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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업 5편, 함께 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 판이 튀어요
  • 맹수
  • 25.12.07
  • 조회 수: 88

 

판이 튀어요

 

1983년.

그 해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세상이 아름답고 신나 보이던 감성 충만의 시기였다. 문화 트렌드에 민감했던 시절, 나는 팝송에 젖어 살았다. 마이클 잭슨, 스콜피온스, 시카고, 듀란 듀란, 토토, 아하, 필 콜린스, 조지 마이클 등 이제는 추억의 팝송이 된 그들의 음악을 정말 사랑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정확히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으나 클래식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KBS 1FM 라디오에서 인상적인 클래식 음악이 들리면 비상금을 털어 레코드판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클래식 음반을 파는 전문 매장이 많지 않았다. 주로 서울 시내에 몰려 있었는데, 명동 롯데백화점에도 매장이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사고자 했던 음반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었다. 이 서곡은 현악기들의 짧은 리듬 연주로 긴박하게 시작한다. 뒤를 이어 클라리넷과 오보에가 발랄하게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갑자기 모든 악기가 크게 팡 터지면서 오페라의 장을 여는 흥미로운 곡이다. 이 음악이 첫 곡으로 수록된 오페라 서곡집 음반을 매장에서 찾았다. 피 같은 비상금을 치렀지만, 내가 원했던 음반을 손에 거머쥐니 기쁨이 충만했다.

 

집으로 달려와 턴테이블 위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스위치를 켰다. 떨리는 손으로 바늘을 들어 먼지 하나 없는 새 레코드판 위에 놓자 기대했던 서곡의 도입부가 시작됐다. 그런데 팡 터지는 순간에 갑자기 판이 튀는 것이다. 혹시 이물질이 묻은 줄 알고 레코드판과 바늘을 클리너로 몇 번씩 닦아냈는데도 정확히 그 지점에서 계속 튀었다. 불량 음반이라 생각하니 화가 났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다시 명동으로 달려갔다.

 

저녁 무렵, 백화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장에 가보니 아까 계산해 준 점원 누나가 있었다. "저기요... 판이 좀 튀어요. 불량인 것 같은데, 확인 좀..." 여기까지 오면서 머릿속에 어떻게 따져야 할지 수없이 연습했지만, 화려한 백화점 분위기와 무표정하고 도도한 그 누님 앞에 내 목소리는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래요? 어디가 튄다는 거죠?" 누님은 냉랭하게 물었다. "첫 번째 서곡 맨 앞부분이요. 확인해 보세요!" 내가 간신히 힘줘서 말하자 누나는 능숙하게 레코드판을 매장의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걸었다.

 

전문 매장이라 그런지 사운드가 더 크고 좋았다. 서곡의 도입부가 시작되자 긴장하면서 그 순간이 오길 바랐는데 웬걸, 판이 안 튀는 것이다. 이럴 수가! 너무나도 깔끔하게 웅장한 사운드로 서곡은 울려 퍼졌다. "어디가 튄다는 거예요?" 퉁명스럽게 누님이 내게 되물었다. "그게... 저..." 환장할 노릇이었다. 우물쭈물하는 나를 쏘아보면서 누나는 서곡 첫 부분을 더 크게 반복해서 틀었다. 매장 손님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구경하듯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내 몸은 얼어붙었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되어 버렸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야단맞은 느낌이었다.

 

레코드판을 집에 갖고 와서 잠시 넋 빠진 듯 바라보다가 다시 틀어보았다. 판은 계속 튀었다. '귀신이 곡하겠네. 왜 이러는 거지?' 아까 나를 구경했던 백화점 사람들과 그 누나의 비웃는 모습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한동안 턴테이블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그때 바늘을 지탱하는 톤암이 눈에 들어왔다. 톤암 뒤에는 바늘의 무게를 조정하는 추가 달려있다. 나사처럼 돌려 앞뒤로 오가게 할 수 있는 추는 눈금이 있어 수평 저울처럼 바늘의 무게를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눈금을 자세히 보니 거의 영에 가깝게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아뿔싸! 이거였구나. 바늘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되어 있었네.'

 

바늘의 무게, 즉 침압이 약하면 레코드판의 홈을 제대로 파고 들어가지 못해 쉽게 이탈이 된다. 추를 돌려 바늘을 무겁게 하고 다시 음악을 틀어보니 튀는 현상 없이 너무나 깨끗하게 울려 퍼졌다.

 

*

 

이제는 바늘이 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CD와 MP3가 나오면서 레코드판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요즘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어떤 곡이든 찾아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백 장이 넘는 클래식 레코드판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채 책장 구석에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대학생 때까지 열정적으로 사 모은 것들이다. 문제의 오페라 서곡집도 그 속에 있다. 클래식 음악은 나의 감성과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모아 놓은 음반들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함께 했던 클래식 음악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나에게 클래식 음악은 라디오에서, 차 안에서, 카페에서, 이어폰을 통해, 지친 일상에 쉼과 위로를 주는 샘물과 같은 존재다. 클래식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새롭게 느껴지는 명곡들의 집합체이다. 작곡가의 초연 이후 수많은 연주자들이 공연에서, 또한 녹음으로 그 가치의 진가를 입증해 왔다.

 

특히 클래식이 영화 음악으로 쓰일 때는 감동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에 퍼지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참으로 목가적이었다. 한국 영화 '접속'의 메인 테마는 바흐가 그의 아내를 위해 바친 모음곡 중 미뉴에트를 편곡한 것이다. 스릴러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는 전직 정신과 의사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감시하던 경찰 두 명을 잔인하게 살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봐도 섬뜩하고 인상적이다. 이 음악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폭탄이 숨겨진 피아노로 연주되어 전쟁 속의 긴장감과 아름다운 서정을 함께 자아냈다. 한밤중 추위에 떨며 독일군 장교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해 목숨을 건졌던 실화 '피아니스트'의 명장면은 클래식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영화 '플래툰'에서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에 맞춘 느린 화면으로 참혹한 전장을 처절하게 묘사했다. 이렇게 클래식은 영화의 작품성을 배가한다.

 

내가 각별히 좋아했던 음악가는 베토벤이었다. 강인함과 서정성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성뿐만 아니라, 청각장애를 딛고 기적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극작가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라는 책이 있다. 베토벤이 남긴 유서와 편지를 통해 그의 예술적 사상과 철학을 서술한 책이다.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으며 매우 감명을 받았다. 책의 서문에는 베토벤이 편지에 적은 문장이 쓰여 있는데, 그것을 지금도 외울 정도다.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하고 싶다."

 

불멸의 선율을 만드는 영감은 인간의 선한 마음과 의지에서 나온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또 다른 창작의 모티브를 준다. 그 결정체가 위대한 클래식 명곡이다. 젊은 시절, 그러한 명곡을 찾아 탐닉하던 감성이 저기 책장 속 레코드판에 담겨 있다. 그 순수함과 열정과 감흥이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

 

강렬한 시선으로 제목을 쓸 때

대화체도 좋다고 하여,

이번에는 누구에게 따지는 듯한 말로 써 보았습니다.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레코드판(LP)과 턴테이블에 익숙하죠.

첫 문장만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30대 젊은 강사님이 바로 말씀하시더군요.

이번 에피소드는 요즘 세대에게 좀 낯설 것 같답니다.

물론 강사님도 레코드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는데,

턴테이블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시더군요.

저도 이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설명과 부연이 첨가되면 '친절한 글'이 될 수 있다고 팁을 주셨습니다.

 

이번 글에 대해서 강사님은

청소년기의 상처받은 마음을

솔직하게 묘사한 것에 대해 점수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경험이 가장 진정한 소재가 될 수 있답니다.

단, 어떤 방식으로 소화해서 풀어쓸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죠.

 

그 당시 본인한테는 부끄러운 이야기였지만

글로써 솔직하고도 재밌게 쓰는 것이 수필의 묘미라고 합니다.

결국 에세이는 누가 더 속바지를 내리는가의 싸움이라고 하더군요.

 

맨 처음 제출한 글은

백화점 매장에서의 이야기를 자세히 썼는데,

조금은 길다는 평이 있어 간추려 보았습니다.

 

또 과거의 에피소드와

이를 바라보는 현재의 생각을

"*" 기호로 구분하였고,

마치 두 개의 글이 공존하는 것처럼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한편 이번 강의에서

기술적인 글 고치기를 배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더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사전을 검색할 것.

(단, 일부러 쓴 것은 굳이 안 고쳐도 됨)

 

주어와 동사가 일치하는지,

목적어가 어색한지 확인할 것.

예) 나는 책을 읽고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 나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긴 문장에서는 이런 오류를 찾기가 어려움)

 

시제를 확인하라.

 

그리고, 그런데, 하지만 등의 연결어 사용을 최소화하라.

(글이 깔끔해짐)

 

"나는"이라는 말을 가급적 사용을 하지 말 것.

 

다음 숙제 주제는

"입고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막연하네요.

술술 써지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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