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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업 7편, 나만의 이야기 - 필례온천
  • 맹수
  • 25.12.22
  • 조회 수: 83

 

필례온천

 

 

작년 여름. 왼쪽 눈이 안 보이는 증상이 왔다.

불꽃놀이 같은 섬광이 보이더니 갑자기 꺼진 화면처럼 아무것도 안 보였다. 병원에 가서 진단한 결과 안타깝게도 시신경이 괴사 하였다고 한다. 병명은 “망막중심동맥폐쇄”였다. 쉽게 말해 망막 시세포에 연결된 동맥 혈관이 혈전에 막혀 피 공급을 하지 못해 시신경 세포가 죽었다는 얘기다. 응급처방을 통해 혈전을 녹였지만, 골든 타임이 지난 뒤여서 시신경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결국 왼쪽 눈 중심에 도넛 모양의 회색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 같은 시야 장애가 왔다. 당황한 와중에 어이가 없었던 것은 완치가 어려운 영구장애라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었을 때였다. 그나마 전문의가 초기에 처방을 잘해서 뚜렷했던 도넛 모양의 음영이 흐려지기는 했으나, 화면을 블러 처리한 것처럼 사물의 형체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에 그쳤다. 이후 현재까지 더 나빠지지도 그렇다고 좋아지지도 않았다.

 

담당 의사는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위로를 해줬다. 오른쪽 눈이 아직은 멀쩡하고, 왼쪽 눈도 완전치는 않지만 보조 역할을 해서 업무도 볼 수 있고 운전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만약 혈전이 눈이 아닌 뇌로 갔다면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속으로 낙심했다. 왼쪽 안경 렌즈에 뭔가 묻은 것처럼 시야가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음악을 들을 때 한쪽 스피커가 찢어져서 그 잡음이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맛이 시원치 않아 슬펐다. 걱정만 드릴 것 같아 연로하신 어머니께는 지금까지도 말씀을 못 드렸다.

 

조금씩 현실에 적응하고 있으나 여전히 몸이 망가져간다는 생각이 앞선다. 완쾌의 소망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동경하고 기도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부질없이 보이기도 하면서 우스울 때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웃음조차 *사라의 미소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사라: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불임으로 살다가 생리가 끊어져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했으나, 아이를 낳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비웃었다가 결국 나이 90세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을 낳는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웃음”이다)

 

그동안의 병치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설악산 한계령 아래에 위치한 "필례온천" 입구에 잠시 서 있었다. 어제 설악산 흘림골에서 주전골까지 산행 후,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가까이에 있는 온천장에 몸을 풀러 온 것이다. 필례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이 지역의 형세가 베 짜는 여인의 모습과 비슷해서 필녀(匹女)라 했고, 그것이 지금의 명칭으로 변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게르마늄 성분이 많다고 소문난 온천이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규모는 작았다. 그렇다고 시설이 후지지는 않았다. 나름 깔끔하고 단정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내 팔을 툭 치면서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현관 안으로 들어오자 아담한 신발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로비에 들어섰는데 로비라 하기에는 가정집 거실에 가까웠다. 가운데는 안마 의자가 있었고, 옆으로 욕실로 가는 통로가 보였다. 여기서부터 아내는 여실로 나는 남실로 갈라졌다. 탈의실은 대체로 조명이 어두웠다. 옷장 수도 적었으며 어두운 오크 색상의 가구와 거울 그리고 화장대 모두 평범했다. 천장에는 보온재로 감싼 굵직한 온수 파이프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옷을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서자 유황 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온천수의 광물 성분 때문인지 바닥 타일은 녹물처럼 황갈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좌측에 좌식 포함하여 샤워부스가 대여섯 개 정도 보였다. 정면에 노천탕으로 이어지는 유리문이 있고 우측 안쪽으로 욕탕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평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적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앉았다. 천장 가까이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빛에 비친 욕탕 안의 물은 탁한 녹차 색깔이었는데 물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이 눈에 거슬렸다. 지저분한 것 같아 의심스러운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벽면 게시판에 온천수의 좋은 성분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그 옆으로는 원소기호로 표기된 다양한 성분표가 걸려 있었고 옆에는 그중에 함량이 높은 게르마늄 성분의 효능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햇빛을 받으며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푹 담그자 어제 설악산 등반에서 스며든 한기가 녹는 기분이었다. 효능이 좋다는 말에 머리까지 담갔다가 온천수로 눈도 씻어봤다. 눈도 풀리는 느낌이라 혹시나 하고 왼쪽 눈만 떠 보았다. ‘에이. 설마 그러면 그렇지.’ 기적은 없었다. 다시 몸을 눕혀 눈을 감으니 좀 전의 행동이 우스웠다. ‘그래도 혹시 언젠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라의 미소를 지어보았다.

 

체온을 올린 후 노천탕으로 나가 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청아한 가을 아침의 날씨였다. 노천탕은 직사면체의 구조물로 천장이 없는 개방형이었다. 앞쪽으로 창틀과 유리가 없는 큰 통창을 냈고 그 창 아래에 편백나무로 만든 정방형의 욕탕을 만들어 놓았다. 좌측 벽은 옛날 목욕탕처럼 타일로 치장했는데, 그 벽 사이를 두고 맞은편에는 똑같은 구조일 것 같은 여자 노천탕이 있었다. 우측 벽은 시멘트로 거칠게 발라 놓아서 언뜻 보면 전체적으로 짓다 만 건물처럼 보였다.

 

욕탕에는 두세 분의 어르신들이 먼저 와 탕 안에 앉아 있었다. 근데 욕탕 물 위에 에어캡 패드(일명 뾱뾱이)를 덮어 놓았다. 아마 추운 날씨에 보온을 위해 해 놓은 듯했다. 나는 노천탕 구석 한편에 앉아 운치를 즐기다가 창가로 다가갔다(말이 창이지 유리 없이 벽면 크기만큼 크게 뚫어 놓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래는 작은 텃밭이 보이고 뒤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한계령 자락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병풍처럼 가까이 감싸 듯 둘러 있어 노천의 정취를 더했다. 온천에 들어올 때는 1층이었는데 여기는 반 층 정도 높은 것을 보면 노천탕 쪽의 지면은 계곡 방향으로 경사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건너편 여자 노천탕 쪽에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물먹은 것처럼 웅웅 거리며 조금씩 들려왔다. 나이 드신 한 분이 남편 병시중에 푸념을 늘어놓는 소리였다. 근데 사이사이에 아내 목소리도 들리는 듯해서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었다.

 

그사이 노천탕에 있던 어르신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 홀로 탕에 남았다. 독차지한 욕탕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마치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벽면 전체를 덮은 와이드 TV를 보듯 그런 자세였다. 창밖에는 TV 화면처럼 앞동산의 숲만 보였고, 수면 위에 덮어놓은 에어캡 패드는 겨울에 눈이 내려 셔벗처럼 쌓인 느낌을 주었다. 그 위로 귀여운 물안개가 몽글몽글 피어났다. 이 모든 풍경이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 순간 저기 바람 한점 없는 숲 한가운데 어둑한 곳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 1초마다 하나씩 눈처럼 떨어졌는데 바로 낙엽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보며 멍 때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은 죽어가는 과정이구나.’

 

낙엽의 일생처럼, 아기 같은 몽우리에서 신록의 소년으로, 이후 한여름 청춘 그 진초록의 무성함을 지나 서리가 오기 전 중년의 중후한 단풍으로 갈아입다가, 시들어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인생. 너와 나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단지 시간차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죽는다.

 

예수님의 기적 속에 치유받고 살아난 사람들도 결국 모두 죽었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 로마군 장교 백부장의 병든 하인, 열 명의 나병환자들, 어느 노부부의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아들, 베데스다 연못가의 서른여덞 해 된 병자, 지붕을 뚫고 침상에 매달려 내려온 중풍병자, 귀신 들린 정신병자... 이들 모두가 고침 받고 새 삶을 얻었으나 결국 역사 속에서 다 죽었다. 무덤 속에 죽어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남동생 나사로도 나흘 만에 다시 살렸지만 그도 죽었다.

 

어찌 보면 그때 역사 속에 죽어간 기적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죽음을 절박하게 바라보며 절실함으로 생명에 집착한 사람들이었다. 기적 속에서 잠시 새 생명을 맛본 후 결국 죽음을 맞이했으나 이전에 바라보던 죽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낙엽이 떨어지는 순간, 자기를 지탱해 준 나무와 그 위에 펼쳐진 하늘을 새삼 바라보면서 뿌리가 있는 흙으로 돌아가듯 그런 여정을 맛보았을 것이다. 내게 그런 기적은 없었으나, 그들의 삶과 소망을 여기 설악산 끝자락 자그마한 노천탕에서 상상해 봤다.

 

아이와 젊은 아빠가 들어오는 바람에 고요와 평안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아내보다 빨리 나가서 기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비에 나오니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생수 몇 병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먹는 온천수였다. 하나 사서 마셔보니 쌉싸름한 것이 갈증해소에 그만이었다. 위로받은 날이었다. 화창한 밖으로 나와 다음 여정을 이어갔다.

 

 

-------

 

이번에는 쉽게 숙제를 했습니다.

글은 길지만,

기존에 썼던 글을 다듬어서

제출한 것이지요.

 

'신명근의 Outdoor Life' 게시판을 통해

먼저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재작년 가을에 다녀온

한계령 아래 위치한 캠핑장 안의

온천에서 느꼈던 단상을

후기로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수필답게 일부 손을 봤습니다.

 

기존의 글은

블로그스럽게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작성했다면,

수정한 글은

문장과 구성을 그동안 배운 것을 적용하여

정제해서 다듬었습니다.

 

나만의 이야기가 숙제의 주제였는데

'남들과 다른'이라는 조건이 붙었었죠.

그래서 이 글이 적당할 것 같아

제출한 것입니다.

조금만 손봤기에 이번 숙제는 편했습니다.

 

내용은 나의 간증입니다.

간증이라는 용어는 기독교에서

종교적 체험을 했을 때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예전에

조선시대에 쓰였던 법률용어였다고 하네요.

타인의 범죄를 증언하는 것을 뜻했는데,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재활용된 것이죠.

 

회개를 통해서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행위를

뜻한다고 봐야 할까요.

 

죄성으로 죽음을 얻은 인간이

그 유한함을 통해

삶의 의미와 신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철학적인 사유죠.

 

수필에 있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공감을 얻기에 좋은 주제입니다.

남다른 에피소드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이 먹히려면

고강도의 관찰을 통해

관점을 좁혀 집중해서

집요하게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그것을 정제하고 정리하여

재밌게 써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어려운 겁니다.

 

강사님이 제 글을 읽고 평을 하셨습니다.

이야기 두 개가 서로 연결된 액자식 구성으로

아주 잘 엮어 썼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좀 우울하고 쓸쓸한 느낌이 든답니다.

하긴 나이도 먹고,

건강도 안 좋고,

노후 걱정, 자식 걱정 등등 

마음이 늙어가니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마지막 편은

기쁨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숙제가 또 만만치 않네요.

 

주제는 "나라는 영화"입니다.

내 인생의 영화 같은 장면을 묘사하라는데,

또 막막하네요.

써 봐야죠.

 

 

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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