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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서

    

 

 

시간의 경계에서


어느새 우리는 연말의 끝자락에 서 있다. 달력은 마지막 장에 이르렀고, 흩날리며 떠오르는 눈송이처럼 지나온 시간의 기억들이 하나둘 하늘로 치솟는다.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이 얽혀 우리의 가슴속을 지나가며, 그 감정이 비수처럼 찔러댄다.


연말의 시간은 마치 조용히 닫히는 문처럼 우리를 잠시 멈춰서 돌아보게 만든다. 시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루지 못한 목표와 미완성의 약속들이 떠오르며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다 잘할 수는 없어. 잘하지 못 했어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회한과 아쉬움은 쉽게 떨쳐내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한 해를 정리하는 그 시간 속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 준 따스함과 함께 나눈 웃음소리, 홀로 조용히 새긴 다짐의 순간들이 있다. 연말은 아쉬움과 감사, 후회와 안도의 감정이 공존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 문이 닫히면 곧 다른 문이 열린다. 시간의 흐름은 끊이지 않으며, 우리는 새로운 경계를 넘어선다. 새해는 차가운 새벽 공기의 냉기가 피부를 깨우듯 우리를 설렘으로 뒤흔든다. ‘올해는 더 나아질 거야.’라는 기대가 온몸을 감싼다. 새로운 시작은 마치 펜을 들어 백지 위에 첫 줄을 써내려가는 것처럼 두근거리게 한다. 경험상 우리는 다시 계획과 목표를 세운다. 다이어리를 펼쳐 들고 미소를 짓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이기에 실수도 실패도 없는 완벽한 가능성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게 착각일 거란 사실을 깨닫지만, 의도적으로 그 생각을 덮는다. 새해의 첫날은 연말의 묵직한 감정에서 벗어나 태양이 지평선 위로 솟아오르듯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동해의 태양은 항상 전날과 같았으니 내일, 새해 첫 날의 태양도 그러리라. 하지만 우리의 들뜬 감정으로 그게 달리 보이리라. 모든 고장에서 동해로 향해 꼬리를 무는 차량의 대열을 보는 마음은 그래서 부러움이다.


연말과 연시의 감정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연말은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과 마무리를 이야기하고, 연시는 미래를 향한 기대와 출발을 상징한다. 연말은 “끝”이라는 상징으로 아쉬움과 회한을 동반하지만, 연시는 “시작”이라는 의미 속에서 희망과 다짐을 불러일으킨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이어져 있으며 같은 시간의 뿌리에서 자라난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며,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배운 후에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차이는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와 상징에서 비롯된다. 연말은 한 해 동안의 모든 기억과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아쉬움이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다음 걸음을 위한 밑거름이다. 연시는 바로 그 밑거름 위에 새롭게 쌓아 올리는 출발점이다. 과거의 흔적 위에 서서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연말과 연시라는 두 경계선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매년 이 경계를 넘나든다. 매번 같은 과정이지만 매해 조금씩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퇴보한다고 느낄지라도 그것은 상대적으로 덜 성장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연말은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고, 연시는 다짐과 희망의 시간이다. 방향을 달리하는 두 시간이 그 중간, 현재에서 만나 서로를 보완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내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이 순간, 연말과 연시는 결국 하나의 끊임없는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내 자신이다.


——-


또 다른 시간의 문턱에서


박순백


저무는 한 해는 
낮은 해가 지평선 아래로 숨어드는 듯 
떠나는 이의 조용한 발걸음처럼 
희미해진다. 


뒤돌아보니 
남겨진 발자국마다 
무거운 회한이 깃들고 
아직 이루지 못한 꿈들이 
얼어붙은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그리운 목소리들이 귀에 맴돈다. 
더 자주 잡아주지 못 했던 손, 
더 깊이 바라보지 못 했던 눈빛들.
모두 지나가버린 순간들이라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나는 그 무게를 가슴에 품고 
혼자 남겨진 방의 창가에 선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하얀 소음이 
무엇인가를 끝내려 한다. 


당연히 마음 한편엔 
작별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자리한다. 
끝맺음 없는 회한 속에도 
새로운 길이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지나간 시간들이 내 어깨를 누르나 
스스로의 따뜻한 숨결로 감싼다. 
“다 괜찮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애달프고 아프게 느껴진다.


시간은 달려 세월의 강으로 흘러갔고 
누구도 그것을 붙잡지 못 했다. 
우리는 세월이 교차하는 시간 앞에 
서성이며 묻고 또 묻는다. 


아무 답도 돌아올 리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문턱에 선 채 조용히 
또 다른 해의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


At Another Threshold of Time


By Dr. Spark


The year fades as the sun descends,
Like a setting sun, its journey ends.
Departing footsteps softly tread,
Into the dusk, where moments bled.


Looking back, each step I trace,
Regret and dreams in cold embrace.
Unfulfilled hopes in air suspend,
Into the frozen ether blend.


Echoes of voices haunt my ear,
Hands I held not, now disappear.
Eyes I failed to deeply see,
Moments lost to memory.


Bearing this weight within my chest,
Alone beside the window, pressed.
The city’s cloak of night descends,
A distant noise, as something ends.


Yet in my heart, a seedling’s start,
Not a farewell, but fresh depart.
Amidst unending rue’s domain,
New paths emerge from latent pain.


Today, I wait in silent keep,
Past times upon my shoulders seep.
Their warm breath whispers, “All is well,”
Yet in my soul, a tender knell.


Time flows swiftly, rivers blend,
None can halt its rushing trend.
At the crossroads, we remain,
Asking questions, all in vain.


No answers come to quell our quest,
I stand upon the threshold, pressed.
In quietude, await the day,
Another year will light the way.

profile
"질긴 놈이 이긴다."
별 재주 없는 나는 남들 그만 둘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아니면 남들과의 경쟁을 피해 남들이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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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그놈참
  • 2024.12.31

박순백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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