄인가 그려져 있는 소위 “백선”이라는 표찰을 달고 있었다. 진명여고 다니는 애들이 달고다니는 거였다. 지금 그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관련 정보가 나온다. 그 '백선(白線)'은 교복 상의 가슴팍에 다는 두 줄로 장식된 흰색 표찰로서, 진명인의 빛나는 기상, 순결과 정직, 그리고 '진(進)'과 '명(明)'을 상징했으며, 이 학교가 황실학교 중 두 번째로 설립되었음을 뜻하는 중요한 상징이자 전통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란다. 어쨌건 이 백선을 달고 다니는 애들은 다 도도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데 오락이 계속되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그 문제의 여학생이 웃을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애가 웃음을 터뜨려가며 웃으니 회우부장 형은 더 신이 나서 일부러 걔를 봐가면서 더 웃기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필 걔가 게임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벌칙을 받게 됐다. 벌칙은 노래를 하거나 회우부장의 말에 따라 특별한 몸짓을 하며 춤을 춰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형이나 우리나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걔의 평소 태도를 잘 아니까 그런 벌칙을 주어 좋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느니 다른 핑계를 대서 용서(?)를 해주고, 다시 다른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 형은 임기응변에 뛰어난 사람이다보니 아주 멋진 핑계를 대면서 걔에게 벌칙을 주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걔가 벌떡 일어나더니 벌칙을 받겠다고 했다. 그애의 돌발행동에 회우부장 형은 물론 좌중의 모두가 당황했다. 그런데 맏언니격의 누나들이 나서서 걔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치해서 그 문제아(?)의 행동을 지지하니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사라지며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기대감에 차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회우부장 형이 물으니 걔가 노래를 한다고 했다.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 “동심초”란다. 난 무식해서 동심초가 뭔지도 몰랐다. 내 옆에 있는 친구애에게 물으니 걔도 모른단다. 그런 노래는 들어본 일도 없단다. 이화여고 다니는 교회 똑똑이 누나가 옆에 있어서 물어보니 역시 알고 있다. 가곡이란다. 하여간 좋은 노래란 것이다.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저 아이가 그런 노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인지 궁금했다. 반주도 없는 가운데, 걔가 노래를 시작했는데, 첫 소절을 들으면서 모두가 경악했다. 아무리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처음 듣는 노래라 하더라도 그 첫 소절만 듣는 것으로도 그 실력이 엄청난 것이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난 당시 눈이 동그래지고, 귀가 크게 열린 채로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그 노래를 듣는 동안에 놀람과 신비로움, 그리고 노래가 가진 엄청난 힘에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쟤가 이런 반전을 보여주다니???‘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에 환호가 쏟아지고, 몇 놈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휙휙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그건 평소에 전도사님이 하지 말라는 짓이었는데, 그 때 바로 그 우리가 “김전도 상도사" 님이라고 농으로 부르던 ”김상도 전도사“ 님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계셨다. 아무런 제지도 않으셨고, 함께 박수치며 활짝 웃으셨던 것이다. 그 후에 그 노래 솜씨에 반한 회우부장 형이 잇달아 두 개의 노래를 더 시켰고, 모두는 박수로 그걸 응원했는데, 웃음기 없는 얼굴이던 그 진명여고생이 살짝 웃으면서 자랑스레 연달아 두 개의 노래를 불렀다. 첫 노래에 놀란 나는 얼떨결에 그 노래들을 들은지라 그 뒤의 노래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

 

연말 수련회 이후에 그 한 때의 문제아는 교회의 스타가 되었다. 목사님도 그 얘기를 전해 들으셨는지 그 다음 주 주일 설교에서 ‘돌아온 탕아’ 얘기에 곁들여서 걔를 칭찬 하시는 일까지 생겼다. 걔는 그 후에 전도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교회 형들과 누나들이 다 걔를 예뻐했고 드디어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천사로 등극했다. 걔는 그 후 교회 일에도 적극적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도 아주 잘 어울렸으며, 똑똑하고 일도 잘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언제 쟤가 교회의 이단아였던지는 자연스레 잊혀지고 말았고, 걔는 ‘신심 깊은 교회의 딸’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살다보니 잊고 있었던 일인데, 오늘 갑자기 ‘동심초’ 그녀가 떠오른다.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고, 등산과 스키에 빠지면서 완전히 잊혀졌던 일이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동생인 “한국 요들송의 대표 가수 서용율”이 보내온 캐롤송 모음(8GB) 컴필레이션 USB를 종일토록 틀어놓고 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수십 년 만에 ‘동심초 그녀’를 만난다. 추억과의 상봉이다. 왠지 걔는 어느 목사님의 부인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권혜경 ‘동심초’: https://youtu.be/hNaNW7blEXs

강혜정 ‘동심초’: https://youtu.be/h0_YVK3vf8c?si=xns9GKieh1mHS2Xs

김순영 ‘동심초’: https://youtu.be/di_C4PVOfag?si=UNn7IEvK_VHA0L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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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놈이 이긴다."
별 재주 없는 나는 남들 그만 둘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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