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봄을 대표하는 지역은 아마도 정선(旌善)이라 할 것이다. 정선 아라리(아리랑), 그리고 그게 태어난 아우라지와 함께 생각나는 지명. 그리고 권력에 눈 먼 숙부에 의해 폐위되어 한양에서 멀고도 먼 귀양길에 오르고, 결국은 16세의 어린 나이로 죽임을 당한 단종(端宗)의 애사(哀史)가 깃든 땅 영월. 마음 한 켠이 아려지는 단종을 생각하며 달려가는 고장이다. 굽이진 길을 어렵게 올라 발견하는 별마로천문대의 낭만이 있고, 영화 "라디오 스타"의 박중훈과 안성기 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곳 역시 영월이다. 정선읍에서 영월읍까지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 있으니 그것이 동강(東江)이다.
영월에서 보아 동쪽이라 동강인 그 강은 깊은 산지를 굽이쳐 돌아 수많은 계곡을 만들었기에 그 일대는 자연 경관이 빼어나다.("라디오 스타"에 특별출연한 노브레인의 극 중 밴드 이름이 East River이다.) 새로 길이 났어도 아직도 교통 불편 지역에 속하는 오지이니 오염도 적다. 그래서 이 청정지역엔 천연기념물도 많고,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이 많아 환경부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 지역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즈음 그 동강의 기암괴석엔 강원도의 봄을 상징하는 작은 꽃이 피어난다. 정선과 영월의 봄이 동강의 바위 절벽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것이다. 그 작은 꽃이 동강할미꽃이다. 바위틈에 끼어 볼품 없이 말라죽은 듯하던 꽃이 봄의 전령처럼 깨어나 작은 나팔을 불어대는 것이다. 그 장한 모습에 이끌려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떨쳐나서게 된다. 다른 할미꽃들과는 달리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고 꽃대가 꼿꼿이 선 당당한 자태에 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을 안고 흐르는 동강을 아래 두고 기암절벽 위에 피어난 동강할미꽃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 해 신기할 지경이다. 그래서 정선군은 이 꽃을 군화(郡花)로 삼았다. 식물학적으로도 이 할미꽃은 별종에 속한단다. 바위 절벽에 자라나니 길을 지나다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그래서 더 귀한 느낌을 준다.
오늘 아침 카톡방 한 군데서 동강할미꽃 사진 두 장을 봤다. 절친인 전민주 (사진) 작가가 주말을 맞아 가깝지도 않은 정선까지 달려가 찍은 사진이다. 카톡방에 올라온 사진은 갤럭시 노트로 찍은 사진이지만 역시 그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강의 파란물은 하늘빛을 그대로 담은 듯하고, 절벽 위 주변의 이끼들은 아직 마른 채인데, 할미꽃은 자주빛 꽃잎을 펼치고, 그 노란 꽃술을 드러내고 있다. 동강 이외 지역의 할미꽃들은 허리가 많이 꼬부라져서 꽃술을 내려다 보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동강할미꽃은 다른 할미꽃들과 구별된다.
강원도의 겨울은 동강의 얼음이 풀려 하늘색 강물로 흘러가는 가운데, 이제 동강할미꽃으로 봄을 알린다. 이즈음이면 찾곤하던 양평 내리, 주읍리의 산수유마을엔 수만 그루의 나무가 샛노란 꽃을 지천으로 달고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나의 봄은 덕소 도곡리의 다양한 들꽃들과 양평의 산수유 꽃을 통해 다가왔었다. 산수유마을은 집사람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찾아나서던 곳이다. 이젠 나 혼자 가야 한다. 혼자 가려는 사람의 죄의식을 입원실에 들어서던 그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로 사(赦)해 주었다.
"그간 나 돌보느라 힘들었는데, 이 때라도 가고픈 데 가고,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그러니 곧 카메라 들쳐메고 나서야겠다. 자전거도 타고, 작년엔 단 한 차례도 못 했던 등산도 다시해야겠다. 스키 시즌을 끝내는 날 종일토록 열심히 모글 스킹을 했는데, 집에 돌아온 후에 몸살이 나서 5일 정도나 고생을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스키 시즌이 올 때까지 운동을 거의 못 한 게 시즌말에 그런 후유증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픈 사람 돌보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다.
* 할 수 없이 내가 손을 댄 사진의 Before and After. 근데 왜 거기 예비군복이?ㅋ
"그간 나 돌보느라 힘들었는데, 이 때라도 가고픈 데 가고,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이 글귀가 찡하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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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제 양평 산수유마을의 산수유 축제를 다녀왔어요. 전과 같은 대규모 축제가 아닌 두 마을 각각의 축제인데, 지난 주말과 이번 주말입니다. 각 내리와 주읍리의 마을 축제이죠. 올핸 예산 문제로 군에서 하던 개군레포츠공원에서의 양평산수유한우축제란 이름의 큰 축제는 못 하기에 마을 축제로 전환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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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 할미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아련한 그 무언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 치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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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동강 할미꽃이 아니고 할미꽃만 보면 그런 감정이 들더군요. 볼 때마다 신기한 느낌을 주는 봄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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