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김장
11월이 온다.
기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아직도 분명하다. 거실 창밖의 은행나무 빛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창문을 열자 코 끝에 살짝 한기가 돈다. 이렇게 겨울 냄새가 다가올 무렵이면 어릴 적 마당에서 뭔가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독을 씻고 비닐 포대와 함지박을 꺼내 준비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마당은 귀한 손님을 맞을 듯한 기세였다. 마치 축제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까이 사는 친척과 이웃이 모여 즐겁게 수다를 떨던 모습도 아련하다. 곧 시골에서 트럭으로 실어 보내온 배추 수백 포기와 여러 재료가 마당에 깔린 포대자루 위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이것이 우리 집 김장의 시작이었다.
그 많던 배추가 절여지고 양념에 발라져 마당 화단의 독 항아리에 다 들어갔다. 겨울 내내 우리 삼 형제는 그것을 먹고 자랐다. 묵은 김치는 설에 물에 씻어 만두소로 해서 떡국과 함께 먹었다. 아침에 찬밥을 물에 넣고 끓여서 총각김치를 반찬으로 먹고 학교에 가곤 했었다. 따뜻한 안방에 차려진 밥상에서 차가운 겨울 맛을 느끼게 해 준 총각김치를 참 좋아했었다.
삼 형제는 자라서 순서대로 결혼했고 며느리들이 집안에 들어왔다. 막내며느리인 아내는 형수님들과 함께 어머니 집에 모여 김장 담그는 법을 배웠다. 장소는 마당이 아닌 아파트 거실로 바뀌었다. 먹거리가 풍성해지면서 김치를 잘 먹지 않게 되자 담그는 양이 줄었다. 재료를 준비할 때도 편의상 절인 배추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일상이 바쁘다 보니 귀차니즘이 생겼다. 어머니도 노환에 손맛이 늙어가고 힘들다고 하셔서 언제부턴가 김치를 사다가 먹었다. 그렇게 우리 집 김장의 서사는 끝나는가 했다.
첫 아이가 초등생 저학년이었을 때.
아내가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시골 마을 연계 김장 행사 정보를 보고는 우리도 한번 참여해 보자고 했다. 도가 지정한 마을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김장을 한 후 일부는 기부하고 나머지를 가져오는 행사였다. 솔직히 매번 김치를 사다 먹다 보니 직접 담근 김치 맛이 그리웠었다. 바로 참여 신청을 했고, 행사일 아침 일찍이 아이들을 데리고 양평군의 한 마을로 갔다.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모습은 동화처럼 예뻤다. 참가자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함께 김장을 담갔는데 대부분 우리 또래였고 아이들도 연령대가 비슷했다. 모두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모인 부부들 같았다.
마을 주민이 직접 재배한 배추와 재료들이어서 믿을 만했고 작업 환경도 위생적이었다. 또한 행사 담당자가 김장 담그는 방법을 순서대로 알려주어 쉽게 담갔다. 이날 참가자들은 서로 처음 만났지만 김장을 담그며 친해졌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우리는 직접 담근 김장을 집으로 가져와 바로 김치 냉장고에 귀중히 보관했다. 시골 마을 전경이 따뜻해서 좋았고, 어릴 적 기억처럼 분주했던 풍경도 마음에 담아와 뿌듯했던 하루였다.
며칠 후 그때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어느 엄마로부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김치가 익어가면서 맛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혹시 김치 담글 때 젓갈을 넣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우리도 기억을 더듬어보았는데 재료에 젓갈이 없었던 것 같았다. 김치 냉장고로 달려가 김치를 꺼내 맛을 보았다.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김치 맛이었다. 모두 어이가 없었다.
마을에 연락을 해서 확인했는데, 사건의 정황은 이랬다. 마침 우리처럼 여러 집에서 문의가 와서 재료 창고를 열어 보니 사용하지 않은 젓갈 통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준비는 했는데 그날 빼먹고 꺼내놓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그쪽도 이런 행사는 처음이라 서툴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부 참가비를 환급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경험을 핑계로 지금까지 김장을 하지 않고 사 먹는다. 결국 그때 양평의 시골 마을에서 담근 김장이 우리의 마지막 김장이 된 셈이다.
한국 사람에게 김치는 영혼의 음식이다.
그 영혼의 맛을 겨울에도 간직하고자 해마다 서리가 내리고 나면 모두가 모여 김장을 담갔다. 이것은 생존 활동이자 축제였다. 이제 우리는 마트에서 그것을 충족한다. 진지함과 소중함이 사라졌다. 편해졌지만 내 영혼 같지 않은, 무언가 텁텁한 느낌이다. 지금 다시 그 맛을 찾아 직접 담근다 해도 그때 그 맛은 안 날 것 같다. 마당 화단에 묻은 독 향기, 어머니 손에서 뿌려진 소금 맛, 지금보다 몹시 추었던 그 해 겨울의 아삭했던 총각김치는 더 이상 재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혼에 스며든 추억만이 지금 먹고 있는 김치 맛을 평가할 뿐이다. 그런 처지가 그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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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월 말에 쓴 것입니다.
6주 차 수업 숙제였죠.
수업 일정 중간에 에세이 수업 시리즈를 시작해서
시간 편차가 다소 발생하여 12월 중순에 올렸네요.
올해도 우리는 김장 김치를 유명 김치 회사에 주문했고,
얼마 전 택배로 받아서 잘 먹고 있습니다.
편해요.
사실 여성들에게 편한 것이죠.
교회에 다니고부터는 제사를 내려놓았고,
어머니도 연로하시다 보니
김장 김치도 주문해서 먹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제사만큼은 절대 내려놓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어느 제삿날 전을 부치시다가
그분이 오셨는지
내가 왜 짓을 하는지 갑자기 회의가 몰려오셨답니다.
며느리들도 소극적인데 말이죠.
이후로 제사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좋아하시는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그때 내려 놓길 제일 잘했다고,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집 이야기입니다.
아마 김장김치도 그런 경험으로 내려놓으신 것 같아요.
이제는 맛에 자신이 없다고
종*집 김치가 더 좋다고 하십니다.
수필을 쓰다 보니
세세한 장면이 떠오르고
그때 느꼈던 감성이 다시 마음에 새겨집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이
지금의 내 감성에 투영되어
관조적으로 엮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렇게 수필은
우리의 삶 속에 파편화된 사소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흥미로운 유발과 함께 디테일하게 구성하는 작업입니다.
이번 수업에서는
위대한 작가들이 남긴 수필에 대한 조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에세이에서의 실력은 다중화 하는 것,
무한히 파멸시키는 것,
상충하는 힘들을 교차시켜
구심점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은
그야말로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에세이를 꺼내 읽을 때의 마음도
단연코 재미를 얻고 싶다는 것이다."
- 버지니아 울프
"우리의 경험은 엄청나게 많은 더미들로 조직되어 있다.
가장 사소하게 느껴지고 소홀하게 여겨지는 순간마저
더미들에 점유되어 있다."
- 윌리엄 개스
인생의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집중,
이것을 재밌게, 궁금하게 만드는 기술,
그리고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
이것이 뭐라 정의하기 힘든 무한한 사색의 결과물인 수필을
돋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 숙제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만의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