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얼굴
막내아들 녀석이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빨리 학교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드름을 짜내고 있다. 보습 크림과 여러 가지 화장품을 바르고는 드라이어로 머리의 각을 잡으며 꽃단장에 정성을 다한다. 마무리로 얼굴을 좌우로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최종 점검을 한다. 엄마는 부엌에서 밥 먹고 가라고 계속 소리친다. 얼굴 치장에 여념이 없던 아이는 밥도 대충 먹고 집을 나선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하긴 나도 사춘기 때 저랬던 것 같다. 시시때때로 거울을 자주 본 것 같다. 화장품은 별로 없었지만, 얼굴에 쏟는 지대한 관심과 정성은 아들 녀석 못지않았다. 특히 머리에 자존심을 많이 걸었다. 그때는 이마가 나오도록 머리를 위로 올렸었다. 팽팽한 피부에 나름 자뻑을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감상했었다. 웃어보기도 하고 근엄한 표정도 지어보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가꾸지 않아도 아름다운 젊은 때였다. 그 시간에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했으면 하는 후회가 들지만, 아이에게 훈계 차원에서 이런 충고를 해줘도 녀석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도 그랬으니까.
이제는 노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본다. 청춘의 얼굴이 아닌 노인이 되어가는 얼굴을 본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건강에 대한 염려가 서려 있다. 검버섯과 처진 볼살, 희미해져 가는 눈썹이 거슬린다. 무엇보다 섭섭한 것은 머리숱이다. 듬성듬성 바닥이 드러나는 반백의 머리가 늙어가는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 이런 우울감을 느끼면서 아들 녀석처럼 나도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런데 갑자기 새삼스럽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을 내가 직접 볼 수가 없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과 사진, 그리고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아무리 눈을 굴려봐도 얼굴은 안 보이고, 목 아래 가슴과 배, 그리고 팔다리만 보인다. 더구나 뒷모습은 전혀 볼 수가 없다. 신기했다. 정작 내 눈으로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니... 다만 타인의 얼굴은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얼굴만 내 두 눈을 통해 실시간으로 그 형태와 동작을 온전히 살펴보면서 살아온 것이다.
얼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목소리와 숨소리, 화장품이 섞인 향기와 입냄새도 얼굴을 표현하는 요소이다. 이 또한 내가 얼굴 안에서 느끼는 것과 타인이 바깥에서 내 얼굴을 보며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것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얼굴과 떨어져서 입체적으로 나를 관찰할 수 없다. 단지 거울과 화면을 통해 2차원의 평면으로만 인식할 뿐이다. 오직 타인만이 리얼하게 나를 보면서 평가한다. 결국 얼굴은 타인을 위한 그런 존재인 것이다.
기쁨, 놀람, 슬픔, 아픔, 분노, 사색, 수치, 자존감, 사랑, 미움 등 마음에 품은 모든 감정이 얼굴을 통해 표출된다. 타인이 눈으로 나를 직접 보면서 이런 감정들을 실시간으로 평가한다.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오는 반응을 보고 유추할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얼굴을 보며 산다. 그래서 각자 좋게 보이려고 평면의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치장한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이 우습고 답답하다. 또한 스트레스다. 더구나 속상할 때 찡그린 내 얼굴을 가슴에 품고 위로해 줄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생각하니 얼굴이 측은해 보인다.
갑자기 내 얼굴을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솟는다. 어쩌면 그런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죽는 순간 육체에서 영혼이 떨어져 나와 잠시 내 얼굴을 직접 볼 수 있겠다는 상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보는 나의 얼굴은 차디차고 숨소리도 없고 아무런 미동도 없는 데스마스크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곧 가루가 되어 흙으로 다시 돌아갈 허물만 보게 될 것 같다. 이런 생각에 그동안 굴곡진 마음으로 고생했던 늙은 껍데기에게 연민이 생긴다. 이제부터는 덜 지치도록 마음을 곱게 먹고살면서 그날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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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쉬울 것 같아도 수필로 쓴다 생각하니 참 어려웠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진지하게 그리는 작업인데,
실사를 할 것인지, 추상화를 그릴 것인지,
글로도 여러 가지 표현과 에피소드로 쓸 수 있지만,
그만큼 자유로움 속에 특별한 인상을 줄만한 이야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죠.
이번 작품도
우선 맨 처음 도입부에서 고2 아들 녀석의 아침 풍경으로 호기심을 끌어봤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얼굴을 치장하며 살고 있죠.
특히 사춘기 때는 누구나 열정을 쏟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늙는 모습에 회한이 들 때이고요.
그런 부분을 묘사하는데 치중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내 얼굴을 내가 떨어져서 직접 볼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글을 쓰면서 문뜩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점이 이번 작품의 특별한 전환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강사님도 이 부분을 주목하면서 흥미롭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대상 즉 풍경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연상하면서
그 느낌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이 같이 묻어 나온다는 것이죠.
이렇게 한 문단씩 만들고, 이런 문단을 잘 나열하라는 것입니다.
문단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주셨습니다.
시선 – 에피소드 – 묘사 – 전하는 말 – 생각
꼭 이렇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런 개념을 갖고 문단과 전체적인 구성을 하여 글을 쓰면
공감하기 좋답니다.
또한 내 글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의식을 하며
논리적인 흐름으로 작성하고,
환기시키는 문장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적정 지점에서 “문단 갈이(엔터)”를 하여
가독성을 높이라고 합니다.
(특히 시니어 분들은 이런 부분이 약하다고 함)
그 외 팁으로
전체적인 퇴고는 기간을 두고 최소한 세 번은 할 것,
문단마다 첫 문장을 공들일 것,
마지막 끝맺음을 인상 깊게 할 것을
모두에게 주문하셨습니다.
다음 주 숙제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하여”입니다.
주제가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네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