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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수업 4편,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하여 - 천호동 사람
  • 맹수
  • 25.11.30
  • 조회 수: 333

천호동 사람

나는 천호동 사람이다.

여기서 태어났고 50년 넘게 살았다. 몇 년 전에 생애 처음 천호동을 떠나 이사를 했는데, 바로 옆 동네 명일동이다. 생활권으로 보면 거기서 거기다. 여태까지 강동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 곳에서 반백 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이 지역의 모든 물정을 빠삭하게 아는 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지내온 익숙한 곳일 뿐, 교통 중심지고 사람 많고 변화도 심한 복잡한 도회지라서 지금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천호동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가 근대 사회로 들어서면서 행정동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곡교리(曲橋里)였다. 한자를 풀이하면 '굽은 다리 마을'이다. 예전에 휘어진 다리가 마을에 있어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어릴 때 어르신들은 굽은 다리를 '고분다리'라고 부르셨다). 지금도 천호동을 지나는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이 그때 그 지명의 흔적을 보여준다.

 

왜 굽은 다리 마을이 천호동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을까?

이 지역은 예로부터 한양으로 입성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경기도 광주군뿐만 아니라 저 멀리 강원도에서 온 사람들이 동대문으로 가기 전 한강을 건너야 하는 길목이었다. 현재 강 건너 지하철 광나루역이 있는데, 이름에서 보여주듯 이곳 강변을 중심으로 너른 나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야 차량으로 쉽게 다리를 건너 바로 진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보따리를 싸들고 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기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강을 건너기 전 이 나루터 근처에서 하룻밤은 족히 머물렀을 법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곳에 많은 여관과 주막, 그리고 장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 광대한 나루터에 다리가 세워진다. 이것이 광진교이다. 식민지 시대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교량이었지만, 근대화를 통해 인구 유입이 늘었을 것이고 이로써 더 많은 생활 터전이 형성되었다. 강 건너 아차산에서 바라봤다면 잠실 뽕나무밭과 하남 미사리 뻘과 일자산 아래 농경지에 둘러싸여 유독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천호동의 천(千)은 숫자 일천을, 호(戶)는 집을 뜻한다. 천 개나 될 정도로 많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을 강조하기 위해 천호동이라는 행정명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수많은 객들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보니,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모텔과 음식점, 유흥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해 더 번잡해졌다고 한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때 역사 선생님이 전해주신 나름 그럴듯한 얘기다.

 

어쨌든 농경사회보다는 교통요충지로 상업이 발달했고, 따라서 토박이보다 외지로부터 유입되는 인구가 많았다. 그런 복잡한 관계 속에서 주민들은 생활력도 강했을 것이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붐볐고 시장 사람들과 시끄러운 리어카 상인들 그리고 크고 작은 건설 현장을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한 천호시장 주변에는 술집들이 많았다. 특히 이것과 연계하여 매춘업이 발달했다. 남한산성 아래 공수부대가 들어오면서 여자들이 몸을 파는 텍사스촌이 번성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 2층 집에 살았던 나는 아래층 술집에서 동네 누나들이 아저씨들을 유혹하고 밤마다 고성방가와 싸움판을 벌이는 장면을 심심찮게 봤다. 그때는 어느 동네나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군에 입대하면서 이곳이 서울에서 유명한 그곳임을 알게 되었다. 신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고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내무반에 들어갔는데, 선임들이 내가 천호동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반색하며 맞아주었다. 사창가로 소문난 동네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편으로 제대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천호동의 어두운 면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주말.

강 건너 아차산 고구려 보루에 올라 우리 동네를 조망했다. 이제 천호동에는 텍사스촌이 사라졌다. 재개발로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선 것이다. 하남부터 잠실, 강남까지 동남쪽 일대가 서울 시내 못지않게 고층 건물들로 빼곡히 덮였다. 천호동 한복판에는 높은 마천루가 서로 질세라 올라서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산과 강의 형세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릴 적 단층 건물들이 즐비했던 모습이 살아있다. 그것이 현재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맴돈다. 마치 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가뿐 숨에 뿌연 안경을 닦고 다시 고향을 바라본다.

어느 고향이나 동네나 모두 사연이 있다. 추억이 있다. 그리고 변한다. 단지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천호동은 그 속도가 매우 빠른 동네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따라잡기가 더 어렵다. 이것이 나를 이방인처럼 만든다. 그때 그 아저씨들, 동네 누나들, 리어카 상인들, 시장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 얼굴 없이 떠돈다. 높아가는 빌딩 숲 사이로 그 모습들이 묻혀가듯 사라진다.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렇게 될 것 같다.

---------

고향이라 하면 흔히 시골을 연상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제 고향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당시 변두리이긴 하나 서울이었고, 도회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경제 활동이 성장하던 7~8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 적잖을 텐데,

지금은 서울이 고향인 사람이 태반일 겁니다.

그러나 급속도로 변모하는 부동산을 쫓아 이사하는 세대가 많아서

서울 한 동네에서 반 백 년을 산 사람은 많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 수필의 주제를

제가 태어나고 지금도 인접해 살고 있는 천호동으로 정했습니다.

앞서 강의에서 시작 문장을 강렬하게 쓰라는 주문이 있었죠.

"나는 천호동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라는 내용을

"나는 천호동 사람이다."라고 단호하고 깔끔하게 구사해 보았습니다.

비장하기도 하고 뭔가 고백하려는 문장 같기도 합니다.

수필의 특성 중에 하나가 '정보제공'입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강의가 글의 실마리로 생각나더군요.

요즘에 정보 제공은 포털 지식 검색이나 AI로 풍성하게 이루어집니다.

저도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며 이런 검색 기능을 통해 검증해 보면서 글을 썼습니다.

수필은 단순한 정보 제공을 하는 것이 아닌,

필자의 인생과 철학을 가미하여 인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맛을 줍니다.

그런 차원에서 더해졌던 에피소드로

어릴 때 즐비했던 동네 술집과 군에서의 일화가 쓰였습니다.

어두운 면이었지만,

당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의 일면과 삶을

지금도 살고 있는 공간에 투영해 보았습니다.

강사님은 제 글을 읽고

끝부분의 '어릴 때 기억의 사람들이 지금의 빌딩 사이로 사라진다'는 표현이

인상에 남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좀 쓸쓸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스타일에 대한 평이라는 것이죠.

한편, 결말을 지을 때 이렇게 하면 좋다고 합니다.

반전 있는 결말,

여운 남기기,

의미 있는 마무리(가장 정석적),

남은 질문 던지기...

수강생 다른 분들도

사는 집에 대해서, 애용했던 자동차에 대해서,

앞 마당 정원을 사계에 맞춘 글 등을 제출했고,

모두 함께 공유하며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시간 숙제는

"함께 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입니다.

복합적인 주제이지만, 앞서 주제보다는 좀 구체적입니다.

수업을 끝내면서,

이번에는 강사님이 다음 주 숙제의 첫 문장을

가기 전에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생각의 구름에 잠겼다가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어

이렇게 첫 문장을 제출했습니다.

"레코드판이 튀어요!"

(마치 예고편 같네요)

그럼 다음 주에 뵙죠.

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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