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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크리스천 맞아? - 이어령

 

혼돈의 시대

 

역사상 쉬운 시대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간혹 태평의 시대가 있었지만 역사의 평가일 뿐,

그때도 권력층의 암투는 있었고,

민초들의 삶 역시 그런 수준이었을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재난 그리고 흉흉한 소식들과 함께, 극단의 대립 정치를 주도하는 리더들, 유튜브로 양산된 그들의 가십(gossip) 거리, 진흙탕이 돼 버린 싸움판과 상처를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불안감을 점점 쌓아 두고 있는 형국이다.

 

퍼스트 펭귄을 쫓아가는 펭귄 무리처럼 인간은 리더를 따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다. 펭귄들이 끼리끼리 모여 퍼스트 펭귄을 서로 붙잡고 밀고 당기며 끌어내는 정치 역전이 반복되고 있다. 우왕좌왕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다. 이 장면을 보는 우리는 부부싸움 속의 어린아이처럼 그저 불안할 뿐이다. 곧 누군가 집권하겠지만, 이 혼란과 불신은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불안감이 현재 우리를 이상한 정치적 세계관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결국 우리 공동체에 리더십의 위기가 왔다.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은 태초부터 있었다.

최초의 가정을 생각해 보자. 나를 낳아주고 길러왔던 젊은 부모가 어느새 늙어가고 있다. 그들은 신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 부모였고, 험한 자연 속에서 우리 형제자매를 이끌어왔던 리더였다. 신의 저주를 받고 척박한 땅으로 쫓겨난 부모는 그곳에서 고생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러나 그들은 세포가 늙어가는 신체의 변화를 느끼며 죽음을 예견했다. 결국 자식들에게 그들이 받은 죽음의 운명을 털어놓았다. 이것을 들은 자식들은 불안했다. 왜 늙고 죽어야만 하는지 또한 그 저주가 왜 우리에게 이어지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으론 그 운명을 스스로 해결 못하는 부모를 바라보며 원망도 했을 것이다.

 

단지 하지 말라는 것을 했고, 그게 들통나자 서로 책임전가를 했다는 이유로 부모는 죽음이라는 저주를 받았다. 신과 함께 살던 곳에서 쫓겨난 부모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 평생 속죄하며 신을 섬겼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자식들도 부모를 따라 숭배하며, 신의 세계 즉 죽음과 불안이 없는 영원한 안식처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그것은 완벽한 리더가 세운 완전한 왕국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앞서 태어난 두 형제는 이러한 영생의 세계로 가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신에게 인정받고자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신은 잔인했다. 한쪽만 선택한 것이다. 결국 선택받지 못한 형이 질투심과 미움으로 동생을 죽인다. 살인한 자는 남아서 죽음의 저주를 안은 채 인류의 씨가 되었다. 이것이 성경의 시작이다.

 

이 질투심과 미움은 어디서 왔을까.

인류 최초의 가문을 불행하게 만든 경쟁심과 뺏고 싶은 생각은 어디서부터 생겼을까. 이는 타인을 보고 판단하면서 시작됐다. 상대방의 잘남과 부족함을 보면서 시기와 비판의 생각이 마음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태초에 하지 말라는 것을 했던 것. 그것이 선과 악, 즉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맛을 느끼게 했고, 타인의 흠결을 찾는 눈을 뜨게 했다. 이는 곧 상대방을 정죄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자신 또한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비교 의식과 수치심이 몰려왔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가졌던 마음처럼 그렇게 자신도 정죄받을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를 회피하고자 서로 책임을 돌리고, 의심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반격하기 위해 비판하고, 괴롭히고, 싸우고, 탈취하고, 지배하고, 심지어 죽이는 폭력이 생겼다. 결국 이런 과정이 염려를 몰고 와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여 병과 죽음을 불러왔다.

 

죽음을 불러온 비판과 정죄 그리고 싸움은 이어졌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낳고 최초 가정사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전투의 규모는 씨족과 부족으로 커져 갔다. 이때까지 만해도 신에 대한 숭배와 인정받기 위한 일말의 순수성이 있었다. 족장은 신에게 제사하고 또한 소통하는 대표자로서 무리를 이끌었다. 신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통치 명분을 얻는 것이다. 이 명분으로 리더는 권력을 가졌고, 무리는 다소 안정감을 얻었다. 또한 리더의 권력은 신의 이름을 빌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프리패스(free path)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통치 구조는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욕심으로 변질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신의 존재를 경시하고 집단적으로 탈피하려는 성향을 드러낸다. 자기들끼리 신(神) 놀이하는 것이 그 욕심을 신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쉬워 보였을 것이다. 이것이 구약 성서에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제에게 군중은 우리를 다스릴 왕을 허락해 달라고 떼를 쓴다. 이게 통과되면서 인간들의 리그가 시작되었다. 인간 왕을 중심으로 서열을 세우고 안전 보장과 징벌을 통해 지배 구조를 만들었다. 계급과 권력의 먹이사슬로 충성과 복종 체계를 구축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아 믿기 힘들었던 신의 리더십을 인간의 리더십으로 바꿔 그 실체를 구현했다.

 

그렇게 세운 최초 유대 왕이 ‘골리앗을 죽인 다윗’의 장인이다. 신이 유대인의 원성을 듣고 마지못해 세워준 왕이었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수줍음이 많은 젊은이였다. 그러나 왕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권력의 맛을 느끼자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스승인 사제의 말도 듣지 않게 되었다. 또한 전쟁에서 승승장구해 돌아오는 사위 다윗을 몹시 미워했고 심지어 죽이려 했다. 자기보다 백성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유였다. 앞서 욕심에서 예정됐듯, 이제 신의 인정보다 인간 무리로부터 받는 사랑이 더 달콤했다. 이것이 프리패스의 유효기간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윗의 장인은 욕심이 지나쳐 신의 대리자로 인정받기는커녕 백성의 민심도 갈라져 결국 몰락했다. 남의 자식인 다윗이 뒤를 이어 왕이 된다. 더구나 그 후손도 자신의 딸이 아닌 다윗의 다른 첩들에게서 이어진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땠는가.

그는 거인 골리앗의 목을 자르고 치켜들었던 용맹한 자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로 신실함을 고백했던 시인이자 목동이었다. 장인인 왕이 원수처럼 그를 죽이려 하자 도망하여 광야의 한 동굴에 숨어 있던 어느 날. 군대를 이끌고 그를 쫓아온 장인이 잠시 용변을 보러 그 어두운 동굴로 들어왔다. 숨어 있는 다윗을 눈치채지 못한 채 왕이 그의 코앞에서 돌아 앉아 일을 보고 있던 순간, 다윗에게 무방비 상태의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이 유혹을 마다하고 오히려 왕을 용서했다. 이후 다윗은 겸손하고 담대한 왕으로서 신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부하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엿본 후 색욕이 발동하여 부하를 일부러 전장 앞에 내세워 죽게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빼앗는다. 그녀는 다윗의 첩이 되어 아들을 낳는다. 그 아이가 바로 솔로몬이다.

 

형제들을 제치고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다. 그는 신실한 믿음으로 신을 섬기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솔로몬은 외교적 수단으로 이방 여러 나라의 공주들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총명이 사라진 말년에 공주들이 들여온 이방 신과 사이비 종교가 이스라엘을 덮는다. 이후 국가는 남북으로 분열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정치적 혼란을 거듭한다.

 

솔로몬 왕에 앞서 다윗의 다른 여러 첩들에게서 나온 자식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문제아였다. 오빠가 여동생을 겁탈하고 바로 버린다. 이 얘기를 들은 다른 오빠가 그 오빠를 살해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아주 교활했다. 당시 왕자들은 왕의 특별 경호를 받았다. 이를 따돌리기 위해 2년을 벼르고 살인을 계획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며 속으로는 음모를 꾸미는 자였다. 마침내 친목을 핑계로 아버지 다윗을 속여 왕자들만 모임을 갖았고, 거기서 여동생의 한을 푼다는 명목으로 형제를 죽인다. 이후 그는 도망을 다니면서 교활한 포퓰리즘으로 시민의 사랑을 훔친다. 그것에 힘입어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내고 잠시 정권을 차지한다. 그가 왕궁으로 입성한 날, 궁에는 미처 다윗왕을 따라 피하지 못한 후궁 여럿이 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왕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목이 집중되는 옥상에 침실을 마련하고,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빠의 후궁들을 성폭행한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런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 다윗이 반란군을 진압하고 다시 왕위에 복귀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사랑했던 아들이 자신의 심복에게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받는다.

 

인간의 악하고 안타까운 본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비단 다윗 가문만이 아니다. 추잡한 이야기가 성경에 두루 쓰여 있다.

 

남색 하는 동네 무리들이 집에 손님으로 온 청년(천사)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친다. 주인이 대신 딸들을 내주려 하자 천사가 이를 막는다.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다. 도시에 재앙이 덮치고, 주인과 그 딸들은 유일하게 목숨을 건졌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딸들이 아빠만 남게 되자 아빠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하여 자식을 낳아 부족을 형성한다. 이토록 타락 문화의 후유증은 그대로 자식에게 이어졌다. / 남편과 일찍 사별한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하고 가문을 이어갈 자식을 낳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집안의 후손에서 다윗과 예수가 태어났다는 점이다. / 형들이 동생을 노예로 보내 버리고 아버지에게 짐승이 물어갔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 이집트의 왕자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던 출애굽시기에도 수간(동물과의 성교)이 있었다. / 친정으로 가버린 바람난 아내를 다시 달래어 데리고 오던 중 형제부족 마을의 불량배들이 나타나 아내를 겁탈하고 죽인다. 사실 그 불량배들은 여자보다 남편을 범하려 했다. 사제 집안사람이었던 남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겁하게도 바람난 아내를 대신 넘겨줬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남편은 죽은 아내의 시체를 토막 내어 다른 형제부족장들에게 나눠 보낸다. 이 사건을 두고 심판의 명분으로 형제부족 간에 큰 전쟁이 일어난다. 결국 전쟁은 소모전이 되어 서로에게 큰 피해와 상처를 준 후 죄를 범한 부족을 거의 멸절하고 나서야 그친다. / 어린 자녀를 제물로 바치고자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다. / 산모의 배를 갈라 태아마저 꺼내 죽인다. / 굶주림에 자신의 어린 자녀와 이웃의 자녀를 서로 잡아먹는다. /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자식들을 죽이고 그 아버지의 눈을 도려낸다. /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가 속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던 히틀러 같은 총리도 있었다.

 

탐욕과 탈취, 사기와 속임수, 분열과 학살, 엽기적인 살인, 보복, 문란한 섹스, 그리고 전쟁… 이런 얘기들이 거룩한 성경에 담겨 있다. 이 모든 죄악이 태초에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을 미숙하게 받은 곳에서 시작되고 분화됐다. 비판과 비교 의식 그리고 수치심이 피어나면서 탐닉, 시기와 정죄 그리고 책임전가가 태동된 곳이다. 여인이 호기심을 갖고 맛보면서 그 결과가 몰고 온 스트레스로 세포가 썩는 폐기처분의 길을 걷게 된 순간부터다. 이로써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유한한 생명이 되었다.

 

최초 죄성에서 분화한 죄악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떤 부분은 일상화되었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당연한 듯 그려진다. 잔인한 살인 장면, 변태적 성행위, 극심한 공포가 영상으로 표현되어, 우리 생각에 내재된 죄성을 깨우고 간접 경험으로 불안감을 자극한다. 수천 년이 지나도 인간의 본성은 달라진 것이 없다. 더구나 그 불안감이 심하여 스스로 자기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우울증과 자살을 불러왔다.

 

어쩌면, 예수는 치료자였는지도 모른다.

신약 복음서의 주된 내용이 그가 병든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이적들이다. 그는 폭력과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세포를 살리고 복원하는 의료 기술자였다. 그리고 그가 치유와 함께 전한 처방전은 모두가 잘 아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타인에 대한 전폭적인 사랑만이 육체의 말로인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생명 연장을 통해 신과 같이 살 수 있다는 영생의 희망을 주고는, 내가 신의 아들이니 내 말을 믿고 따르라 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를 혼란에 빠트렸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놀이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사탕발림처럼 사랑놀이를 하란다. 어느 누가 그렇게 살고 죽어 본 후 결과를 알려준 사람이 있었던가. 믿기 힘들고 순애보 같은 얘기다. 평생 노력해 신학과 위엄을 쌓아온 당시 리더들이었던 제사장들은 이 맹랑하고 유치한 선동이 우습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은 그 레토릭과 비유가 그동안 백성을 지배해 온 메마른 율법과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이고 감동적인 시문과 같아서,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것이 민심의 동요를 몰고 왔고 당시 리더들의 시기와 질투를 유발했다. 한동안 율법으로 지탱해 온 그들의 명분을 위협했기에, 로마총독을 충동하여 그를 나무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죽여 버렸다.

 

예수가 전한 사랑.

달리 보면 이것은 일종의 사기다.

왜냐하면, 그런 사랑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초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때도 사랑은 있었다. 부부간의 애정에서,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함께 웃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지금 우리 세대의 부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흉작으로 봄이 오기 전 식량이 떨어지고, 몸이 병들어 아파올 때,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며 보챌 때, 곧 에덴에서 쫓겨난 기억을 떠올리며 부부싸움은 시작됐다. 선악의 판단을 맛본 대가로 인생이 기구해졌다고 낙심하며, 누가 시작했는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서로 으르렁거리며 저주했을 것이다. 이를 불안하게 바라본 아이들의 눈치는 반항으로 변질되고, 형제애는 경쟁과 싸움으로 변했다. 칭찬이 시기를 낳고, 눈물과 용서도 있었겠지만 또 다른 분노가 폭발했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가 점멸하는 것처럼 사랑과 정죄의 교차를 반복한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운명인데, 무조건 사랑만 하라니... 이 세상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설사 절대적 사랑으로 채워진 가장 선한 리더가 세워지더라도, 비판 의식으로 가득 찬 성난 대중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가 그 증거다.

 

눈 덮인 우크라이나 들판에서 앳된 북한군 병사가 죽기 전에 공포의 눈으로 드론을 바라보는 영상을 봤다. 곧 군에 입대할 아들을 둔 아빠로서 연민이 생겼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내 아들은 그런 또래의 북한군과 대적하기 위해 입대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혹시 친족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둘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악착같이 싸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겨야만 한다. 우리가 순진한 사랑논리로 접근한다면 멸망이 올 것은 자명하다. 이념과 비판으로 무장한 그들이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학대하고 유린할 게 뻔하다. 상상만 해도 이 숨 막히는 상황을 누가 사랑으로 덮겠는가. 결국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우리도 폭력의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곧 극복할 수 없는 정죄와 섞여 딜레마처럼 혼돈스럽다. 현실과 동떨어져 믿기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예수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을 영속적으로 이어갈 수 없는 세상은 헛된 것이고, 결국 종말과 믿음에 대한 심판이 온다는 것이 성경의 끝이다. 이것은 흡사 인생의 종점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 빈손으로 죽음을 맞이하며 숨이 멎는 순간 후회만 남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회한으로만 그치게 될지 아니면 소망으로 변모할지는 인간의 선택인데, 이렇게 한 것은 신의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정죄의 딜레마는 현재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며 일어나는 일들이다. 직장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갈등 속에서 내가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한다지만 곧 조금이라도 쓰리고 분하고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과 뒤따르는 비웃음이 우리 마음속 한편에 숨어 있다. 이 글도 비판의 글이며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이 글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내 뜻대로 선악을 구분하려는 비판의 가치관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지 말라는 것을 했던 그것. 바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어설프게 얻은 것이 기원이다. 더구나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 또한 애당초 없었다. 이 프랙털(fractal,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같은 모양의 복잡하고 기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현상)이 번져 나가면서 서로 엉겨 붙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거대한 매트릭스를 형성하고 말았다.

 

악마는 이것을 노렸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한 유혹이었지만, 이를 통해 최초 인간의 머릿속에 비판의식을 새기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올가미 속에 세계를 가두어 버렸다. 그 속에서 인간들끼리 다투고 자멸하도록 방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비판이라는 악마의 도구를 갖고, 한편으로는 에덴을 상상하며 평화의 질서를 그려왔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차선책으로 논리와 철학, 도덕과 정의 그리고 법과 정치를 계발해 왔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어린애 같은 수준이겠지만, 우리끼리 서로 중재하고 타협해 보고자 노력해 온 애틋한 인류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현재 초고속의 광대한 디지털 소통 속에서 각자의 지성과 비판적 사고로 더 치열하고 복잡한 카오스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군신의 도리와 가정 윤리를 중시하며 살아오다가 이념 전쟁을 혹독히 치렀던 우리 민족은 유별나게 공정을 좋아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지금 법정에서 시비를 따지는 리더들도, 광장에서 이를 부추기는 군중들도, 태연한 모습이지만 불안 속에 지켜보는 시민들도 모두 공평한 정의라는 명분에 몰입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정의에 중독된 사회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해진 딜레마가 있다. 멈출 수 없는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의 딜레마를 두고 모두가 수긍하는 답을 얻고자 너도나도 논쟁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지성의 전당에서조차 적어도 왜 우리가 기관사의 인생이 되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질문은 없었다. 책임질 수 없는 질문을 안고 판단과 선택을 하며 인생을 달려가야만 하는 우리의 실존을 보지 못했다. 태초에 거기서부터 어긋났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엇이 공공선인지만 찾아 헤맸다. 안타까운 것은 그 태초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답을 찾는 것은 사랑과 정죄의 딜레마처럼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비판과 지성과 논증의 기술은 쌓이겠지만, 탐닉할수록 점점 꼬여가는 엉킨 실타래가 되고 만다. 이 혼돈의 시대는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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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삼 년이 지났다.

그는 국문학자, 기호학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초대문화부장관, 시인, 수필가, 희곡작가 그리고 대학 교수였다.

 

나무위키에서 그의 자취를 찾아보면,

그가 한국 현대 문학과 문화예술분야에 다방면으로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대 초반 대학 시절부터 그는 김동리, 황순원 같은 당시 거장들의 순수문학 사조를 비판하면서, 문학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며 문단에 뛰어든다.

 

불과 26세에 신문사 논설위원이 되었고,

1963년(나이 29세)에는 한국의 풍토를 독특한 통찰력으로 묘사한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출간했다. 이는 당시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2007년에 우리 시대의 명저 50에 선정된다.

 

1982년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일본에서 출간했는데, 나오자마자 현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본의 각종 언론과 강연에 초청받는 인사가 된다.

 

‘깊고 푸른 밤(최인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등 격동의 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이상문학상을 통해 배출됐다. 이 역시 그가 창간한 잡지 ‘문학사상’이 주관한 것이다.

 

그는 88 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을 맡았다. 특히 굴렁쇠 소년 장면은 그의 어릴 적 회상(죽음을 의식한 메멘토 모리)과 연관하여 말년에 펼친 생명자본주의의 모티브가 되었다.

 

1991년 초대 문화부장관이 되면서 한예종(한국종합예술학교)과 국립어학원 설립에 기여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당시 중앙청 건물) 철거와 경복궁 복원 등을 계획하는데도 관여했다.

또한 국문학자답게 고속도로 노견(road shoulder)을 ‘갓길’로 바꾼 것도 그의 소소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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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활동이 무르익던 8~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나는 당시 그의 탁월함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장관으로 발탁된 유명한 국문과 교수 정도로만 인식했었다. 일부 글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언어를 독특한 관점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는 문체가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내 감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불신자였던 내가 40세에 기독교인이 된 이후다. 공교롭게도 그도 그즈음에 세례 받고 기독교로 회심한 시기였다. 이 사건은 당시 기독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무신론을 자처했던 문학계의 거두가 예수님을 믿겠다고, 그것도 무릎 꿇고 세례까지 받는 장면이 기사화되자 많은 성도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곧이어 언론의 인터뷰와 교회 강연 등을 통해 그의 회심 이유가 알려졌다. 그것은 학자답게 연구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인간적인 데서 시작됐다. 그의 딸 이민아 목사가 실명 위기에서 영적 치유를 받게 되자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주님을 영접한 것이다.

 

이후 그는 학자로서 무언가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언어를 파고드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갓 피어난 그의 영성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2008년 12월, 그가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간증을 했을 때, 숨 죽이며 그의 말에 집중하는 수천 명의 성도들 속에 나도 있었다. 나는 그때 그런 그의 의지를 엿보았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간증집인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출간됐다. 이것을 통해 그는 차가왔던 지성의 아버지에서 딸과 살가워진 사랑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크리스천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평생 겸비해 온 문학 저술가로서의 달란트가 신앙과 접목되는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지성을 중시한 학자였던 그 역시 신앙에 대한 의심과 번민을 거듭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많은 인터뷰와 간증에서 영성에 대한 그의 내재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문지방에 서 있는 신앙’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자신의 회심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실한 길을 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성과 영성을 가르는 그 문지방에 서서, 본인의 지성으로 보이지 않는 영성을 애써 조망하며 해석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본다. 또한 그 영성으로 자신이 쌓아온 지성의 세계를 다시 재조명해 보려는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바다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바다를 보고자 그 수면의 경계선에서 힘껏 뛰어올라 아래에 깔린 그 세계를 잠깐 엿보는 것처럼 그도 그런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이고 곧 죽음의 문턱이었다.

여기서 그는 넘고자 했던 그 문턱에 집중했다. 역설적으로 죽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생명에 대해서 다시 고찰한 것이다. 그의 생을 되돌아보며 그 유한함의 가치, 그리고 이 여정이 우리의 영성을 깨운다는 사유와 어디로 귀결돼야 하는지를 마지막 수업으로 정했다. 그가 어릴 적, 몸이 편찮았던 어머니의 자는 모습에서, 굴렁쇠를 굴리다 뜬금없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노후에 자식의 앞선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그것이 그의 영성에 대한 고민이었음을 고백한다. 거기서 실존을 찾았고, 죽음이 오기 전 생명 속에 박힌 미완성의 신앙을 확인했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책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그의 사후 1년이 된 2023년에 이 책은 출간되었다. 그가 이 책의 제목을 직접 지어놓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지적 호기심과 의심으로 어릴 적 성경 이야기를 따져 물었던 그 다운 질문이다. 동시에 지성의 한계에 부딪힌 자신을 향해 부르짖는 한탄이기도 하다. 그 지성은 일생동안 갈고닦아온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젊은 시절, 저항 문학으로 시작해서 사회 비판의 논설가로, 격동의 부흥 시대 정무직 관료로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이 시대 지성의 대표자로 살아오며 쌓아온 지성이다.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죽음을 맞이하고서 그는 말년에 이 모든 지성을 문지방 너머의 알 수 없는 세상에 투자했다. 조롱과 부질없다는 주변의 질타에도 그는 마치 수면 가까이 스치며 헤엄 치는 돌고래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수면 위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얘들아. 저기에 뭔가 있어!’라고 우리에게 외치듯 살고 떠났다.

 

이 책은 그 흔적을 몇 편 모아 놓은 것이다.

총 7편의 간증과 인터뷰 그리고 강연이 수록되어 있다. 왜 일곱 편인지, 그리고 그 수많은 기록들 중에 왜 이것이 선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떠나기 전에 이미 작업을 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서 편집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모 일간지에 따르면 떠나기 전에 선정 작업은 했던 것 같다. 개중에 그가 직접 소개한 글도 있는 것을 보면 그랬을 듯하다. 이해를 돕고자 각 편의 제목과 출처 그리고 주요 주제를 열거한다.

 

1. 나는 피조물이었다.

- CBS라디오 <장승철의 CBS 초대석>, 2008년 1월 6일 방송

- 지척에 누군가 있는 듯해요, 사람을 잘 쓰시는 분, 만두 같은 삶, 존재를 설명해주는 존재, 매일의 태양을 보는 창조, 빛과 생명에 감사, 유한함 속에 영원함

 

2.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명성교회 간증, 2008년 12월 14일

- 메아리,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영성, 믿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제비 이야기, 지성은 울지 않는다, 사랑의 아버지 그리고 무지개, 아빠의 간증, 고해의 시, 메멘토 모리

 

3. 나 아닌 사람을 진정 사랑한 적이 있던가

- 동아일보, “신동아” 2011년 2월호, 126~141쪽

- 횡적인 사랑, 나를 넘는 어떤 힘, 한국의 가족주의, 생명 공동체, 배터리 종교, 종교의 사회참여, 팔 없는 비너스, 세례의 의미, 내 눈의 들보

 

4. 생명은 사랑이다

- CTS, <삶이 변하는 시간 25분>, 91회~94회 방송

- 말로만 들어왔던 죽음, 사랑보다 미움 그리고 사랑, 삶의 밑천, 도마 같은 사람, 금붕어의 부활, 황제펭귄의 no mark chance, 내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이유, 퍼스트 펭귄! 찬란한 바보, 생명의 물, 지식의 끝에 지혜, 원죄가 우리의 길

 

5. 내가 매일 기쁘게

- CTS, <내가 매일 기쁘게>, 2019년 2월 5일 방송

- 암과 죽음, 노아의 방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례받을 때의 느낌,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빠의 마음, 다음 세대를 위한 엄마와 아빠의 역할, 지성을 통한 영성 그리고 겸손

 

6. 이어령 박사를 만나다

- “크리스천투데이”, 2015년 2월 17일/19일 기사

- 나의 문지방 신앙, 돌로 빵 만드는 사람들, 지성과 영성이 함께 하는 로고스, 한국 교회가 위기인 이유, 요즘 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신앙은 같이 아파하는 것, 사랑과 정의, 진보와 보수, 우리는 계속 선악과를 따 먹고 있다

 

7. 지성에서 영성으로

- “크리스천투데이”, 2017년 12월 31일~2018년 1월 2일 기사

-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초심대로 되지 않는 굴절, 기독교의 본질을 되찾는 개신, 가능성이 많은 가나안 성도, 모순으로 믿는다, 혼돈과 질서, 가장 큰 죄악,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희망, 작은 오솔길

 

 

사실 우리 모두는 문지방 신앙인이다.

영성에 서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을 넘어 저 세상을 알고 다시 유한의 생명으로 돌아온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단지 한 분만이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와서 너무나 놀라운 비유로 저 세상의 의미를 주고는 가 버렸다. 죽었지만 부활을 보이면서 많은 사람을 격동하게 했다. 생명 속에 잠재되어 있던 영성을 일깨웠다. 이를 두고 서로가 분쟁하고 나라가 나라와 싸우고 역사를 만들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문지방에 수많은 사람들을 서게 했다. 기라성 같던 예술가와 지성인 그리고 왕들도 그 문지방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단지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죽음이 갈라놓은 지금의 생명은 태초에 악마의 작은 유혹으로 빚어진 죄성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과 이것으로는 그분이 있는 저 세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예술과 지성과 권력으로 무수히 해석했다. 하지만, 이것이 맞다고 채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또한 역사가 이 문지방을 애타게 찾는다. 비판과 불안 그리고 투쟁하는 그 죄성의 프랙털 속에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저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망이다.

이어령 교수도 이 소망이 있었기에,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영성에 대한 확신을 설파했다. 더 명료하게 죽음의 문턱을 해석하며 소중한 기회로서 생명의 가치를 이끌어냈다. 분명 논리와 지성과 비판의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정답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성으로 해석한 영성은 그의 확고한 믿음 위에서 신념으로 도드라졌다.

 

천국에 대한 소망은 확실한 상상이다.

비판과 불안으로 점철된 인생이 악이 없고 염려와 고통이 없으며 죽음도 없는, 그래서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질서의 완전체로 안식하는 꿈이다. 태초에 그분이 세웠던 그 이상(理想) 대로 우리 모두 그 선명한 자리에 다시 서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이어령 박사가 남긴 말씀을 되새겨본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때까지 이사 가지 말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메아리

 

지금부터는 저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세상과 헤어질 무렵에 출간한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대화록 형태로 쓰인 이야기가 마치 방송을 보듯 생생했습니다. 아쉽지만, 이것이 정말 마지막 수업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그 아쉬움을 달래는 듯, 출판사는 생전 기록을 정리하여 사후 1년이 지난 후에 두 번째 대화록 “당신, 크리스천 맞아?”를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책의 주제가 요즘 비판을 받기 쉬운 기독교와 교회 이야기입니다.

 

제가 무거운 종교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개인적인 인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이 여기 박사님 칼럼에서 시작되었기에 이를 여기에 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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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정말 놀랍게도,

한낱 독자에 불과하고 아무것도 아닌 저의 이름이 이 책의 2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의 서두에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45쪽에 달하는 2편의 내용이 제가 2009년 초에 여기 닥터 스파크 칼럼에 게재했던 “이어령 박사의 간증” 글 그대로였습니다. 2008년 12월에 이어령 교수님이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를 방문하여 간증을 했는데, 교회 성도인 제가 그것을 듣고 녹음한 것을 받아 적은 글이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2009년 1월에 제 나이 41세에 올렸던 글이 2023년 2월, 대학자의 유고집에 한 편을 장식한 것입니다. 물론 내용은 이어령 교수님의 간증이지만, 당시 글로 옮김에 있어 구어체를 문어체에 가깝게 작성하고 내용을 구분(section) 하여 의미를 부여해 제 나름대로 소제목을 붙였었지요. 책에는 문법의 정확성을 위해 일부만 교정되었을 뿐 전체적으로 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졌고, 더구나 제가 붙인 소제목은 아래와 같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감사와 겸손으로 시작하는 인사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지적 호기심과 의심 그리고 준비된 믿음

제비 이야기

진정한 믿음 그리고 눈물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무지개

아버지의 간증

고해의 시

죽음을 생각하며

버려진 돌

 

 

책이 출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부목사님이 이 책에 저의 이름이 실렸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사서 접하는 순간, 제 가슴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더 감격스러운 것은 이어령 교수님이 2편에 앞서 소개 글을 써 주셨다는 겁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서두에 ‘내가 한 말보다도 남들이 들은 말이 더 소중하다’면서 블로그에 제가 쓴 글을 그대로 충실히 옮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소개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저에게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그대로 옮깁니다.

 

  “설령 내 의도와 다소 다르게 정리되었다고 해도, 그리고 이미 앞에서 내가 한 말과 중복된 말이 있거나 다소 다르게 표현된 것이 있다고 해도, 되도록 블로그의 그 글을 그대로 충실히 옮겨보았습니다.

 

  누구나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야호’라고 외치면 자기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분명 자신의 소리가 되돌아오는 반향(反響)인데도, 꼭 누군가 내 말을 듣고 화답하는 것 같은 신비함이 있습니다. 메아리를 통해서 듣는 자신의 목소리는 골짜기의 돌과 나무와 벼랑의 흙, 그리고 바람에 부딪혀 새로운 목소리가 됩니다.

 

  나의 믿음의 소리도 그럴 것입니다.”

 

신비로운 영적 교감에 감사와 은혜가 몰려왔습니다. 한편으로 이어령 교수님을 존경한 박순백 박사님과 저와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저보다 더 오래 하나님을 의지해온 그의 부인 고성애 교수님 덕분에, 저에게 이적(異蹟)과 같은 이런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며 감사하고 싶습니다.

 

단지, 추앙을 받은 한국 지성의 별빛에 힘입었다는 흥분만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불안함과 허전함을 달래려 수천 명이 성전에 모였던 그때, 지성을 넘어 믿음의 세계로 들어온 유명한 학자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당시 지금보다 조금 젊었던 나는 그 외침을 받아 적었고, 스키 동호회로 부흥한 여기 박사님의 블로그 게시판에 그것을 실었지요.

 

그렇게 2009년에 쓴 간증 글이 책에 실리기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그 세월을 시공간의 격벽이라 본다면, 마치 메아리처럼 그 글이 저 먼 어느 곳에 있다가 돌고 돌아 좀 더 늙은 지금의 나에게 새삼스러운 감화(感化)로 다가온 것입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인생의 시공간을 뚫고 말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놀라운 일이며 가치가 있는 간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문의 독후감을 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좀 게으르기도 했고, 행여 부족한 글로 누를 끼칠까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가 이제야 글을 올렸는데, 정작 졸렬한 기술로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직도 미숙한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고 있는 제가 조금 더 확신을 갖고 계속 달려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 故 이어령 교수님께 이 글을 통해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카오스처럼, 지금의 복잡한 혼돈의 시대도 그 언젠가 어느 먼 곳에서 바라볼 때 하나의 패턴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관찰하면서 규칙적인 패턴을 추정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외쳤던 기도와 소망도 메아리처럼 들려올 것입니다. 이 통찰과 상상의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이 사랑을 노래한 후 고백한 성경 말씀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장 9-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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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일월여신
  • 2025.05.26

고작 인사를 안 했다고 그 민족 전부를 말살하려 했던 재상 하만 얘기가 있네요. 그 이야기가 나오는 에스텔서는 특이하게도 유대/이스라엘이 아닌 페르시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이야기죠.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스(크세르크세스, 300에 나온 관대한 왕) 시대의 이야기인데 그 하만은 욍비가 된 에스델과 그 남편의 기지로 도리어 자기네 민족이 몰살당하고, 본인은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 건담에 나오는 악역 주인공 "하만 칸"의 이름이 거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그녀가 이끄는 반란 세력 이름이 이스라엘, 유대 민족 자체의이름이기도 한 지온(Zion, 시온)인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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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 (작성자)
  • 2025.05.29
  • 수정: 2025.05.29 05:32:42

네. 맞습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사를 하지 않은 인물은 유대인 ‘모르드개’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멸망(B.C. 586년)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온 유대민족의 후손이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고 뒤를 이어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섰을 때 왕궁의 관료로 일했습니다. 충성되고 올곧은 공직자였습니다. 그리고 일찍 부모를 잃은 어린 사촌 여동생을 데려다가 자기 딸처럼 키웠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미모가 뛰어나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죠. 그녀의 이름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한편, 당시 재상은 하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애가 강하고 교만한 자였습니다. 성경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당시 유대인에 대한 악감정이 있었다고 봅니다. 인사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분노의 시선으로 보았고, 이를 빌미로 유대 민족 전체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증오를 품죠. 리더가 이렇게 편협한 생각으로 정치를 하면 역사가 불행해집니다.

제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제국의 왕권과 질서를 위협한다는 조작된 보고로 왕의 조서까지 받은 하만의 학살계획은 다행히 에스더에 의해 무산됩니다. 사실 에스더는 이렇게까지 안 해도 왕비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왕비라도 이미 왕이 결재한 조서를 물릴 수 있는 권한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후궁이 많아 왕이 그녀의 처소를 찾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된 상태였죠. 그리고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서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근데 모르드개의 설득으로 그녀는 왕에게 간청하기로 다짐합니다. 강한 의지로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국 에스더는 금식기도 후 곱게 차려입고 왕 앞으로 나갑니다. 그때 왕이 평소와 다르게 반색하며 그녀를 맞이합니다. 왕비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예요. 마치 장기 출장 갔다 오면 아내가 더 예뻐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아무튼 에스더는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만을 불러 세우고 왕 앞에서 그가 부당한 악감정으로 왕비의 민족을 말살하려고 획책했다는 것을 고발합니다. 왕이 이에 분개하였지만 하만을 아꼈던 터라 화를 진정시키려 잠시 정원에 나가 있던 사이, 하만이 왕비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다시 돌아온 왕이 이 장면을 보자 왕비를 해하는 줄 알고 그를 잡아다 숙청합니다.

에스더서를 읽으면 마치 영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듯 흥미진진합니다. 인간의 죄성에 의해 마음속에서 움튼 악감정이 리더의 손에 들어가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하만은 미수에 그쳤지만, 히틀러는 이를 저질렀습니다. 불과 백 년도 안 된 얘기입니다.

건담이야기가 에스더서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네요. 어쩌면, 죄성의 역사는 미래 우주 전쟁에서도 계속된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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