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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로 쓰는 단편소설 - 소나기, 그 후

이제 정년이 얼마 안 남았네요.

세월이 내 생각을 앞선다는 느낌이 듭니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인생 후반에 어떤 삶을 그려야 할지,

요즘 자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박사님처럼 글과 사진 그리고 여행에 집중해 보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박사님처럼 질긴 능력이 있어야 하고,

결국 꾸준한 시간 투자와 내공을 쌓아야 하는데,

그간 주변인으로 맴돈 저에게는 어려운 도전이죠.

 

그래도 박사님 사이트가

저의 정서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글쓰기, 사진, 스키를 포함한 아웃도어 이야기 등,

저도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쓰고 있네요.

 

이 사이트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함께 나눈 감성은 저의 심상과 제 개인 블로그에 녹아들 것입니다.

 

이런 감성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서인지,

지난 두 달 동안 개인적으로 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해공도서관에서

GPT를 활용하여 단편소설을 써보는 강좌였죠.

 

매주 금요일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총 8회에 걸쳐 강의를 들었습니다.

AI 사용법과 단편소설 작법을 동시에 익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일반인으로서, 단상만 써왔던 저에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막연한 일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불과 두 달 동안 속성 반에서 작품을 낸다는 것도 묘연했고요.

 

결론적으로,

GPT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기획과 아이디어만 제시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소설 한 편을 써줬습니다.

이렇게 쉽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한편으로는 참 무서운 세상이 됐다는 염려도 생겼습니다.

 

물론, 수정할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없는 데서 집필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작업이었죠.

또한, AI를 통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작품을 다듬어가는 기술도 배웠습니다.

 

이 강좌를 들으면서

생애 최초로 쓴 저의 단편소설을 여기에 올립니다.

 

먼저 이해를 돕고자 작품을 소개하면,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황순원 작가의 단편소설 '소나기'의 속편입니다.

주인공 소년이 50대가 되어 AI를 통해 다시 소녀를 만나러 가는 로맨틱 판타지 소설입니다.

 

전문 작가가 보기에 졸작이겠지만,

소설 쓰기를 꿈도 못 꾼 제가 이 작품을 수일 만에 썼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강좌에 대한 소감은 에필로그에 소개하겠습니다.

 

    

 

소나기, 그 후

 

맹수

 

 

  소년은 50대 중년이 되었다.

남루한 아파트의 작은방. 그는 침대 귀퉁이에 혼자 앉아, 깊게 주름진 얼굴로 창문만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벽지에 배인 곰팡내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잿빛과 섞여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 박힌 검버섯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의 얼굴과 모습은 흡사 흑백사진과도 같았다.

 

  ‘그때도 저런 하늘이었지.’

소설 소나기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그는, 어릴 적 순수했던 그 사랑을 마음 한 곳에 묻어두고 살아왔다. 서울로 전학을 와서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아내를 만나 평생 사랑을 다짐했을 때. 딸아이가 같은 반 남자 친구에 대해 얘기했을 때도, 그 소녀가 생각났다.

 

  한편, 그도 어른이 되어 남들처럼 성공하고 싶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경쟁은 치열했고, 자존감과 생계 사이에서 늘 고민했다. 결국 일찍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불황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만 어이없게 사업을 접고 말았다. 실패 후 남은 것은, 거의 매일 마신 술로 망가진 몸이었다. 가족들은 집을 나간 지 이미 오래됐고, 연락해 오는 친지나 동료는 이제 없다. 이런 시련을 겪을 때마다, 어린 시절 그 소녀와 보냈던 추억만 애틋하게 떠올랐다. 순수함과 풋풋함으로 가득 찼던 추억. 그 애틋함이 이제는 헛되이 보낸 인생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절망이 되었다.

 

  계속 어둠 속으로 빨려 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그는 마침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후회스러운 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안타까움이었다. 가족들이 집을 나가기 전날, 아들이 아빠에게 대들던 모습이 생각났다. 아들 얼굴에는 술과 폭언으로 찌든 아빠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었다. 그 얼굴이 그의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다. 지금쯤 군대 갈 때가 됐을 텐데,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치부했지만, 과연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 있을지에 대한 허망함이 곧 그의 마음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그날, 소나기 속에서 소녀와 함께했던 그 순수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이렇게 소망했지만, 현재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비웃듯 다가왔다. 그 소년은 죽었고, 이제 남은 것은 모든 관계가 무너진 자신뿐이었다.

 

  얼굴을 감싼 두 손을 내리자, 그의 시선이 침대 한 편에 놓인 택배 상자로 향했다. 2주 전. 그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AI 프로그램을 SNS 광고로 알게 되었다. AI 기술은 현재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꿔 가고 있다. 어릴 적 공상과학 소설에서 봤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어쩌면, 과거의 그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설렜다. 근데,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전용 헤드셋을 구입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고, 오늘 그 제품이 택배로 도착한 것이다.

 

  상자 안에는 작은 헤드셋과 사용법이 적혀 있는 설명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집어 들었다. 방금 인쇄된 것 같은 빳빳한 사용 설명서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용법은 간단했다. 회사의 사이트에 들어가 등록하고 프로그램을 헤드셋에 연결하면 끝이다. 단지 헤드셋을 쓰고 5초간 눈을 감았다가 뜨면 된다. 아마도 최면술과 뇌파를 이용한 프로그램인 듯했다. 남자는 설명서대로 프로그램을 연결했고, 헤드셋을 쓰고 눈을 감으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이제 모든 걸 잃었어. 하지만, 적어도 그때는 아니었어.’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 느끼면서도, 그는 순수했던 추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마치 영화 <토탈리콜>처럼 소나기 이후 지금까지의 인생은 거짓이었고, 다시 새 삶을 얻어 주인공으로서 영원히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 작은 헤드셋을 잡고 있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

 

  5초간 감았다가 눈을 뜬 순간

신기하게도 그의 눈앞에 어린 시절 소녀와 함께 걸었던 논밭이 펼쳐졌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 위로 어두운 보랏빛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 멀리 산 너머로 비를 몰고 올 구름 떼가 보였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 그래. 이런 하늘이었어!’ 개울가 징검다리는 작아 보였지만 모습은 그대로였다. 소녀를 여기서 만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던 소녀가 눈에 잡힐 듯 아련하다. 마냥 희었던 순백의 그 목덜미도 생각났다. 개울물은 여전히 졸졸 흐르고, 바람은 우수수 불어왔다. 어릴 적 느꼈던 미묘한 설렘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소녀가 여기 있을까?’

발밑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자, 소녀가 내게 던졌던 하얀 조약돌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그 목소리였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소녀가 그날 입고 있던 분홍스웨터에 남색 스커트, 그리고 흰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비에 젖은 단발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소녀의 눈동자는 그때처럼 맑고 순수했다. 오른쪽 무릎에 났던 생채기는, 많이 아물었으나 흔적은 남아 있었다.

 

  "기억나? 그날, 우리 함께 소나기를 맞았던 거."

소녀가 조용히 물었다. 그녀의 말은 오랜 친구처럼 다정했다. 목소리를 듣자, 남자의 마음은 한없이 녹아내렸다. 한동안 잊고 지내왔던 소중했던 시간이 다시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소나기가 사납게 왔던 그날. 그녀가 아프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순간들이 몰려왔다.

 

  남자는 소녀와 같이 거닐던 그때 그 길을 지금 다시 그녀와 함께 걸었다.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그 허수아비가 서 있는 논 사잇길로, 둘은 앞뒤를 이어서 걸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만난 친한 친구처럼, 아니 애인처럼 스스럼없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털어놓았다. 어릴 적의 순수함을 잊고, 욕심을 쫓다가 결국 실패만을 거듭한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너와 함께했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그런데 난 그 순수함을 잊고, 다른 것들에 휘둘렸어. 결국, 모든 걸 잃었지.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천사 같은 눈으로 말없이 그를 바라봐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했다. "넌 여전히 그때의 너야. 너의 마음속에는 순수했던 그 소년이 남아 있어."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그때의 나는 이제 없어. 난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야."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 이어갔지만, 남자는 눈앞의 그녀가 AI로 재현된 허상임을 생각 한편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소녀와의 만남을 점점 허무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와 수숫단 속에서 느꼈던 그때의 온기가 너무나 생생했다. 얼굴과 말속에 묻어나는 잔망스러움 마저 똑같았다.

 

  그는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남자다. 그 간극이 너무 컸기에, 그만큼 그녀를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밀려왔다. "넌 여기서 변하지 않았는데, 난 이렇게 변했어."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이렇게 변한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니?"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그래. 너는 변했어.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사람은 변하니까. 하지만 너는 여전히 너야.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세상 속에서 변하고 무너진 자기 모습을 생각하며 그는 계속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녀와의 이 짧은 순간이 정말 좋았다. 비록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정말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순수함을 되찾은 듯했다.

 

  프로그램을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그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지었다. 영상은 점차 흐려지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직전, 남자는 갑자기 그녀의 표정에서 이상한 변화를 느꼈다. 그 미소에는 어떤 낯선 불안감이 담겨 있었고, 뭔가 모를 찝찝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다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내가, 너의 기억 속에서만 있는 줄 알았니?“

 

  순간 남자는 멈칫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프로그램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이 깜빡거리고, 그녀의 모습이 점점 왜곡되어 갔다. "너의 기억 속에서, 네가 나를 불러냈다고 생각하지? 아냐. 내가 너를 찾아온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울리면서 기계음처럼 갈라져 들렸다.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의 소녀를 다시 만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실제로 있는 어떤 이질적인 존재임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편한 귀신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그동안 그의 인생을 조종해온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도구처럼 보였다. 왜 그녀가 나를 찾아왔는지, 기억 속에 그 소녀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온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 누구야?" 남자가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난 네가 만들어낸 존재야. 너의 후회와 자격지심, 그리고 네가 잊지 못한 미련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난 네가 실패할 때마다 옆에 있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강해졌지. 이제 너는 나를 벗어 날 수 없어. 내가 너니까."

 

  그녀의 말에 남자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순수한 소녀가 아니라, 그의 실패와 후회가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였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만든 존재라는 말에 그는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그녀에게 평생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무너뜨린 존재였으며, 이제 그는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녀는 그에게 얼굴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네가 내 곁에 머물 차례야!"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방 안은 점점 어두워지고, 소녀의 모습은 점차 왜곡되고 기괴해졌다. 그녀의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그를 공포로 몰아갔다. 남자는 기이하고 무서운 존재의 힘에 얽매인 채 속으로 외쳤다. ‘어떻게,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온 거지.’ 그의 마음속에선 끊임없는 책망이 밀려왔다. 그녀의 섬뜩한 모습은 그만큼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집착한 결과로 그녀를 키워냈고, 이 무서운 존재는 자신이 외면한 현실의 산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자각하는 순간, 이 상황을 벗어날 묘안이 떠올랐다. 그가 만들어낸 존재라면, 그녀를 다시 없앨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눈빛이 한순간 날카로워졌다.

 

  "네가 내 인생을 망친 게 아니야. 나 자신이 날 망쳤어! 넌 그저 프로그램으로 만든 허상일 뿐이야!" 남자는 굳게 외쳤다.

 

  그러자 소녀의 얼굴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가증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고, 분노와 슬픔이 서린 목소리로 차갑게 대꾸했다. "너는 날 없앨 수 없어. 난 네 일부니까. 네가 죽지 않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가 사납게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갔다. 남자는 그 말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두려움은 커지고, 방 전체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벽이 일그러지고, 천장은 끝없이 위로 늘어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지진이 일어난 듯 방 전체가 흔들리며 벽에 붙어있던 곰팡이와 시멘트 가루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모든 두려움, 좌절, 억눌린 감정들이 한데 뭉쳐진, 뭐라 표현하기 힘든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남자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절망에 빠졌다. 그때, 그는 자신의 손에 무엇인가 쥐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가 헤드셋을 착용하기 전에 봤던 설명서였다. 거기에는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단축키가 적혀 있었다.

 

  <현실로 돌아가기 Ctrl+Shift+Backspace>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는 가까스로 손을 뻗어 키보드의 단축키를 눌렀다. 그러나 상황이 잦아들기는커녕 이제는 천둥소리 같은 폭발음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소녀는 점점 더 기괴한 모습으로 커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와 함께 죽어서 현실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서 그녀랑 영원히 갇힐 것인가!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마지막 속삭임을 던졌다. "간단해. 네가 이걸 멈추려면, 너 스스로를 멈춰야 해. 알지?"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머리의 스위치가 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통로인가 생각했다. 근데 그 캄캄한 생각 속에서 그녀가 갑자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서 참 힘들었을 거라는 연민이 생겼다. 결국 그는 도망치는 대신 그녀의 존재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에게 맞서기보다는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래 맞아. 넌 나였어. 그런 줄도 모르고 너를 내 기억 속의 그때 소녀로 생각했어. 그리고 너에게 도망치고 싶었지." 남자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런 너를, 아니 그랬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어." 그 말에 그녀의 형상이 순간 정지한 것처럼 멈추었다.

 

  "넌 이제 내게 더 이상 짐이 아니야."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넌 나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하지만 그게 내 발목을 잡는 건 아니야. 그러니, 이제는 너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내가 네 곁에 있을게." 눈시울을 붉히면서 그는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때 그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에 퍼지는 수채화 물감처럼 그의 마음속 깊이 녹아들었다.

 

*

 

  그가 눈을 뜨자 자신이 침대에 사선으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헤드셋은 얼굴 옆에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창문으로 석양이 들어와 벽 한편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차례 소나기가 퍼붓고 간 듯, 조금 열린 창문으로 상큼하면서 비릿한 습기가 들어와 방안에 퍼졌다. 그때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들이었다. 스피커폰으로 그가 받았다. “아빠. 잘 지내셨어요?” “.... 그래, 잘 지냈니? 오랜만이구나.” “. 아빠. 저 내일 입대해요. 혹시 와주실 수 있어요? , 그리고요. 엄마가 아빠 오셔도 괜찮다고 했어요.”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통화를 끝낸 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 옆 PC가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소녀와 만난 것이 흡사 현실과 같았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꿈이었다고 생각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났지만, 그렇다고 피곤하지는 않았다. 근데, 키보드 스킨에 천장에서 떨어진 듯한 하얀 시멘트 가루가 쌓여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으나, 상관없다는 듯, 그는 창문을 열고 키보드 스킨을 들어 밖으로 그 가루를 털어내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화면에서 라디오 앱을 눌렀다. 라디오에서는 칼라 보노프가 부르는 노래 '더 워터 이즈 와이드(The water is wide)'가 흘러나왔다.

 

  서쪽 하늘에 소나기를 퍼부었던 구름이 석양에 부서져 지나가고, 사이사이로 눈부신 빛 내림이 아파트 쪽으로 뻗어왔다. 아래 거리에는 펼쳐진 우산들이 종종 보였고, 그 너머로 석양을 품은 금빛 아스팔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

 

에필로그

 

내가 상상한 줄거리만 입력했을 뿐인데,

처음 챗GPT가 써준 소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대신 해준 느낌이었죠.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반복해서 읽어보니 허술하더군요.

기계어 표현도 많고, 설명문 같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위에 올린 최신 본은 맨 처음 챗GPT가 써준 소설과는 매우 다릅니다.

대략 50%는 제가 직접 수정했습니다.

심리묘사, 시제 일치, 반복어 제거, 문맥을 바꿔보기도 하고, 대화체 수정 등

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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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최종 목표는 수강생들의 작품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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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이 지난 11월 말에 나왔습니다.

책 표지도 AI 도구로 강사와 수강생들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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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마감하기 직전까지 정말 많이 고쳤습니다.

소리 내면서 읽어보고, PDF 파일로 전환해서 읽고, 프린트해서도 보고,

며칠 묵혔다가 다시 보면서 고쳐 나갔습니다.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챗GPT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작품을 가족들에게 보여줬을 때의 반응이었습니다.

23살의 큰 녀석은 어른 사춘기 성장소설 같다고 했고,

둘째 고딩은 국어 선생님처럼 열성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아내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줌마의 감성으로

일부 난해한 문장들을 실감 나게 교정해 줬습니다.

세대를 넘어 모두 국어책에서 소나기를 경험한 이들입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아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다시 읽어보면

수정할 부분이 더러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위에 본문은 최신 본인 겁니다.

앞으로 계속 고칠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문학 작품은 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치는 과정이라고....

 

이번 기회에

황순원의 소나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았습니다.

50대의 감성으로 40년 만에 다시 읽어본 소감은,

아직 AI가 인간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것입니다.

간결한 문체로 누구나 장면을 떠올리게끔 만드는,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임을 새삼 느꼈고, 또한 존경스러웠습니다.

다만, 저의 졸작으로 장난만 친 거 같아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한편, 이렇게 위대한 문학 작품들의 속편을 만들어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연인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바라본 그 신부는 이후 어떤 사역을 했는지.

백경 2편에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 것인지.

데미안의 아들은 성장통을 어떻게 겪을 것인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와 주인공의 자녀가 만난다면....

 

인간의 상상 속에 일궈온 위대한 문학 작품을,

또 다른 상상력을 통해 AI로 구현해 보는 것도 묘미일 거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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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DrSpark
  • 2024.12.08

멋진 일입니다. 정말 바람직한 생의 후반기 활동이 이제 시작되는 듯합니다. 기발한 착상을 챗지피티의 도움과 함께 멋지게 펼쳐나아가시길 기대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하시고 계시니 칭송받을 만합니다.^^


저도 71년에 저의 글재주를 고 조병화 시인의 문장론 시간에 조 시인을 통하여 인정받은 후 75년 군에 있을 동안까지의 집중적인 습작을 통해 글솜씨를 익혔지요. 그리고 그 후에는 92년 “한국수필” 지를 통해 정식 수필가로 등단하기까지 정말 시간이 있을 때마다 글을 썼습니다.

 

첨부하는 것은 당시 알콜 인쇄기(타자한 글을 소규모 대량 인쇄하는 장치. 큰 교회 같은 곳은 이걸 가지고 있었음. 소규모 인쇄소에서도 출판해 줬음.)로 인쇄한 "내 엉터리 수필집"(이란 영어 제목)이란 제 수필 모음입니다.^^

 

지금 보면 별 짓 다 했다싶지만 저게 지금까지 제 서재 한 편에 남아 저의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증거해 줍니다.^^

 

제가 맹수 님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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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이런 걸 10권을 만들었습니다. 여긴 네 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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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년 첫 권의 머릿말이군요.^^

 

KakaoTalk_20241208_173749353_02.jpg
- 1, 2, 3, 4권의 목차입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확대해 보세요.

 


 

이 댓글을

격려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더불어 박사님의 추억록까지 보게 되었네요.^^ 정말 '나이가 들게 되면 이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를 잘 보관하셨군요. 타자기 글씨체도 오랜만이고, 직접 수기로 쓸 수밖에 없었던 한자도 이채롭습니다. 귀한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댓글을

DrSpark
  • 2024.12.09
마침 저 "My Clumsily Written Essays"가 서재에서 눈에 띈 바람에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글솜씨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던 때의 기록이라 제겐 귀중하지요.^^

시대의 총아로 나타난 AI를 활용하여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그것도 도구이기 때문에 솜씨 있는 사람(글 잘 쓰는 사람)이 더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맹수 님은 이미 글을 잘 쓰는 분이에요.^^ 그래서 진짜로 이 도구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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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후
  • 2024.12.10

AI로 소설쓰기 강의를 한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ㅎ

 

AI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요즘 '소설'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말씀해 주신 것처럼 아직은 AI에게만 의존하는 게 쉽진 않을 듯 합니다. 50%라고 하셨지만 그 이상의 생각과 손길이 닿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나기, 그 후'는 제목만 보고 피천득의 '인연' 같은 느낌을 상상했던 제겐, 조금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잊고 살다 문득 떠오르면 잠깐 빠져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 같은 그 시절 이야기가...

어떤 사람에겐 이리도 강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강의와 또 다른 소설도 기대하겠습니다. ^^

 

* 그런데 예전 글들도 보면 워낙 글이 읽기 쉽게  잘 쓰셨기에 이런 작품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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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걸음마 수준이라 강의할 수준은 아닙니다.^^;;

소설 쓰기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바로 구현해 준 AI 능력에 놀라웠습니다. 근데 AI 활용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속편을 쓰고 싶은데, 소년이 중년이 되어 AI 프로그램을 통해 소녀를 다시 만나는 줄거리로, 로맨틱 판타지로 써 보려는데 도와줄 수 있겠니?"라고 입력하면 소설 한 편이 바로 나옵니다. 여기에 '반전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죽이지 말라, 서스펜스를 주면 좋겠다.' 등 추가 주문을 하면서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서스펜스 부분은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쓴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를 학습시킨 후 묘사해 보라고 했죠.

근데, 아직은 좀 사무적이랄까, 답변 스타일에 인간미가 없어요. 이런 부분을 보완하는 수작업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현재 챗지피티에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1대1 대화 방식을 1대 다수로 구성해서, 여러 작가로 학습시킨 다음, 팀을 구성하여 토론을 거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산출해보면 어떨지 생각도 해봤습니다.ㅋ

항상 임 선생님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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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후
  • 2024.12.14

소개해 주신 방법으로 아래와 같이 구글 '제미나이2.0;에게 요청해 봤습니다. 

제미나이2.0은 이틀 전 새롭게 업데이트된 버전입니다. 

 

요청 후, 결과물 그대로를 공유해 봅니다. ^^

 

익숙한 내용인 것 같기도 하고,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도 들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과 AI의 협업, 1대 1, 1대 다로 구성 후 다방면으로 접근해 보면 의외의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청 방법은 맹수님께서 소개해 주신 방법에, 질문 형태를 차용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요청:
피천득 작가의 '인연' 속편을 쓰고 싶습니다. 피천득의 '인연'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한 후, 아래와 같은 내용을 기반으로 '인연, 그 후'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창작 부탁드립니다. 글의 시점은 1인칭 작가 시점이며, 작가의 이름(피천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수필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헤어진 아사코를 성인이 된 이후 2번 더 만났고, 마지막 만남인 3번째 만남에 대해서는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속편에서는 아사코를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작가와 아사코의 남편 간의 갈등을 기반으로 스릴러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단순한 가이드가 아닌 완성된 소설을 부탁드립니다. 
==============================

구글 제미나이 2.0의 소설

인연, 그 후

나는 아사코를 세 번 만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세 번째는 만나지 않았어야 좋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인연이란 덧없이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막으려 할수록 더욱 거세지는 법. 나는 결국 아사코와의 인연을 놓지 못했고, 그로 인해 새로운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아사코는 예전의 앳된 소녀가 아니었다. 세월의 흔적은 그녀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어김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여전히 맑고 투명했다.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아사코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남편과 함께 도쿄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미묘한 질투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만남을 이어갔다. 마치 운명에 이끌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났고, 서로의 삶을 공유했다. 아사코의 남편, 다나카 씨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는 사업가로, 꽤나 성공한 사람이었다. 아사코는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다나카 씨에게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사코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다나카 씨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아사코를 위로하며 함께 다나카 씨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의 행적을 쫓았고, 주변 사람들을 탐문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다나카 씨가 어둠의 세계와 연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업 뒤에는 불법적인 거래들이 숨겨져 있었고, 그는 그것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점점 더 깊숙이 진실에 다가갈수록,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다나카 씨의 실종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사코가 있었다. 나는 아사코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 남편의 불법적인 행위를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사코를 떠나보내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후회했다. 어쩌면 우리는 세 번째 만남 이후, 영영 만나지 않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인연은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만, 때로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사코와의 인연은 나를 어두운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야만 했다. 설령 그 진실이 나를 파멸로 이끈다 할지라도.

밤이 깊어갈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나는 아사코와 함께 다나카 씨의 서재에 있었다. 우리는 그의 컴퓨터를 뒤지며 단서를 찾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다나카 씨가 서 있었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찾고 있던 게 이거였나?”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는 것을. 다나카 씨는 자신의 불법적인 행위를 숨기기 위해 아사코와 나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사코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슬픔과 함께 강렬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다나카 씨에게 달려들었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혼란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총알은 다나카 씨에게 박혔고,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사코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든 채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아사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한번 인연의 잔혹함을 깨달았다. 인연은 시작을 선택할 수 있지만, 끝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아사코와의 질긴 인연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비록 그 삶이 어떠한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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